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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진주하는 미군들, 제주도의 일본 항복 조인식
¶ 8월 15일, 광복이 시작된 날.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당일에 말끔히 완료된 것이 아니었다. 일왕 히로히토가 포츠담 선언의 경고, 즉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지 않는다면 괴멸될 것이라는 미, 영, 중 3개국의 공동 요구에 대해 ‘짐이 수락한다’는 논조로 한참을 에둘러 표한 소위 ‘ 옥음방송 ’이 8월 15일 정오에 라디오 전파를 탔지만, 기껏해야 3%대의 라디오 보급률을 보였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널리 전달되기는 힘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다음 날 휘문중학교 운동장에서 여운형 선생의 연설 이 있은 후에 경성중앙방송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안재홍 부위원장의 담화가 발표되고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출소하는 순간에 와서야 우리가 아는 ‘거리에 가득찬 동포들의 환호’가 시작됐을 것으로 본다. ‘ 블랙리스트 작전계획 ’에 의해 미국 제10군 예하 제24군단 병력이 단계적으로 서울/인천, 부산, 군산의 일본군에 대해 무장 해제를 진행한 것은 9월의 일이다. 이것은 ‘점령군’ 미군이 각지의 일본군과 정해진 일정에 따라 항복문서 서명, 인수인계, 무장해제의 절차를 밟기 전에는 일본군의 독단적 행동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 영상의 후반부은 9월 28일 제주도의 항복문서 조인 장면을 담고 있다. 일본의 결사항전 작전, ‘결호작전’으로 몇 달 전 창설됐던 일본 제58군이 그들이 사령부로 쓰던 농업공립학교에서 미군을 맞이한다. 본관 입구 위와 옆에는 글자가 지워진 흔적 이 있는 판이 붙어있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 ‘국체명징’(國體明徵), ‘내선일체’(內鮮一體), ‘인고단련’(忍苦鍛鍊) 등 조선인 정신통제를 위해 정책적으로 강조하던 슬로건이 적혀 있던 자리이다. 이 영상의 전반부는 미군들이 해방 공간의 서울을 활보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들이 스쳐지나가는 남대문로 인근에는 일본의 산미 수탈량을 조절하던 ‘ 조선 미곡창고주식회사 ’의 경성지점이 보이고, 조선인의 ‘사상관측소’로 불리던 총독부도서관 건물도 살짝 보인다. 광복은 기쁘되,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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