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매트를 들어라
- 감독
- 박범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정영기, 강희만, 분호진, 김수경, 조용훈
올해도 열 편을 뽑았는데, 한국 영화가 다섯 편, 외국 영화가 다섯 편이다. 아홉 편이 극영화이고 한 편은 다큐멘터리다. SF는 세 편,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작품이 세 편 또는 네 편이다. (< 수라 >의 주인공을 누구로 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다큐멘터리인 <수라>를 뽑았다. 좋은 영화이기도 했지만 의무감을 느낀다. 올해 나온 영화 중 더 이상 우리가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는 걸 <수라>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을까. < 당나귀 EO >와 < 다섯번째 흉추 >는 모두 비인간 주인공이 인간사회를 떠돌며 겪는 여정을 그린다. <당나귀 EO>가 < 당나귀 발타자르 >의 보다 발랄하고 화려한 버전이라면 (그렇다고 결말의 가차없음과 서글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다섯번째 흉추>는 매트리스에 붙어 살면서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뽑아 먹으며 결국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변신해가는 곰팡이가 주인공이다. 두 작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데, 나로서는 <다섯번째 흉추>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장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가장 많이 본 영화이기 때문일까. OTT에 들어온 뒤로 거의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영화이다. < 아니말리아 >도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계 종족의 접촉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임산부 주인공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 중 인간이 당연시하는 모든 것들의 우선순위가 파괴되는데, 정말 내 취향의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 A.I. 소녀 >는 아슬아슬하지만 단단하기 짝이 없는 하드 SF다. 인터넷에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서서히 인격을 갖고 성장해간다. 이 장르 특유의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압도적인 치밀함과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름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 플라워 킬링 문 >은 스콜세지의 첫 서부극이다. 아마도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미국 영화사에 대해 빠삭한 이 노장이 이 장르에 대한 존경과 원죄의식이 빽빽하게 차 있는 이 네 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보며 압도되지 않기는 힘들다. 단지 미국 선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거칠 수밖에 없는 당사자성에 대한 논의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 지옥만세 >는 올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신나는 모험담이다. 그리고 이 모험담의 재료는 내가 질색하는 것들, 그러니까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그리고 종교와 같은 재료를 갖고 만들어졌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발랄한 결과물이 나왔다니, 볼 때마다 신기하기 그지 없다. < 너와 나 >는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의 로맨스다. 화사한 청춘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기만적일 정도로 소박하고 단순한 재료들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처럼 교묘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작품도 많지 않다. 나머지 두 편은 창작자에 대한 영화다. < 어파이어 >와 < 비밀의 언덕 >. 두 편 모두 창작자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이기적이고 치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둘 다 재미있는데, 비교해 보면 <어파이어> 쪽이 훨씬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독일인 백인 남자 작가에게는 충분한 거리두기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비밀의 언덕>을 볼 때는 그게 좀 어렵다. 이지은의 <비밀의 언덕>은 내가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두 번째로 힘들게 본 작품이다. 첫번째는 < 서울의 봄 >이고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괴로워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다행히도 <서울의 봄>의 고통스러움과는 달리 <비밀의 언덕>의 고통스러움은 재감상 때는 많이 사라지는 종류다. 초등학교 5학년생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 명은은 결코 안전한 아이가 아니다. 일단 이 아이를 따라가기 시작한 관객들은 러닝타임이 10분을 넘기기도 전에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경고음이 들린다. 명은은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쟁이에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는데, 명은은 그 중 가장 까다로운 부류이다. 일단 이 아이는 영화 시작부터 부모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시장에서 일하는 부모가 부끄러워 가상의 중산층 부모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냥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라 스파이처럼 가짜 가족 앨범까지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명은이 다니는 1996년 수도권 소도시 초등학교라는 시공간에서 부모의 계급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명은에겐 가족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이 아이에겐 현실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현실을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 관객들은 명은과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된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작은 동네에서 거짓말은 쉽게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명은은 여러 면에서 우등생이다. 