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삼총사
- 감독
- 맥지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카메론 디아즈, 드류 배리모어, 루시 리우, 빌 머레이, 샘 락웰, 팀 커리, 톰 그린, 캘린 린치, 루크 윌슨, 매트 르블랑, LL 쿨 제이
학교에서도 늘 왕따를 당하는 12살의 콜. 겁이 많고 용기는 부족한 콜을 위해 부모는 지금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콜이 짝사랑하는 예쁘고, 멋지고, 화끈한 비. 부모가 외출한 사이 콜과 놀아주고, 콜이 잠든 후 부모가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베이비시터다. 그런데 콜은 궁금하다. 내가 잠들고 난 후 비는 무엇을 할까. 동급생이자 이웃집에 사는 친구 멜러니는 어른들이 하는 짓을 할 것이라고 놀린다. 정말, 정말일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원제는 ‘The Babysitter’다. 이 제목이라면, 그리고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면 10대 소년이 짝사랑하는 베이비시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는 성장영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섹스 코미디나 불륜물. 그러나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10대 소년과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코믹 호러 성장물로 연성한다. 잠이 든 척했던 콜이 거실을 훔쳐보니 비의 친구들이 몰려와 있다.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키스를 한다. 이제 어른들의 사정이 시작되는구나 싶더니만 반전이 시작된다.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비가 키스를 시작하는데, 웬걸 비의 두 손에 들린 칼이 남자의 머리에 꽂힌다. 피가 줄줄 흐른다. 잠든 척하다가 들킨 콜은 추궁을 받는다. 뭘 봤지? 어디까지 봤지? 그리고 비와 친구들이 악마의 책을 이용하여 의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악마 의식에 빠지는 것은 빈번한 일이고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그 시절이야말로 바라는 것이 더욱 많을 때니까.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볼 때니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장르를 따진다면 호러 코미디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다. 12살의 콜은 스스로 새가슴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며 운전석에 앉혀도, 늘 다음 주를 기약하며 결국은 내려 버린다. 그런 콜이 비를 짝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가 끝나면, 콜은 운전도 하고, 그를 짝사랑했던 멜러니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과 영화만 보며 몽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반드시 비를 극복해야만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기존의 청춘물, 공포물, 성장물의 특정한 요소들을 제대로 배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톰 크루즈를 처음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걸작 < 위험한 청춘 Risky Business >(1983)이 겹친다. 모범생이 부모의 휴가를 틈타 파티를 열었다가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막대한 돈이 구하기 위해 그가 세운 타개책은 포주가 되는 것이다. 파티에 온 콜걸에게 연락을 하며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게 된다. 청춘물의 아이들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된다. <위험한 청춘> 초반, 혼자 남은 톰 크루즈가 거실을 누비며 에어 기타를 치는 장면이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에서 콜과 비가 함께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며 톰 크루즈의 에어 기타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콜을 쫓는 비는 < 13일의 금요일 >의 효과음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던 콜이 용기를 내서 하나씩 비의 친구들을 물리치면 < 나 홀로 집에 >가 된다. 혼자 집에 남은 소년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영화.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오가잡탕인데 꽤나 맛있다. 한때 < 미녀 삼총사 > 1, 2편을 만들며 각광받다가 <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2009) < 디스 민즈 워 >(2012) < 쓰리데이즈 투 킬 >(2014) 등 실패작을 연속하며 움츠러든 맥지이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성공작인 <미녀 삼총사>와 <사탄의 베이비시터>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과 19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했던 80년대 장르 영화 트렌드를 뭉뚱그린 소년소녀 모험백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 구니스 > < 그렘린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영화로 대표되는. 