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136
Original Work (1)
Awards 1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6회 부일영화상 | 1963 | 최우수작품상 | 아낌없이 주련다 |
Career
- 1945년 3월
- 평양신학교 졸업
- 1946년 3월
- 서울신문학원 수료
- 1949년 2월
- 한성일보사 기자
- 1953년 5월
- 연합신문사 문화부장
- 1955년 3월
- 피망사 편집국장
- 1959년 7월
- 극동흥업 창립 대표
- 1964년 3월
- 반도여행사 대표, 극동TV푸로덕숀 대표
- 1967년 2월~1972년 1월
- 극동필름 대표
- 1973년 5월
- 사단법인 영화배급협회 상임감사
- 1974년 9월
- 영화진흥공사 진흥담당 이사 역임
Biography
1924년에 태어나 목사의 아들로 평양 신학교를 나왔다(경향신문). 1949년 한성일보 기자, 1953년 연합신문사 문화부장, 1955년 희망사 편집국장 등 언론계에 있다가(한국영상자료원a), 1950년대 후반 한국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제작본부장으로 일한다. 4.19 이후 임화수와 함께 한국연예주식회사가 몰락하자, 한국연예주식회사에서 편집기사로 일하던 김기덕 감독과 함께 극동흥업을 창립한다(한국영상자료원b). 최초로 제작한 작품은 김화랑 감독의 <바보 칠성이>(1961)였으며, 이어 김기덕 감독의 <5인의 해병>(1961), <대괴수 용가리>(1967), 엄심호 감독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1962), 유현목 감독의 <김양국의 딸들>(1963) 등을 제작한다. 1964년 대히트를 기록한 <맨발의 청춘>(1964) 이후 청춘 영화 전문극장인 아카데미 극장과 함께 파트너쉽을 이루며 <흑발의 청춘>(1966), <초우>(1966), <내 주먹을 사라>(1966), <청춘고백>(1968) 등 청춘영화를 제작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는 당시 유행 장르였던 다수의 액션영화들을 제작한다. 1970년대로 접어들 무렵, 사세가 커지면서 성우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극동 방송 아카데미를 열고, 반도 여행사를 설립하는 한편, 대만에서 서커스를 들여 흥행업에도 뛰어드는 등 사업다각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국일보에서 들여온 독일 서커스와의 경쟁에 뒤져 커다란 재정적 손실을 입고, 1972년 문공부로부터 영화제작사 등록 취소 통보를 받는다. 극동흥업을 접은 후, 영화진흥공사의 진흥담당 이사로 역임하며, 대작 영화들의 생산을 이끌고, 독립기념관 내의 180 영사관인 서클비전의 기획을 맡는다(오재미동).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3년 3월 8일 3면 충무로 미디어센터 오재미동, 『충무로 프로젝트』, 미디어버스, 2007, 11~18쪽 한국영상자료원a,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한국영상자료원b,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도서출판 이채, 2005년, 22~25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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