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레이크의 실종
- 감독
- 오토 플레밍거
- 제작년도
- 1965
- 출연
- 로렌스 올리비에, 캐럴 린리, 케어 둘리, 마티타 헌트
(본문 속 사진을 클릭하시면 링크가 열립니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 이 어두운 세계에서 희망 가득한 긍정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걸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영화의 현재는 참으로 좋지요!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최상이죠! 그런데 내 생각보다 더 좋다면 어떡한다. 하지만 호들갑 떨진 맙시다. 그것도 좋지만 누구도 심장 마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쇼크받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요즘 내가 LP를 자주 듣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브릿팝을 듣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더라도 뉴오더는 전혀 브릿팝이라고 할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Republic]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브릿팝은 90년대 영국에서 유행했던 다소 복고적인 기타 팝을 가리키는 다소 두루뭉술한 용어다. 전설적인 60년대에서 패션과 태도, 분위기와 멜로디를 빌려온 브릿팝은 그런지로 대표되던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20년 넘도록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차게 식은 차를 후후 불어 마시던 영국인들의 자존감을 채워주었다. 1997년 신노동당을 표방하며 18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토니 블레어 정부는 브릿팝의 흥행을 등에 업고 쿨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으로 음악과 영화, 패션과 축구를 아우르는 일종의 문화 캠페인을 벌인다. 실제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블레어는 하원 파티에 브릿팝 밴드들을 부르며 힙한 모습을 과시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훗날 펭귄북스에서 3권으로 출간된 대변인 알라스테어 캠벨의 일기에 따르면, 다우닝가에서 열린 총리 취임 기념 연회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랄프 파인즈와 함께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참석할 거라는 소식을 전달받은 TB(토니 블레어)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가 그를 초대한 건지 모르겠군. 그는 분명히 미친 록큰롤 같은 소동을 일으킬 거고 나는 전설적인 사건의 희생양이 되겠지. 앨런 맥기(*오아시스를 발굴한 크리에이션 레코즈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 노엘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받아내야 해. 맥기는 떨고 있는 총리에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노엘은 괜찮을 거라고, 오아시스의 다른 반쪽(리엄 갤러거)을 초대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연회 당일, 아내를 대동한 노엘이 맥기와 맥기의 여자친구와 함께 총리 관저에 도착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를 마주한 블레어가의 아이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얗게 굳어버렸다. 노엘은 블레어의 성공을 축하했고, 블레어는 노엘의 성공을 축하했다. 그리고 둘은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고 싶지 않다… 영상 1. 다우닝가에 도착하는 노엘 갤러거 그날 노엘은 술을 진탕 마셨고, 별다른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으며, TB와 쿨 브리타니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물론 영원한 적은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 수상을 지낸 제3대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의 말이다. 1997년은 브릿팝이 이미 프로파간다로서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던 해였다.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팝 전쟁의 당사자였던 블러가 브릿팝의 죽음을 선언하며 미국적인 향취로 가득한 다섯 번째 앨범 [블러]를 발표했고, 80퍼센트에 달했던 블레어의 지지율은 어느새 52퍼센트로 급락했다. 1999년 노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옵저버’에 입사한 햇병아리 기자였던 닉 패튼 월시에게 신노동당은 변장한 토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어, 그렇잖아? 똑같은 똥들이 있는 다른 날들일 뿐이지. 그 뭐야, ‘우리는 이제 모두 중산층입니다We’re all middle-class now’? 그건 정말 모욕적이었어. 중산층이 된다는 건 좀 있으면 자살할 거라는 말이잖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일이 바로 중산층이 되는 거라고! 그럼 애초에 총리가 주최한 파티에는 왜 참석한 거냐는 신참 기자의 질문에 노엘은 조금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난 그냥 이렇게 생각했지. 영국 총리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젠장, 내가 빌어먹을 괴짜라도 된 것 같군. 나는 그날 밤에 기사 작위라도 받으려는 모양이라고 확신했어. 누구나 살아가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잖아, 안 그래? -한 마디로 하면 이거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불역열호. -…정연씨,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떠오르지 않나요, 지돈씨? 