토비 후퍼를 초빙하여 만들었던 < 폴터가이스트 >(1982)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 시절에 이미 청춘 호러가 득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는 청춘보다 호러에 방점을 둔 슬래셔 영화가 절정이었고, 이후 케빈 윌리암슨이 그 시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 스크림 >(199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청춘 호러는 개화했다. 청춘 호러를 너무 어둡게 가기보다는 케빈 윌리엄슨처럼 적절히 유머를 섞어가며 다루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와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 시리즈가 보여준 스플래터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80년대 감각의 청춘 호러 코미디를 매끈하게 엮어낸 영화라 할 수 있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영리하게 향수를 끌어낸다. 마당에서 프로젝터로 보는 영화는 1971년 작인 <빌리 잭>이다. 기존의 영웅들로 은하계 드림팀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데, 비가 선택한 드림팀은 < 스타 트렉 >의 커크와 피카드, <에일리언>의 리플리, < 인디펜던스 데이 >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이다. 콜은 < 배틀스타 갈락티카 >의 아다마 제독, <스타 트렉>의 데이터, 프레데터 그리고 콜과 비였다(1978년 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있다). 이렇듯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화 내내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또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캐릭터다. 콜은 비를 짝사랑한다. 멜러니는 콜을 짝사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라면 비가 악녀로 밝혀지고, 비를 물리치는 모험을 한 후 멜러니와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싫어할 수가 없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콜을 괴롭히는 소년에게 비가 귓속말을 한다. 지독한 말에 놀란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친다. 비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인 비치(bitch), 빅센(vixen), 팜므파탈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맞는데, 그것 말고는 미워할 지점이 없다. 동정인 남자의 피가 필요해서 콜이 필요했을 뿐, 나름 성심껏 대해준다. 최선을 다해서 콜의 부족한 단점을 메워주고 용기를 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콜의 질문에 비는 답한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에 떨곤 했지. 지금은 강하지. 두려움도 없어.” 라고. 비도 콜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약하고 초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는 선택했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콜이 비에게, “누나는 <매드맨>의 주인공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지고 잘 생겼지만 바람이나 피우는 놈.’ 하지만 그만의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는 놈이 아닌 X인 비. 콜은 비를 사랑했고,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정체를 드러내고, 콜의 친구를 죽일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콜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비로소 콜은 어른이 된 것이다. 비를 통해서, 비와 맞서고 극복한 후에 콜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 위험한 청춘 >에서 톰 크루즈가 콜걸인 레베카 드 모네이와 섹스를 하고 포주가 되는 경험을 한 후 어른이 된 것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듯이. 2014년, 아직 제작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인 ‘블랙리스트’, 2015년(에도) 아직 제작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호러 시나리오인 ‘블러드 리스트’에 꼽혔던 브라이언 더필드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발적이고 역전된 캐릭터와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한 기분이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2015년 완성되었지만 201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족.