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프린스 1호점
- 감독
- 이윤정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공유, 윤은혜, 이선균, 채정안, 김창완, 김동욱, 김재욱, 이언, 김영옥, 최일화, 김자옥, 박원숙, 한예인, 이한위
1980년에 만들어진 < 바람불어 좋은 날 >은 안성기 , 유지인 , 김보연 , 임예진 , 김영애 등 익숙한 중견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최근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임예진의 앳된 얼굴은 그녀가 한 시대를 풍미한 하이틴스타였다는 걸 한눈에 실감하게 했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 이들 배우들이 후일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었겠지만 <바람불어 좋은 날>은 배우들의 면면만 놓고 봐도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 외에도 김성찬 , 이영호 , 김희라 , 박원숙 , 최불암 , 김인문 등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들 모두의 경력에서 중요한 영화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배우가 조명을 받은 이유는 <바람불어 좋은 날>이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그들 중 한 사람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길남(김성찬)이라는 세 청년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당시 시대상을 조망할 수 있는 남녀노소가 빠짐없이 나와, 작은 타일 조각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벽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외치는 영화가 아닌데도 <바람불어 좋은 날>은 당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면서 당시 영화인에게 지향점을 제시하는 작품이 됐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그리는 시대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된 뒤의 서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강변 풍경을 보면 강 건너편엔 아파트들이 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사는 쪽은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이다. 부동산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김회장(최불암)은 말한다. “남들이 뭐라 손가락질하는지 안다. 배추 장사 하던 무지렁이가 악랄한 수단을 써서 졸부가 됐다고. 하지만 내가 안 한다고 세상이 그런 짓 안 할 리 없다. 나 말고도 그런 짓 할 놈은 많다.” 김회장이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영화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땅을 뺏긴 노인이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런 김회장의 손이 이발소 미스 유(김보연)의 허벅지를 주무를 때 춘식이 느낀 혐오감은 노인의 자살을 목격한 뒤 살의로 발전한다. 그러나 김회장이 ‘악’이라고 춘식이 ‘선’인 것도 아니다. 김회장은 역겨운 존재지만 미스 유에게 희망이기도 하다. 병든 아버지의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미스 유는 김회장의 품에 안긴다. 미스 유는 거짓이라도 날 사랑한다 말해달라고 하고 김회장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춘식이 김회장의 몸에 칼을 그을 때 미스 유의 희망도 같이 찢어진다. 김회장이 상징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탐욕스런 모습 반대편에 상류 사회의 매혹을 전시하는 인물 명희(유지인)가 있다. 명희의 의상은 번쩍거리거나 매끄럽거나 하늘거린다. 의상 자체가 ‘유혹’이라는 단어의 대체물처럼 느껴진다. 명희와 덕배가 강가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잊을 수 없는 대목 중 하나다. 명희의 치마가 바람에 날려 팬티가 보일 만큼 펄럭인다. 마릴린 몬로가 < 7년만의 외출 >에서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치마를 날리는 장면 못지않다. 명희는 키스를 가르쳐준다며 입술을 내민 덕배를 바보로 만든다. 덕배는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이 올라갈 수 없는 나무에 올라가지 않기로 한다. 명희가 대변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은 그녀가 디스코 클럽에 가는 장면을 통해 더 선명히 드러난다. 매혹적이지만 선정적이고 위험한 그녀에게 덕배는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없다. 덕배는 디스코 클럽에서 농악을 떠올리며 몸을 흔든다. 덕배의 춤은 엉뚱한 박수를 받지만 그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덕배가 돌아갈 곳은 중국집이고 덕배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모욕과 욕설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상징하는 빈부 격차와 갈등을 <바람불어 좋은 날>은 이성과 이론이 아니라 감성과 경험으로 납득시킨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보여주는 사회 고발의 힘은 세월이 흘러 많이 퇴색했다. 그것은 1970~80년대의 사회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계속 회자되고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한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를 몰라도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면 알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한국영화 100선> 129쪽, 한국영상자료원 편) 오래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다시금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나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겼다. 