케이팝으로 시작해서 < 기생충 >과 < 오징어 게임 >으로 그리고 다시 BTS와 청와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랑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걸 느끼지 못하겠어요? JD는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보다는 딸기와 퍼지로 코팅된 쇼트브레드가 들어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는군요. 먹고 싶다 벤앤제리. -아니, 저기요. 과거에서 배운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전세계가 K-문화에 열광하는 지금… 음악 1 ‘Ice Cream as Main Course’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온다.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Ice Cream as Main Course’ 전주다. 갑자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JD를 바라본다.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아 핀 조명을 받으며 건반을 두드리고 있던 JD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먹을 꼭 쥔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길을 닦은 사람들입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오늘날의 거리 말예요 ♪타투 바와 스포츠 바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생각을 들을 수 없죠 ♪그것들이 가라앉으며 내는 잘랑잘랑잘랑 소리뿐 ♪에너지 드링크를 섞은 보드카 한 잔 더 ♪그치만 옛날로 돌아가면 ♪우리도 쿨했었는데 ♪헐리우드의 Musso and Frank’s에서 ♪우리는 메인 코스로 아이스크림을 시켰죠 ♪실크로 된 터번을 쓰고 ♪초코 우유를 마시면서 ♪물론 럼주 한 잔은 옆에 두고서 ... ... ... 노래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우리는 후렴을 함께 소리높여 합창했고, 아마 어느 부분에서는 눈까지 감았던 것 같다. < 어바웃 어 보이 >에서 휴 그랜트가 그랬던 것처럼. 영상 2 <어바웃 어 보이>의 한 장면 정말이지 나는 뮤지컬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슬프게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나는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콜라를 본다, 라고 정지돈은 [영화와 시]에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영화를 소비할 때는 배스킨라빈스나 벤앤제리스를 보는 거라나 뭐라나. 나는 다른 많은 이름들처럼 벤앤제리스라는 이름도 정지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벤앤제리스는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신의 두 친구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가 1978년 설립한 회사다. 2000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매각되었지만 독립적인 운영 방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벤과 제리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샌더스를 위해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버니의 열망(Bernie’s Yearning)이라는 한정판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는데, 민트향 아이스크림을 덮고 있는 얇은 초콜릿 막을 숟가락으로 깨부수고 마구 뒤섞음으로써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부를 99퍼센트에게 골고루 돌려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까요? 벤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아이스크림의 맛을 표현하자면 참여(participatory)의 맛이 난다고 하고 싶군요. 참여하시겠습니까? 깔끔한 폰트와 배색이 돋보이는 벤엔제리스의 홈페이지에는 맛의 무덤이라는 섹션이 있다. 그곳에는 화석 연료(초콜릿 쿠키 조각, 공룡 퍼지 및 퍼지가 물결무늬로 스월된 스윗 크림 아이스크림), 거북이 수프(퍼지로 코팅한 캐러멜 캐슈넛과 물결무늬로 스월된 바닐라 아이스크림), 둔감한 신성(밀크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퍼지 우유가 스월된 화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리고 다크 퍼지 우유), 도시의 혼돈(코코넛 아몬드 퍼지 칩과 뉴욕의 슈퍼 퍼지 덩어리가 스월된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만남 그리고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및 다크 초콜릿 덩어리, 피칸과 구운 아몬드의 조화), 악랄한 조합(피칸, 아몬드, 건포도와 초콜릿 칩이 들어간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은퇴한 아이스크림들의 묘비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쿨 브리타니아의 것도 있다. 그림 1 쿨 브리타니아 묘비 쿨 브리타니아 1995~1998 이 맛은 엄청난 강타자였지만 - & 파울로 아웃되었습니다. 딸기 앤 쇼트브레드 - 독실한 사랑의 조합 하지만 슬프게도 마땅히 누려야 할 명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즐기기엔 너무 영국스러웠나 봅니다. 말라버린 강둑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블러의 베이시스트이자 ‘알렉스 제임스 제공Alex James Presents’, ‘좋은 웨일스 공녀 모드Good Queen Maude’, 그리고 뉴오더의 노래 제목을 딴 ‘블루 먼데이Blue Monday’ 등 빛나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다수의 치즈를 생산하는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성공적인 영농기업인 알렉스 제임스는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냐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제 일부가 죽어요. 