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과 <1922>,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 버려진 자들의 땅 The Bad Batch >, 제러미 러시의 <겟어웨이 드라이버 Wheelman>, 닉 다미치의 <부시윅>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장르 영화들은 오래 전 할리우드 동시상영시대에 만들던 B-Movie 같다. 스타가 나오는 대작을 메인으로 상영하면서 열혈 팬이 있는 액션, 호러, SF 등을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B급 영화. 넷플릭스는 기존 채널에서 모두 거절당한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를 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SF <익스팬스>와 호러 <헴록 그로브> 등 장르물에서 더욱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 블레임 > <아인> < 사이보그 009 >를 자체 제작하고 기존 작품 판권도 대거 사들이는 중이다. 소수 취향이지만 전 세계로 동시에 내보내면 시청자는 아주 많아지니까. 앞으로 넷플릭스는 < 사탄의 베이비시터 > <제럴드의 게임> 등 재기 있고 발랄한 영화들의 수원지가 될 것이다.
육감적인 미모의 여인들이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는 상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몇 개는 되는데, 최근 개봉한 < 조선 미녀 삼총사 >를 보니 문득 오래전에 본 한 영화가 떠올랐다. 3명도 아니고, 5명의 미녀가 피로 한 맹세 아래 복수를 감행한다. 총으로 쏴 죽이고 폭탄으로 터뜨려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목 졸라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는 의자매들의 논-스톱 복수혈전을 담은 영화가 < 특명 미녀군단 >이다. 어째 제목부터 선뜻 손이 가기는 어렵다는 느낌이지만. 삐용삐용B무비에서 다루는 영화가 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이 영화는 ‘미녀’가 ‘군단’으로 나오니 쾌가 동할지도? ‘베트남’ 영화가 시작되면 ‘베트남’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나온다. 이곳의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어 강제 노동과 혹독한 (성추행을 포함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여죄수들. 이 중 샌디( 강리나 ), 수지( 채은주 ), 마리아(마라 토레도), 구옌메이, 티나는 더 이상의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미인계로 간수들의 꾀어내 무기를 탈취, 수용소를 벗어나게 된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흩어져 각자 행복한 삶을 살던 이들은 어느 날 구옌메이의 사연을 듣게 된다. 마약에 중독되어 몸을 팔던 구옌메이는 마침내 살해당하기에 이르고, 나머지 4명의 자매들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범죄조직의 수장 ‘진대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제목부터 ‘미녀’ 그리고 ‘군단’이다보니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이 영화는 감옥에 갇혀 온갖 고초를 겪는 미녀들의 모습을 비치며 시작한다. 밥도 안 먹이고 감자를 캐게 하거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그저 무거워 보이는 자루를 들어 옮기거나(뭐에 쓰는지는 모른다)하는 식이다. 한 여죄수(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가 탈옥(뻔히 보이는 가로등 밑을 총총 걸어간다)하다가 발각되자, 흡사 지옥에서 온 것 같은 숭악한 얼굴의 간수 대장은 가녀린 그녀들에게 정신머리를 고쳐주겠다며 괴롭기 짝이 없는 낮은 포복을 시킨다. 그리고는 바다에 들어가 시원한 샤워 타임. 얼차려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래 역시 채찍 뒤에는? 당근이다. 강제수용소에도 예외 없다. 여죄수들의 생활(의외로 HD 인코딩 작품이라 과시할 겸 큰 이미지 올림) 이렇게 써놓으니 뭐가 뭔지 모를거다. 나도 여기까지는 이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 수용소 안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일들은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냥 하는 거다. ‘수용소라면 이런 장면이 필요할 거야’라는 느낌이다. 앞서 언급한 탈옥수 덕분에 얼차려를 당하는 장면에서는, 대다수의 여죄수가 낮은 포복을 하는데 몇몇의 원주민 배우로 보이는 여인들이 비키니 비슷한 천 쪼가리를 걸치고(‘옷을 입고’라고는 차마 쓸 수가 없다) 매우 힘든 얼굴을 한 채 타이어를 끌고 있다. 대충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감독: 자. 낮은 포복을 하자고. 근데 이거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스탭: 음 뭔가 더 할까요 감독: (구석에 있는 타이어를 본다) 옳아. 