왜 지금은 <바람불어 좋은 날> 같은 영화가 안 나오나, 라는 궁금증이다. 상업영화 시스템이 이런 영화를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독립영화에선 어떤가? 상당수 독립영화가 젊은 세대의 가난과 절망을 다루고 있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 그들을 지칭하는 표현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절실함은 그대로일 것이다. 아마 오늘의 청년 세대는 중국집, 여관, 이발소 대신 편의점이나 고시원에서 70년대 젊은이들과 비슷한 궁핍과 허기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1980년 덕배는 그런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 말을 더듬고 매를 맞아도 참는 법을 배웠다. 2018년의 젊은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 그걸 제대로 알려주는 영화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영화는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코리안 뉴 웨이브’를 중심에 둔다면 그 시작인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이장호)일 것이고, 작가주의 예술 영화라면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배용균)이 떠오를 것이다. 대중적 상업영화의 규범으로는 배창호의 < 고래사냥 >(1984)과 < 깊고 푸른 밤 >(1985)이 있을 것이며, < 길소뜸 >(1986. 임권택)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애마부인>(1982년)부터 등장한 시그니처 포즈 하지만 영향력으로 본다면 단연 < 애마부인 >(1982. 정인엽)이다. 이 영화 이후 충무로는 ‘에로티시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애마 프랜차이즈’는 19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영화의 ‘에로 패러다임’을 규정한다. <애마부인>은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애써 눈 감아 온 ‘여자의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그 표현이 미학적이거나, 그 서사가 논리적으로 수긍할 만하다는 건 아니다. <애마부인>은 거대한 시작이었고 수많은 에로 영화들은 이 영화를 모방하거나 변주했다. ‘애마’라는 캐릭터가 30년 넘게 그려온 연대기는 한국영화의 웬만한 에로틱 아이템은 모두 품고 있었고, 그 흐름은 이후 < 젖소부인 바람났네 >(1995. 김인수)로 만개한 에로 비디오 시장과도 직결된다. 1대 애마 안소영. <애마부인>은 애마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때 애마는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한다. 애마의 각성. 이 테마는 3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애마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1982년은 분기점이었다. 이 해 안소영 과 임동진 이 부부/연인으로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애마부인>과 < 산딸기 >(1982. 김수형)였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로틱 멜로드라마와 일제 강점기를 다룬 토속 영화. 만약 <산딸기>가 더 인기를 끌었다면, 1980년대 에로 트렌드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지만, 결과는 전자의 압도적 승리였고 이후 ‘애마의 세계’가 열린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은 남한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전한 공포 정치였지만, 그 표면은 훨씬 화려해졌다.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을 동원한 이른바 ‘3S 정책’의 시대였고, 통금 해제와 함께 ‘심야 상영’이라는 게 가능해졌으며, 그 첫 수혜자는 바로 <애마부인>이었다. 그 해 한국영화(당시엔 ‘방화’라고 불렀던) 흥행 1위였던 <애마부인>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던 화제작이었다. 감독은 정인엽 . 1960년대에 데뷔해 반공 영화부터 청소년 영화까지 이런저런 장르를 섭렵하다가 호스티스 영화 <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로 빅 히트를 기록한 정인엽 감독은 1970년대 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이때 아트하우스에서 접한 유럽과 미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귀국 후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조수비의 『애마부인』(1981)을 영화화한 것이다. <애마부인>은 달랐다. 여성이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 자유 연애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여성의 육체를 눈요깃감으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꽤나 모순적인 영화였지만, 당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1980년대식 욕망을 읽었다. 혼자 아파트에 살며,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패셔너블하면서, 나이트 클럽이나 바에서 즐기는 여자. 여기엔 1960년대 멜로드라마의 모성에 대한 강박이나,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지닌 비극적 운명의 흔적은 없었다. 유명무실한 가부장제(애마의 남편은 감옥에 있다), 육아의 의무에서 해방된 솔로의 삶(시댁에서 아이를 빼앗아갔다), 경제적 풍족함(애마에겐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육체적 매력(남자뿐만 아니라 동성 친구도 눈독 들인다)…. 