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비객
- 감독
- 김형준
- 제작년도
- 1978
- 출연
- 황가달, 허정연, 능비, 허일, 김기주, 장위명, 장정국, 서정아, 최일, 김수천, 나갑성, 한명환, 조성구, 한국남, 태일, 최무웅, 박광진, 박종설, 이백, 이화진, 정주현, 김대현, 김경란, 박병기, 홍성영, 황춘수, 막온하, 범단, 진리리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비평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보면 늘 표정이 어두워지게 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아보려 한다. 밝은 얘기를 하고 싶다. 나는 지금 웃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또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등장한다. 이만희 감독의 1967년 작 < 원점 >의 오프닝이다. 양복 차림의 남자는 서류 가방을 든 채 건물의 지붕 위를 걷는다. 그는 곧 옥상을 통해 건물에 잠입하여 어떤 중요한 서류를 훔치는데, 그러다 이를 방해하는 악당을 만나 몸싸움을 펼치게 되고, 결국 그 자를 살해하게 된다. 이 13분짜리 오프닝 시퀀스에는 이게 전부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부분들이 많다. 그에 관한 자세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정성일 평론가가 목소리 코멘터리를 남긴 KOFA코멘터리극장 영상 을 통해 확인하면 좋을 것이고,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특별한 부분은 악당의 사인이다. 영화에서 악당은 ‘끼임사’한다. 남자를 잡으려다가 건물 문 앞의 내려오는 셔터에 얼굴이 끼어서 말이다. 끼인 얼굴의 표정은 밝지 않지만, 나는 지금 이 장면을 떠올리며 킥킥거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장면의 웃음 포인트는 이 끼임으로 인해 남자가 자신의 본 목적인 서류를 챙겨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악당이 셔터에 끼이는 순간, 남자의 서류 가방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셔터와 딱딱한 서류 가방 사이에 악당이 끼는 바람에, 남자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원치 않는 살인을 저지른 것도 억울한데, 그로 인해 자신의 작업에 실패까지 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분명 악당이다. 악당은 비록 범인을 잡는 것에는 실패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아니 자신의 얼굴을 내려오는 셔터에 바쳐(또는 받쳐), 회사의 중요한 기밀이 유출되는 것을 막아낸다. 영화는 그의 끼인 얼굴을 잠깐 동안 보여주는데(그리고 곧이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 오른다)… 아, 나는 지금껏 본 영화 중에서 이토록 짠한 악당의 퇴장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것일까. 과연 무엇을 위해 그곳에 자신의 얼굴을 밀어 넣었던 걸까. 대체 그 페이퍼엔 무엇이 적혀 있던 것일까. 악당과 몸싸움을 하기 직전, 페이퍼를 훔치려는 양복 차림의 남자(석구) 페이퍼에 적힌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땐 웃게 되지만, 비평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늘 어두운 표정을 짓게 된다. 비평 같은 걸 쓰려고 할 때 내 얼굴은 마치 어디에 끼인 듯한 표정이 되곤 하지만, ‘페이퍼에 무엇이 적혀 있었던 것일까’ 같은 비평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상상을 할 때는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예전엔 그 끼인 자리에서, 영화와 현실 사이의 비좁은 틈에 내 큰 머리를 억지로 들이민 채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다면, 언젠가부턴 그냥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곳에서 출발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게 내 작업과 미래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따져보는 건 이제는 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비평에 대해 생각할 때는, 그에 관한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표정이 어두워지는 거고, 또다시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등장하는 거고, 그러면 나는 황급히 13분 뒤로 넘어가 끼임사한 또 다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런데 바닥에 누워 있는 이 남자. 처음에 등장한 양복 차림의 그 남자와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앞서 얘기한 <원점>의 오프닝은, 분명 두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 한 명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나와, 또 다른 나의 갈등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기서 나는 중요한 페이퍼를 훔치러 잠입한 남자이기도 하고, 그걸 막기 위해 싸우는 악당이기도 하다. 훔치는 데 실패한 사람이기도 하고, 지키는 데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에 성공하고 무엇에 실패한 것인지, 보고 싶지만 동시에 보고 싶지 않은 그 내용이 무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더 알고 싶은 건 정성일 평론가의 페이퍼에 무엇이 적혀 있을까이다. 그가 진행하는 영화 토크 행사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궁금해할 그 두꺼운 A4 페이퍼 뭉치를 훔치고 싶다. (그라면 지금까지 작성한 모든 페이퍼들에 표지를 붙여 오래된 캐비닛에 연도별로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그걸 보면 뭔가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막으려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다른 사람의 페이퍼를 절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나. 