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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Lee Kyeong-sun

Lee Kyeong-sun

이경순

1921 ~ 2008

Field
Sound Effects, Production Sound
Debut
내가 넘은 삼팔선(1951)

Filmography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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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13

FestivalYearAwardFilm
제1회 대종상 영화제 1962 녹음상 연산군(장한사모편)
제1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3 기술상 혈맥
제2회 대종상 영화제 1963 녹음상 지옥문
제4회 대종상 영화제 1965 녹음상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제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9 녹음상 카인의 후예

Career

1941년
일본 빅타 축음기 주식회사 경성영업소 라디오부
1947년
주한미국공보원녹음실
1951년
진해협동영화제작소 녹음 및 현상실
1954년
공보처 영화과녹음실
1958년
정릉녹음실, 수도영화 안양녹음실 설치

Biography

1921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났다. 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5년 서울로 거처를 옮겨 빅터축음기주식회사에 실습연구생으로 들어갔다. 1937년에는 빅터사에서 본격적으로 현장연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경성전기학교(京城電氣學校) 야간부에 들어가 1941년에 졸업했다. 이 무렵 서울 약초극장(若草劇場)에서 RCA토키장치의 출장서비스를 담당하게 되었고, 빅터사에서 알게 된 최칠복을 따라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영화녹음 현장을 견학하기도 했다고 한다. 해방 후 경성전기회사(京城電氣會社) 통신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최칠복의 소개로 주한미군 502부대 녹음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며, 이필우, 이명우, 김학성 등과 뉴스영화 및 문화영화를 제작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주한미국공보원과 함께 진해로 내려가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1951년 당시 국방부가 제작하던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의 녹음을 위한 시설 대여 요청을 미공보원이 거절한 데 충격을 받아서 퇴직하게 된다. 이때 조백봉, 김형근, 김봉수 등 함께 나온 동료들과 함께 목욕탕을 개조해 영화협동제작소라는 녹음실을 개설했다고 하며, 손전의 <내가 넘은 삼팔선>(1951), 신상옥의 <악야>(1952), 정창화의 <최후의 유혹>(1953) 등 젊은 감독들의 데뷔작 녹음을 담당했다. 이후 이규환의 <춘향전>(1955), 홍성기의 <열애>(1955), <춘향전>(1961), 신상옥의 <지옥화>(1958), 김기영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 등 중요한 작품들에 참여했으며, 1962년 한양녹음실, 1969년 (주)한양스튜디오로 개칭한 자신의 스튜디오를 통해 1990년대 후반까지도 왕성하게 영화녹음을 담당했다(이경순). 한국영화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2008년 5월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08년 5월 22일자 이경순, 『소리의 창조: 나의 영화녹음 오십년』, 한진출판사, 1996. [작성: 김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