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 나이트
- 감독
- 알버트 파이언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랜스 핸릭슨, 캐시 롱, 스코트 폴린, 게리 다니엘스, 니콜라스 게스트, 빈센트 클린, 벤 맥크리어리, 밥 브라운, 존 H. 엡스테인, 버튼 리차드슨, 낸시 서스턴, 에드먼드 타일러 렌, 브래드 란젠버그, 클레어 호크, 케이시 왈래스, 보로브니사 블러바크, 팀 토머슨
<묵시록의 4기수> 중 (사진: “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루돌프 발렌티노(Rudolf Valentino, 1895~1926)가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 첫 번째 스타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도 아니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자리에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나 메리 픽포드, 펄 화이트, 테다 바라, 월러스 레이드, 윌리엄 S. 하트, 기쉬 자매, 존 길버트, 클라라 보우, 하여튼 먼저 호명해야 할 정말 많은 이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일정 기간 사랑에 빠지곤 했다) 물론 세계 영화사의 순간(들)을 뒤져나가면서 계속해서 이 자리에 스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위대한 영화 작가들, 시네아스트들, 제작자들, 끝없는 테크놀로지의 발명만큼 이 순간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루돌프 발렌티노가 단지 호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설명이 필요한 이름이 되었는가. 스크린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등장해서 탱고를 추는 순간 영화를 보던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현상을 이미 설명한 사람이 있다. 『적과 흑』(1830), 『파르므의 승원』(1839)을 쓴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1871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해서 미술품들을 감상하다가 감정적 충만함과 희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한다. 스탕달만 이걸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이 미술품을 본 다음 심장의 두근거림, 정신의 혼미한 상태, 어지러움, 우울증, 현기증, 위경련, 심지어 전신마비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 증세를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두 현상이 정확하게 같은 정신적 반응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스크린 앞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스타라는 자리는 단지 인기가 많은 배우, 만으로는 갈 수 없는 별자리이다. 그 자리에 가려면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마법이 발생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라 스타, 라는 현상을 처음 주목한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의 지적이다.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몇 편의 스타에 관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스타를 ‘현대의 신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콤플렉스. 하나의 트라우마, 하나의 현상, 하나의 담론,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단어는 ‘마법’이다. 대중과의 관계를 놓고 장황한 사회학 이론과 정신분석의 개념들로 이 단어 주변을 장식할 수 있지만, 사후약방문처럼 정리되면서 무언가 결정적인 핵심은 매번 놓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단 한 마디로 영화사의 신비로운 순간들. 나는 그걸 AI가 대신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루돌프 발렌티노 (사진: “ Forgotten Hollywood: Rudolph Valentino – ‘The Great Lover’ ”, Golden Globe Awards) 1895년 5월 6일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카스텔라네타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네 명의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루돌프 발렌티노에게 아들만큼 이름이 긴 아버지는 루돌프 피에트로 필리베르토 라파엘로 주그렐미 디 발렌티나 단톤게라(Rudolf Pietro Filiberto Raffaello Guglelmi di Valentina d’Antonguell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전부 부르는 사람은 없다.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발렌티노는 파리에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18살에 뉴욕으로 갔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다음에도 이민 온 다른 스타들과 달리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이탈리아 국적을 유지하였다. 아무 경력이 없는 루돌프 발렌티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매번 해고를 당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탱고 춤을 잘 추었다. 잘 춘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잘 추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재능을 지닌 타고난 탱고 댄서였다. 