그리고 다른 사람의 페이퍼를 보지 않은 채 온전히 나의 방법으로 써낸 나의 페이퍼를 읽고 있는 내가 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럼 정성일 평론가는 <원점>의 코멘터리 원고를 쓸 때 어떤 표정이었을까. 페이퍼에 적힌 내용보다 그가 그걸 적을 때 지은 표정이 더 궁금하다. 페이퍼를 훔치려는 남자(훔치는 데 실패한 사람)와 그를 막으려는 악당(지키는 데 성공한 사람) 나의 원점을 떠올리면 씨네21 사무실로 당선 인터뷰를 하러 갔던 날이 생각난다. 속으론 정말 기분이 좋았지만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비평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평소보다 더 어두운 표정이 지어질 때는, 그 인터뷰를 하러 가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임순례 감독의 < 제보자 >(2014)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박해일 이 연기한 탐사보도 PD 윤민철이 하는 대사다. “제보자 마음 바뀌기 전에 인터뷰부터 따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본 영화 속의 나만 알고 있(다고 믿)는 무언가를 다른 이들에게 ‘제보’하는 것이 영화평론가가 하는 작업이라면, 나는 애초에 그 제보를 하지 않아야 했거나 했더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아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혼자만의 작업으로 만족하지 않고 인터뷰를 해버렸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기에, 자꾸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계속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 바뀐 평론가의 얼굴을 떠올린다. 언젠가 마주칠지도 모르는 그 얼굴을 상상하면, 표정이 영 밝을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속으론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던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도 왔다 갔다 하고 표정도 이랬다저랬다 했지만, <원점>은 13분 지점에 멈춘 채 그대로 있다. 이쯤에서 <원점>의 결말이나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겠으나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아보려 한다. 그게 궁금하다면 정성일 평론가의 코멘터리 영상을 보시기를 권한다. 대신 나는 웃는 얼굴로, 내가 선택한 이 끼인 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묻는다.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계시는가.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으신가. 나의 페이퍼에 어떤 말들이 적혀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앞으로 내 캐비닛에 쌓아 놓은 재밌는 제보 거리들을 공개할 수 있는 자리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기꺼이 얼굴을 들이밀 준비가 되어 있다. <제보자> 중 김철홍(영화평론가) l 영화에서 봤다고 하면서 이상한 말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 당선.
2002년 | 싸이더스 감독, 각본 : 조민호 | 제작: 차승재 | 촬영: 이두만 | 음악: 김재원 박영 | 미술: 이대훈 CAST 기태: 장혁 | 철수: 이범수 | 멕: 전혜진 | 민철: 손창민 | 악어: 김뢰하 | 땅개: 봉태규 | 이 형사: 박원상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 정글쥬스 >는 이른바 ‘양아치 영화’ 장르의 대표작입니다. 청량리 출신의 두 루저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 그들은 우연히 마약을 손에 넣지만 쫓기는 신세가 되죠. 그 끝은 부산 태종대. 2001년 초겨울, 그곳 현장에 갔습니다. 마약을 빼앗긴 조직 보스 민철(손창민)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두 주인공에게 총을 겨눕니다. 이 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데요, 영화에선 꽤나 절박한 장면이지만 정작 현장 분위기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크랭크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랬던 것 같네요. 위의 롱 숏을 앵글을 달리 해 두 개의 숏으로 쪼개 보면 이렇습니다. 뒷모습으로 보이는 손창민은, <정글쥬스>에서 ‘빡빡 머리’로 밀며 인상적인 변신을 보여줍니다. 한편 기태와 철수는 태종대 자살바위 끝까지 몰렸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기태는 철수를 이끌고 벼랑 끝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뛰어 내립니다. 혹시 이 장면… <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리들리 스콧, 1991)의 마지막 장면을 패러디 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두 배우는 실제로 큰 액션과 함께 뛰어 내렸고, 아래 쪽엔 라면 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든든한 안전 장치였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시야에 바다가 걸리는 장소에서 벼랑 아래로 뛰어내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두 배우는 몇 번에 걸쳐 반복했습니다. 안 그래도 아찔한 벼랑 위의 촬영에, 더 아찔해 보이는 크레인이 동원됐습니다. 이두만 촬영감독은 정지우, 김용균, 임필성 감독 등과 함께 1990년대에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활동했고, < 눈물 >( 임상수 , 2000)로 장편영화 촬영감독이 되었습니다. <정글쥬스>는 두 번째 장편인데요, 서른 즈음의 젊은 촬영감독답게 활기 찬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컷!” 소리가 나자마자 배우들은 모니터 앞으로 달려옵니다. 중요도가 높은 장면이라, 꼼꼼하게 체크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죠. 조민호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도, 배우들의 요구로 더 찍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은 조민호 감독은 김영빈 , 이민용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정글쥬스>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 강적 >(2006) < 10억 >(2009) 등의 작품을 내놓았고요. 