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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 Jang-ho

변장호

1939 ~ 2022

Field
Director
Debut
태양은 내것이다(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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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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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7

FestivalYearAwardFilm
제8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71 특별상(신인감독) 여자가 화장을 지울 때
제19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1973 감독상 홍살문
제11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75 영화부문 감독상 망나니
제22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1976 감독상 보통여자(김수현의 보통여자)
제20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84 영화부문 감독상 사랑 그리고 이별

Career

1972~73년 10월 한국 영화 감독협회 부회장
1974~79년 11대, 12대, 13대 한국 영화 감독협회 위원장
1977년
대종출판사 설립
1981~82년 영화 진흥공사 비상임이사
1981~84년 12대, 13대 한국영화인 협회 이사장

Biography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4학년을 다니던 1960년 신필름에서 실시한 조감독 공채 모집에 응모하여 합격한다. 여기서 6개월간 조감독 수련기관을 거치고 감독자격을 얻게 되지만, 이 무렵 신필름의 상황이 악화되어 충무로로 나와서 1965년 <태양은 내 것이다>를 연출하지만, 1967년에야 개봉하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정과 애>(1969)부터 흥행에 성공하여, 이후 문예물, 멜로드라마,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다. 액션 장르들은 <명도의 왕과 박>(1970), <현상 붙은 4인의 악녀>(1971), <상해의 불나비>(1971) 등 1970년대 초반의 경력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명동잔혹사>(1972)와 같은 경우는 나한봉, 유열, 신봉승 등 시나리오 작가가 공동집필하고, 변장호, 최인현, 임권택 등 세 감독이 세 부분으로 나눠 찍은 옴니버스 영화이다(동아일보).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문예 영화와 멜로드라마 사이를 오가는데, 그 경향의 작품들이 <홍살문>(1972), <비련의 벙어리 삼용>(1973) 등의 문예 영화와 <눈물의 웨딩드레스>(1973), <O양의 아파트>(1978) 등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들이다. 이 시기 호스티스 멜로드라마 연출작들이 모두 흥행적 성공을 거두고, 문예영화 역시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게 되며 <비련의 벙어리 삼용>같은 경우는 <피리부는 삼용>, <천하무적 삼용> 등으로 연작으로 제작 계획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흥행과 예술적 성과 모두를 낼 수 있는 감독으로서 그 차기작의 캐스팅을 둘러싸고 배우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경향신문a). 1980년대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1980)의 리메이크로 또다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문예영화인 <감자>(1987)을 제작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인협회에서 감독분과위원회 위원장과 협회장을 맡아 영화법 개정을 통합 자유제작제와 외국영화자본유입 등을 주장하며 한국제작자협회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경향신문b).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제작사 대종필름을 설립하고, <눈짓에서 몸짓까지>(1986), <감자>(1987), <만무방>(1994) 등을 제작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74년 12월 11일 경향신문b 1982년 3월 19일 12면 동아일보 1972년 6월 6일 8면 매일경제 1974년 7월 15일 8면 [작성: 전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