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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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 1915년
-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 1917년
-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
- 1919년
- 3.1운동 가담 후 투옥, 퇴학
- 1920년
- 중국으로 망명
- 1921년
- 항주 지강대학 입학
- 1923년
- 귀국
- 1924년
- 이혼 후 동아일보 입사
- 1925년
- <장한몽> 출연
- 1926년
-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연재
- 1928년
- 조선일보 입사
- 1930년
- 안정옥(安貞玉)과 재혼
- 1931년
-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입사했으나 사상문제로 곧 퇴직
- 1932년
-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에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
- 1933년
- 조선중앙일보사 입사
- 1935년
- 동앙일보 발간 15주년 현상모집 당선-<상록수>
- 1936년
- 장티푸스로 사망
- (저술내용)<탈춤>(1926)
- <영원의 미소>(1933)
- <직녀성>(1934)
- <상록수>(1935)
Biography
심훈은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다. 경성 제1고등보통학고에 진학했지만,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구속, 실형을 받고 수감되기도 하였다. 학교를 퇴학당한 심훈은 중국으로 가서 지강대학에 입학하였다. 귀국한 이후에는 무대예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였는데, 이 회에 심훈도 김영팔, 이경손, 이승만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25년 이경손이 감독한 <장한몽>의 주인공 주삼손이 촬영 중에 행방불명되자 그 대역으로 영화 후반부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27년 강홍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닛카츠 쿄토 촬영소에서 6개월 동안 영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귀국한 이후에 심훈은 1927년 하반기에 계림영화사에서 자신의 유일한 감독작인 <먼동이 틀 때>를 촬영하였다. 월래 제목은 <어둠에서 어둠으로>였지만, ‘좋지 못한 암시’를 준다는 이유로 검열당국의 압력을 받고 제목을 바꿔서 개봉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본에 ‘형무소’를 ‘감옥’으로 썼다는 이유로 필름을 2백 50여자나 삭제 당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 조선일보a; 중외일보; 대중영화인 사전; 김종원). 1930년에는 이우(이재현)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엑스키네마의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조선일보b). 영화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한국영화계의 현재와 장래>(조선일보, 1928), <조선영화총관>(조선일보, 1929) 등의 평문을 남겼다. 1936년 장티프스에 걸려 치료 도중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25년 9월 14일 2면. 조선일보a 1927년 10월 6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30년 4월 23일 석간 5면. 중외일보 1928년 7월 28일~8월 4일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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