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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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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김일송은 전라북도 금산 부호의 차녀로 태어나서, 공주 영명학교를 다니다가 1923년 숙명여자보통학교 2학년에 보결시험으로 입학하였다(동아일보b). 재학시절에는 정구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1926년 발생한 ‘한건단(韓建團) 사건’에 연류되었다. 한건단 사건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시내의 부호들을 협박하다가 부호 한 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김일송의 애인이 이 사건의 주범이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김일송의 아버지에게도 협박하여 금품을 받았다고 한다(동아일보a; 동아일보c). 이 사건으로 집에서 쫓겨난 김일송은 유랑생활을 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영화계에 들어오게 되었다(동아일보d). <낙화유수>(1927) 등에 잠시 출연하였다고 한다(만국부인). 이 때 김향원(金香媛)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의 나이 19세였다(매일신보). 이후 이경손이 감독한 <춘희>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함께 출연했던 정기탁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 김일송은 3년 예정으로 예술학교에 다녀볼 계획을 가지고 1928년 4월 1일 정기탁과 함께 상해로 떠났다(동아일보d). 상해에서는 여운형의 소개로 백합영편공사(百合影片工司)라는 중국인 영화촬영소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애국혼>과 <여해도(女海盜)> 등에 출연하였다. 백합영편공사가 해산한 이후, 생활고 때문에 댄서로 일하기도 하였다. 1930년 8월경에 상해에서 종적을 감췄다(만국부인). 이후 서울에서 카페 여급으로 생활하였다고 한다(조선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6년 10월 20일 2면. 동아일보b 1926년 10월 21일 2면. 동아일보c 1926년 10월 22일 2면. 동아일보d 1928년 4월 2일 3면. 조선일보 1933년 5월 28일 석간 3면. 매일신보 1927년 8월 19일. 『만국부인』제1호, 1932년 10월호.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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