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용사 벡터맨(사탄제국의 대역습)
- 감독
- 최성덕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김동규, 김성수, 함재희, 정재연, 조중휘, 박미경, 원효림, 엄지원, 이혜인, 강수진, 구자형, 최원형, 서광재, 안장혁, 함수정, 송덕희, 이선, 양태열, 박현진, 서지오, 주영민, 김선갑, 최태환, 김성실, 주재경, 서명석, 이승현, 김성권, 김덕형
(사진: “ Häxan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반드시, 라고 단언하고 싶은데,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일시적으로 이상한 영화를 찾아보느라고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재빨리 빠져나오고 다른 누군가는 여기에 머문다. 그 영화들이 ‘불법적인’ 대상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스너프 필름, 아동성애 영화, 기타 등등) 각자의 취향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이상한 영화’의 수호성인 아모스 보겔은 ‘전복적인 예술영화(subversive art film)’라고 불렀다. 아모스 보겔을 이야기할 자리는 1974년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 여기서 질문은 영화사의 순간들에서 ‘이상한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가 언제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물론 방점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다른 계보를 열거하게 될 것이다.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사회적 위반, 법적 금지의 경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선을 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한계를 부수길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 돈을 원했다. 누군가는 예술적인 실험을 하고 싶어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거기서 쾌락을 향유했다. 여러 영화 제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세계영화사의 순간들은 그렇게 가끔 하나의 선처럼 느껴지는 앞과 뒤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내가 ‘이상한 영화’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가장 멀리서 마주친 영화는 벤야민 크리스텐센의 스웨덴 영화 < 헥산 >(1922)이다. “Häxan”은 번역하면 ‘마녀’라는 뜻이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19세기인 1879년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배우가 되기를 원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18년부터 ‘흑마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서점을 뒤지던 벤야민은 독일 베를린 서점에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사본을 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1486년 독일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하인리히 크라메르가 쓴 마녀 처단에 관한 책이다. 주술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마녀로 규정된 여자의 마법의 악을 ‘끝내기 위해서’ 자백을 끌어내는 고문 기술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에 유럽에서는 마녀로 내몰린 여자들이 산채로 화형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하인리히 크라메르는 마녀의 존재를 신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주장하고, 더 나아가 마녀사냥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고, 심지어 이 책은 마녀재판의 법전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소설에서 사용된 장면들, 마녀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여기 실려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이 책은 논쟁이 되었으며, 오히려 그래서 많은 독자를 얻게 되었다. 1519년에 야콥 스프렝게르가 이 책에 새로운 저자로 나서서 마치 개정 증보판처럼 추가해서 1533년에 출간하였다. 손에 손을 거쳐 이 책은 마녀를 자백시키는 안내서가 되었고, 잔인한 고문 기술자들은 상상으로 쓰인 이 책의 내용을 감옥에서 불행한 여자들에게 실행하였다. 『마녀의 망치』는 일시적으로 판금 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왕실 궁정에서 공공연하게 읽히는 금서가 되었으며, 16세기 이후에 마녀재판에서 더 잔인한 기술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마녀의 망치』 표지와 <헥산> 포스터 (사진: “ Häxan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구한 사본 『마녀의 망치』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판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본이 15세기라는 것을 셈에 포함해주길 바란다. 1부에서는 먼저 마녀의 존재와 악행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2부에서는 마녀들이 저지른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범죄와 악마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 마녀재판의 실제 절차와 고문을 통한 자백 유도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마녀의 망치』에 만족하지 않고 벤야민은 1919년부터 거의 2년 동안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 사례, 실제로 실행하는 집행과정을 담은 삽화들, 여기에 더해 각종 문건을 모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벤야민은 1920년까지 발표된 마녀들에 관한 소설과 희곡도 모았다. 그런 다음 자료들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을 결심하였다. 