저걸 끌어보자 스탭: 그냥 끌면 재미없으니까 좀 벗겨볼까요? 감독: 그러면 좋은데... 리나씨가 벗고 저걸 끌어줄까? 어이 리나씨 비키니 비슷한 천 쪼가리를 걸치고 이거 좀 끌어주지 않을래요? 강리나 : 싫어요. 감독: 이야 이거 곤란한데~ 스탭: 감독님 저기 감자 캐는 이 동네 아줌마들이 할 수 있다는데요. 감독: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구~ 너무한 상상인가? 우리 훌륭한 편집자님께서 이 장면을 분명 사진으로 넣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님이 원하신 것 사실 ‘감옥’과 ‘여죄수’의 컨셉은 70년대 이후 나름대로 붐을 일으키며 꾸준히 제작되었다. 장르라고까지 하긴 조금 빈약하다는 느낌이지만, 전쟁과 감옥이라는 배경은 영화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잔혹함에 대한 합리를 제공해 주었다. 장르의 특성상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아 무자비한 폭력, 생체실험, 쾌락 목적의 살인 등을 상당히 많이 다루었다. 이쪽 장르에서 아예 ‘미친 과학자’ 캐릭터가 합쳐져 ‘누가누가 멋진 괴물인가’ 내기를 하는 듯한 영화도 많이 나오곤 했다.(최근엔 < 프랑켄슈타인의 군대 >이 이쪽의 계보를 이었다.)그러나 무엇보다 성적인 폭력에 대한 표현 수위가 매우 높았다. 이쪽에서는 나름 클래식으로 불리는 <일사 - 나치 친위대의 색녀>를 보면 아주 건강하고 몸 좋은 남정네들이 일사의 성 노리개로 하루, 이틀을 지내다가 사형실로 보내지거나 생체실험을 통해 애통한 죽음을 맞는 장면이 나오고는 했다. 일본의 여죄수 물의 고전인 <사소리> 시리즈는 이런 성적인 묘사와 함께 일본 특유의 폭력의 ‘dreams come true’라고 할 만한 막가는 폭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 특명 미녀군단 >은 여죄수물로 시작해 스크린을 대충 살색으로 뒤덮어주고 어느 정도 됐다 싶었던 지점부터 총기를 훔쳐 탈출을 시도하는데 또 이 부분이 정말 대충이다. 뜬금없이 수지가 지뢰를 밟아 터지질 않나(타이밍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지뢰를 밟은 수지가 멀쩡히 누워 언니 샌디의 간호를 받고 있질 않나.(“그만하니 다행이다 얘!”) 그냥 ‘상식 같은 것은 잠시 놓아주셔도 좋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들이 속출하는데 결국 탈출에 성공하는 시퀀스의 클라이맥스는 자매 5명이 폭포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전에 폭포로 떨어지면 탈출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조력자가 있어서 폭포로만 가면 배가 태워준다든지... 하는 전사도 없었다. 그냥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컷이 필리핀에서 멋쟝이가 되어 잘 살고 있는 그녀들이 보인다. 이런 상황을 업계 용어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고 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左)이런 걸 밟았는데, (右)걸을 수 있겠지? 한다 그리고 장르가 바뀌어 < 예스마담 >류의 여성 파이팅 영화로 변신을 하게 된다. 강제 수용소에서 무거운 거 많이 나르고 낮은 포복을 해서인지 이들에겐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데 어지간한 남자들은 그냥 한 방이고 총을 가져도 거침이 없다. 특히 ‘예쁘진 않지만 매력 넘치는 외모’(당대의 평가를 그대로 옮겨왔다)로 당시 못 남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던(그녀는 92년 한 해 동안 무려 5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동했는데 < 특명 미녀군단 >이 그 5편 중 하나다.) 강리나 의 연기는 어설프지만 발랄하여 보는 맛이 있다. 강리나의 샌디가 발랄하고 활기찬 왈패 여성 역할이라면 보이시한 태권소녀를 수지역의 채은주 가 맡아 나름대로 각자 캐릭터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이들 4명의 의자매 중 외국인 마리아(마라 토레도)는 영화의 막바지에서 반전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강리나가 주인공인 줄 알았던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아주 중요한 인물을 맡고 있다. 물론 마리아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몰랐던 것은 관객들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작자들도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며 그냥 그렇게 됐을 것이다. 이 영화의 재미는 이런 황당한 상황들의 속출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당시 < 서울 무지개 >로 대종상을 수상하며 충무로 A급 스타였던 강리나 의 앳되고 활기찬 모습을 보는 맛이 더 크지 않나 싶다. 격투 장면에서는 대역도 쓰지 않아 상당히 어설픈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그것이 오히려 영화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박평식 영화평론가가 “액션과 재롱 사이”라는 평을 모 영화에 하사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의 격투씬은 다분히 재롱에 치우쳐져 있어 귀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들, 특히 강리나가 석궁을 날리는 장면들은 나름대로 비장한 멋스러움이 있다. 