기태와 철수, 두 루저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매우 컸습니다. “나는 <정글쥬스>에서 양아치들 바로 옆에 따라 붙고 싶었고, 그래서 핸드헬드 카메라를 많이 사용했다. 그것이 관객들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정글쥬스>엔 인물이 없는 컷이 한 컷도 없다. 나는 인물들과 같이 호흡하고 느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현장은 열기로 넘쳤지만, 초겨울에 여름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추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배우는 점퍼를 입거나 하지 않고, 영화 속 의상 그대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조민호 감독은 “양아치 인생을 그렸지만 어두운 영화는 아니다. 밝게 찍어야 한다”고 배우들에게 주문했습니다. 한편 이범수에게 <정글쥬스>는 첫 주연작이었는데요, 그는 “이 영화를 찍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장혁은 이범수와 호흡을 맞추며 “만만한 셋째형을 건졌다”고 표현했는데요. “범수 형은 큰형이나 둘째형보다 조금 만만한 셋째형 같은 느낌이다. 콤비 플레이가 중요한 영화라서 핑퐁을 하듯 재미있게 연기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보스 민철의 피 묻은 손과 옷, 그리고 권총은 이 장면의 격렬한 느낌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어느덧 점점 어두워지는 태종대. 그래도 빛이 허락할 때까지 촬영은 이어집니다. 마치 벌레들처럼 바글거리며 살아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 <정글쥬스>. 조민호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글쥬스>의 기태와 철수는 낮에는 유치찬란한 양아치고 밤에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 아이들은 청년 실업자들이고 경제적 이해 관계로부터 소외된 하층 계급이다. 하지만 그 양아치들에겐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도둑고양이들처럼 말이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밤이다. 낮이 지나면 오는 밤. 자정이 지나 전화기는 멈췄고 SNS도 조용하다. 행사가 끝난 밤이면 뒤풀이를 하고 있을 시간인데 행사가 없던 어제가 감사하다. 컴퓨터에게 미안하지만 또 한 번 다시 켠다. 언제 꺼질지 모를 불씨들을 언제 까먹을지 모를 생각들을 찾고 쓰고 저장하고 다시 확인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팔자가 거 참 치사하다고 생각하다가 가능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2010년 KT&G 상상마당에 입사하면서 시작한 독립영화와의 인연이 어느덧 만 5년이 넘었다. < 환상속의 그대 >를 시작으로 개봉을 앞둔 < 최악의 하루 >까지 15편이 넘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도왔다. 그 동안 꽤 많은 개봉영화에,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고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한 글을 격주로 맥스무비 온라인 뉴스에 송고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동시에 네이버 인디극장 선정위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어떻게 어떻게 해오고는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데 놓치는 것이 없나 노심초사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려고 애쓴다. 적어두었지만 눈앞에 놓고도 보이지 않는 글자들이 있고 생각했었지만 당장 또 떠오르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 헤맨다. 독립영화 마케팅이 상업영화와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 쉽게는 돈의 크기라고 말하겠다.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개봉 과정에서 광고 비용을 집행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개봉에 있어서의 구분점이 아닐까 싶다. 극장 광고를 비롯해 온라인 광고, 버스 광고, 잡지 광고까지 ‘독립영화로 개봉’하는 작품들의 P&A(Print & Advertisement) 규모에서 광고 비용은 들어올 틈이 없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마케팅, 포스터 및 전단 디자인, 예고편 제작 등 3가지 영역의 비용을 집행하고 인쇄 비용을 챙기는 데만 해도 허리가 휜다. 거기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VPF(디지털 영사기 사용료 Virtual Print Fee)와 배송비까지 더하면 늘어날 수 없는 예산안 문서가 백지수표였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작품들 중 P&A 규모가 가장 작았던 < 파스카 >와 < 달에 부는 바람 > 같은 경우에는 함께 일했던 파트너들의 도움 덕에 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규모 안에서 작품을 개봉시킬 수 있었다. 물론 1천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적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기간을 준비하는 작품들이니 사실 모두가 이 작품을 돈으로 보고 일 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생일’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생일’을 만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 파스카 >의 경우 만들어진 지 햇수로 3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 2015년 7월 이미 여러 차례 봤던 <파스카>의 극장 개봉일에 티켓을 사서 영화를 관람했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어두운 극장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파스카>의 개봉을 도왔던 안선경 감독의 제자와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브먼트의 작품들은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다시 말해 흥행선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작품들로 개봉을 한다는 이야기를 외부에 할 때마다 ‘힘들겠다’란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왔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 파스카 > 역시 화면에 오롯이 드러나는 태아의 사체 장면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장면에서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도 있었다. 