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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yung-iI

이병일

Field
Director, Production/Planning
Debut
딱한 사람들(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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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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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40년
명보영화사 설립
1942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전속 감독 입사
1945년
조선영화동맹 중앙집행위원
1949년
안창호의 아들이자 영화배우인 필립 안의 추천으로 남가주대학(USC) 수학
1954년
동아영화사 설립

Biography

1910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한자가 다른 이병일(李炳一)이라는 설(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한국영화감독사전)과 이병록(李炳錄)이란 설이 있다(친일인명사전). 아호는 졸정이다. 도쿄 미사키 영어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황운의 <딱한 사람들>(1932)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와 인연이 닿았다. 일본 유학 중 김소동과 1933년에 코리아레코드사를 설립했으며, 1936년 닛카츠(日活) 영화사 연출부에 입사해 아베 유타카(阿部豊) 밑에서 연출공부를 했다(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1940년 귀국 후 함흥에서 명보극장을 운영하던 이기웅과 명보영화사를 설립했고, 1941년에 <반도의 봄>을 연출했다. 이후 잇따라 1943년 <반도의 소녀들>, 1944년 <적기는 다시 온다>를 연출했고, 1945년 <고향 이야기>를 촬영을 진행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조선영화건설본부에서 <해방뉴스>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좌익 조직인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친일인명사전). 하지만 1947년부터는 우익 영화인 조직인 영화감독구락부에 참여했다(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1948년 외무처장 한원신의 추천으로 20세기 폭스사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49년 안창호의 아들이자 영화배우인 필립 안의 추천으로 남가주대학(USC)에서 영화공부를 하기도 했다(친일인명사전). 귀국 도중 한국전쟁을 맞아 일본에서 머물다가 1954년 귀국해 동아영화사를 설립하고 <시집가는 날>을 연출하여 흥행을 거두었고, 이 영화로 아세아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최우수 희극상을 수상했다(동아일보a). 이후 연출한 <자유결혼>(1958)으로 대중적 흥행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어 해외 영화제에서 초청받기도 하였다. 잇따라 <청춘일기>(1959), <서울로 가는 길>(1962), <귀국선>(1963), <공작부인>(1964)을 연출했다. 1960-70년대에는 다수의 작품의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8년 지병인 심장병으로 별세했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57년 5월 25일자 4면 동아일보b 1978년 11월 7일자 7면 강옥희 외,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2』, 민족문제연구소, 2009. [작성: 김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