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낭자
- 감독
- 송춘수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바이 잉, 조건, 완충산, 한향진, 묘천, 탕치, 유 페이, 카오밍, 한 쉬에, 구춘, 차오잉잉, 루 시, 멜빈 창 윤원, 판야오쿤, 유성차오, 훙파롱
‘오인용’은 2000년 초반 국내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막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기에 <돼지> <연예인지옥> < 중년탐정 김정일 > 등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성인용 장르를 확장하려 고군분투하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이외에는 볼거리가 없는 한국의 문화적 빈곤함 속에서 엽기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에 목말라하는 성인관객들의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대표 창작집단으로 중간에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유일한 독립 웹 애니메이션 창작자 그룹이다. < 만담강호 >는 오인용 원년멤버 정지혁 , 장석조 감독이 기획, 연출을 맡은 중국무협을 소재로 한 코믹액션 애니메이션으로 오인용의 첫 장편 개봉영화가 되었지만 사실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4편의 <만담강호> 웹 시리즈를 연결하여 한편의 장편으로 개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처음부터 장편으로 제작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독립 장편 제작의 전략으로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만담강호 >의 스토리는 고수들이 넘쳐나는 무림의 어느 객주인 ‘풍림객잔’에서 비급을 둘러싼 강호들이 비급을 서로 차지하려고 벌리는 한판의 약육강식과 비정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등장인물 모두가 도덕적 정의와 인격을 내던지고 갖은 술수와 거짓, 사기와 비겁함과 잔인한 폭력성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오늘날의 현실을 풍자하여 보여주는 듯하다. 무공보다 여자를 탐하는 난봉색남, 미친놈 ‘화화공자’. 강호 포커페이스 계의 절대 강자, 웃는 놈 ‘소소할배’. 깡다구 패거리의 비선실세, 이상한 놈 ‘점룡혈객’ 이들 앞에 운명처럼 전설의 절세무공 비급이 떨어지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숨넘어가는 삐-드립 혈투가 시작된다. 중국무협 하면 쿵푸 같은 전통무술을 겨루는 액션이 주가 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여기서는 기대와는 다르게 19금 속사포 삐-드립(B급 욕설과 막말하기)으로 일관하며 직장에서, 학교에서, 부모 앞이라 착한 척만 하던 성인들에게 오랜만에 속 시원한 해방구를 만들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 작품을 보며 한 편에선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너무 저질이다. 등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는 거로 안다. 성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인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피가 낭자한 후반부의 집단적 살인은 애니메이션이라 그나마 수용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추억어린 오마주와 패러디를 근간으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연출, 싱크로율 200%인 속사포의 거침없는 목소리 연기 등은 이 영화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예산을 수백억씩 들인 고급진 애니메이션을 보자는 것도 아니고 공중파와 멀티플렉스를 찾는 불특정 대중을 상대하지 않는 것이기에 소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웹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대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웹 기반의 콘텐츠들을 통해 마케팅함으로써 타깃을 세분화하고 상시적으로 노출을 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이고 실질적인 판매로 이어지는 구조의 새로운 소비패턴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만담강호 >를 서비스하는 웹 채널 ‘좀바라 TV’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근에 여러 작품들의 서비스를 시도하며 시장을 탐색하고 있다. 이들의 선구적인 노력들은 분명히 마중물이 되어 한국 애니메이션이 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와 창작을 위한 최소한의 재생산 구조를 만드는데 일익 할 것이라 믿는다. 독립영화전용관 등 제한된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상업적으로는 분명 아직 한계가 있을 것이지만 새로운 시도인 만큼 실패가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에... 15년이 지난 지금 웹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를 다시 꿈꿔본다. 만담강호 예고편 : https://www.youtube.com/watch?v=YoND2phXTWM 좀바라TV 채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yjZzK1rjTWjxBXGYsGORUw
