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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 Geum-seong

석금성

Field
Actor
Debut
심청(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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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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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1

FestivalYearAwardFilm
제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1983 특별공로상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Career

1925년
극작가 이서구의 제안으로 토월회에 입단, 배우 경력 시작

Biography

석금성은 기생 출신으로 1925년 토월회에 가입하면서 여배우로서의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첫무대는 <추풍감별곡>이라는 작품이었고, 이 작품에서 추향 역을 맡았다. 영화 데뷔작으로 석금성은 <약혼>(1929)을 들고 있지만, <약혼>의 개봉 광고나 제작 관련 기사에서 석금성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매일신보b). 아마도 중요한 배역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1929년에는 금강키네마가 제작한 <종소리>에 출연하였으면, 1930년에는 서울키노가 제작하고 김유영이 감독한 <화륜>에도 참여하였다(매일신보a; 조선일보b). 그리고 이즈음 최승일과 결혼하였다(중앙일보). 석금성은 토월회가 해체하고 난 뒤에는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인 남편 최승일과 함께 미나도좌에서 활동하면서, <탄갱부>(1930), <하차>(1930) 등의 연극에 출연하였다. 이후 신흥극단에서 <목단등기>(1930)의 주연을 맡으며 인기를 얻었다. 당시 석금성에 대해 혹자는 "조금 쌀쌀한 듯 하면서도 미모의 소유자"라고 평하였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조선일보a). 다시 영화에 참여한 것은 1937년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제1회 작품으로 안석영이 감독한 <심청전>이었다(동아일보c). 해방 이후에는 동아영화기업사가 제1회 작품으로 제작한 문예영화 <마음의 고향>에 변기종, 남승민, 최은희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동아일보d). 이즈음 남편인 최승일은 자녀를 이끌고 월북을 하였지만, 석금성은 하지 않았다(동아일보g). 이후 <춘향전>(1955), <심청전>(1956), <단종애사>, <장화홍련전>(1956), <아리랑>(1957), <자유결혼>(1958), <청춘극장>(1959), <길은 멀어도>(1960), <삼등과장>(1961), <김약국의 딸들>(1963), <행복한 고독>(1963)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이후 도박 스캔들에 연류 되면서 영화계와 조금 멀어져 있던 석금성은 1982년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로 다시 영화계 돌아왔다. 이 때 석금성의 나이는 77세였다(경향신문a). 1985년 KBS TV문학관 <사평역>이라는 작품에서 자식을 잃어버리고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파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TV드라마에도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1991년 설날 특집 드라마 <너도 늙어봐라>와 87세 때인 1993년에 SBS TV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기타 여러분>에 출연하였다(경향신문b; 경향신문c; 경향신문d). 1995년 9월 3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동아일보e). * 참고문헌 매일신보a 1929년 3월 5일 2면. 매일신보b 1930년 10월 3일 5면. 조선일보a 1930년 9월 18일 석간 5면. 조선일보b 1930년 10월 8일 석간 5면. 중앙일보 1932년 1월 3일 3면. 동아일보a 1930년 9월 19일 5면. 동아일보b 1931년 6월 17일 4면. 동아일보c 1937년 11월 10일 5면. 동아일보d 1948년 12월 24일 2면. 동아일보e 1995년 9월 5일 30면. 경향신문a 1983년 1월 29일 2면. 경향신문b 1985년 11월 28일 12면. 경향신문c 1991년 2월 8일 17면. 경향신문d 1993년 11월 4일 18면.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