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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Kim Choon-gwang

Kim Choon-gwang

김춘광

Field
Screenwriter, Director
Debut
춘향전(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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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8

Award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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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24년 7월 13일
조선극장 주임변사
1929년
금성오페라단 창립단원
1930년
삼천가극단의 요청으로 비가극 <평화>를 쓰면서 극작 활동 시작
1935년 2월
극단 예원좌를 조직
1938년
본명 김조성을 춘사 나운규와 춘원 이광수의 이름을 따서 김춘광으로 개명

Biography

초창기 변사 중에 한 명이자, 영화배우이다. 변사로서 “경쾌하고도 애달픈 봄날의 피리소리”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연극계에서 활동하다가 조선극장 주임 변사가 되었다. 극장주인 하야카와 코슈(早川孤舟)가 동방문화협회를 조직하고 제작한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며 명성을 얻었다. 1923년에 만든 <춘향전>에서 이몽룡 역을 맡았으며 영화해설도 담당하였다. 1924년에는 서울에 실재하였던 기생 강명화의 슬픈 이야기를 소재로 한 <비련의 곡>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하고 영화해설도 맡았다. 마찬가지로 1925년의 <흥부놀부전>에도 주연과 영화해설을 담당하였다. 당시 영화 출연과 영화해설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동아일보b; 영화감독사전; 대중예술인 사전). 이후 그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권금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가극단 금성오페라단에서 임생원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0년에는 금성오페라단의 명칭을 삼천가극단으로 변경하고, 최성좌의 전 주간인 김소랑을 주간으로 하목, 단장은 권삼천이 맡는 등 일부 진용을 개편하였다(동아일보a). 1935년에는 임생원, 김세종 등과 함께 넌센스, 노래, 만담, 조선영화, 해설극 등 다양한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예원좌를 조직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동아일보c). 해방 이후에는 청춘극장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상옥 사건>을 상영하여 유족들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중앙극장을 이끌고 호화선, 황금좌, 극예술협회, 극우회 등과 함께 전국연극예술협회를 결성하는데 참여하여 부이사장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극단 대표이자 극작가로 활동했던 그의 대표작으로는 <황금수레>, <동방의 길>, <촌색시>, <미륵왕자>, <단종애사>, <검사와 여선생> 등의 작품이 있다. 이 가운데 <검사와 여선생>(1948)과 <촌색시>(1949, 영화명 : 청춘행로)가 윤대룡 감독과 장황연 감독에 의하여 각각 영화화 되었다(김종원). 1949년 7월 29의 나이에 사망하였다(동아일보a; 경향신문; 대중예술인 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b 1931년 7월 25일 5면. 동아일보a 1931년 7월 11일 4면. 동아일보c 1935년 2월 14일 3면. 동아일보d 1945년 12월 14일 2면. 경향신문 1947년 11월 9일 2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