정창화 (1928~ )의 < 죽음의 다섯 손가락 >(1972)은 홍콩과 한국 영화계 간에 조성된 일대 흐름이 맞물려 빚어진 시대의 산물이었다. 60년대 초에서 70년대 말까지 한홍 합작영화의 활발한 제작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한상은 < 양귀비 >(1962)와 <무측천>(1963)과 같은 시대극을 한국 로케이션으로 찍었으며, 호금전은 <공산영우>(1979)와 < 산중전기 >(1979)를 해인사와 불국사, 설악산 등지에서, 장철은 <사기사>(1972)를 서울에서 촬영했다.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와 손잡고 다수의 한국-홍콩 합작영화를 기획해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쉼 없이 다양한 영화를 찍어내면서 인력난에 시달리던 홍콩 영화계의 상황은 역으로 한국의 영화 인력이 홍콩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 수업료 >(1940), < 자유만세 >(1946)를 만든 최인규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정창화 감독은 1958년부터 홍콩영화계와 꾸준한 교류를 가졌고, 첩보영화 < 순간은 영원히 >(1966)의 홍콩 로케이션 촬영에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주목을 받아 1968년부터 5년 전속계약으로 기용되어 홍콩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밀수꾼을 소탕하는 내용의 데뷰작 < 최후의 유혹 >(1953), 누아르의 장르적 색채가 진한 < 노다지 >(1961), 일제강점기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린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 전통사극에 서부극을 끌어들여 검객물의 원형을 만든 <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 >(1968) 등, 일찌감치 한국영화 안에서 액션영화의 지평을 개척하던 정창화의 연출 성향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무협, 권격 영화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던 홍콩 영화계의 필요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쇼브라더스 무협의 기법과 관습을 답습한 평작 < 아랑곡의 혈투 >(1970)와 < 래여풍 >(1971)의 시행착오를 경유한 뒤에 내놓은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정창화만의 개성을 무협영화의 역사에 각인시킨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왕우의 < 용호의 결투 >(1970)와 더불어 권격 영화의 유행을 일으킨 시효 격으로 꼽힌다. 그러나 영화사적인 의의에 비해 이 작품의 서사 자체는 지극히 평이하다. 제자 조지호(나열)의 재능을 아끼던 스승 송무양은 더 큰 성취를 위해 그를 상무국술관의 손금배 사부에게 보낸다. 주변의 질시를 견디며 묵묵히 수련에 정진하던 지호는 마침내 손금배의 인정을 받고 절기인 철장비법을 전수받게 된다. 함정에 빠져 손이 짓이겨지는 수난을 겪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무공을 회복한 지호는 국술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나 일본 낭인과 결탁한 상무국술관의 라이벌 백승무관의 주인 맹동산(전풍)이 지호의 두 스승을 모두 해치고, 분노한 지호는 철장비법의 위력을 발휘해 악한들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수련을 통해 고수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성장과 스승의 원수를 갚는 복수극이라는 천편일률적인 플롯과 모티브를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우직하게 답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억될만한 컬트 걸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연출의 차별성에서 드러난다. 장철이 슬로우 모션과 핸드헬드를 통해 유혈 낭자한 육신과 죽음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호금전이 유려한 수평 이동과 와이드 앵글로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흐르는 예민한 공기를 포착한다면, 정창화 는 광각렌즈를 중심으로 한 촬영과 컷 단위로 다듬은 편집, 명암과 색감이 두드러지는 조명 세팅으로 액션의 쾌감과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지호의 스승 송무양이 불의의 습격을 받는 도입부 액션부터 각기 다른 앵글과 사이즈의 컷을 빠르게 이어 붙여 충돌시키고, 무술 안무의 합을 도중에 건너뛰는 점프컷으로 액션의 박력과 속도감을 끌어올리는 불균질한 편집의 기교를 엿볼 수 있다. 