그건 기준을 세워놓으면 최선을 다하는 아이의 성격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이는 여러 모로 좋은 반장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추진력 있고 부지런하며 무엇보다 리더 자질이다. 아이는 좋은 작가이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열심히 준비를 하고 열심히 글을 쓴다. 통일에 대한 글을 쓰라는 과제가 주어지면 명은은 혼자 판문점까지 가서 직접 견학을 한다. 후반에 가면 아이가 표절을 한 것이 아니냐고 몇 초 동안 의심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짓말을 했다면 모를까, 표절은 명은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 중 하나다. 단지 아이에겐 상한선이 있다. 아주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불안불안 위태롭게 유지되던 명은의 우주는 학교에 혜진과 하얀이라는 학생들이 전학오면서 흔들린다. 교장선생님은 이 아이들에게 될 수 있는 한 평범한 배경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은 그 주어진 허구를 가볍게 하나씩 깨트린다. 평범한 집안의 이란성쌍둥이로 소개되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유흥업소 사장이고 하얀은 업소 직원의 딸이다. 명은이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숨겼을 사실인데, 혜진과 하얀은 이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네 삶을 소재로 글짓기를 하는데, 이들이 별 노력없이 쓴 글은 명은이 판문점까지 가서 취재한 글을 가볍게 넘어선다. 명은의 질투심은 하늘을 찌른다. 자연스럽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대한 오래된 전설이 떠오른다. 전설이라고 한 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 아마데우스 >는 옛 헛소문에 기반을 둔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천재와 범재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단순한 세계의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명은과 혜진 & 하얀의 관계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명은이 은근슬쩍 혜진을 사보타지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 아이는 곧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명은은 두 아이의 작가로서의 능력과 인간적 매력을 알아보는 소수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야기가 아니냐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여기서부터 영화는 명은의 작가로서의 성장을 보여준다. 아이가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게 아니다. 단지 아이의 세계관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추구해왔던 전략과 목표 상당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좋은 글에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대범함과 솔직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영화가 배경인 1990년대 중반은 정말로 이런 글이 먹힐 수 있는 시기이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명은은 혜진 & 하얀 콤비와 같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 이미 작가로서 꾸준한 훈련을 해왔던 것이다. 단지 전략만 수정하면 된다. <비밀의 언덕>에는 천재와 범재를 구분하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없으며, 평범한 작가의 노력도 인정을 받는다. 아니, 명은도 평범한 작가는 아니다. 학교 글짓기를 위해 판문점까지 가는 부지런함,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글을 쓰는 집요함도 재능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하면서도 특별한 지점은 명은의 정신적 성숙이 좋은 작가가 된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창작자에 대한 이야기는 반대의 순서를 따르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그런 판타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기술이며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만든 창작자라도 여전히 그냥 개*#₩일 수 있다. 아니, 그 개*#₩는 사람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개*#₩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개*#₩다. 하지만 명은은 성장한다. 갑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경멸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랬다면 좋은 작가도 못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쓴 글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기술적/예술적 성취가 늘 우선순위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주변의 결점있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명은은 작가가 되었을까. 명은을 연기한 주연배우 문승아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려고 한 것부터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혜진을 따라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이 단계를 거쳐 성장했으니 더 이상 글을 쓸 이유가 있을까? 멋진 캐릭터 해석인데, 나는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글쟁이인 혜진과 하얀은 자신의 삶에서 밑천이 떨어지면 그냥 글을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명은과 같은 작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이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
