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861
Editing (860)
- The Marine Revelation 이병주 • 1995
- Light in My Heart 이기원 • 1995
- Lipstick and A Man's Love 고응호 • 1994
- Mascara 이훈 • 1994
- The Man in the Sun 양병간 • 1994
- West of Eden 권영순 • 1994
- In a Handful of Time 백일성 • 1993
- The Moon is What the Sun Dreams of 박찬욱 • 1992
- A Foolish Lover 노세한 • 1992
- The End of a Short Trip 유건조 • 1992
Awards 7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기술상 | 탈출명령 |
| 제10회 대종상 영화제 | 1971 | 편집상 | 화녀 |
| 제16회 대종상 영화제 | 1977 | 편집상 | 집념 |
| 제18회 대종상 영화제 | 1979 | 편집상 | 깃발없는 기수 |
|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 1980 | 편집상 | 바람불어 좋은날 |
| 제21회 대종상 영화제 | 1982 | 편집상 | 철인들 |
| 제23회 대종상 영화제 | 1984 | 편집상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Career
- 1930년대 후반 신의주 신영극장(사장 임경범)의 영사보조로 들어감. 1947년 전까지 영사기사로 활동
- 1947년
- 월남. 고향 선배 한형모 감독의 집에서 기거하며 영화를 배움
- 1950년
- 한국전쟁 발발 후 대구로 한형모 감독을 찾으러 가나 실패하고 입대
- 1951년
- 군영화촬영소에서 양주남 감독에게 편집을 배움
- 1953년
- 종전 후 필동의 군영화촬영소에서 공무원 신분의 편집기사로 활동
- 1958년경 "김희수편집실"로 독립. 이후 이도원과 함께 활동
- 1997년
- 영화의 날 표창
Biography
192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신의주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다, 1947년 남한으로 내려온다. 서울에 와서 고향 선배였던 한형모 감독의 집에 머물며 <성벽을 뚫고>(1949)의 제작을 도우며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인다. 한국 전쟁 때 국군에 입대하여 전선을 누비다, 중국의 개입으로 부산까지 밀려온 자리에서 당시 국방부 영화제작소에서 일하던 한형모 감독을 다시 만나 국방부 영화제작소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거기서 양주남 감독을 만나 편집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편집의 리듬, 컷들의 조화를 익히기 위해 할리우드나 러시아 영화의 프린트를 빌려 몇 번이고 돌려가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 김희수 편집실을 열었는데, 당시 독립된 편집실은 친구였던 유지원이 열었던 편집실 이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충무로에서 제작된 수많은 작품들의 편집을 담당하나, 그 중에서도 정창화, 임권택, 이만희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한다. 정창화 감독과는 20여 편의 작품을, 임권택 감독과는 데뷔작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 이래로 50여 편의 작품을, 또 이만희 감독과도 역시 데뷔작인 <주마등>(1961) 이래로 30여 편의 작품을 함께 한다. 2008년에 별세했으며, 그의 두 아들, 김상범, 김재범 역시 편집기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를 말한다 : 1950년대 한국영화』, 도서출판 이채, 2004 [작성: 황미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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