이런 식의 사카즘은 영국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조너선 스위프트에서 로렌스 스턴, 토머스 드 퀸시,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G.K. 체스터턴 등으로 이어지는 두터운 계보(절반 이상이 아일랜드계로 이루어졌다는 게 특히 영국적이다)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리씨는 자신이 이끌었던 전설적인 밴드 더 스미스의 재결합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꾸한 바 있다. 스미스라고? 그 이름은 내게 말라버린 강둑에서 죽어가는 물고기를 연상시킬 뿐인데? 브릿팝이요? 그건 그냥 똥처럼 들리는 소리죠. 펄프와 프로젝트 밴드 JARV IS...의 리더이자 최근 웨스 앤더슨의 영화 < 프렌치 디스패치 >와 함께 하는(companion) 샹송 커버 앨범을 발표하며 뜨뜻미지근한 솔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또 한 명의 영국 전통 사카즘 전수자 자비스 코커는 2017년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민족주의적인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깃발을 흔드는 음악 같은 게 아니었어요. 브릿팝이라고 불렸을 때는 정말로 불쾌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어떤 대안적인 문화를 전용해서 거기에 유니온잭을 꽂고 크레딧을 모두 가져가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심지어 다섯 번째 회고록을 출간한 유명인들이 득실득실한 영국의 문화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코커의 첫 번째 회고록은 2022년에야 출간된 예정으로, 책소개에 따르면 이것은 자비스의 독특한 삶, 펄프, 20세기 대중문화, 좋았던 시절과 그가 차라리 잊고 싶은 실수라고 말하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일생 동안 축적된 파편들은 글쓰기와 뮤지션십, 퍼포먼스와 야망, 스타일과 연출 기법 등 그의 창작 과정을 보여준다. 이건 인생 이야기(life story)가 아니다. 다락방 이야기(loft story)다. 회고록의 제목은 [좋은 팝, 나쁜 팝Good Pop, Bad Pop]이라고 한다, 세상에. 혼톨로지, 혹은 지나간 미래/도래할 과거의 유령 그림 2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한 장면 그러니까 문제는 책이고 음반이고 영화다. 닉 혼비의 소설(책)을 각색한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Fidelity>(영화)에서 챔피언십 바이닐이라는 이름의 레코드점(음반)을 운영하는 존 쿠색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느냐다. 책들, 음반들, 영화들—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날 얄팍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것이 빌어먹을 진실이다. 블라블라블라. (어디선가 자비스 코커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나는 내가 깊다고 말한 적 없어, 나는 아주 깊게 얄팍하지 ♪내 지식의 부재는 광대하고, 내 지평은 좁다 ♪난 내가 크다고 말한 적 없어, 똑똑하다고 말한 적도 없지 ♪만약 네가 내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 거야 ♪여어엉원히 말이야 -책들, 음반들, 영화들은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JD가 이어 말했다. -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책들, 음반들, 영화들이 중요한 건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요. -같은 말 아닌가요? -아니요. 존 쿠색의 말을 생각하세요. 같은 영화에서 쿠색은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죠. 불행하기 떄문에 음악을 듣는 걸까, 음악을 듣기 때문에 불행한 걸까? 그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정지돈에 따르면 그것들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는 늘 심령 현상을 전달해왔다고 키틀러는 말했습니다. 라캉에 의하면, 실재계에서는 시체라는 단어조차도 완곡어법이기 때문입니다. 정지돈은 계속해서 키틀러를 인용했다. 1837년 모스 부호가 발명된 후, 영매 강령술자들의 ‘노크를 하는 영혼들’이 망자의 영역에서부터 각자의 메시지를 가지고 즉각 뒤이어 등장했습니다. 또한 사진 건판들이 영혼이나 유령의 모상들을 지체 없이 전달하기 시작했고요. 1878년 에디슨이 ‘북아메리카 리뷰North American Review’에 자신이 최근에 발명한 축음기가 어디에 사용될 수 있을지를 예견했을 때, 그 열 가지 목록 중 하나는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말”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이 뤼미에르는 영화를 가리켜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도구에 불과하며 미래 없는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어떨까요?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 제논이 델포이 신전에서 무엇이 가장 훌륭한 삶인가에 대해 신탁을 청했을 때, 그가 받은 대답은 죽은 이들과 교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필로소피아라기보다는 네크로필리아에 더 가까운 신탁을 듣자마자 고대인의 글을 읽으라는 뜻이라고 이해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컴퓨터로 편집한 자료와 샘플을 구식 신시사이저 음색이나 어쿠스틱 악기와 뒤섞고, 라이브러리 음악과 영화음악에서 영감받아 만들거나 통째로 훔친 모티프를 인더스트리얼 드론과 추상적 노이즈에 엮으며 낭송이나 습득한 소리를 신비한 뮈지크 콩크레트/라디오 드라마풍으로 삽입해서 음악을 만드는 혼톨로지의 전략은 이미 고대에도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편집과 전유, 샘플링과 빙의, 그리고 아카이빙은 최근에야 발명된 게 아니라 기록 그 자체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조건이라는 거죠.