애마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였으며, 한편으론 남한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일부일처제가 붕괴중임을 몸으로 선언하는 인물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애마’는 ‘말’과 함께 ‘자동차’를 의미한다. 호스티스 영화가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들의 사연이라면, <애마부인>의 애마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오너 드라이버인 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사진은 <애마부인 6>. 모델인 애마(다희아)는 자동차 CF를 찍고 있는데, 이 영화엔 현대자동차가 공식 협찬을 했다. 산업적으로도 <애마부인>은 전인미답의 경지로 들어갔다. 이른바 ‘애마 프랜차이즈’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시리즈일 것이다. 1982년에 첫 선을 보인 후 최근 < 애마부인 2016 >(2016. 김미연)까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20대 초반의 관객이 어느덧 환갑에 가까워질 때까지, 애마의 역사는 세대를 가로질러 이어졌다. 연방영화에서 제작한 ‘정전’은 1996년까지 13편으로 이어지지만, 정전보다 많은 ‘외전’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는 비디오 시장과 모바일 시장을 거쳐 IPTV 시장까지 이어졌으니, <애마부인>과 그 후예들은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대한 산 증인인 셈이다. 그리고 애마 시리즈는 스타 시스템에 정면 도전했다. 배우와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자체의 동력을 통해 ‘O대 애마’라는 식으로 편마다 신인(급) 여배우를 등장시켰고 그들을 스타덤에 올렸다. 1대 애마 안소영, 2대 애마 오수비, 3대 애마 김부선. <애마부인> 시리즈의 초창기를 장식한 강렬한 섹슈얼 카리스마 배우들. 흔히들 <애마부인> 1편만 보고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본 양 이야기하지만,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1~3편을 모두 본 후에야 이 시리즈의 진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마부인>과 < 애마부인 2 >(1984. 정인엽)는, 배우는 안소영에서 오수비 로 바뀌지만,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지닌다. 1편의 마지막에서 애마는 젊은 애인과 남편 사이에서 결국 남편을 선택하고, 그들의 가정은 회복된다. 하지만 남편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밤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단장했던 애마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면서 영화는 끝난다. 2편의 시작 역시 애마(오수비)가 화장을 지우는 장면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1편을 통해 애마는 각성했고, 2편의 그녀는 이미 이혼했으며 외국 항공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고 근사한 애인 성현( 신일룡 )이 있다. 1편이 애마가 불행한 이유로 ‘바쁜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을 제시한다면, 2편에선 단 한 줄의 대사로 그것은 모두 허울이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린 함께 도달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 애마부인 3 >(1985. 정인엽)에 오면 더욱 명확하게 진단한다. 의사( 진봉진 )는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다수의 부인들은 남편이 무력하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마부인>의 엔딩(상단).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애마는 화장을 지운다. <엠마누엘>(1974. 쥐스트 자켕)의 엔딩(하단). 엠마누엘(실비아 크리스텔)은 짙게 화장을 한다.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새롭게 변신한 모습이다. <애마부인 2>의 첫 장면에서 화장을 지우던 애마의 모습은 1편의 엔딩과 연결된다. 하지만 <애마부인 2>의 엔딩에서 활짝 웃는 애마는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바꾸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다. 남편, 애인, 연하남 등 ‘남자’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자존심을 죽이고 잠자리를 요구할 때마다 당신은 무참하게 날 거부했어요,”(애마) “난 당신이 그런 여자인 줄 몰랐어.”(남편) 이런 식의 대사로 변죽만 울렸던 게 <애마부인>이라면, <애마부인 2>는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부부 사이의 ‘섹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애마는 “난 이제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어요”라며 선언한다. 그리고 3편에 오면 애마( 김부선 )는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종종 사람들이 <애마부인> 시리즈를 유부녀의 일탈과 불륜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여기는데, 이 시리즈는 시종일관 ‘부부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10년 후에 나온 < 결혼 이야기 >(1992. 김의석)는 <애마부인>에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한 업그레이드다). 그런 점에서 <애마부인>은 20년 가까이 독재와 유신 체제로 억눌렸던 한국 사회가 폭발했던 1980년대의 ‘욕망의 사회학’이자 ‘부부의 심리학’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애마 못지 않게 인상적인 캐릭터는 에리카이다. 1편과 2편에서 김애경 역할을 맡은(목소리는 박정자 의 더빙) 에리카는 “애마야, 제발 그 봉건적 사상 좀 버려.