손을 망가뜨린 적들을 떠올리며 수련에 매진하는 지호의 플래시백에서도 나무를 때리는 타격음에 맞춰 (긴장감을 자아내기 위해 기울어진 앵글의) 컷을 번갈아 몽타주 하다 국술대회 참가인원을 선발하는 다음 상황으로 점프하는 등 시퀀스의 급격한 전환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빠른 템포와 리듬감을 부여한다. “액션영화란 어른들의 꿈과 상상을 실현시키는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라 말한 감독 본인의 인터뷰 발언이 시사하듯,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을 통해 만개한 정창화 식 액션 연출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오락적 쾌감의 경험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장르 감독의 본분에 입각한 것이었다. 술집에서 벌어지는 지호와 진랑( 김기주 )의 대결에서는 술 항아리를, 마음을 고쳐먹은 진랑이 지호를 대신해 일본 낭인을 막아서는 숲속의 결투에서는 잘게 부서지는 목재 소품을, 지호가 마침내 철장비법으로 일본 낭인을 처단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부딪치자마자 무너지는 벽을 배치하는 무대 세팅으로 타격감을 부각시키는가하면, 맹인이 된 한룡이 맹동산과 그의 아들을 급습하는 장면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간신히 드러날 정도로 공간을 어둠에 파묻은 가운데, 인물의 두 눈에 슬며시 빛을 닿게 하며 명암대비를 극단화한 조명으로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빚어낸다. 국술대회의 말미에 칼에 맞고 죽어가는 손금배와 일본 낭인에 의해 잘린 진랑의 목에는 별도의 녹색 조명을 비춰 죽음의 음울함을 강조하고, 지호가 철장비법을 쓰는 순간마다 펴진 두 손에 붉은 조명을 쏴 흥분과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등, 비현실적이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조명의 표현주의적인 활용이 돋보인다. (철장비법을 쓸 때마다 사이렌 소리처럼 울리는 음향은 퀸시 존스가 TV 시리즈 <아이언 사이드>(1967)를 위해 작곡한 시그널 트랙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흔히 있던 사례였다.) 처음에 정창화 감독이 염두에 둔 작품의 원래 제목은 < 철장 >(鐵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화권 관객의 취향을 의식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입김에 의해 홍콩에서는 < 천하제일권 >(天下第一拳)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저가에 영화를 수입하려 한 신상옥 감독에 의해 한홍 합작영화로 위장되어 검열과 재편집을 거쳐 < 철인 >(鐵人)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 걸리는 수난을 겪었다. 영화는 한국에선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묻혔다. 정작 액션 장인 정창화가 인정받은 건 고국이 아닌 서구 영화계에서였다. 이듬해인 1973년, 워너브러더스의 배급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차이나타운에서 소규모 개봉한 영화는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 확대 상영에 들어갔으며, 잠시 < 대부 >(1972)를 제치고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훗날 ‘헤모글로빈의 시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 킬 빌 > 2부작에서 철장비법을 구사하는 장면의 연출을 오마주하면서 영화는 다시 주목받았으며, 2005년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서는 루이 말의 < 도깨비불 >(1963), 마틴 스콜세지의 < 라스트 왈츠 >(1978)와 함께 초청되었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명실상부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액션 영화의 기술적 숙련도가 전에 비할 수 없이 높아진 오늘의 시선에서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의 액션은 철 지난 시대의 유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여전히 순수한 오락영화을 구현하고자 한 열정과 장르에의 매혹, 그리고 언젠가 세련된 형태로 다시 활용될지 모를 흥미로운 연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한국-홍콩 합작영화가 성행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증언이자, 동시대 액션영화가 해낼 수 있는 표현의 저변을 돌파하려 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가치는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덕력자다. 그는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섭렵한 온갖 영화들을 자산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쌓았는데, 다시 말해 정규교육의 도움 없이 오롯이 영화 그 자체만을 교재 삼아 스스로를 훈련시킨 씨네 키드인 것이다. 일본이나 홍콩 등에서 도착한 액션 및 무협 영화나 미국 B급 영화들을 사랑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세계는 수다스럽기 그지없고, 유혈 낭자한 폭력이 가득하며, 지나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인물들을 다수 포함한다. 또 그는 팝 음악으로 구성되는 OST를 비롯해 왕왕 대중문화에 대한 사랑과 논평을 표출하고, 씨네 키드답게 다른 영화의 장면을 인용해오고는 한다. 