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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Chung Jin Woo

Chung Jin Woo

정진우

Field
Director, Production/Planning
Debut
잃어버린 청춘(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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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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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25

FestivalYearAwardFilm
제10회 대종상 영화제 1971 우수계몽영화상영상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제14회 부일영화상 1971 최우수작품상 동춘(凍春)
제14회 부일영화상 1971 감독상 동춘(凍春)
제7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71 영화부문 작품상 동춘(凍春)
제11회 대종상 영화제 1972 장려상 작은 꿈이 꽃필 때(일명:불타라 청춘)

Career

1969년
(주)우진 필름 설립
1971년
영화인협회 감독분과 부위원장
1972년
영화제작자협회 이사
1973년
한국영화 진흥공사 제작 상임이사
1974년
<들국화는 피었는데> 제작 참여

Biography

정진우는 4남 5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양곡 초등학교, 김포중학교, 김포 농고,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유현목 감독의 <잃어버린 청춘>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정창화 감독의 조감독을 거쳐 1961년 <외아들>로 감독 데뷔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경향신문a). <심봤다>(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앰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등을 통해 6,70년대 흥행감독 대열에 올랐다(필름2.0). <초우>(1966)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며 영화작가로도 인정받았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는 대종상 9개 부분에서 수상해 대종상 최다 수상작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스타뉴스). 또한 제 23회 대종상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자녀목>(1984)은 제1회 도쿄영화제에서 ‘세계영화 베스트30’에 선정되기도 했다(경향신문c). <초우>를 시작으로 영화 제작도 겸하게 되면서 1969년에는 영화사 우진필름을 설립하여 대표이사를 맡았다. 후시녹음이 일반화되어있던 70년대에 동시녹음 영화제작에 앞장섰다. 그가 제작·연출한 <율곡과 신사임당>(1978), <가시를 삼킨장미>(1979), <심봤다>(1979)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동시녹음영화로 꼽힌다(경향신문a).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에서는 국내 최초로 제대로 된 수중촬영을 하는 등 영화기술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동아일보a ). 1972년 영화진흥공사 제작담당 이사로 재직하면서 국책영화인 임권택의 <증언>(1973)과 이만희의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를 제작하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85년에는 멀티플렉스의 전신인 국내 최초 복합극장 씨네하우스를 설립하였다. 1989년에는 미국직배영화인 <인디애나 존스>(1984), <레인 맨>(1987)등을 상영한 것이 영화인들의 반대에 직면했고 그 여파로 자신의 극장이 방화피해를 입기도 했다(동아일보b, 경향신문b).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79년 10월 20일자 5면. 경향신문b 1996년 10월 31일 56면. 경향신문c 1995년 5월 27일자 23면. 동아일보a 1981년 10월 8일자 12면. 동아일보b 1989년 5월 27일자 13면.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958&keyword=정진우) “정진우 감독, 인터넷 회고전 개최”, 『필름2.0』(2001년 6월 25일 발행).(KMDS 검색) “키스신, 특수효과, 심야영화, 韓영화 최초는?”, 스타뉴스.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30411465868539&type=1&outlink=1) [작성: 김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