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Ki-young
김기영
- Field
- Director, Screenwriter, Production/Planning
- Debut
- 나는 트럭이다(1953)
Filmography 88
Awards 6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3회 부일영화상 | 1960 | 감독상 | 10대의 반항 |
| 제7회 부일영화상 | 1964 | 최우수작품상 | 고려장 |
| 제7회 부일영화상 | 1964 | 감독상 | 고려장 |
| 제8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1 | 감독상 | 화녀 |
| 제9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3 | 영화부문 감독상 | 충녀 |
| 제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8 | 특별공로상 | - |
Career
- 1946년
- 고려예술좌 창설
Biography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국제영화). 재학중이던 1947년 서울대 연극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립대학극장(國立大學劇場)에서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1949년 세브란스 의대와 통합하여 창립된 고려예술좌(高麗藝術座)에서도 활동했다(경향신문a, b, 동아일보b). 전쟁이 나자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그는 선배 오영진의 제안으로 <대한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며, 이를 발판으로 주한미국공보원으로 스카우트 되어 <리버티뉴스>와 문화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이효인). 미공보원의 리버티프로덕션에서 <사랑의 병실>(제작년도 미상), <나는 트럭이다>(1954), <수병의 일기>(1955) 등의 단편 문화영화를 만들던 그는 1955년 장편 극영화 <죽엄의 상자>를 미공보원 제작으로 완성했다(김한상). 이를 발판으로 상업영화에 뛰어든 그는 <양산도>(1955), <봉선화>(1956), <황혼열차>, <여성전선>(1957), <초설>(1958) 등으로 흥행 면으로나 비평에 있어서나 주목 받았으며, <10대의 반항>(1959)은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동아일보a). 이듬해인 1960년에 만든 <하녀>는 그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이후 본인이 리메이크하거나 변형하여 만들게 될 <화녀>(1970), <충녀>(1972), <화녀 82>(1982), <육식동물>(1984) 등의 원형이 되었다. 1961년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한운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대하드라마이며, 그 다음 작품인 <고려장>(1963)은 ‘고려장’ 이야기를 모티프로 독특한 세계관을 펼쳐 보인 작품이다. 제작과 감독을 종종 겸하였으며, 당대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한 해에 한 편 정도를 연출하는 과작의 경향을 보였다. 1970년대 초반 <화녀>와 <충녀>를 통해 다시 전성기를 맞았으나, 제작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특히 <반금련>(1981)은 본래 기획에서 상당한 분량이 삭제되기도 했다. 1990년작 <천사여 악녀가 되라>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으나,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계기로 젊은 관객들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에 고무 받아 다음 작품 <악녀>의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베를린영화제 특별전 초청을 앞두고 있던 1998년 2월 불의의 화재로 부인과 함께 별세했다(동아일보c). 사후에도 많은 회고 행사를 통해 재조명 받았으며, 봉준호, 박찬욱 등 젊은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씨네21).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47년 10월 29일자 2면 경향신문b 1949년 1월 15일자 3면 동아일보a 1959년 7월 17일자 4면 동아일보b 1973년 11월 27일자 5면 동아일보c 1998년 2월 6일자 10면 韓國映畵人百人選(一), 『국제영화』제4권 제10호(1958년 12월 발행). 아는 영화, 낯선 감상, 『씨네21』제717호(2009년 8월 발행). 김한상, 「냉전체제와 내셔널 시네마의 혼종적 원천」, 『영화연구』 제47호, 87-111쪽. 이효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 열린책들, 1994, 368-371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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