게다가 춤을 추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루돌프 발렌티노는 요염했고, 그가 탱고를 추면 홀리는 듯한 손끝과 옷이 몸에 꼭 달라붙어서 발가벗은 듯한 육체의 제스처, 그리고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춤을 춘다는 눈빛이 최면을 걸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1914년 무렵 조 파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사교 댄서이자 작곡가이며 사회 정치적인 활동가였던 조앤 소이어의 상대로 주급 50불로 탱고 파트너가 되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명성을 얻었지만, 치정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뉴욕을 벗어나 할리우드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떠났다. (좌) <A Sainted Devil>(1924) 중 (우) <묵시록의 4기수> 중 / 사진: IMDb ( 좌 , 우 ) 하지만 할리우드에 와서 갑자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엑스트라로 현장을 기웃거렸으며, 조연의 조연의 조연에 해당하는 역할을 전전했다. 루돌프 발렌티노를 알아본 건 아직 MGM 영화사로 합병되기 이전 메트로 영화사의 제작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준 마티스였다. 준 마티스는 무성영화 시대에 가장 눈 밝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직관과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장황한 설명 대신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례를 들려주겠다. 준 마티스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 탐욕 >(1924) 원작을 각색하고 대사를 쓴 사람이다. 메트로 영화사는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즈의 소설 『묵시록의 4기사』(1887) 판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소설의 각색을 준 마티스에게 맡겼다. 각색한 다음 렉스 잉그램 감독에게 배역 중에 훌리오 역에 루돌프 발렌티노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렉스 잉그램은 루돌프 발렌티노 캐스팅에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전해지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소문에 따르면 루돌프 발렌티노가 게이라서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주장은 전기에도 꾸준히 따라다니는 이야기지만 소문에서 멈추었다. 상황이 복잡하다. 그 당시에 게이라는 소문은 대중들에게 치명적이었고, 아마도 그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영화 흥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시대였다. 게다가 렉스 잉그램이 거부감을 가졌다는 말도 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몇 차례 결혼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게이가 소문을 진압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렉스 잉그램이 끝까지 반대하기에는 준 마티스가 메트로 영화사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묵시록의 4기수> 촬영 중 루돌프 발렌티노 (사진: “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 IMDb) 촬영 현장은 순조롭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준 마티스가 옳았다. < 묵시록의 4기수 >(렉스 잉그램, 1921)는 시사회에서 그리피스의 < 국가의 탄생 >(1915)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21년 3월 6일 개봉하자마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도 이 영화의 배역 때문에 ‘라틴 러버(Latin Lover)’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 애칭은 스타의 한 계보를 이루는 용어가 되었다. 스크린에 나타나 바라보면 그 눈길에 홀리듯이 빠져들게 만드는 남자. 그 자신이 하나의 장르인 스타. 더 간단하게 한 마디로 ‘유혹’ 그 자체.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스타는 관객이 자발적으로 날 유혹해주세요, 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덧붙인다. 점점 그 힘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존 배리모어, 샤를 보이에, 로버트 테일러. 타이론 파워, 제랄 필립,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이 계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루돌프 발렌티노의 자리를 얻지는 못했다. 단숨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라틴 러버’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러나 그런 다음 자신의 이미지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반복했다. 하지만 루돌프 발렌티노의 열광적인 팬들은 같은 노래만 부르는데도 지치지 않고 공연장을 찾는 팬들처럼 영화관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말하는 건 망설여지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자신의 인기가 몰락하는 걸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26년 8월 15일 뉴욕 앰배서더 호텔에서 복막염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들은 낙관적이었지만 23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장례식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백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신문은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은 팬들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을 낳았다. 