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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Un-kyoo

나운규

1902 ~ 1937

Field
Director, Actor, Screenwriter, Production/Planning, Editing
Debut
심청전(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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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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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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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함경북도 회령 출신. 4년제 회령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간도로 건너갔다. 용정 명동중학을 다니다가 1921년 서울로 가 중동중학에 들어갔다. 연안의 비밀 독립단체인 도판부에 가입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 2년간 복역하기도 하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동아일보a). 조선키네마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1925)에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들어섰다(동아일보a). 윤백남이 윤백남프로덕숀을 만들어 제작한 영화 <심청전>(1925)에서 심봉사역을 맡으며 비중있는 연기를 선보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은 <아리랑>(1926)을 통해서였다. <아리랑>은 일본인 요도 도라조(淀虎藏)가 설립한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이 <농중조>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영화였다. 나운규는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맡아 영화적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나이 25세 때 였다. <아리랑>은 “오늘날까지 나아온 영화 중에 이만큼이라도 순전한 조선인의 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또한 영화제작상 여유를 보여 준 영화가 드물 것”이란 평가 등 호평을 받았다<별건곤; 동아일보b; 동아일보c>. 이후에도 조선키네마에서 <풍운아><1926), <들쥐>(1927), <금붕어>(1927) 등을 찍었고, 독립해서 나운규프로덕션을 만든 후에는 <잘있거라>(1927), <옥녀>(1928), <사랑을 찾아서>(1928), <사나이>(1928), <벙어리 삼룡>(1929)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을 통해 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배우로서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동아일보d; 동아일보e; 동아일보f; 동아일보g; 동아일보h). 1930년을 기점으로 슬럼프가 찾아와 조연을 맡거나 지방공연을 하기도 하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인기에 영합한 무절제한 사생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심훈은 “그가 그만한 인기를 독점하고 잇섯든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그 원인을 캐여보면 무슨 시국에 대한 大志나 품은 듯한 룸펜의 써-커스적 활약과 鳴咽而不鳴하는 곳에 어떠한 사상의 암시가 숨은 듯이 深刻?痛을 가장한 일종 흥행가치에 잇섯든 것이 아닐까?”라고 나운규의 영화를 비판하면서 “千?飛鳳이여든 饑不粟하라”고 그의 사생활에 대하여 일침을 놓았다(심훈). 그런 가운데 1930년대에도 <철인도>(1930), <개화당이문>(1932), <강 건너 마을>(1935)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웠다. 폐결핵과 싸우면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오몽녀>(1937)가 그의 유작이다. 그의 장례식은 많은 영화인들이 모인 가운데 단성사에서 치러졌다(동아일보i).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6년 10월 14일 5면. 동아일보b 1926년 10월 7일 5면. 동아일보c 1926년 12월 19일 5면. 동아일보d 1926년 12월 19일 5면. 동아일보e 1927년 3월 11일 5면. 동아일보f 1927년 5월 1일 11면. 동아일보g 1928년 10월 12일 3면. 동아일보h 1928년 12월 2일 3면. 동아일보i 1937년 8월 10일 3면. <局外者로서 본 오늘까지의 朝鮮映畵>, <<별건곤>> 제10호, 1927년 12월호. 심훈, 「조선영화인 언파레드」, 『동광』 제23호, 1931년 7월호.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