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사태를 명료하게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우리의 영화에도 혼톨로지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용… 과거를 새롭게 상상하는 동시에 미래를 새롭게 기억… 다중적인 시간 축을 동시에 나열…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통해… 어째서일까? 그의 말은 마치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고,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꽤나 길게… 꿈에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죽은 존재들의 무언의 호소에 민감해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미래가 과거의 미래, 곧 역사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순수한 선행 기억상실 모든 것은 시간 문제다. 요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원고를 마감하는 것도 시간 문제고, 밀린 책을 쓰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시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뭘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건 약간의 시간만 흘러도 까맣게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정지돈이 말하는 몇몇 고유명사들은 나도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나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역자 유현주 선생을 모시고 출간 기념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내개 전혀 새롭게 들렸다. 혼톨로지? 물론 알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물론 혼톨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을 두어 번은 읽었으니까.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읽었다. 반쯤. 나원영과 강덕구가 번역한 마크 피셔의 글들도 읽었고, 큰 상관은 없지만 베리얼의 첫 두 앨범을 최근 LP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들은 내게 매번 새롭게만 느껴지는 걸까? 내게 아주 많은 시간이 있다면 책상 앞에 앉아 이것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볼텐데.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마감을 해야 한다. 마치 나는 입이 없고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 하는 것처럼! 그럴 때면 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구글링을 하던 나는 시간에 쫓기는 흔들리는 눈으로 검색 결과들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내가 찾는 줄도 모르고 절박하게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유레카. 나는 정지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한다. -자, 들어보세요 지돈씨. 혼톨로지 음악 경향의 창작 방식에는 작곡, 연주, 녹음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타인의 음반을 샘플링한 후 이를 편집하고 아날로그 음반의 노이즈를 증폭 혹은 삼입시키는 식으로 창작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창작 과정은 작곡은 쓰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빙의되게끔 허용하는 것의 문제라는 트리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Maxinquaye]는 정해진 구조 없이 트리키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생략… 또 생략…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어때요, 제가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차용했는지 알겠어요? -빙의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홍상수에? -아니요, 근데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네요. 그건 일단 키핑 해둘게요. 제가 꽂힌 구절은 이거에요. ‘정해진 구조 없이’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저는 이게 이번 원고뿐만 아니라 우리 영화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구태여 매끈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단편들로만 채우는 거죠. 장면들, 인물들, 대사들, 장소들, 소리들, 작은 이야기들. 그러니까 고다르가 언젠가 자신의 영화에서 한 인물이 단순히 여기에서 저기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길을 걷는 장면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것처럼요. 대신 우리는 그걸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서 가져오는 거고요. -그게 뭐지?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이렇게 하는 거라니까요. -??? -바로 이렇게요! (다음 회에 계속) *이 글은 다음 글들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감기도령, 문피아, 2021) [참을 수 없는 가우초](‘크툴루 신화’)(로베르토 볼라뇨, 이경민 옮김, 열린책들, 2013) [영화, 축음기, 타자기](프리드리히 키틀러, 유현주.김남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9) 'Ice Cream as Main Course'(Jarvis Cocker and Chilly Gonzales) [영화와 시](정지돈, 시간의흐름, 2020)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아이스크림, 무슨 맛?'