벤야민이 준비한 것은 단지 마녀에 관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준비한 <헥산>은 유럽 중세로부터 400년에 걸친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백과사전이었다. 벤야민은 제작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구한 도판들을 그 앞에서 전시하다시피 했고,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재판기록과 집행을 낭송하기도 했다. 이 기괴하지만, 분명히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스웨덴 필름 인더스트리가 관심을 보였다. 벤야민과 촬영 감독 요한 안케르스트예르네는 덴마크에 오직 <헥산> 촬영을 위한 영화 스튜디오를 사들였다. 그런 다음 야외는 중세를 재연하였고, 실내는 모두 밀폐시킨 다음 어두운 그림자와 빛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가 떨어진 다음에만 촬영을 시작해서 새벽이 오면 멈추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헥산>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제단화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장 비싼 무성영화가 되었다. <헥산>은 1921년 2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그해 10월까지 이어졌다. 빛과 그림자 간 대조가 두드러지는 장면 / 우주를 둘러싼 천사 합창단의 모습 (사진: “Häxan( 1 , 2 )”, IMDb) 영화 <헥산>은 7개의 연대기로 나누어져서 진행된다. 첫 번째 시작은 마치 학술 발표를 위한 도판 설명처럼 이어진다.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주변에 공기와 불이 둘러싸고 별들이 주변을 떠돌면서 천사 합창단이 보인다. 그런 다음 악마와 마녀의 조각상, 목판화, 삽화를 차례로 소개한다. 이 화면자료들이 펼쳐지면 IMAX 스크린으로 벽화처럼 보고 싶을 것이다. 사탄이 나타나서 부부가 잠든 침대에서 아내를 유혹하고, 질식시키고, 살해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의 묘약을 구하는 여인, 성에 눈뜨는 여인, 그 여인이 몰래 먹이는 묘약에 흥분하는 승정(僧正), 게걸스러운 폭식, 들린 자들(the possessed)이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한밤중에 불을 피우고 춤을 추는 축제,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이 장면들을 종종 멜리에스 영화에서 본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우스꽝스럽기는커녕 오싹해지는 것은 만들고 있는 쪽에서 지금 이걸 진심으로 믿고 있구나, 라는 설득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담과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처럼 보였지만 여기에 교회가 개입하면서 고문이 등장한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그 과정의 세부를 묘사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여기서 이 영화가 그런 이야기들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만들어졌단 생각을 해야 한다. 게다가 신성모독 장면을 재연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헥산>을 보고 있으면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장면들과 마주치게 된다. (상) 마녀와 악마에 관한 삽화 / (하)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들린 자들(the possessed) (사진: “Häxan( 1 , 2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1921년에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로이트의 저술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아직 살아있었고,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발표한 직후이다. <헥산>의 마지막 연대기는 동시대에 이른다.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여성은 몽유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서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그 당시 정신병원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고문 장면뿐만 아니라 성상 모독, 마녀에 관한 찬양, 중세 교회에 대한 적나라한 재판 장면과 함께 여성의 누드, 신체 훼손, 시체 손상에 이르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개봉 당시 스웨덴과 덴마크의 검열은 통과했지만, 독일과 프랑스, 특히 미국에서는 검열에서 문제가 되어 개봉을 위해 재편집이 불가피했고 상당 부분이 삭제되어 국가별로 여러 판본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가장 흥미로운 판본은 1968년 메트로 픽쳐스 코퍼레이션이 <헥산; 옛날 옛적부터의 마녀들(Häxan; Witchcrafts through the ages)>이다. 이 판본에서는 『네이키드 런치』의 윌리엄 버로스가 영어 나레이션을 한다(고 한다). 이 무렵 윌리엄 버로스는 마약중독 상태에서 장 주네를 둘러싼 친구들과 친교를 맺던 시기였다.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작 이 판본의 복원 소식은 들리지 않고 1976년부터 1922년 판본을 원본에 가깝게 몇 차례에 걸쳐 복원하고 있다. 물론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윌리엄 버로스의 판본이 궁금하다. 아마 언젠가는 될 것이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지난 6월 21일, 로빈 하디의 < 위커맨 >는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4K 복원판이 영국에서 첫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이후 미국 전역을 비롯한 각 국가 개봉에 이어 10월에는 현존하는 본편 3개 버전과 방대한 서플먼트 그리고 폴 지오바니와 밴드 마그넷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포함한 5 디스크 DVD 박스세트가 출시되었다. 동시에 <위커맨: 공식 스토리>라는 신간도 함께 출판되면서, <위커맨>은 올해 복원된 고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히트작이 되었다. 