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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Baek-nam

윤백남

1888 ~ 1954

Field
Screenwriter, Director, Production/Planning
Debut
월하의 맹서(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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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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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11년
보성전문 강사
1912년
극단 "문수성" 조직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
1916년
반도문예사 설립 후 『예원』창간, 극단 "예성좌" 조직
1917년
백남 프로덕션 설립

Biography

한국 영화의 여명기에 기여한 대표적인 영화인의 한 사람이다. 1901년 수형조합 이사로 재직하였으나, 한일합방 이후 사퇴하고 보성전문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연극계에서 활동하였다. 1912년 일재 조중환과 함께 극단을 설립하고, 원각사를 인수하는 등 신극운동에 참여하였다. 1922년에는 문수일, 이월화, 안종화 등을 이끌고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민중극단의 인물들을 이끌고 체신국의 의뢰를 받아 이월화 주연의 <월하의 맹세>를 감독하였다. 이 영화가 한국 최초의 극영화였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에 투신하여 안종화, 이월화 등과 함께 일본인 왕필렬이 부산에 세운 조선키네마사에 들어갔다. 조선키네마사에서 김우연을 주연으로 한 <운영전>의 각색과 감독을 담당하였다. 이후 윤백남은 조선키네마에 연구생으로 있던 이경손, 나운규, 남궁운, 주인규 등을 이끌고 조선키네마사를 나와 윤백남프로덕션을 설립하였다. 1925년 나운규와 김우연을 주연으로 하는 <심청전>을 내놓고, 제2회 작품으로 <개척자>를 준비하다가 자금문제로 해산하였다. 이후 동아일보사가 제작한 강석연, 이춘 주연의 <정의는 이긴다>(1930)를 감독하고 간헐적으로 시나리오 등을 집필하지만, 초기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지는 못 하였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이청기). 해방 이후 서라벌예술학교 학장을 역임하고 심장병으로 1954년 9월 사망하였다(동아일보c).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5년 11월 21일 5면. 동아일보b 1931년 7월 25일 5면. 동아일보c 1954년 10월 1일 2면. 이청기, <한국영화의 전사시대 및 발생기의 특성에 관한 연구>, <<예술논문집>> 제6집, 대한민국예술원, 1967.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