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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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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1907년 경남 출생으로 추정되며,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박제행의 소개로 윤백남 프로덕션에 들어간 것이 배우 생활의 시작이라 한다(삼천리a). 파경을 맞은 약혼자를 찾아 건너간 오사카에서 댄서 생활을 하면서 유명해졌다(동아일보). 이런 가운데 출연한 영화가 유장안 감독의 <나의 친구여>(1928)였다. 이후 <춘희>, <숙영낭자전>(1928), <노래하는 시절>, <젊은이의 노래>(1930) 등의 출연작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심훈 등 당대 평단으로부터 “밤프”에 적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동광). 폴란드 출신의 여배우 폴라 네그리(Pola Negri)를 선호하는 배우로 자주 언급하고 있다(동아일보b, 삼천리a). 이후 생계를 위해서 “마리꼬”라는 이름으로 카페 여급이 되었다고 하며(별건곤b), 1936년에는 만주 봉천(奉天)의 “스타 땐스홀”에서 댄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삼천리b). 그런데 김명순의 영화계 데뷔는 신문들로부터 조선영화 사상 전례 없는 각광을 받았다. <광랑(狂浪)>이라는 영화에 “여류시인”이 출연한다는 기사가 여러 곳에 게재된 것인데, 1927년 8월 28일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중외일보에 “여류문사 김명순 영화계 헌신,” “모든 것은 감독만 믿고 방향을 전환했다는 탄실 김명순 여사 담”이라는 등의 제목으로 소개되었다(동아일보a, 조선일보, 매일신보, 중외일보). 그러나 6개월 후인 이듬해에 나온 기사에는 시인이라는 말이 빠지고 댄서로서의 전력이 거론되었다. ‘망향초’라는 필명을 가진 김명순 시인은 1896년생으로 당시 30세가 되는 나이었다. 작가 탄실(彈實) 김명순과 배우 김명순이 한자까지 성명이 같아서 빚어진 소동이었다(별건곤a). 한참 뒤인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죽엄의 상자>에 어머니 역으로 김명순이라는 중년의 배우가 출연한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동일인물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7년 8월 28일자 3면. 동아일보b 1928년 4월 10일자 3면. 매일신보 1927년 8월 28일자 3면. 조선일보 1927년 8월 28일자 석간3면. 중외일보 1927년 8월 28일자 3면. 朝鮮映畵人 언파레드, 『동광』 제23호(1931년 7월 발행). 京城 五十八雙童錄, 『별건곤』a 제36호(1931년 1월 발행). 카페女給 언파레-드, 『별건곤』b 제57호(1932년 11월 발행). 女俳優座談會, 『삼천리』a 제4권 제5호(1932년 5월 발행). 銀幕에서 사라진 花形俳優, 『삼천리』b 제8권 제6호(1936년 6월 발행).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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