진대인과 그의 수하들을 상대하는 샌디와 마리아는 기관총과 석궁 폭탄 등을 이용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기어코 마리아는 이 전투에서 진대인과 목숨을 맞바꾸게 된다. 최후의 결전인 이 시퀀스는 꽤 괜찮게 찍혀져 있는데 조명화 감독이 어린이 영화에서 갈고 닦은 특효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었을 것이다. 이런 마지막에 다다르니 어쩐지 언니들의 투지에 좀 감격스러운 면도 있는 것이다.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런 멋진 누나들 같으니라고.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강리나 < 특명 미녀군단 >은 뭐 하나 제대로 된 부분이 없는 영화다. 이런저런 막가는 영화를 많이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처럼 당위에서 자유로운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야말로 B무비의 본령인 미국에서 통용되는 정의에 완벽히 부합할지도 모른다. 허술하고 비어있지만 파격적이고 흥겨운 영화. 심각할 것 없이 제공하는 것을 그냥 즐기면 그만인 불량식품 같은 매력이 있는 영화다. 당신이 친구들과 파티를 계획 중인데 무언가 틀어놓을 영화를 고심하고 있다면, 주저 없이 <특명 미녀군단>을 추천하고 싶다. 파티의 무게를 덜어주고 사람들의 점잖음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두용 감독 밑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며 영화를 배우고, 임권택 감독의 < 안개마을 >, < 오염된 자식들 >을 기획하기도 했던 조명화 감독은 82년 < 다른 시간 다른 장소 >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KMDb 기록에 따르면 감독 데뷔 이전에 다수의 무협/액션 영화에 조연출을 참여했고 (바로 전 주성철 기자가 소개했던 < 특명 >의 조감독이기도 했다.) 문여송 감독의 < 그대 원하면 > 같은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계 입문 초반 활동을 보면 뭔가 그럴듯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됐을 법도 한데, 어쩐지 미묘한 영화들에 이름을 많이 올렸다. <정사수표 8>, < 애마부인 11 >, < 뼈와 살이 타는 밤 > 등의 에로물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의 필모를 대부분 차지하는 장르는 어린이 물이다. 박중훈 주연의 < 바이오 맨 >, < 뉴머신 우뢰매 5탄 >, < 슈퍼 홍길동 3탄 > 등을 김청기 감독과 공동감독을 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를 거의 쉼 없이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94년에는 6편을, 87년에는 5편을 연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품이 끊어지지만 않았다면 남기남 감독에 필적하는 호적수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현재는 3D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두고 작업 중이라는 이야기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수류탄을 던지는 5명의 미녀군단 강리나 채은주 감독: 조명화 각본: 조명화 개봉극장: 명화, 대지, 화양, 씨네하우스(서울) 관람인원: 4,385(서울)명
gore : 1. 뿔로 들이받다 2. (특히 폭행당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 선혈 (네이버 어학사전) 호러 영화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 축을 축축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이 신체변형, 피, 보통 인체 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들의 (본의 아닌) 외출을 다룬 것들이다. 이들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슬래셔, 스플래터, 좀비물, 오컬트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그 표현 수위가 정도를 넘어서는 일종의 현상이며. 이 현상들은 보통 ‘고어’라는 말의 테두리 안에 정리되곤 한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이 분야만 선호하는 마니아들이 생각보다 튼실한 층을 형성하는 편이고, 이런 장르를 패러디해 먹고사는 ‘트로마(TROMA)’같은 레이블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 사정은 다르다. 오래전부터 영화 필름 자르기를 냉면집 면 자르는 정도로 생각하고 아주 편안하게 편집 및 삭제를 해온 덕에, 국내에 개봉된 이쪽 장르의 영화는 거의 전무하고 비디오로 출시가 된다 해도 장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핵심 고명들은 다 심의위원 본인들만 맛본 채 거세되어 출시되곤 했다. 