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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Shim Hoon

Shim Hoon

심훈

1901 ~ 1936

Field
Screenwriter, Actor
Debut
장한몽(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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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9

Award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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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1917년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
1919년
3.1운동 가담 후 투옥, 퇴학
1920년
중국으로 망명
1921년
항주 지강대학 입학

Biography

심훈은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다. 경성 제1고등보통학고에 진학했지만,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구속, 실형을 받고 수감되기도 하였다. 학교를 퇴학당한 심훈은 중국으로 가서 지강대학에 입학하였다. 귀국한 이후에는 무대예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였는데, 이 회에 심훈도 김영팔, 이경손, 이승만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25년 이경손이 감독한 <장한몽>의 주인공 주삼손이 촬영 중에 행방불명되자 그 대역으로 영화 후반부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27년 강홍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닛카츠 쿄토 촬영소에서 6개월 동안 영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귀국한 이후에 심훈은 1927년 하반기에 계림영화사에서 자신의 유일한 감독작인 <먼동이 틀 때>를 촬영하였다. 월래 제목은 <어둠에서 어둠으로>였지만, ‘좋지 못한 암시’를 준다는 이유로 검열당국의 압력을 받고 제목을 바꿔서 개봉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본에 ‘형무소’를 ‘감옥’으로 썼다는 이유로 필름을 2백 50여자나 삭제 당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 조선일보a; 중외일보; 대중영화인 사전; 김종원). 1930년에는 이우(이재현)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엑스키네마의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조선일보b). 영화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한국영화계의 현재와 장래>(조선일보, 1928), <조선영화총관>(조선일보, 1929) 등의 평문을 남겼다. 1936년 장티프스에 걸려 치료 도중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25년 9월 14일 2면. 조선일보a 1927년 10월 6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30년 4월 23일 석간 5면. 중외일보 1928년 7월 28일~8월 4일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