이미 개봉 40주년을 기념한 디지털 복원판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던 전력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4K 복원판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은 진정한 컬트 고전으로서 <위커맨>이 가진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 셈이다. 요란스러운 상찬과 제사에 불구하고, 컬트의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걸작들이 그러하듯 <위커맨>은 시작부터 개봉까지 쉬웠던 순간이 하나도 없었던 고난의 영화였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말 그대로 복원과 부활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위커맨>은 < 발자국 >(Sleuth, 1972)로 유명한 작가 안소니 샤퍼가 제작사 ‘브리티시 라이언’의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제작자 피터 스넬 그리고 해머의 드라큘라 재생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와 1967년 출간된 데이빗 피너의 소설 ‘의식(Ritual)’의 영화판권을 공동으로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개발에 난항을 겪던 프로젝트는 당시만 해도 ‘듣보'였던 로빈 하디가 의기투합하면서 주말동안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순식간에 하우이 경사를 중심으로 한 제대로 된 시나리오로 전개되었다. 완성된 시나리오에 만족한 스넬은 ‘저예산으로 제작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비로소 <위커맨>은 1972년 가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촬영은 약 7주 가량 25개 스코틀랜드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정작 로케이션 중에서 진짜 섬은 한곳도 없었다. 로빈 하디는 공간의 통일성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찍은 장면들을 패치워크하듯 이어붙이는 작업이 오히려 흥미로웠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으나, 가을의 스코틀랜드에서 5월 초여름의 풍경을 담아야 한다는 미션과 더불어 로케이션 중간중간 출몰하는 근대와 문명의 흔적을 피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산 부족과 고된 촬영, 추위와 이어지는 과음으로 하우이 역의 에드워드 우드워드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윌로우 역의 브릿 에클랜드는 촬영 내내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이후 완성된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클랜드는 2023년 5월 <위커맨> 50주년 특별행사에 참석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00분이 넘는 길이로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위커맨>의 개봉은 요원했다. 20세기 초중엽 에드가 월리스, 알렉산더 코다, 캐롤 리드 등 영국영화의 대표주자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던 상황이었는데, <위커맨>이 완성된 시점의 사장인 마이클 딜리는 완성본을 싫어한 나머지 영화의 개봉을 거부했다. 제작자 스넬은 딜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칸 영화제에 완성본을 들고 가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호텔 로비에 거대한 위커맨을 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때 <위커맨>을 본 영화 관계자 중에는 로저 코먼도 있었는데, 드라이브 인 상영에 좋겠다고 판단한 코먼은 편집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브리티시 라이언은 영화를 87분으로 대폭 가위질해서 먼저 개봉하여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니콜라스 로에그의 < 쳐다 보지 마라 >(Don’t Look Now, 1973)와 동시상영하는 조건으로 영화의 개봉을 허가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안면이 있는 모든 평론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좌석을 빼두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20세기 브리티시 호러의 대표작인 두 편의 영화가 동시상영이라는 비참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극인지 아니면 두 편을 동시에 본다는 엄청난 기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관객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처참한 박스오피스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어떻게든 제작비를 환수하려고 애썼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로저 코먼을 비롯, 미국 배급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미국 배급권은 워너 브러더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워너는 개봉 전 테스트 상영을 했지만, 버라이어티를 비롯 지면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상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위커맨>은 순식간에 시네필 그리고 영화학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볼 수 없는 걸작'이 되면서 컬트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6년 할리웃으로 와 각본작업을 하던 로빈 하디는 <위커맨>의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워너 브러더스는 이미 미국 배급권을 단돈 2만불에 아브락사스라는 소규모 회사에 넘겨버린 상태였고, 하디는 아브락사스를 설득해서 난도질당한 <위커맨>의 부활 작업의 허가를 얻었다. 하디는 바로 피터 스넬, 앤드류 샤퍼 그리고 크리스토퍼 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위커맨 4인방'은 가위질 이전의 롱 버전 프린트 사냥에 나섰다. 