그들에게 감독의 의도나 팬들의 성원은 삼돌이 빤쓰 갈아입는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예술 수준’과 ‘국민 정서’를 수호하는 수호신들답게 한낱 영화 따위의 운명은 창조주의 의도와 너무 쉽게 달라지곤 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신체변형, 금기, 악취미 등을 다룬 지옥 같은 비주얼로 유명한 많은 영화들이 고향에서 머나먼 한국 땅에 와서 당치도 않은 코미디로 둔갑하는 꼴은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작고하신 루치오 풀치 영감님이 한국에 출시된 본인의 영화를 봤다면 ‘쟘-비’ 가 되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셨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어떤 장르보다 금기가 바로 핵심이 되는 호러 장르팬 들은 음지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고자’를 유행어로 밀고 있는 평론가, 방송인 THE ‘사마천’ 허지웅 씨가 운영했던 ‘호러타임즈’가 유명했고 PC통신의 여러 동호회들이 적은 회원 수 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나우누리의 ‘고블린’의 회원이었다.) 그러다 문득, 좁고 평화롭던 호러 커뮤니티가 (전보다는) 주목을 받게 되니, 세기말의 기운을 타고 흘러온 ‘엽기 열풍’ 탓이었다. 컬트니 키치니 평생 만날 일 없던 말들에 사람들은 큰 호기심을 가졌고, 그땐 호러 영화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상영회에도 새로 유입되는 관람객이 심심찮게 있었다. (최근에는 홍대 인근의 카페를 빌려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시네마 지옥’이라는 상영회가 아주 몹쓸 영화들을 틀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프닝 타이틀 그런 와중에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다. 사지절단류 호러의 기원전이자 고어라는 말이 부서진 마네킹으로 풀이되는 살육의 불모지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난도질 영화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게 < 씨어터 > 였다. < 싱글즈 >로 유명한 권칠인 감독이 기획하고 지금은 뭘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박재범 감독이 연출한 < 씨어터 >는 아주 단순명쾌한 영화다. 영화 < 스크림 >의 특별 상영이 있던 밤,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캐릭터를 가지고 극장에 모여든다. 깡패, 창녀, 고딩 커플, 벤처 기업 청년 CEO 등... 이렇게 쓰면 많은 것 같지만 그래 봐야 13명이다. 하여간 이 13명이 극장주의 살육게임에 캐릭터가 되어 하나하나 잔혹하게 살해된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죽게 될 면면의 인물들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는 설정이다. 이건 그냥 람베르토 바바의 < 데몬스 >에서 가져온 것이다. 감독은 이야기를 길게 풀 생각 없이, 논리나 현실에 단절된 상황을 설정하고 시원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잔혹함에 굶주려 있는 관객들을(혹은 자신을) 위해 마구 달려줘도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이 영화는 박재범 감독이 사비를 털어 만든 초저예산 영화기 때문이다. 하여, 살해 장면은 맛있는 것을 아껴먹듯이 야금야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빈 부분을 감독이 긴박감 있는 추격씬과 러브스토리 그리고 끝내주는 반전으로 채워주면 좋았겠지만 그는 개그대잔치를 선택했다. 돈이 안 들기 때문이었을 게다. 물론 공포와 웃음은 그 무엇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관객 중 가장 험악한 인상을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알고 보니 보람 재활원에서 탈출한 정신지체 장애인이라 영구 흉내를 내며 응애응애 해버리면 나도 슬프고 배우도 슬프고 장애인 인권도 슬픈... 그런 일이지만, 어쨌든 이 영화엔 쌍팔년대 유머가 넘실댄다. (만약 당신의 기억 속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막 떠온 회를 깡패와 업소 여성이 극장 로비에서 쭈그려 앉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다면, 100% < 씨어터 >를 본 것이다.) 극장 로비에서 회 먹기(좌측) /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것이 드러난 후 구구단을 필사적으로 외는 장면(우측) 그렇다고 살해 장면까지 어처구니없다는 얘긴 아니다. 영화에는 다양한 살해방법이 보인다. 깨진 형광등으로 입에 박아넣기, 동상 손가락에 눈 쑤셔 넣기, 죽은 척하는 소녀 발목 썰기(이에 이은 목 톱질!). 내장 꺼내 줄넘기하기 등등 아껴먹는다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노골적인 살해 시퀀스가 영화를 수놓고 있다. 그 강도는 2000년 이전, 이후에 나온 모든 공포 영화를 통틀어도 대적할 영화가 없을 정도다. 한국 공포 영화는 언제나 ‘한’의 정서였다. 귀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한이 맺힌 인간이 괴물화 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 씨어터 >는 한국 공포영화사의 밖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것처럼 그렇게 존재했다. 당시 ‘이상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증폭되면서 많은 (당시의) ‘이상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았다. <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나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같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혹은 개봉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씨어터>는 가장 막가는 시도였다. 