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 Chi-Jin
유치진
1905 ~ 1974
- Field
- Screenwriter
- Debut
- 도생록(1938)
Filmography 18
Original Work (8)
Screenplay (4)
Awards 1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1회 대한민국예술원상 | 1955 | 연극·영화·무용 부문 | - |
Career
- 1931년
- 일본 릿교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극예술연구회 조직
- 1941년
- 극단 현대극장 조직
- 1944년
- 조선문인보국회 소설·희곡부 회장
- 1950년
- 국립극장 초대 극장장
- 1955년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1958년
- 국제연극협회(ITI) 한국본부 위원장
- 1958년
- 한국연극연구소(서울예술대학 전신) 설립
- 1960년
-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창설, 드라마센터 건립공사에 전념
- 1962년
- 드라마센터 완공 후 초대소장
- 1962년
-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 설치
- 1963년
- 도쿄 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
- 1964년
- 서울연극학교 교장
- 1971년
- 극작가협회장
Biography
1905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일본 릿쿄대학(立?大學)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의 호는 동랑(東郞)이다. 귀국 후 당시 해외문학파로 통칭되던 이헌구, 서항석, 이하윤 등과 1931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 극연)를 조직했다. 1930년대 농촌의 빈곤을 묘사한 일련의 희곡들 「토막」(1931),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1933), 「소」(1935) 등을 썼고, 연출을 겸하면서 9년간 극연과 그 후신 극연좌(劇硏座)를 이끌었다(경향신문b). 해방 후에는 1947년 신극 운동 단체인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의 창립을 주도했으며, 1950년 건립된 중앙국립극장의 초대 극장장으로 임명되었다(경향신문a, 동아일보a). 이후 1962년 드라마센터를 건립하고 은퇴하기까지 한국 연극의 기틀을 만든 중진으로 활약했다(경향신문b). 유치진의 주 무대는 연극이지만, 그는 일련의 영화작품들의 각색과 각본을 맡기도 했다. 1940년 최인규의 <수업료>, 1941년 김영화의 <아내의 윤리>의 각색을 맡았고 해방 후에는 전창근의 <단종애사>(1956), 윤봉춘의 <논개>(1956), <유관순>(1959), 홍성기, 박찬의 <재생>(1950)의 각본을 맡았다. 또한 다수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1938년 윤봉춘 감독의 <도생록>을 시작으로 같은 감독의 <처녀별>(1956), 김소동의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56), 안한철의 <별>(1961), 유현목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 최하원의 <소>(1975) 등이 유치진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4년 이후 드라마센터와 서울연극학교 운영에 전력했으며, 1973년 서울연극학교를 서울예술전문학교로 승격, 발전시켜 후진을 양성했다(친일인명사전). 1974년 뇌일혈로 69세의 일기를 마감했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47년 4월 24일자 4면 경향신문b 1974년 2월 11일자 5면 동아일보a 1950년 1월 4일자 2면 동아일보b 1974년 2월 11일자 7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2』, 민족문제연구소, 2009.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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