어제는 제 20대 대통령 선거일이었고 나는 오후 1시 즈음 코인세탁소에 이불 빨래를 돌리고 성원초등학교에 들러 투표를 했다.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향방을 알 수 없는 선거라지만 투표에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약 20년 정도 되는 투표의 나날동안 일관되게 한 당과 그 당의 후보에 표를 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선거 때마다 같은 말을 듣는다. 사표를 만들지 말아달라, 이번에는 어떤 후보가 되는 걸 막아야돼, 니 고집만 지켜서 될 일이 아니야 등등. NL 출신 금정연씨(42세)의 사정은 어떨까. 그와 나는 정치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왜 할 말이 없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시작되고 생각이 시작되면 행동을 꿈꾸게 되는데 그 일이 우리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가기 때문에. 그러나 이번은 다르고 이제는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은 변하지 않지만 어느새 세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징징대는 건 이제 그만. 그래서일까. 금정연은 정치 트윗을 리트윗하고 세태/세대에 대한 담론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이것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이 길을 찾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거일을 기념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정치 에세이 <기운내, 심바: 안티 후보의 트레일에서 보낸 일주일>을 읽었다. “롤링스톤즈”의 특파원 신분으로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존 매케인의 캠프를 밀착 취재한 기사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글을 삐딱한 자세로 읽기 시작했다. 공화당 후보를 옹호하는 기사를 쓰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생각했던 것이다. 역시 DFW는 근본주의자야(여기서 근본주의자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실천은 급진적이지만 신념은 보수적인 일군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나만의 용어로 구체적인 설명은 글의 방향과 어긋나니 나중으로 미루겠다. 그럼에도 부연하는 까닭은 1. 근본주의자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를 피하고 2. 근본주의자들이 특정 장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사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고귀한 보수의 상징인 존 매케인(버락 오바마와 대선에서 맞붙었을 당시 네거티브를 요구하는 언론과 지지자들에게 매케인은 오바마는 훌륭한 시민이며 우리는 의견이 다를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대선에서 패했다)의 인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특정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 현상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DFW는 “이 글은 어떤 인상적인 인물의 선거운동을 다룬다기보다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와 그 모든 포장과 홍보와 전략과 미디어와 여론 조작과 만연한 부패가 우리 미국인 유권자로 하여금 실제로 어떻게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 다룬다고 쓴다. 여기서 인물과 선거운동 따위를 작품이나 영화 등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니까 한영한사가 진짜 다루고 싶은 건 어떤 작품이 왜, 어떻게 좋으냐가 아니라,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환경을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고 재생산하는가 라고 말이다. 한편, 정연씨는 꿈을 꿨다고 했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밤이었고 매일 같이 악몽으로 시달리던 한 주였기 때문에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는 특별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꿈은 달랐다. 정연씨는 한국의 영화제 시상식에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인지 대종상인지 청룡영화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그건가 싶기도 하고, 셋 모두 보지 않는 정연씨로서는 구분할 방도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한국의 영화 시상식임은 분명했다. 사회자는 왜인지 박솔뫼였고(또는 박솔뫼 역할을 하는 김혜수) 시상자로는 소설가 김연수가 나왔다. 다만 정연씨의 꿈에서 김연수는 소설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었고(“아마 홍상수 영화에서 맡은 배역 탓이겠죠.” 정연씨가 말했다) 얼굴은 허진호와 닮아있었다. 그러면 정연씨는 어떻게 김연수가 김연수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외모도 직업도 다른데 김연수가 맞긴 한 걸까. 김연수를 규정하는 영혼의 징표라도 존재하는 걸까. 내가 정연씨에게 말하자 정연씨는 그게 꿈의 신기한 점이라고 했다. “꿈에서는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나 과거와 같은 전기적 사실보다 생각이 현실을 규정하니까요.” 정연씨는 칼 융의 공시성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정신의 작용이라면. “정신이 물질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정신과 물질을 가르는 경계가 모호하다는 증거예요.” “그게 한영한사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정연씨에게 물었다. 참고로 우리는 에세이 필름 제작을 위해 서교동의 카페에서 미팅을 진행 중이었다. 미팅 전에 나는 DFW 에세이를 읽고 든 생각을 말했다. 21세기 한국 영화를 말할 때 보통은 비평적으로 훌륭한 영화를 나열하고 그 의의를 평가한다.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등. 특정인의 감식안에 선정된 영화들이 곧 한국 영화인 것이다. 그게 아니면 산업적인 측면을 주목한다. 천만 영화의 등장, 제작, 유통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도입 또는 한국 영화의 해외에서의 위상 등. 그러나 그게 정말 우리가 경험한 한국 영화일까. 이런 과정들은 중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경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 정연씨가 뜬금없이 꿈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정연씨는 엠마뉘엘 카레르가 쓴 필립 K. 딕의 전기 <나는 살아있고 너희는 죽었다>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PKD를 따라 주역과 칼 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들이 미국영화와 한국영화, 현재의 정치 상황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20세기 말 이후의 모든 미국 영화는 PKD의 자장 아래 있습니다. < 매트릭스 >, < 트루먼 쇼 >, < 다크 시티 >, < 플레전트빌 >에서 시작됐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미국 영화는 PKD의 편집증적 우주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영화는 미국 영화죠. < 기생충 >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이정재가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실을 생각해봐요. 이곳은 누구의 편집증적 우주일까요? 윤석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라는 우주가 그것을 보고 원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원격작용을 한다는 뜻이에요.” 