매년 기일이 되면 애도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나타나서 무덤에 장미 한 송이를 놓고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얼마나 유명한 이야기인지 1959년 레프티 프리젤이 ‘검고 긴 면사포(Long black veil)’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조니 캐쉬, 조앤 바에즈가 다시 불렀다. 그런 다음에도 수많은 가수가 루돌프 발렌티노를 자신의 가사에 등장시켰다. 그중에는 밥 딜런, 킹크스, 이기 팝, 데이빗 보위, 프린스, 스키드 로우, 레오 세이어, 퀸, 그리고도 한참 더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Camille>(1921) 중 (사진: “ Camille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사진: "LOUIS DELLUC", la Cinémathèque française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이상한 일이긴 한데 누구나 이들을 부르는 말, 어떤 이들이냐면,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이들,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고 미친 듯이 보러 다니는 이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보러 다니는 이들,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게 직업인 것처럼 보러 다니는 이들, 아니,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게 임무라고 생각하는 이들, 심지어 고다르는 “영화에 병든 자들”이라고 부르기까지 한 이들, 아마 고다르는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편집실에서 만난 자크 리베트와 프랑수아 트뤼포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하여튼, 이 사람들을 ‘시네필(cinephile)’ 혹은 ‘시네필리아(cinephilia)’라고 부르는데, (이미 앞서 한 말을 환기하자면) 이상하게도 누가 이 말을 처음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네필리아’라는 말이 영화(ciné)와 우애(友愛)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필리아(philia)의 합성어라는 설명은 있지만 누가 이 말을 처음 ‘합성’했는지를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 말을 1920년대 파리에서 이미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표현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무리에게 파리 시민들은 적대적이었으며, (부르주아들은 오페라나 무도회에 갔다), 영화에 열광하는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대해서 지식인들, 혹은 문인들은 위험하게 바라보았으며, 게다가 그때 미국 영화들이 차례로 파리의 극장가에 도착했는데, 특히 그중에서 그리피스, 채플린, 세실 B. 데밀의 영화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미국 영화에 열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속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미국에서 온 활동사진에 빠져들었다고 빈정거리면서 그들을 ‘시네필리아’라고 불렀다. 루이 델뤽(Louis Delluc, 1890. 10. 14.~1924. 3. 22.) 사진: "Louis Delluc", IMDb 이탈리아인 리치오토 카뉘도가 파리에서 ‘시네필리아’들을 위해 맹렬하게 영화를 방어하고 있었고, 여기에 합류하는 ‘시네필리아’들이 나타났다. 루이 델뤽은 그중 한 명이었다. 영화보다 먼저 태어난(1890년 10월 14일) 루이 델뤽은 15살에 파리에 올라왔다. 처음에는 시를 썼고, 그라세 출판사에서 소설을 발표했다. 1910년부터 연극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그런 다음 연극잡지 《코메디아 일뤼스트레(Comœdia Illustré)》의 편집장이 되었다. 루이 델뤽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이었다. 맥 세네트, 그리피스, 세실 B. 데밀의 영화에 매혹되었고, 누구보다도 채플린의 단편 영화들을 보면서(아직 채플린이 첫 번째 장편영화 < 키드(The Kid) >(1921)를 찍기 전의 이야기이다) 파리 지식인들, 문인들, 언론의 평가에 반발하였고 그 영화들에 찬사를 바쳤다. 루이 델뤽은 전투적인 ‘시네필리아’였다. 1917년에 영화잡지 《필름(Le Film)》을 창간했고, 이 잡지에는 장 콕토, 기욤 아폴리네르, 루이 아라공이 기고하였다. 1920년 1월에 첫 번째 ‘시네-클럽’을 조직했고(하지만 별다른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관련 소식을 주간지 형식으로 《쥬르날 뒤 시네-클럽(Journal du ciné-club)》을 발간했다. 잡지 《필름》과 주간지 《쥬르날 뒤 시네-클럽》 사진: Ciné-Ressources 다음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보러 다니는 사람은 알겠다. 그러면 ‘시네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조건반사적으로 감독, 이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면 촬영은? 조명은? 편집은? 프로듀서는? 배우는? 그리고 제작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 이라고 나는 질문했다. 그들 모두를 부르는 말. 처음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한적으로 ‘연출(metteur-en-scène)’이라고 불렀다. 그때에는 이 모든 일을 현장에서 그렇게 세분화하지 않았다. 그때 영화는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술자에 가까운 직업이었다. 현장에서 진행하는 사람.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사람. 연기 경험이 있는 사람. 혹은 말을 타거나 위험한 재주를 할 줄 아는 사람. 이 말을 에밀 뷔이에르모즈가 1916년 11월에 《르 땅(Le Temps)》에 사용하였고, 당분간 모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시네필리아’들은 이 표현이 못마땅했다. 왜냐하면 연극에서 ‘연출’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영화가 연극의 하위 장르인 것처럼 여기게 하였다. 