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139
Awards 37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 1974 | 특별상(연출) | 증언 |
| 제12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6 | 영화부문 감독상 | 왕십리 |
| 제1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7 | 영화부문 감독상 | 낙동강은 흐르는가 |
| 제17회 대종상 영화제 | 1978 | 감독상 | 족보 |
| 제20회 대종상 영화제 | 1981 | 감독상 | 만다라 |
| 제19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83 | 영화부문 감독상 | 안개마을 |
| 제25회 대종상 영화제 | 1986 | 감독상 | 티켓 |
| 제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86 | 감독상 | 길소뜸 |
| 제26회 대종상 영화제 | 1987 | 감독상 | 연산일기 |
| 제32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87 | 최우수작품상 | 씨받이 |
| 제32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87 | 감독상 | 씨받이 |
| 제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87 | 감독상 | 티켓 |
| 제1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1 | 감독상 | 개벽 |
| 제2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1991 | 감독상 | 개벽 |
| 제1회 상하이국제영화제 | 1993 | 감독상 | 서편제 |
| 제1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3 | 감독상 | 서편제 |
| 제1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3 | 대상 | - |
|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 1993 | 감독상 | 서편제 |
| 제4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1993 | 감독상 | 서편제 |
| 제6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1995 | 춘사영화예술상 | - |
| 제17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6 | 감독상 | 축제 |
| 제3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97 | 영화부문 감독상 | 축제 |
| 제36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2000 | 영화부문 대상 | 춘향뎐 |
| 제36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2000 | 영화부문 감독상 | 춘향뎐 |
| 제45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2000 | 심사위원특별상 | 춘향뎐 |
|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 | 2000 | 넷팩상 | 춘향뎐 |
| 제10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2 | 춘사탄생 100주년 기념 공로상 | - |
| 제2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2002 | 감독상 | 취화선 |
| 제55회 칸 영화제 | 2002 | 감독상 | 취화선 |
| 제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 2005 | 명예상 | - |
| 제10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 2007 | DIRECTOR OF DIRECTORS | - |
| 제2회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한국영화 | 2012 | 선정작 | 달빛 길어올리기 |
| 제51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2015 | 영화 작품상 | 화장 |
| 제21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16 | 공로상 | - |
|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2016 | 공로영화인상 | - |
| 제6회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한국영화 | 2016 | 선정작 | 화장 |
|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 2021 |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 - |
Career
- 1989년
- 문화훈장 보관장
- 1991년
- 프랑스 예술문학 기사훈장
- 1994년
- 제11회 금호예술상
- 1994년
- 동아일보 선정 '93올해의 인물'
- 1994년
-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1996년
- 한국영화연구소 자문위원
- 1996년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 1996년 6월
- 한국영화연구소 초대 이사장
- 1997년
- 후쿠오까 아시아 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 1997년
- CINEMA NOMO 영화제 임권택 감독 주간 '축제'등 10편
- 1998년
-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부 겸임교수
- 1998년
-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 1998년
-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1999년
-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 2002년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2002년 7월 2일
- 가톨릭대학 명예문학박사
- 2002년
- 금관문화훈장
- 2002년
- 유네스코 펠리니 황금메달
- 2002년
- 제3회 올해를 빛낸 한국인상
- 2003년
- 제13회 호암상 예술상
- 2003년
- (사)전남영상위원회 명예위원장
- 2004년
- 제8회 만해대상
- 2005년
- 자랑스런 전남인상
- 2005년
-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 명예대사
- 2007년
-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
- 2007년
-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스타어워드 특별상
- 2008년 2월~
-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명예학장
- 2008년 7월
- 제10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위원장
- 2009년 6월
- 제12회 상하이 국제 영화제 아시아신인상 부문 심사위원장
- 2010년 10월
- G20 정상회의 개최 성공기원 스타 서포터즈
- 2011년
- 사단법인 한국상록회 제19회 인간상록수 추대
- 2011년 5월 26일
- 전남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
- 2011년 6월
- 제10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전' 특별심사위원
- 2011년 8월
- 서울드라마어워즈 본심심사 위원장
- 2015년
- 전남문화예술재단 명예대사(2015.12.16)
Biography
1934년에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시절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삼촌의 영향으로 아버지 역시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 활동을 했으며, 그 때문에 급속히 기울어버린 가세와 빨치산 가족이라는 낙인이 지겨워, 중학교 3년 재학 중이던 18세에 집을 나와 부산으로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부산에서 군화를 떼어다 팔며 생활했는데, 휴전이 되자 군화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서울로 기반을 옮겨 영화제작에 나선다. 그렇게 제작한 영화가 정창화 감독의 <장화홍련전>(1956)이었다. 한편, 부산에 남아 군화장사를 하던 임권택에게 서울로 올라와 제작부 막내 일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듣고, 1955년 <장화홍련전>의 스탭으로 영화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소품부, 연출부를 거쳐 1960년 <햇빛 쏟아지는 벌판>에서 조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한다(정성일). 그러던 중,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 <지평선>(1961) 등 대작 액션물들을 제작하던 한흥영화사의 최관두 사장이 조감독 임권택이 만든 예고편을 보고 연출제의를 한다. 그렇게 연출한 데뷔작이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이며, 이후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50여 편을 감독한다(인터뷰365). 그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멜로드라마, 뮤지컬, 액션, 무협, 스릴러, 코미디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들을 할리우드, 홍콩의 영화를 모사해가며, 또 그들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들을 경주한다. 그러던 중,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지방업자들을 직접 만나고, 빚져가며 제작한 영화가 나한봉 작가와 준비한 <잡초>(1973)였다(인터뷰365). <잡초>(1973)는 흥행에 실패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충무로 제작자들에게 장르물에 능한 다작의 임권택이 아닌, 진지한 영화도 만들 수 있는 감독 임권택으로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1972년 유신체계에 돌입하며 영화사들이 14개로 정리되고, 우수영화에 대한 외화 쿼터 보상 제도가 시작되는 시점에 <잡초>를 감독한 임권택 감독은 제작자들에게 좋은 선택이 된다. 이 시기 <연화>(1974), <아내>(1976), <족보>(1978), <상록수>(1979), <깃발 없는 기수>(1979) 등의 작품들을 연출하고서, 1980년대로 접어든다. 1980년대는 <짝코>(1980)로부터 시작해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씨받이>(1986), <티켓>(1986), <아다다>(1987), <연산일기>(1987),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등 임권택 개인의 필모그래피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채워지고, 1990년대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시작으로, <개벽>(1991),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축제>(1996), <창>(1997) 등으로 이어진다. 2000년대 들어와 <춘향뎐>(2000)을 거쳐 <취화선>(2002)으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다. 이후 자신이 통과해 온 1970년대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고백인 <하류인생>(2004)을 거쳐, <서편제>의 송화의 후일담 같아 보이는 100번째 연출작 <천년학>(2006)을 연출한다. * 참고문헌 정성일 대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한다』, 현실문화연구, 2003년 ‘나는 아직 대표작이 없는 감독, 임권택‘, 인터뷰365, 2007년 12월 4일 (http://www.interview365.com/news/332)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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