(오마이뉴스) 'Tony Blair was worried Oasis would trash Downing Street'(NME) 'Noel looks back in anger at drinks party with Blair'(The Observer) <디스 이즈 팝>(S01XE0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50 Best Britpop Albums'(Pitchfork)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스티븐 프라이스, 2000) <레트로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7)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전주국제영화제 엮음, 프로파간다, 2021)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2) '크래클의 형이상학- 아프로퓨처리즘과 혼톨로지'(마크 피셔, 420 옮김, 네이버블로그 '좋습니다') '레이브 이후의 런던'(마크 피셔, gkd 옮김, 네이버블로그 'K-atacccombb') '트릭놀로지의 유령들'(이엔씨, 포스타입 '알 수 없는 평론가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할란 앨리슨, 신해경.이수현 옮김, 아작, 2017)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미 대선이 치러졌던 지난 11월 8일,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 힐러리 클린턴이 쭉 앞서던 필라델피아 주의 색깔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승리의 여신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음이 거의 확정 된 순간이었다. 그날 밤과 이후의 며칠 동안 42번가의 타임스퀘어의 한 건물의 광고판엔 트럼프가 미칠 영향을 경고하는 문구가 걸렸고, 뉴욕의 시민들은 퇴근 후 매일 저녁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으로 몰려가 그들의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이튿날 아침엔 소위 말하는 ‘뉴욕 버블’을 꺼트리기라도 할 기세로 비가 내렸다. 현재 필자가 재학 중인 컬럼비아 대학교의 예술 대학은 ‘뉴욕 버블’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만한 집단이다.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고, 몇몇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선 레이스 내내 침묵을 지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집단. 몇몇 미국인 학생들은 실의에 빠져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농담을 던질 힘이 남아 있던 영화학도들은 흐린 하늘을 가리키며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모습이구나…’라며 쓴웃음을 겨우 지어냈다. 유학생과 미국인 학생의 비율이 6:4일 정도로, 타 국적의 학생들이 많은 집단이지만, 미국의 군사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나라 출신들이 꽤 많은 탓에, 우리는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서로를 달랬다. 영화학도들뿐만 아니라 영화과의 교수들도 어느 정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많은 극작 혹은 연출 분과의 교수들이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 30~40분의 시간을 대선에 대해 말하는 것에 할애했고, 학장은 모든 예술학도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학과 건물의 로비 한쪽 벽면엔 ‘다가올 시대의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써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졸도Swoon>(1992)과 < 세비지 그레이스Savage Grace >(2007)를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가르치는 중인 톰 케일런이 사석에서 내게 해준 말이었다. 자신의 연출 수업 시간에 < 살인의 추억 >(2003)을 예시로 보여줄 정도로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인 케일런은 종종 내게 한국 사회에 대해 묻기도 하기에, 우리는 각자가 속한 사회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각자의 사회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무수한 긴 한숨들이 지나간 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길 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에 그의 말이 내게 와 닿진 않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지만, 그의 말마따나 클리셰처럼 느껴졌달까. 하지만 정확히 그날 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케일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날아온 기사 하나를 며칠이 지나 뒤늦게 읽은 순간, 그의 말은 더 이상 클리셰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행동에서, 10대 청소년들이 폴리스 라인 앞에 늘어서 경찰을 지켰다는 내용이었다. 방금 읽은 것을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클리셰가 무엇인가?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냄에 있어 독창적인 고민 없이, 이미 사용될 만큼 사용된 장치를 쉬운 선택지로 골라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반복 사용된 듯 보이는 보편적인 장치라도, 적절한 곳에 위치해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한다면, 아무도 그것이 클리세라고 어깃장을 놓지 않는다. 경찰에게 보호받아야 할 10대 청소년들이 평화 시위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경찰을 보호하려고 나섰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나가야지만 희망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메시지와 만났을 때, 나는 마치 ‘문제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실행할 용기를 낸다.’