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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 1899년
- 온가족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한 뒤 교회를 다니며 서양 음악을 접함
- 1910년
- 중앙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에 입학
- 1911년
- 새문안 교회를 다니며 세례를 받고 집사로서 성가대 활동
- 1912년
-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부 성악과에 입학
- 1913년
- 조선정악전습소 성악과 졸업, 기악과 입학
- 1914년
- 중앙 기독교 청년회 중학과 졸업 및 기악과 졸업. 졸업 후 조선 정악 전습소 보조교사로 잠시 활동
- 1915년
-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부 교사로 부임. <악전대요>, <통속창가집> 출간, <간이무답행진곡집> 편찬
- 1916년
- 김상운과 결혼
- 1918년
- 도쿄 상야(上野)음악학교 예과(預科) 입학, 2년 수학
- 1919년
- 도쿄에서 예술 잡지 <삼광> 창간(경영난으로 4호에서 폐간)
- 1919년 3월
- 3.1운동 참여를 위해 일시 귀국. 이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복학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귀국하여 경성악우회 조직
- 1920년
- 매일신문사 기자로 입사
- 1920년
- 첫 공식 독주회
- 1921년
- 첫 창작 소설집 <처녀혼> 발간
- 1922년
- 연악회 설립, 음악잡지 <음악세계> 창간
- 1925년
- 잡지 <음악계> 창간
- 1926년
-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원 야간반 편입학. 재학 중 1926년 도쿄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연주자 활동
- 1929년
- 고등음악학원 수료 후 교향악단을 사직하고 귀국
- 1931년
- 조선 음악가 협회 창립 총회에서 상무 이사로 선임
- 1931년 7월
- 성가대 사임 후 미국 셔우드 음악학교에서 2년 간 수학
- 1931년
- 일본 빅터레코드사 고문으로 위촉
- 1932년 12월 8일
- 이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던 흥사단에 단우 번호 266번으로 가입
- 1933년
-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학 강사로 출강
- 1933년
- 바이올린 3중주 실내악단 '난파 트리오' 결성(1936년 8월 조카 홍성유의 사망으로 해체)
- 1934년
- 일본 빅터레코드사 경성지점 음악 주임으로 근무
- 1936년
- 코리아음악연구소 창설
- 1937년
- 수양 동우회 사건 관련자로 검거, 옥고를 치른 후 전향서를 씀
- 1940년
-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으로 임명
- 1941년 8월 30일
- 옥고 이후 재발한 늑막염을 돌보던 중 결핵균이 머리로 들어가 경성요양원에서 사망
- (저술내용)1929년 <조선동요100곡집>
- 1933년
- <조선가요 작곡집>
- 1938년
- <음악만필(音樂漫筆)>
Biography
조선에서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정식으로 배우고 활약한 연주자이자 작사ㆍ작곡가인 홍난파는 영화 음악에도 관여하였다. 1935년 <춘향전>의 주제가가 그 출발점이었다. 홍난파의 곡에 김팔련이 작사를 하고, 빅터레코드 전속 가수인 김복희가 불렀다(동아일보a). 이외에도 1937년 김유영이 감독한 <애련송>의 음악도 홍난파가 담당하였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5년 10월 4일 2면 동아일보b 1937년 10월 29일 5면.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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