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남자와는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계몽적 멘트를 날리면서, 한편으론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라며 섹슈얼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당시로선 과감하게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해 가감 없이 표현했고, 이것은 억눌린 부부 관계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이국적 이름을 지닌 동성 친구’ 캐릭터는 3편의 세실리( 박원숙 )을 거쳐 < 파리 애마 >(1986. 정인엽)와 <애마부인> 4편과 5편엔 다시 에리카로 이어지고, 7편에선 루비아( 박혜란 )가 등장한다. 이후에도 이 시리즈엔 항상 예술계나 화류계에 종사하는, 개방적인 여성들이 등장해 애마의 곁에 머문다. 애마에겐 항상 자유로운 삶을 사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솔로 친구가 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편과 2편의 에리카(김애경), 3편의 세실리(박원숙), <파리 애마>의 에리카(민복기), 4편의 에리카(윤지원), 5편의 에리카(전혜성), 7편의 루비아(박혜란). <애마부인>에서 애마와 에리카의 얼굴을 교차해 보여주는 신. 에리카는 말한다. “애마야,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 두 여성의 에로틱한 관계는 8편 이후 두드러지며, 이전엔 ‘노골적 암시’ 수준이었다면 매우 직접적인 베드 신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남자가 점점 싫어져.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라는 애마의 대사가 드러내듯, 10편은 퀴어 영화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섹스 신은 9편일 듯하다. 애마( 진주희 )는 여행 중 우연희 강희( 강선영 )라는 포토그래퍼를 만나 그녀의 모델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데, 그 베드 신은 아마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수위일 듯. 이때 강희는 말한다. “나는 구속 당하는 건 질색이다. 그런 날, 사람들은 레즈비언이라 비웃더군.” 호모섹슈얼리티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였다. (상단 좌측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7>의 애마(강승미)와 루비아. <애마부인 10>의 애마(오노아)와 영주(유미희). <애마부인 9>의 애마와 강희. 한편 정인엽 감독은 <파리 애마>의 유혜리와 ‘엠마누엘’ 실비아 크리스텔과 함께 <성애의 침묵>(1992)를 찍는다. 이 영화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수많은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건 말 타는 장면일 것이다. 애마의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말을 통해, 말을 어루만지는 행동과, 말을 타는 쾌감과, 말 위에서 느끼는 속도감 등을 통해 해소되는데, 종종 이 신은 판타지로 제시되며 일종의 마스터베이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전통은 최근작인 <애마부인 2016>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남편과 트러블이 있는 은혜(류현아)는 친구 유리( 백세리 )의 권유로 승마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다. ‘말’로 상징되는 자연은, 도시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욕구의 해방구이기도 한데, <애마부인> 시리즈는 바닷가나 숲 속 같은 공간을 종종 섹스의 공간으로 설정하며, 여기서 말은 어떤 매개체가 된다. 한편 이 시리즈엔 ‘도시 VS 자연’처럼 수많은 이항 대립이 존재하며, 이것은 영화 전체를 구성하는 어떤 공식이 된다. ‘결혼 VS 불륜’ ‘남편 VS 애인’ ‘애마 VS 에리카’ ‘이성애 VS 동성애’ ‘현실 VS 판타지’…. 여기서 애마는 그 경계에서 고뇌한다. 이외에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홀로 엑스터시를 느끼거나(이때 애마는 종종 안대를 한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침대나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 등도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시그니처 포즈’들. 이 모든 것이 애마의 내면적 갈망을 표현한다. 훔쳐보기 신도 마찬가지다. 애마는 카페나 술집 같은 곳에 자주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낯선 커플의 애정 행각을 목격한다. 그 모습에 격정을 느낀 애마는 몸을 비틀며 스스로를 느끼는데, 이때 그런 애마의 모습을 역시 훔쳐보는 음험한 남성의 시선이 있다. 그 남자는 애마에게 접근해 섹스를 요구하고, 애마는 뿌리친다. 이런 구도는 종종 스토킹이나 강간의 모티프와 결합되어 <애마부인> 후기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다. 흥행력이 떨어지던 시기 자극적 요소로 관객을 끌려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그 시기 창궐하던 에로 비디오의 성폭력적 요소를 받아들인 면도 있다. (계속) <애마부인>. 전설의 장면. 말이라는 상징적 존재와 무의식. 그리고 판타지. <애마부인 2>. 욕조에서 목욕을 하던 애마는 말의 판타지에 빠지고, 그 안에서 젊은 남자와 섹스를 한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침대에 마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애마부인>에서 애마는 바에서 어느 커플을 엿본다. 이때 그녀를 바라보는 낯선 남자가 있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 애마는 다리를 비틀며 은밀한 마스터베이션에 빠진다. 엿보기와 마스터베이션의 결합은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여러 번 반복된 공식이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애마부인 2> <애마부인 3> <애마부인 9>의 애마들. 그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모습은 이 시리즈의 시그니처 숏이다.