여기서 문제 의식을 가졌던 사람은 리치오토 카뉘도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에크라니스트(écraniste)’라고 호명했다. ‘에크랑(écran)’은 ‘스크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을 ‘피아니스트’ 혹은 ‘바이올리니스트’와 마찬가지로 ‘화면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루이 델뤽은 영화를 보러 다니는 사람인 ‘시네필’의 맞은 편 자리에 있어야 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화면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루이 델뤽은 1921년 5월 6일 새로운 영화주간지 《시네아(Cinéa)》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영화만 다룬 건 아니고 일종의 문화 종합잡지였다. 그래서 뮤직홀의 소식, 새로운 재즈 동향, 그리고 샹송과 함께 영화를 소개하였다. 이때 루이 델뤽은 이 잡지에 등장하는 다른 장르의 대중 예술가들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분리해내기 위해서 ‘연출(metteur-en-scène)’이나 ‘에크라니스트(écraniste)’보다 더 직관적이고 더 단순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21년 5월 27일자로 출간된 《시네아》 4호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시네아스트(Cinéaste)’라고 처음 불렀다. 오늘날에는 ‘시네아스트’를 영화 ‘예술가’의 표현처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말은 영화를 보러 다니는 ‘시네필’의 맞은 편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만일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당신에게 누군가 “시네필이신가요”라고 질문하면,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부터 저를 시네아스트, 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대답하면 당신의 영화 앞에서 다시 한번 마음 다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요. 《시네아》 2호, 3호, 5호 사진: "DELLUC Louis", calindex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산업은 활황의 정점에 있었다. 넘치는 제작자본, 소재와 규모, 스토리텔링, 형식의 실험이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과시하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요약된다. 이명세 감독의 < 형사 Duelist >(2005)는 이 무렵에 발표된 문제작 중 한 편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낭만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다면 슬픈 눈(강동원)과 남순(하지원)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넣었어야 하건만 이명세는 칼날들이 부딪힐 때의 섬광 같은 번쩍임, 펄럭이는 천 조각들, 숨이 넘어갈 듯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땀에 절은 얼굴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스토리의 비약, 감정의 흐름을 등한시하는 태도, 슬픈 눈과 남순이 첫 눈에 반하는 이유, 슬픈 눈이 병조판서(송영창)를 배신하는 이유 등 개연성을 갖춘 플롯이 의당 감당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관객들의 불만을 촉진하였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과 유리된 듯한 미적 도취, 비현실의 세계를 뛰노는 상상적 판타지,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연극적인 세트, 몽상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스타일로 장인적 세공술을 담금질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이미지를 조각하는 이명세의 연금술은 현실과 꿈을 교차시키는 대담한 오버랩, 아기자기한 세트, 만화 같은 이미지, 비 관습적인 음악과 사운드로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이 완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논쟁을 던져왔다. 다수의 뉴웨이브 감독들이 치열한 현실인식과 그에 대한 발언으로서 이야기와 형식을 고민했다면 이명세는 영화는 무엇으로 말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시네마 뉴웨이브’의 시네아스트로 자신을 몰아갔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형사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형사 Duelist>의 스토리는 혼돈이다. 때는 18세기, 입담 좋은 대장장이 봉출(윤주상)의 한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봉출은 호기심에 차 눈을 부라리는 남정네들을 앞에서 한밤에 만난 기이한 분위기의 요염한 아낙(김보연)의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춘다. 그때 프레임의 뒤편에서 애꾸눈의 사내가 “이 상놈의 새끼들, 집중이 안 되잖아!”라고 아리송한 타박을 한다. 험상궃은 사내의 기세에 이야기는 갈 길을 잃고 카메라는 슬그머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캉캉에 맞추어 춤을 추는 탈을 쓴 사람들의 군무로 넘어간다.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리듬을 무시하고 이어지는 붉은색 천 앞에서 칼춤을 추는 백발의 탈바가지, 북적대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장터의 풍경들로 이미지의 연쇄는 숨이 가쁘다. 군중들 사이에 섞인 좌포청 포교 남순(하지원)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틈타 시중에 가짜 돈을 유통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 중이다.