정연씨가 말했다. 나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였지만(<플레전트빌>이나 <다크 시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나요?) 정연씨의 편집증-꿈-영화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정연씨의 꿈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 돈 룩 업 >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아담 맥케이, 티모시 살라메가 나란히 도열해서 박솔뫼와 김연수가 주는 상을 받은 것이다. “작품상은 보통 제작자가 받지 않나요?” “그건 핵심이 아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정연씨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았다. <기생충>, < 오징어게임 > 같은 한국의 영화/드라마가 로컬이자 글로벌인 미국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은 이상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현상이다(정연씨는 아이비리그 인류학과 박사과정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라고 했다. 각국의 학생들이 자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인류학적 사안을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헐리웃 영화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 영화제에서 헐리웃 영화에 상을 주면 어떨까? “지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가 누구죠?” 정연씨가 말했다. “윌 스미스?” “그렇죠. 윌 스미스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거예요.” “오… 그런데 윌 스미스가 상을 받으러 올까요?” “지돈씨,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필립 k. 딕의 전기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네 엄지발가락에서 해방되어라. 그리하면 벗이 다가오리니 그를 믿어도 될 것이니라’.” “그게 무슨?” “영화를 엄지발가락이라고 생각해보세요.” “?” “이렇게 말해보죠. 지돈씨 < 명량 > 봤어요?” “아니요.” “< 해운대 >는?” “아니요.” “< 국제시장 >은?” “아니요.” “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천만 영화죠.” “그렇죠.”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사람들이 정말 이 영화를 봤을까요?” “사람들이 안 봤는데 본 척 한다는 말이에요? 천만영화는 음모다?” “아니요. 이게 무슨 나꼼수도 아니고. 핵심은 영화라는 ‘형식’이 단지 내적인 요소로 짜여진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정연씨는 나윤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길에 곰곰히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21세기 한국 영화에 대해 얘기하려면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이다. 그러던 중에 버스에서 PKD의 전기를 읽었고 잠이 들었고 꿈을 꿨고 영화가 어쩌면 개인들의 편집증적 우주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편집증적 우주의 공시성 속에서 살고 있는 거고. “오.” 정연씨에 따르면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떤 작품의 내용이나 내적인 형식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형식들이 영화라는 형식과 마주치고 얽히면서 의식이나 행위를 조직하고 나아가 삶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저는 그걸 영화 경험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정연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단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영화 이상을 보거나 영화 이하를 본다. “캐롤라인 레빈은 이렇게 말했죠. 의미보다는 패턴을, 해석적 깊이보다는 관계의 복잡성을 찾는것이 비평이라고. 가장 전략적인 정치적 행위는 사회적 경험을 지배하는 서로 다른, 연결성 없는 배열들을 면밀하고 세심하게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좋은 말인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되는 건데요?” “저는 사람들이 영화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할 것을 제안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요.” “그게 무슨…?” “예를 들면, 유튜브 영화 채널은 영화 리뷰를 보는 용도일까요, 영화를 보는 용도일까요? 다시 말해, 이 재생산의 플랫폼이 영화와 무관하게 존속할 수 있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 말은 영화가 없어도 영화 리뷰 채널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건 장 보드리야르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 보다 영화에 대한 것이 더 영화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정연씨의 말을 들으며 왜인지 최근 읽은 워커 퍼시의 소설 <영화광>을 떠올렸다. 주인공 빙크스 볼링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나는 못 만든 영화라도 일단 빠져들면 무척 행복하다.” 다시 말해, 빙크스 볼링에게 좋은 영화 나쁜 영화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내용 역시 문제가 아니다. 그가 동경하는 헐리웃 스타 윌리엄 홀든은 어떤 영화에 나오든 윌리엄 홀든이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현실의 윌리엄 홀든인 것도 아니다. 영화 속 인물과 실존 인물 사이 어딘가에 윌리엄 홀든이 있고 빙크스 볼링은 일상 속에서 그 형상을 반복적으로 창조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영화광>은 씨네필에 대한 소설도 아니고 빙크스 볼링도 씨네필이 아니다. 그러나 볼링은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영화광이고 영화 경험의 창조자다. 그에겐 모든 현실이 영화 경험을 경유해 “인증” 된다. 예를 들면 볼링은 요즘 세상에서는 어디에 살든 그곳에서 진짜 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고, 공허감만 팽창할 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공허감을 불식시킬 유일한 방법은 자기 동네가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영화에 자신이 사는 곳이 나오는 순간 그곳은 “아무 데가 아니라 특정한 데”가 된다. 이것을 영화 경험이 만들어낸 편집증적 우주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21세기 첫 20년 후의 대한민국이라는 편집증적 세계 속에서 영화를 경유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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