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 Jang-san
유장산
1915 ~ 1982
- Field
- Cinematography, Lighting, Editing
- Debut
- 심청(1937)
Filmography 38
Planning (1)
Career
- 1934 경성촬영소 입사
- ~1938 기선촬영소 전환
- ~1939 고려영화사 설립동시에 입사
- ~1940 조선문화영화협회 전환
- 1940.3 일본 경도아다리 문화영화연구소 입사
- ~1941 귀국, 경일뉴스 촬영 담당
- ~1942 사단법인 조선영화사 입사
- 1945 해방뉴스 촬영
- ~1946 미공보원 영화과 근무
- ~1952 대한민국 공보처 영화과 근무
- 영협기술위원회 사무장
Biography
191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독립문실업중학교(獨立門實業中學校)를 졸업했다(국제영화). 경성촬영소(京城撮影所)에서 일하던 이필우, 이명우의 도제로 들어가면서 영화에 입문했으며, 이명우의 <춘향전>, <홍길동전>(1935), 안석영의 <심청전>(1937) 등에서 촬영과 녹음을 보조했다. 경성촬영소를 퇴사한 후 이명우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에서 조명과 현상을, 최인규의 <국경>(1939)과 방한준의 <성황당>(1939)에서 조명과 미술을, 그리고 이영춘의 <귀착지>(1939)에서 편집과 현상을 맡았다. 1940년에는 조선문화영화협회(朝鮮文化映畵協會)에 들어가 야마나카 유타카(山中裕) 감독과 함께 세 편의 문화영화 <청명심>, <산촌의 여명>, <바다의 빛>(1940)에서 촬영과 편집, 현상을 맡았으며, <경성일보 뉴스>를 촬영했다. 1942년부터는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朝鮮映畵製作株式會社)에 입사하여 활동했으며, 박기채의 <나는 간다(今ど我は行く)>(1942)를 촬영했다. 해방 이후 유장산은 조선영화건설본부(朝鮮映畵建設本部) 소속으로 <해방뉴스>를 촬영했다고 하며, 1948년부터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원이 제작한 <대한전진보>에서도 촬영을 맡았다(한국예술연구소). 1947년 보스턴 국제 마라톤대회의 우승자인 서윤복 선수에 대한 다큐멘터리 <패자의 수도>로 연출과 촬영, 편집을 겸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주한미국공보원과 함께 진해로 내려가 뉴스영화를 촬영했다고 하며, 서울 수복 후에는 김갑기가 운영하던 계림극장에서 조명을 담당하기도 했다고 한다(한국예술연구소). 1952년 공보처에 입사한 후 두 번째 감독 작품 <빛나는 건설>에서 전후 재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촬영과 편집을 겸했다(한국예술연구소, 한국영화감독사전). 1955년 이규환의 <춘향전>부터 다시 상업 장편영화의 촬영을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김성민의 <막난이비사>(1955), 양주남의 <종각>(1958), <대지의 어머니>(1960) 등을 촬영하며 1960년까지 활동했다. 1982년 1월 숙환으로 별세했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매일경제 1982년 2월 3일자 9면 韓國映畵人百人選(一), 『국제영화』 제4권 제10호(1958년 12월 발행) 한국예술연구소 편,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 유장산?이경순, 이창근, 이필우』, 소도, 2003, 13-98쪽.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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