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 형사 남순의 파트너는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한 안 포교(안성기). 의욕을 앞세우는 남순과 꼼꼼히 전후 사정을 따져 사건에 접근해가는 안 포교는 서로의 장단점을 상쇄시켜줄 만한 최고의 단짝이라 할 만하다. 수상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그날 돈자루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소란의 와중에 남순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탈을 쓴 백발의 괴한을 쫓는다. 좁은 시장 골목과 담벼락 길 사이에서 서로의 뒤를 쫓는 추격전을 벌이지만 신출귀몰한 백발 괴한은 두 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형사 Duelist>의 장면들은 관객을 추격의 스릴로 몰아 부쳐 아드레날린에 취하게 만든다. 상당한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통상적인 플롯의 전제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단속적으로 진행하는 신들의 연쇄는 극중 애꾸눈 사내의 푸념처럼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가 필요로 하는 차근차근 쌓아나가기 위한 세팅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스토리의 중간으로 잘라 들어가는 둔탁함이 거기에는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혼돈과 충돌이 만발하는 이 시퀀스의 내적 논리는 무엇인가? 시퀀스의 주제는 봉합선이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의 연쇄이다. 광란에 가까운 트릭을 구사하는 20분 동안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것 같은 편집을 결합한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정도이다. 그 자신의 스타일적인 시그니처인 스톱모션 이미지와 번쩍이는 순간 다음으로 넘어가는 불분명한 쇼트의 이행, 피사체들의 수평적 움직임, 와이프와 같은 효과를 내는 쇼트의 수평적 전환을 통해 이명세는 시네마틱 무브먼트와 트랜지션을 매개로 한 대담한 실험을 보여준다. 화면 내 요소들과 카메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활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전체 시퀀스는 하나의 쇼트가 사라지고 이어지는 쇼트 안으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을 준다. 백발의 괴한의 휘두르는 칼의 그래픽적인 움직임, 프레임 안 인물의 이동 따위가 광학적인 기교인 와이프를 대체하기도 한다. 구성적인 차원에서 이 시퀀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한 장르에서 또 다른 장르로 이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요상한 공포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캉캉 춤을 추는 무희들의 뮤지컬로, 수직의 길 위에서 맞서는 서부극적인 구도로, 몸과 칼의 안무가 이루어지는 무협영화로 전환된다. 속도는 진정되고 움직이는 카메라가 여전히 거기에 있는 동안 세트 디자인과 조명의 아름다움으로 구축된 골목에서의 결투는 이 시퀀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슬픈 눈이 쓴 탈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이 결투는 애간장을 태우며 끝이 난다. 탱고 춤과 무모한 칼싸움 사이 어딘가에서 백발의 탈과 남순이 화면에서 뛰어내리고 프레임을 분할한 조명에 잠겼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포착된다. 장엄한 촬영 기법과 세트 디자인 위에 얹혀진 조성우의 음악은 클래식과 전통 음악을 혼합하여 영화에 깊이를 부여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액션이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움직임은 장면 연출의 초점이다. 도입 시퀀스를 마무리하는 결투 외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영화 속 결투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으며 거기에는 인물들의 구애의 단계가 반영되었다. 두 번째 결투 신은 번쩍이는 칼날만이 어둠을 밝히는 그림자 속에서 정교하게 촬영되었다. 탱고 스타일의 테마로 보완된 음악은 한층 무르익은 감정의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결투는 눈 속에서 사무라이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고, 네 번째는 유혹적인 동작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에로티시즘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사 Duelist>에는 영화 예술의 본질이 물질적인 움직임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스며 있다. 보는 사람의 정신에 닿게 하는 영화의 정수는 어떤 것일까? 그런데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감각의 액션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형사 Duelist>는 골치가 아프고 지루한 영화였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대화, 캐릭터, 장르 중 어느 것도 장면이 만들어내는 느낌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이명세는 관객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화면에 묘사하여 정신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움직임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현대영화가 잃어버린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사운드의 출현으로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리조차 이미지화되는 감각의 전환을 창조하려는 야심이 이 영화, <형사 Duelist>를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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