는 아주 보편적인 스토리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는 관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흔히 정치 비관론에 빠진 이들은, 다시금 뭔가를 바꿔보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냉소를 던진다. ‘그래 봤자 변하는 것은 없더라.’, ‘겪어 보니 그 놈이 그 놈이고, 다 똑같더라.’라는 흔한 푸념부터, 심하게는 ‘촛불은 바람에 쉽게 꺼진다.’까지 등의 논리가 일종의 갑옷이자 눈가리개가 되어 그들을 둘러싼다. 어쩌면 그들이 보기에 역사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던 착취와 지배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의 시도들은 역사의 클리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의 저항과 움직임은 때때로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세대와 세대를, 그리고 세기와 세기를 거쳐 더딘 응답을 언제나 받아내곤 했다. 누군가가 지금 신분제의 부활과 노예 사유화, 그리고 여성의 정치 참여 제한을 주장한다면 그 누군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사실 노예 해방이 이뤄지고 여성 참정권이 인정받은 것은 이 길고 긴 인류의 역사의 끝자락, 불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뤄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침묵하는 기득권의 냉소와 탄압을 겪어 내고 당연해야 하는 것들을 이뤄내려는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과 그 과정은 길고 긴 인류의 역사라는 이야기 속에서 분명 효과를 발휘한, 클리셰가 아닌 그 무엇이다. 1989년의 할로윈데이, < 오즈의 마법사 > 속 인물 도로시로 분한 ACT UP의 멤버가 ‘도널드 트럼프를 체포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임하고 있다. [사진출처]Surrender Donald! A Queer Call to Action Since 1989 사실 도널드 트럼프(와 그가 대표하는 집단)에 대한 저항도 이번 미 대선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어 왔다. 케일런이 속해 있기도 한 국제단체 ACT UP(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의 멤버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트럼프 타워를 건축하며 받았던 육백이십만 달러의 세금 혜택이 뉴욕의 빈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할 예산으로 사용될 수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트럼프를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키고 부유한 자들의 특권을 강화하는 잘못된 체제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1989년 10월 31일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에서 트럼프에 저항하는 시위를 펼쳤다. 1989년의 그 날 20대 청년이었을 톰이 트럼프 타워 앞에 서 있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그 해 태어난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한 명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트럼프와 그로 대변되는 이 사회의 시스템과 싸워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시간 동안 거대한 부조리와 싸워왔다면 지칠 법도 할 텐데, 앞서 언급한 대화 이후 며칠이 지나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으로서 다시 만난 케일런은 대선 결과를 다시금 언급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다.’라고 자신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영화라는 것은 하나의 매체이자 언어이며, 감독 혹은 작가가 되길 지망하는 우리는 각자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세상에 맞서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그렇다, 미국이냐 한국이냐의 지리적 문제를 차치하고, 지금은 영화에 대해 말할 때가 아니라, 영화가 말해야 할 때다. 우리가 어딘가의 광장에 모여 우리의 목소리로 부정에 맞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화 또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용기를 내서 그것을 말해야만 하는 시기이다. 평론가 강소원은 11월 23일 자로 부산일보에 게재된 본인의 칼럼에서 올해 부산독립영화제 출품작 대다수의 문제가 ‘절망적인 시대를 절망적인 영화로 담아냈다는 데 있지 않고 그 절망적인 시대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지금 광장으로 뛰쳐나온 세대의 영화 속에선 왜 그러한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강소원의 이러한 지적이 단지 부산의 젊은 감독에게만 해당하는 분석이 아닌, 필자가 속한 세대의 감독들이 만든 지난 몇 년간의 독립 영화 전반에 적용 가능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로 하여금 영화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만든, 지난 역사 속의 여러 사태에 대항할 때마다 느낄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이 우리의 말문이 잠시 막히게 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느리고 더디게 승리를 쟁취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또 다른 아주 길고 긴 싸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중이다. 누군가가 살아온 평생보다 더 오랜 시간 광장에서 싸웠지만 지치지 않은 이가 있으며, 누군가보다 훨씬 적은 세월을 살았지만, 용기를 가지고 광장에 발을 디딘 이들이 있다. 당장은 우리의 이러한 또 한 번의 저항이, 그간 무수히 있어 왔던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클리셰적인 시도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느린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분명 나아지는 중이고, 우리가 써내려가는 중인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영화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클리셰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렇게 주장하는 필자부터 그동안의 비관론을 버리고, 다시 한번 희망을 바라보려고 한다. 나로 하여금 너무나 당연한 것이 모두 클리셰는 아님을 깨닫게 해준 광장의 청소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위 사진 설명: 미 대선 이튿날인 11월 9일,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정경. 네온 사인 속 문구: “Trump victory causes ‘SERIOUS CONCERNS’ in Middle East”(트럼프의 승리는 중동 지역에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한다.)