이와 함께 타란티노 월드를 지탱하는 한편에는, 초기 < 저수지의 개들 >이나 , < 펄프 픽션 >부터 시작된 비선형적 서사구조가 있다. 여기서 하나의 사건은 캐릭터들의 다양한 시점별로 자꾸 반복되며 시간 진행을 멈춘다. 다른 한편 < 킬빌 > 시리즈부터 복수를 테마로 다양한 변주들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여성, 흑인, 유대인 등 역사적으로 핍박받은 존재들을 불러들여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복수극을 완성한다. 그중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 재키 브라운 >(1997)과 <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 이다. 두 영화는 좀 더 직접적으로 이전에 제작된 작품의 설정에 기반을 두거나 그에 대한 오마주를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두 영화의 제목 모두 그가 열광했던 영화 및 그 주인공의 이름을 호명한다. <폭시 브라운>(1974), < 재키 브라운 >(1997) 포스터의 동일한 제목 타이포 < 재키 브라운 >은 70년대 흑인 B무비에서 활약한 팸 그리어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원작소설의 재키 버크가 영화로 오면서 재키 브라운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는 팸 그리어가 70년대 분한 <폭시 브라운>(1974) 이란 영화 때문이며, <재키 브라운> 포스터의 글씨체도 그 영화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한 오마주와 관련해서 영화의 첫 장면은 단연 인상적인데, 수평 에스컬레이터를 탄 팸 그리어(재키 브라운 역)를 따라 트래킹으로 진행되는 롱테이크 장면은 그녀를 누구보다 당당하고 우아한 존재로 각인시킨다. 이 밖에도 명품 중년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70년대 분위기의 조화는 영화 전체가 마치 70년대 영화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가 유명세로 인해 부과된 짐을 뒤로하고 여기서 유유자적 자신의 영화 취향을 즐기고 있는 것도 같다. 영화를 정말 사랑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감독의 사랑은 관객에게도 느긋하고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장고: 분노의 추적자 > < 장고: 분노의 추적자 >의 경우 쿠엔틴 타란티노의 미국 최고 흥행작이기도 하다. 여기서 감독의 재기는 현상 수배범을 잡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에서 발휘된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이를 제압하는 능수능란한 전략전술은 시원스럽고 호탕하다. 한편 감독은 1966년 작 <장고>에서 장고가 홀로 적진에 둘러싸여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엄청난 기관총을 꺼내 한 번에 적들을 무찌를 때의 통쾌함을, 노예 시대와 관련한 카타르시스로 연결 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서부극의 영웅 장고를 미국 남부 노예 시대의 풍경에 분연히 일어서는 영웅의 모습으로 재해석한다. 로버트 포스터( 재키 브라운 ), 크리스토프 왈츠( 장고: 분노의 추적자 ) 그런데 두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각각의 영화에 등장하는 조력자 캐릭터다. 주인공보다 더 영화를 중심에서 이끈다 생각될 정도로 멋진 그 조력자들의 태도에는 어떤 기품이 흐른다. < 재키 브라 운>에서 로버트 포스터(맥스 체리 역)는 재키를 향한 열정과 연륜에서 비롯된 체념을 현명한 중년의 눈빛과 자태 속에 함께 녹여낸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품위는 어쩌면 로버트 포스터가 보여주는 그 자태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장고: 분노의 추적자 >를 이끄는 조력자는 크리스토프 왈츠(닥터 킹 슐츠 역)이다. 장고가 개인적인 복수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는 인물이라면, 슐츠는 노예제도나 각종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환멸 및 조롱 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전략가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노예제 사회 백인들을 역겹고 우스운 존재들로 만들어 비판을 대신하는데, 이런 정서를 표출하는 인물인 슐츠는 극의 절정에 달해 침착한 면모를 버리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의 서문을 연다. 슐츠의 기품이 극 전체를 이끌며 노예제 사회에 대한 평가와 태도를 써 내려 가게 되는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우며 폭력적이든지 그것들은 통쾌한 감정적 해소 한방을 위해 발휘된다. 그 한방은 모순과 우연으로 점철된 치열한 인간사 및 그 폭력성에 대한 감정분출이다. 그는 B무비들이 펼쳐놓은 판타지를 이런 감정분출의 출구로서 재해석하고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타지는 피로하고 짜증 나는 현실에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의 영화들과 함께 답답한 기분에 상상의 기관총을 난사해 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