Lee Phil-woo
이필우
1897 ~ 1978
- Field
- Cinematography, Director, Editing
- Debut
- 장한몽(1920)
Filmography 65
Director (3)
Screenplay (3)
각색 (1)
Career
- 1913년
- 우미관 영사기사 조수
- 1916년
- 일본 오사카 제국키네마 고사카 촬영소에서 촬영과 현상 기술 습득
- 1920년
- 문예단의 이기세와 만나 연쇄활동사진극 <지기>를 촬영
- 1924년
- 단성사 촬영부 전속기사
- 1925년
- 고려영화사 창립
- 1926년
- 반도키네마 창립
- 1927년
- 극동키네마 창립
- 1933년 7월
- PKR 발성장치 개발 성공
- 1964년
- 한국영화인협회 부산지회 초대회장
Biography
이필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촬영기사로 영화기술의 개척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소학교를 졸업했다. 1913년 우미관에 들어가 영사기사 일을 배우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촬영과 현상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활동사진 연쇄극 <지기>(1920), <장한몽>(1920)을 촬영하였다. 1924년에 단성사 촬영부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은 각본부터 촬영까지 조선인이 만든 영화로, 이필우가 촬영을 맡았다(대중예술인사전). <장화홍련전>으로 명성을 얻은 이필우는 박정현, 이봉익, 이구영, 정암과 함께 고려영화제작소를 만들고 첫 영화 <쌍옥루>(1925)의 촬영을 맡았다(조선일보a). <쌍옥루>이후 이필우는 반도키네마를 만들어 조선일보의 연재만화 <멍텅구리>(1926)를 영화화 하였다. 이필우는 이 작품의 감독과 촬영을 맡았다.(조선일보b). 1930년경, 미국의 발성영화를 접한 후 발성기술을 연구하기 위하여 일본에 건너갔다. 1933년 조선에 돌아와 경성촬영소에 들어갔다. 경성촬영소는 이필우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조선 최초의 발성영화를 기획하였다(대중예술인사전). 그 결과가 동생인 이명우가 감독 및 촬영하고 이필우가 녹음한 발성영화 <춘향전>이었다(동아일보). 이후 대규모 스튜디오가 주도하는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영화제작 시스템의 도입, 일본에서 기술을 수련한 신진세력들의 등장으로 기술분야의 주도권을 잃게 되면서 영화계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대중예술인사전). 이밖에 그의 촬영작으로 <흑과 백>(1927), <종소리>(1929), <전과자>(1934), <대도전(大盜傳)>(1935) 등이 있다(김종원). * 참고문헌 조선일보a 1925년 8월 24일 조간3면. 조선일보b 1926년 1월 2일 조간3면. 동아일보 1935년 9월 1일 석간3면.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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