그 증거로 이 영화는 개봉도 못 했다. 감독은 애초에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처럼 찍고, 한국 최초(일 것으로 생각된다)의 인터넷 개봉을 시도한다. 현재는 사라진 도메인인 www.theater2000.co.kr 이라는 웹 사이트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외의 공식적인 상영은 2000년 제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있었을 뿐이다. 이후 암암리에 호러 영화 동호회에서 상영이 되었고, 2001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잔혹한 장면들. 그러나 이 글에서 묘사된 많은 장면들은 비디오판에 아예 없거나 편집되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비디오판 < 씨어터 >를 다시 보았다. 예상했던 바지만, 영화가 집중했던 부분은 모두다 날아가 버린 채, 썰렁한 개그만이 남아있었다. 개그연구가가 아니라면 굳이 이 영화를 ‘비디오’로 다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무려 ‘20분’. ‘20분’이 잘려나갔다. 20분이면 하나의 생명이 잉태될 수 있는 시간이며 어쩌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간이고 그것이 어떤 ‘이야기’라면 아예 다른 것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씨어터>는 한국 영화사에 ‘한국 고어 영화의 시작’, 이른 이정표로서 우뚝 서 있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 스스로 더 잔혹한 것은 한국의 영화 제작환경, 그리고 영화를 개똥만도 못하게 보고 있던 당시 검열기관의 무지함과 잔혹성을 보여주는 ‘현실 고어’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박재범 감독이 <씨어터 2.0>을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관람했고 1편에 비해 영 못 미친다는 평만 볼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지 A.로메로는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으로 ‘좀비’를 탄생시키며 그 안에 매카시즘을 비유했고, 다리오 아르젠토는 < 서스피리아 >등을 통해 ‘공포’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증명해 냈으며 루치오 풀치는 다양한 잔혹 영화를 통해 사지절단류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쾌감의 영역을 튼실하게 구축해냈다. 우리는 과거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안 돼’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이, 변변한 공포영화 한 번 나와 본 적이 거의 없다.(아주 가끔 좋은 공포 영화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분류가 애매하긴 하지만 < 독 >이나 < 불신지옥 >, < 기담 > 등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한국에 이러한 ‘장르’가 있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숫자이다.) 호러영화의 팬으로서,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멋진 스플래터(혹은 슬래셔)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피가 튀고 뼈가 보이며 내장이 흩날리는 그런 멋진 광경을 말이다. 유행이 너무 지나서 이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나. ‘그래도 언젠간’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똘끼를 지닌 박재범의 후예가 나타나길 기대해 마지않는 것이다. 박동빈의 어제와 오늘 P.S : 이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한 사람, ‘마징가’를 연기한 배우는 ‘ 박동빈 ’이다.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에서 입에서 주스를 흘리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배우다. 세월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한 미아리에서 근무하는 업소여성으로 등장하는 ‘장경희’씨는 2003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개그우먼과 ‘미녀 삼총사’라는 걸그룹(일단 여자 셋이니)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성우에 힘쓰고 있다. 매점 주인으로 나오는 서범석씨는 뮤지컬계에서 한몫하시는 분 같고... 어찌돼도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것은 감독 박재범 뿐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언젠가는 꼭! < 씨어터 >의 무삭제판이 공개되길 바란다. 박동빈 장경희 노진원 감독 박재범 각본 박재범 개봉극장 www.theater2000.co.kr (온라인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