최근 극장가에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1월~6월)에만 44편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개봉한 애니메이션이 51편이었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그 증가세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겨울방학 특수를 노린 1, 2월(19편)을 제외하고도 매월 4편 이상이 스크린에 선보였다. 할리우드나 일본 외에도 이탈리아, 독일, 태국, 인도 등 작품의 국적 역시 다양해졌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어려워진 외화 시장에 이들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그나마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인들이 해외 영화 마켓에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을 구매하며 가격을 올려놓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다보니 한 주에 3~4편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9년 전에 제작된 작품이 스크린에 걸리기도 한다. 영화 홍보사들이 부쩍 치열해진 관객 유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연예인 더빙이다. 관객들뿐 아니라 언론의 주목까지 받을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공략층인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그 콘서트’의 인기 개그맨들 참여는 대세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녹음으로 캐릭터에 부합하는 연기를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유행어 남발로 인해 실제 캐릭터의 특징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단지 같은 개그맨이 더빙했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두 작품이 본편과 속편으로 소개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가족 대상의 애니메이션은 주로 부모들이 작품의 선택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재미보다는 교육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하는 한 작품의 경우 캐릭터 설명에 대한 자막과 유명 연예인 더빙의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7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일랜드의 제작사에서조차 깜짝 놀랄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개봉 소식은 들리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들도 있다. 처음부터 극장 개봉보다는 IPTV나 온라인 부가시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다. 극장과 동시 개봉 서비스를 통해 좀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명탐정 코난>, < 도라에몽 >처럼 TV 시리즈의 인기를 기반으로 매해 극장가를 찾는 아동용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의 개봉이 늘어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은 불법적인 다운로드를 통해 작품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과 큰 시차 없이 작품을 스크린에서 접할 수 있게 됐고, 관계자들의 내한, 특별 영상 공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극장판: 타이거 앤 버니 >의 특별 시사회의 경우 참여 신청 홈페이지의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으며, < 에반게리온: Q >의 개봉 전 특별행사인 ‘EVA Blue Day’가 열린 코엑스에는 약 1,000여 명의 팬들이 운집하기도 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해진 사실은 반갑지만 그 실상은 그리 반갑지 않다. 가족 타깃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입되는 작품들이 늘어나다 보니 영화사의 홍보 전략은 대부분 스타 마케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좋은 작품일지라도 흥미 요소나 본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 일쑤다. 그나마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황이 나아 보이지만 마니아 위주다 보니 개봉 규모나 파급력이 크지 않다. 극장용 장편에 있어 흥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작품 외의 요소에 치중한 홍보 마케팅은 작품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거나 자칫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나 마니아가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지 않을까. ‘풍요 속의 빈곤’, 현재 극장가의 애니메이션이 처한 상황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