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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Tai-woo

이태우

Field
Props, Actor
Debut
쟌발쟌(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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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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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2

FestivalYearAwardFilm
제27회 대종상 영화제 1989 영화발전공로상 -
제40회 대종상 영화제 2003 특별연기상 -

Career

1933년 9월 20일
울산 출생. 일본 북해도로 이주
1940년
일본 후라노초등학교 입학
1945년
해방 후 울산으로 이주. 울산 용잠초등학교 입학
1949년
부산으로 이주
1950년
미 5공군 사령부 헌병대 근무

Biography

1933년 울산에서 태어난 이태우는 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고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1950년대 중반 악극단 출신 선배를 통해 군예대에 들어가 연기와 무대 일을 하였다. 당시 군예대에서 배삼룡, 송해, 박시명, 박노식 등과 함께 생활했다. 군예대 제대 후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에 참여하면서 영화소품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는 <태조 이성계>(1965), <청사초롱>(1967), <문정왕후>(1967), <에밀레종>(1968) 등 주로 사극영화에서 소품 작업을 했다. 영화작업이 많아지면서 소품을 보관하기 위해 뚝섬의 영화스튜디오를 빌려 소품스태프들이 공동으로 창고를 나눠 쓰기 시작했다. 소품, 의상, 특수효과 스태프의 친목 단체인 삼우회를 결성해 영화작업의 효율을 높였다. 그러나 창고에 모아둔 소품이 화재로 모두 사라져버리는 사고를 겪게 되고 이로 인해 태릉으로 소품 창고를 옮기게 되었다. 소품인들은 동심회란 모임을 만들어 재기를 도모했다. 동심회는 개인의 소품을 모두 모아 공동으로 보관·관리했으며 영화사와 공동으로 교섭하고 이익은 분배하는 직능 단체, 협업 단체였다. 당시 충무로의 소품스태프는 대부분 동심회 소속이었다. 이예호, 차순하, 김호길, 김태욱, 이태우 이들이 동심회의 주축이었다. 소품 창고는 수차례 장소가 옮겨졌다가 최근 남양주종합촬영소 내의 장식센터에 정착했다. 이태우는 남양주종합촬영소 내 영화장식센터의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2009년 별세하기까지 영화소품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한국영화를 말한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2』, 이채, 2006, 338~372쪽. [작성: 김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