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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m Byung-ho

임병호

1921 ~ 1998

Field
Cinematography, Production/Planning
Debut
귀착지(1939)

Filmography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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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42년
윤봉춘 감독의 <신개지>로 출발하여 <수선화>, <무정>, <반도의 봄>으로 일제 시대 촬영조수 생활, 이후 46년 <제주도 풍토기>와 촬영감독 데뷔를 했다. 1955년 우리 영화의 성장을 알린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 <심청전>과 56년 <시집가는 날>은 물론 희극 영화의 대표작인 <오부자>와 <사람팔자 알수 없다>, <한번봐주세요>, <논산훈련소에 가다> 등 홀쭉이 뚱뚱이 시리즈를 내놓았다.
동아흥업 창립후 제작부장으로 입사. <정복자>같은 대작을 진두지휘했고 그후 세기상사, 동아흥행에서 제작본부장으로 76년 까지 현장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동생인 임진환 기사도 촬영을 전공하다가 나보다 먼저 타계했다. 또한 촬영감독협회 회장과 고문을 거쳐 한국영화 유공자 협회 회원과 스틸사진위원회 명예회장을 역임했으며 우리나라 필름보관소를 위해 초창기 영화인중 고인이된 영화인의 유족들을 통해 유품 및 영화자료를 수집, 오늘의 영화자료원의 기반을 구축하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촬영감독협회 회장 및 고문
한국영화유공자협회 회원
스틸사진위원회 명예회장

Biography

1921년 서울시 중구 다동에서 출생했으며, 경기중학교를 졸업했다(국제영화). 1939년 한양영화사(漢陽映畵社)가 제작한 <귀착지>에서 이신웅 촬영기사 보조로 일하면서 영화에 입문했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에 들어가 <무정>(1939), <수선화>(1940) 등에서 촬영팀으로 활동했으며(국제영화), 조선영화령(朝鮮映畵令) 이후 활동을 잠시 접었다가 윤봉춘의 <신개지>(1942)로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해방 후에는 조선영화건설본부(朝鮮映畵建設本部) 소속으로 뉴스영화를 촬영했으며, 이재명의 조선영화사(朝鮮映畵社)가 제작하고 이용민이 감독한 <제주도 풍토기>(1946)의 촬영을 맡으면서 기사로 데뷔했다(영상기술). 1949년 주한미국공보원이 제작한 홍개명 감독의 반공영화 <전우>(1949)에서도 촬영을 맡았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공보원과 함께 진해로 내려가 뉴스영화 등을 촬영했다(이경순). 1956년 이용민의 <포화속의 십자가>로 다시 상업 장편영화 촬영을 재개하기 시작한 그는 이규환의 <심청전>(1956),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 권영순의 <오부자>(1958), 신상옥의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1959) 등을 촬영하며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반을 주 무대로 활동했다. 한편 1962년부터는 동아흥업주식회사가 창립되자 제작부장으로 입사, 기획자로도 변신하였다(한국영상자료원). <굳세어라 금순아>(1962), <정복자>, <단종애사>(1963)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며, 이후 세기상사 소속으로 <벽속의 여자>(1969), <월하의 검>(1970) 등을 기획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그는 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옛 영화사 창고를 뒤지거나 은퇴한 제작자를 만나 설득하는 방식으로 약 500편의 영화필름을 수집해 현 한국영상자료원의 기반을 다지는 데도 기여했다(경향신문). 역시 촬영기사인 임진환의 친형이며, 1998년에 별세했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5년 5월 25일자 7면 동아일보 1998년 11월 26일자 17면 8.15 광복기의 한국영화(임병호), 『영상기술』 제5호(1992년 6월 발행)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