고영남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알려졌다. (KMDb 기준 110편) 한국영화 다작감독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한국영화에 있을 법한 대부분의 장르를 만든 감독이다. 그럼에도 대표작으로 손 꼽을 만한 작품은 열 손가락을 채우기가 힘든 감독이기도 하다. 고영남 감독은 깊은 예술적 성취나 높은 완성도의 견고함을 고민하는 대신 액션, 멜로, 공포, 에로, 아동,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그는 하루 노동에 지친 수많은 대중을 위무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1964년 < 잃어버린 태양 >으로 데뷔한 고영남 감독에게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최고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 설국 >, < 소나기 >, < 깊은 밤 갑자기 >(참고: 한국영화걸작선 리뷰), < 빙점 81 > 등 그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1980년에 개봉된 < 외인들 > 역시 이 시기의 작품으로 단연 돋보이는 영화 중의 한편이지만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진 않다. < 외인들 >은 한강 변의 아파트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통해 한국의 사회병폐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보이는 오염된 한강은 바로 서울이라는 공간,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근심이다. 그 비정함 속에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서민들의 고통이야말로 고영남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바로 핵심이다. 만두가게 사장( 김인문 )의 대사로 표현되듯 “이 세상은 천원 가진 놈이 백 원 가진 놈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십 원 가진 놈을 죽이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병폐 중 하나로 지목 받았던 사글세 문제를 통해 표현된다. 넓게는 집주인과 부동산의 결탁에 의한 부당한 집세 인상이라는 횡포를 포괄적으로 제시하면서, 좁게는 미장원을 운영하는 돈 많은 여자의 탐욕을 통해 가진 자의 비인간적 횡포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요 인물들이 풍기는 사람 사는 냄새를 적절하게 담아낸 덕분이다. 야간학교 교사인 곽승엽( 정한용 ), 창녀 금자( 원미경 ), 룸펜 화가 장선생( 윤일봉 ), 화가의 아내( 김영애 ), 일본인 현지처 은주( 이경실 ), 만두가게 부부( 김인문 , 박원숙 )는 삭막해져만 가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즉 ‘외인들’이다. 그들은 가진 자의 횡포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서로 위할 줄 아는 넉넉한 인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바로 그 풍경들, 만두가게 사장 아내가 탐욕스런 미용실 주인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채 싸우는 장면은 얼마나 통쾌한가? 비록 질 줄 뻔히 아는 싸움이라도 해도 말이다. 비둘기를 메신저로 서로 그리워하게 되는 곽승엽과 일본인 현지처 은주의 사랑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가? 비록 그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들이 돈으로만 모든 것이 재단되는, 비인간화되어 가는 차가운 사회 속에서 인간의 온기를 품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패배하더라도 말이다. < 외인들 >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사회비판을 도모한 영화다. 하지만 주인공이라 할 화가 부부만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현실적인 느낌이 약해 영화 속에 매끄럽게 섞여들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화가와 금자의 육체관계, 화가의 자살, 금자의 임신, 이어지는 아내의 자살은 고통 받는 서민의 또 다른 이면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고영남 감독은 영화 후반부를 관통하게 될 비통함이라는 감정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처리해버림으로써 영화 전체의 색깔마저 흔들어버린 것 같다.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들, 한국판 네오리얼리즘이라 할 만큼 현실적이고 생생한 영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은 영화가 끝나고 나면 평범한 멜로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많이 아쉽다. 아파트로 이사 온 사람들은 다시 아파트를 떠난다. 그들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그들이 유대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사회비판이다. 만두가게 사장 아내는 혼잣말을 한다. 좋은 사람은 왜 다 떠나느냐고... 하지만 떠난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을 거라며 이내 위안한다. 좋은 사람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는 ‘외인들’, 그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패배한 것이 아닐 것이다. 김영애 윤일봉 정한용 원미경 감독 고영남 각본 윤삼육 촬영 정필시 1980년 100분 칼라 판매원 벧엘프로그램(주)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