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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 1934 극예술연구회 입회
- 1937 조선연극협회 동인 창립
- 1938 극단 중앙무대 창립
- 1939 극단 인생극장 동인 창립
- 1940 도양극장 호화선 입단
- 1943 만철경호대 연극강사 취임
- 1945 극단 민예 동인 창립
- 1950 국립극장 신극협회 연기분과의원 취힘
- 1951 육군제일훈련소 연예대 연극부장 취임
- 1960 한국제작가협회 이사
- 1961 한국제작가협회 부회장
- 1964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재건촉진위원회 부위원장
Biography
해방 이후, 전택이를 중심으로 장일, 허영, 황남, 노경희, 주증녀, 문정숙 등과 함께 당시의 신진영화인들의 동인조직인 신영클럽 활동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등장한다(조선일보). 전쟁 이후, 동보영화사의 대표로 <원술랑>(1961), <사랑의 동명왕>(1962), <원효대사>(1962) 등 대작 사극영화를 찍는다. 특히 <원효대사>는 앞서 타 제작사에서 제작, 개봉되었던 <에밀레종>(1961)과의 연장선상에서 그 스케일의 규모에서나, 주연배우인 최무룡, 김진규의 라이벌 관계 역시 흥미로운 흥행 요소였다. 1964년 한국예술영화주식회사에서 제작한 <석가모니> 역시 대작 사극으로 인도에 있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카필라 성의 사진을 본 떠 도봉산 기슭에 1800평 규모의 오픈세트로 지었는데, 그 제작에 70명의 인력을 써서 20일 동안에 걸쳐 만들 정도의 대규모 세트였다고 한다(경향신문a). 동보영화사와 한국영화주식회사를 통해 제작한 <원효대사>, <석가모니>, <안시성의 꽃송이>(1964) 등의 대작 사극 영화를 두고 마치 <벤허 Ben-Hur>(1959)니 <흑기사 Ivanhoe>(1952)니 <왕중왕 King of Kings>(1961)이니 하는 류의 서양사극을 방불케(경향신문a) 하는 스케일로, 외국의 사극물에서 본 과감한 무기며 전법이 스펙터클(경향신문c)하다는 평을 듣는다. 1964년에는 한국영화제작가 협회 재건 촉진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선출되어 현 영화법을 악법으로 규정, 그 폐기를 주장하고 공보부 등록업자들의 독점제작을 배격하면서 공존공생을 주장하기도 한다(경향신문b). * 참고문헌 조선일보 1966년 6월 12일 4면 경향신문a 1963년 10월 26일 5면 경향신문b 1964년 4월 11일 5면 경향신문c 1964년 7월 27일 5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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