개봉버전과 로저 코먼에게 견본으로 보냈던 오리지널 프린트를 찾아낸 하디는 결국 1977년 가을 미국에서 첫번째 디렉터스 컷이라고 할 수 있는(현재는 ‘미들 버전’이라 불리는 버전으로 4K 복원 상영본인 ‘파이널 컷’의 원형이 된 판본이다) 92분 버전의 <위커맨>이 상영되었고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위커맨>은 숏 버전과 미들 버전이 번갈아가며 TV와 홈비디오 시장을 통해 배급되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은 2001년 영화의 세계배급권을 갖게 된 스튜디오카날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완성된 100분이 넘는 오리지널 프린트는 찾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프린트와 텔레시네 버전들을 조합한 99분 버전의 ‘디렉터스 컷’이 DVD로 출시되었다. 스튜디오카날은 <위커맨>의 복원을 위해 프린트 사냥을 멈추지 않았는데, 하버드대 필름보관소에서 92분 버전의 필름 4K 버전을 입수하면서 제대로 된 디지털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로빈 하디는 페이스북에 올린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디지털 버전을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하디는 섬머아일로 가기 전 경찰서 등 하우이의 일상 장면을 포함, 디렉터스 컷에 삽입되었던 장면들을 제외한 92분 버전의 복원에 동의하고 이 버전은 2013년 크리스토퍼 리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던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버전이 올해 4K 복원판 상영으로 이어진 이른바 ‘파이널 컷'으로, 국내에서는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났다. 영생을 믿는다며 부활을 울부짓었던 하우이의 희생 덕분이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불굴의 4인방의 <위커맨>은 부활에 성공하여 영생을 얻은 셈이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영화의 부활 서사때문에라도 <위커맨>은 수많은 관련서와 팬매거진을 거느린 컬트 고전이자 아리 에스터 등 현대의 감독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된 걸작이지만, 역경을 딛고도 부활할 수 있었던 영화의 저력은 전무후무한 전복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지난 10여년 간 글로벌 호러의 지배적인 서브장르로 급부상한 포크 호러 열풍과 더불어, <위커맨>은 < 심판 >(Witchfinder General, 1968), < 사탄의 피부 >(The Blood on Satan’s Claw, 1971)과 포크 호러 장르의 ‘불경한 삼위일체'라는 명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중 <위커맨>은 근대 서구 문명의 이성과 기독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과 완전한 전복을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두 편과 궤를 달리한다. 엄격한 교리와 도덕률 그리고 사법제도의 규칙으로 무장한 채 아버지의 법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근대적 남성주체 하우이는 로완 모리슨의 실종을 추적하는 탐정으로서도, 순결한 총각으로서도, 무엇보다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섭리라는 말로 수렴될 수 없는 자연의 동학을 긍정하는 섬머아일에서 섹스와 남근, 수확과 재생산은 하우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질서를 구성한다. 그 안에서 당혹과 충격 그리고 어이없음과 무력함을 넘나들며 심리적 폐소상태에 놓인 하우이의 클로즈업과 영화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메이데이의 현기증나는 의식은, 종교적 이성과 원시적 이단이라고 재단된 양립할 수 없는 두 질서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너스레를 떠는 로빈 하디의 코멘트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이면서도 왠지 영화의 강열도를 축소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 일주일 내내 밤을 샜다.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책이 없었다. 어차피 읽을 시간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집에서 책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책장 구석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털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준 게 언제였더라? 정지돈에게 프랭크 커머드의 절판된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을 빌려준 건 기억나는데. [유령과 파수꾼들](2018) 출간 기념으로 유운성 님과 함께 북토크를 하느라 그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닐 수도 있고. 분명한 건 아직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건데, 괜찮아요 지돈 씨… 그런데 정말 그 행사는 뭐였을까? 나는 구글에 ‘유운성 정지돈 북토크’라고 쳐보았지만 내가 찾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라고 할까? 에이아이는 내게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사람들’과 ‘Kmdb 정지돈’이라는 관련 검색어를 제시해주었는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유운성 님을 뵈었을 때 조너선 크레리 책을 번역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고,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신이 있다고 해도 아마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무언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에이아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요 며칠 트위터에서 화제를 모았던 n행시 짓는 에이아이가 지은 삼행시를 보면 심증은 더 강해진다. 