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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Ju Sam-son

Ju Sam-son

주삼손

Field
Actor
Debut
심청전(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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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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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29년
라운규프로덕션 탈퇴 후 청귀키네마 창립
1932년
경성키네마 창립

Biography

주삼손은 일본인으로 조선키네마의 연구생 활동을 하였고, 윤백남프로덕션에 합류하여 <심청전>(1925) 등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g; 조선일보d). 주삼손을 대중에게 알린 작품은 1926년 계림영화협회의 제1회 작품인 <장한몽>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삼손은 주인공인 이수일 역을 맡아 호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출연 중에 행방을 감추는 바람에 대역을 써야 했다. 당시 주삼손의 대역으로 등장한 사람이 심훈이었다(동아일보a; 조선일보a; 김종원). 이후 그는 나운규와 함께 조선키네마에서 제작한 <들쥐>와 <금붕어>(1927)에 연속해서 출연하며, 나운규와 행보를 같이 하였다(조선일보b; 동아일보b). 1927년 9월 나운규가 조선키네마를 탈퇴하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창립할 때도, 주삼손은 이경손, 이경선 등과 함께 조선키네마를 나와서 나운규프로덕션에 합류하였다(동아일보c). 이 시기 출연한 작품으로는 <잘 있거라>(1927), <벙어리 삼룡>(1929) 등이 있다. 하지만 1929년 4월경에 주삼손은 홍개명, 이금동과 함께 나운규프로덕셔을 탈퇴하고 청귀키네마를 조직하면서, 나운규와 멀어졌다(동아일보d). 나운규와 결별한 이후에도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남궁운이 감독한 <지지마라 순이야>(1930)를 비롯하여, 화조영화동인제작소의 <수일과 순애>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조선일보c; 동아일보e; 동아일보f). 1932년에는 윤봉춘 등과 함께 경성키네마의 배우부에 소속되었다(동아일보h). 이후 활동은 기록은 거의 없다. 단지 1930년 중반에는 영화계를 떠나 통영에서 사진관을 운영하였다고 한다(草士). 심훈이 주삼손에 대해 “진취할 정열”이 부족한 성격이라고 평했었는데, 그의 이런 성격이 영화계를 떠나게 한 것으로 보인다(심훈). * 참고문헌 조선일보a 1927년 3월 12일 조간2면. 조선일보b 1927년 4월 20일 3면. 조선일보c 1930년 3월 28일 석간5면. 조선일보d 1933년 5월 28일 석간3면. 동아일보a 1926년 2월 28일 5면. 동아일보b 1927년 7월 1일 3면. 동아일보c 1927년 9월 21일 3면. 동아일보d 1929년 4월 28일 3면. 동아일보e 1931년 4월 11일 4면. 동아일보f 1931년 6월 28일 4면. 동아일보g 1931년 7월 25일 5면. 동아일보h 1932년 4월 25일 4면. 草士, 「은막에서 사라진 화형배우」, 『삼천리』 제8권 제6호, 1936년 6월호. 심훈, 「조선영화인 언파레드」, 『동광』 제23호, 1931년 7월호.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