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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yeok

김혁

Field
Screenwriter, Editing, Production Department
Debut
한강(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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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3

Award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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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31년
월간 『시대공론(時代公論)』 집필진, 극단 이동식소형극장(移動式小型劇場) 선전부장
1937년
월간 『영화작가(映畵作家)』 편집위원
1939년
조선영화작가협회(朝鮮映畵作家協會) 창립 동인
1940년
극단 조선무대(朝鮮舞臺) 사업부장
1941년(추정) 극단 유락좌(有樂座) 대표

Biography

일제강점기의 시나리오 작가. 출생기록은 미상이다. 1931년 김유영(金幽影)을 편집장으로 하는 프로운동 계열의 월간지 『시대공론(時代公論)』에 필진으로 참여한 데서 그의 첫 행적을 찾을 수 있다(동아일보a). 같은 해에 김유영, 추적양, 석일량, 하북양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시대공론사에서 창립한 프로운동 극단 이동식소형극장(移動式小型劇?)에서 김혁은 선전부를 담당했다(동아일보b, 박영정). 이후 한동안 김혁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1937년 다시 김유영과 함께 월간지 『영화작가(映畵作家)』의 편집위원을 맡아 창간을 주도했다(동아일보c). 같은 해에 김유영, 이익(李翼)과 함께 윤백남의 CCM영화사를 인수하여 제작을 도모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보이며, 방한준 감독의 <한강>에 이익과 공동 각색으로 참여했다(동아일보d). 그해 9월에는 「방가로촌(村)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동아일보e). 이듬해인 1938년에는 최인규 감독의 <국경>에서 편집을 맡았으며, 1939년에는 같은 감독의 <수업료>에서 제작주임을 담당했다(동아일보f). 한편 시나리오 작가로서 활동도 지속하여 1939년 7월 조선영화작가협회(朝鮮映畵作家協會)의 창립을 주도했다(매일신보a). 1940년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조직한 극단 조선무대(朝鮮舞臺)에서 사업부를 책임졌으며, 이익(김화랑)과 함께 창설한 연극 단체 유락좌(有樂座)의 대표를 지낸 바 있다(동아일보g, 전자연표, 매일신보b). 1945년 5월 사망했다(매일신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1년 7월 5일자 4면 동아일보b 1931년 11월 14일자 4면 동아일보c 1937년 6월 3일자 4면 동아일보d 1937년 6월 26일자 7면 동아일보e 1937년 9월 17일자 6면 동아일보f 1939년 6월 17일자 4면 동아일보g 1940년 5월 30일자 5면 매일신보a 1939년 7월 28일자 4면 매일신보b 1945년 5월 19일자 2면 박영정, 『한국 근대연극과 재일본 조선인 연극운동』, 연극과인간, 2007, 220-256쪽. 한국학자료센터 전자연표 http://kostma.net/history_table/history_aks.aspx [작성: 김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