개봉을 준비하면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15세 관람가 등급이 나왔고 걱정과는 다르게 관객들은 그 장면의 당위성에 대해서 공감했다. 아이가 태어나야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된다. 짐작했던 것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고 기대는 늘 배반당하고야 만다. 물론 기대하지 않았던 응원과 축복으로 아이는 세상에서 다시 자라난다. 영화라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 파스카 >는 개봉이라는 생일을 통해 <파스카>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손에서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인디스페이스에서 독립영화 돌잔치를 통해 1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다시 만난 <파스카>의 안선경 감독님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돌잔치 라니요!”라면서 들떠 있던 안선경 감독은 개봉 후 1년 동안 새 영화 < 나의 연기 워크숍 >을 촬영했고 텀블벅을 통해 후반 작업비를 모았고 영화진흥위원회 개봉지원 신청서를 작성했다. < 파스카 > 개봉을 준비할 때보다 안선경 감독은 훨씬 더 밝아졌다. 여전히 어려운 시장이지만 함깨 개봉을 준비하면서 감독은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의지가 단단해졌다. <파스카>는 천 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을 극장에서 만났지만 안선경 감독은 그 숫자보다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얻으신 것 같아 기쁘다. 다시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만나야겠다는 마음은 아마도 <파스카>의 생일 이후였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 마케팅이 상업영화와 구분되는 지점이 돈의 크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하는 사람의 숫자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쪼개진 스태프들의 역할이 요원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할 역할들이 많아진다. < 파스카 >와 현재 준비 중인 < 다른 길이 있다 >의 경우 안선경, 조창호 감독이 직접 예고편 제작에 나서서 비용을 줄였고 < 철원기행 >의 경우 김대환 감독이 직접 만든 포스터를 첫 번째 포스터로 공개했다. < 달에 부는 바람 > 역시 이승준 감독과 김민철 프로듀서는 물론이고 제작사 독에어의 오희정 님과 예고편 작업을 했던 유태인 실장과 포스터 작업을 했던 박현규 실장까지 영화 개봉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글을 페이퍼에 기록했다. 무브먼트라는 독립영화컴퍼니를 만든 이후 영화의 보도자료와 전단을 통합합 페이퍼 형식의 홍보물을 만들어오고 있다. 접지형의 8페이지 인쇄물인 이 형식은 사실, 보도자료 디자인과 인쇄 비용에 전단 디자인과 인쇄 비용을 더한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버리기 어려운 전단을 만들어 폐지가 돼버리는 극장 전단들의 안타까운 손실을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 거짓말 >을 개봉했을 때는 주연배우 김꽃비 와의 지면 인터뷰가 실렸고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때는 정한석 평론가와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 전문이 실렸다. < 홀리워킹데이 >와 < 최악의 하루 >에는 이희원 , 김종관 감독의 사진들과 제작기가 실렸다. < 프랑스 영화처럼 >에서는 신인배우 김다솜 과 정준원 의 첫 영화 도전기가 그들의 문장으로 담겼다. 독립영화라는 시장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 힘든 곳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냐는 걱정들도 많이 듣는다. 시장이 어려워진다는 건 말뿐만은 아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이다. 개봉관 상영 회차와 개봉일 관객 수를 확인하고 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고 허탈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댄 시간도 꽤 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왜 이 일을 계속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태어난 영화의 생일들을 챙겨주고 싶어서라고 말하겠다. 그 영화가, 그 감독이, 그 배우와 함께 만든 첫 번째 생일 이후 우리는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또 같이 자라난다. 그리고 제작 현장에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개봉 현장에 함께 있었던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은 믿음이라는 걸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유명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상업영화 시장에 진출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서 함께 가깝고 뜨겁게 영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독립영화들의 생일 파티가 작고 반짝이는 불꽃처럼 여기저기서 치러지길 기대한다.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뛰어갈 돈과 마음을 매일 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