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74
Director (23)
- God's Eye View 이장호 • 2013
- A journey with Korean masters 이장호, 이두용, 박철수, 정지영 • 2011
- 괴로우나 아름다워 이장호 • 2011
- Declaration of Genius 이장호 • 1995
- Myong-Ja Akiko Sonia 이장호 • 1992
- Miss Rhino and Mr. Korando 이장호 • 1989
- The Man with Three Coffins 이장호 • 1987
- Y's Experience 이장호 • 1987
- Lee Jang-ho's Baseball Team 이장호 • 1986
- Eoh Wu-dong 이장호 • 1985
Awards 13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 1974 | 신인상 | 별들의 고향 |
| 제11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5 | 영화부문 신인상 | 별들의 고향 |
|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 1980 | 감독상 | 바람불어 좋은날 |
| 제21회 대종상 영화제 | 1982 | 감독상 | 낮은데로 임하소서 |
| 제2회 도쿄국제영화제 | 1987 | 국제비평가협회상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 제24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88 | 영화부문 특별상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 제38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2018 | 영화감독부문 공로상 | - |
| 제3회 신필름예술영화제 | 2019 | 공로상 | - |
| 제6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 2019 | 공로상 | - |
| 제15회 상록수디지로그월드영화제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 2021 | 영화발전 공로상 | - |
| 제27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22 | 공로상 | - |
| 제8회 서울충무로영화제 (구 충무로뮤지컬영화제) | 2023 | 공로상 | - |
| 제69회 대한민국예술원상 | 2024 | 연극·영화·무용 부문 | - |
Career
- 1965년~1973년
- 신필름 조감독
- 1971년~1972년
- 민족극단 단원
- 1984년~1985년
- 이장호워크숍 설립 및 운영
- 1986년~
-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 1986년~2000. 8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 1996년
- 중부대학교 예술학부 연극영화학전공 부교수
- 1996년~2000년 8월
- 한국영화연구소 이사
- 1996년 12월
- 아트센터 영화학교 공동설립, 사무총장 운영위원
- 1997년~
- 부천시 영상도시화 Project 연구원
- 1997년
-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 1999년
- 창작오페라 <황진이> 연출
- 2000년 9월
- 전주대학교 영상콘텐츠학부 영화영상전공 교수
- 2002년 11월
- 서울시 문화상
- 2003년 10월
- 옥관문화훈장
- 2006년
-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 2010년 2월~
- 제3대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 2011년 4월
- 2011 경기국제항공전 홍보대사
- 2011년 7월
- 2012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
- 2013년 4월 12일
-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前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하 한예진) 부학장으로 취임
- 2022년
-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저술내용)「모두 주고 싶다」(일기)
Biography
이장호는 홍익대 건축과 재학 당시, 공보처 영화검열관이었던 아버지의 소개로 신필름 연출부에 들어갔다. <천년호>(1969), <이조 여인잔혹사>(1969), <만종>(1970) 등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뒤 1974년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했다. 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깊은 불황 속에서도 이장호의 데뷔작은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작자인 최인호는 이장호와 서울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사이였으며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이장희는 후배였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한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별들의 고향>으로 그해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연출작인 <어제 내린 비>(1974)까지 16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장호는 충무로의 촉망 받는 신인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4년간 영화 활동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1979년 12월 활동 정지가 풀리자 최일남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각색한 <바람불어 좋은날>(1980)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이 영화는 이전에 이장호가 만든 네 편의 전작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영화에는 사회를 통찰하는 이장호의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리얼리즘 영화의 첫 시작이었다. <바람불어 좋은날>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이장호는 재기에 성공했다. <바람불어 좋은날>이 시대를 고발하는 영화였다면, <바보선언>(1983)은 시대에 저항하는 영화였다. <바보선언>은 모든 영화적 관습을 파괴하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였다. 이 영화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이장호는 당대 정권으로부터 문제인물로 낙인찍혀 영화연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 이장호는 생계를 위해 문화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상업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이장호는 흥행감독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대학교 영화영상전공 교수,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등의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네이버캐스트, 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korean/movieperson/222)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884&keyword=이장호)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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