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60
Awards 3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4회 부일영화상 | 1961 | 감독상 | 젊은 표정 |
| 제5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69 | 영화부문 감독상 | 장군의 수염 |
| 제6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0 | 영화부문 감독상 | 지하실의 7인 |
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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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이병일 감독의 친척으로 1947년 동아영화사에 입사하여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즈음 동국대학교에 들어가 유현목 감독이 주축이 되어 만든 영화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며, 1949년에는 영화예술연구회에서 제작하고, 유현목이 감독한 45분 분량의 영화 <해풍>에 배우로도 참여한다(동국연극80년사). 영화예술연구회에서의 활동과 이병일 감독의 조감독 경험을 거쳐 1960년 <젊은 표정>으로 감독 데뷔한다. <젊은 표정>은 당시 뉴웨이브를 표방하며 재일교포 제작자 전홍식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감독 이강원 등과 함께 결성한 제작사 신예 프로덕션의 첫 번째 작품으로 1960년대 이어질 청춘영화의 효시격이 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지만, 국산영화계에 보기 드문 역작(서울신문)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어 연출한 <사랑이 문을 두드릴 때>(1961)로는 "간혹 지나치게 카메라만을 염두에 둔 의식적인 쇼트"(경향신문a)라는 평을 듣거나, <하늘과 땅 사이에>(1962)에서는 "묘사가 유려한 카메라 워크"(경향신문b)라는 평을 듣는 등 영화의 시각적, 형식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연출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한 스타일이 1960년대 중후반의 문예영화 붐과 조화를 이룬 <메밀꽃 필 무렵>(1967)을 지나, 그 이듬 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군의 수염>(1968)에서는 "감독술과 조화된 색채의 영상미술, 그리고 촬영술이 이 영화만큼 고도로 앙상블을 이루어준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경향신문c)라는 평가를 들으며 후일 한국영화사에 있어 유현목의 <오발탄>(1961)과 함께 대표적인 모더니즘 영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에는 한국 최초의 70mm 영화인 <춘향전>(1971)을 연출하고, 포항제철 건설 당시의 역경과 그 극복 과정을 그린 <해벽>(1972), 남한 기독교 내에 침투한 간첩의 이야기인 <악마의 제자들>(1974)과 같은 국책, 프로파간다 영화들을 연출하는 한편, 여러 편의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낸다. 1979년부터 할리우드와 합작하여 만든 <오 인천>의 한국 측 감독으로 테렌스 영 감독과 함께 공동연출을 시작하는데, 제작비 초과, 추가, 보충 촬영 등 여러 난관을 거치다가 1981년에는 테렌스 영 감독이 해고되며 남겨진 영화의 완성을 떠맡는다(경향신문d). 이즈음 한국에서 연출을 중지하고 브라질로 이민 갔으며, 2005년 별세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1년 8월 12일 4면 경향신문b 1962년 5월 28일 4면 경향신문c 1968년 9월 14일 5면 경향신문d 1981년 2월 28일 12면 서울신문 1960년 2월 28일 석간 4면 김흥우, 동국연극 80년사 3 (http://www.donggukin.org/news/articleView.html?idxno=240696)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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