허공에의 질주 내가 밤을 샌 건 김쿠만과 나일선의 소설집에 해설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의 작품 모두 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개들만이 안달루시아에서 산다’라는 단편으로 시작하는 나일선의 소설집에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루이스 부뉴엘, 리차드 라우드, 앙리 랑글루아, 차이밍량, 장 뤽 고다르, 장-마리 스트로브 같은 영화인들의 이름들이 이어진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AI가 알아서 김주만이라고 정정해주는 김쿠만이라는 이름은 실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이만희에게서 한 글자씩 빌려온 것이다. 어차피 돌려주지 않을 것을 빌렸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지돈 씨… 덕분에 나는 [축음기, 영화, 타자기](프리드리히 키틀러), [소리의 정치](이화진),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정충실), [영화와 소리]와 [영화의 목소리](미셸 시옹)처럼 영화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앨런 식수), [음악 인류](대니얼 J. 레비틴), [사탄 박사의 반향실](루이 추데 소케이), [역사](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내용 없는 인간](조르조 아감벤), [아케이드 프로젝트](발터 벤야민), [미래가 사라져갈 때](자넷 폴), [레트로 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리믹솔로지에 대하여](데이비드 건켈), [소설의 이론](게오르그 루카치), [미래 이후](프랑크 베라르디 ‘비포’), [자본주의 리얼리즘](마크 피셔), [허구세계의 존재론](미우라 도시히코)처럼 영화와 큰 관련은 없는 책들을 읽었지만 원고는 쓰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비평, 평론, 해설, 뭐라고 부르건,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 작품에 대해 말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말하지 않기. 둘. 최후의 최후까지 마감을 미루고 있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닥치면 눈을 감고 후다닥 써버리기. 한기 씨는 글이 안 써지면 눈을 감고 쓴대요, 언젠가 정지돈은 내게 말했고 그것은 분명 효과가 있다. 가끔(실은 자주) 내가 무엇을 쓰는지 나조차 몰라야 글을 쓸 수 있는 때가 있는 것이다. 중력을 모르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처럼. 나는 지금 <루니 툰Looney Tunes>의 로드러너와 와일 E. 코요테의 클래식 루틴을 떠올리고 있다. 배고픈 코요테는 호시탐탐 로드러너를 노리지만 잡을 수 없다. 로드러너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무슨 방법을 써도 로드러너의 발끝도 못 쫓아가던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앞지르는 순간이 오는데, 그건 로드러너가 절벽 앞에서 급제동을 할 때다.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코요테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로드러너를 지나쳐 허공으로 질주(Running On Empty)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때 코요테는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공중에 떠 있다.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비극 주인공이 종국에 도달하는 앎은 자신의 불행을 낳은 오류에 대한 앎이었다, 라고 랑시에르는 [모던 타임스: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에서 말한다. 나는 내가 공중에 떠 있어도 절대 모를 거야. 꿈에도 모를 거야, 라고 TV를 보던 어린 나는 다짐한다. 정지돈의 말마따나 내가 “대체로 정신이 나가 있다고 할 수 있다”면 아마 내가 어린 시절의 다짐을 아직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과 상상 1) 어제와의 이별 - 김쿠만 해설의 결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며 트위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 하고 있는데 나일선의 트윗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영화 이미지 두세 컷과 직접 찍은 책의 구절(혹은 부감으로 찍은 커피잔)의 이미지를 데쿠파주한 잠언풍의 트윗이었다. 첫 두 장은 검은 화면 위에 적힌 독일어 문장의 이미지였는데, 그 아래 “우리를 어제와 이별하게 만드는 것은 / 균열이 아니라 위치의 변화다”라는 한글 자막이 달려 있었다. 이건 어디에 나오는 거죠? 나는 나일선에게 멘션을 보냈고, 알렉산더 클루게의 어제와의 작별 시작 부분입니다, 라는 친절한 답을 받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며칠을 끌어오던 김쿠만 해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 어제와의 이별 >(1966)은 “우리를 어제와 이별하게 만드는 것은 균열이 아니라 위치의 변화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김쿠만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통해 하는 일이다…” 2) 메멘토 - 이번 ‘한영한사’는 시간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영화가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픽션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시간이 없고, 가난한 사람이 돈을 생각하듯 내가 시간을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물론 돈도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데, 내가 지난해 12월 4일에 ‘한영한사’ 업데이트 소식을 알리며 “쇼미는 끝났지만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것 같네요 이번 화에서는 자비스 코커와 토니 블레어와 노엘 갤러거와 벤앤제리가 혼톨로지 음악의 리듬에 맞춰 노래합니다 그래요 뮤지컬이죠”라고 쓴 트윗을 누군가 리트윗 했다는 알림이 떴다. 뜬금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며 SNS를 하는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혹시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그게 지금 털린 건가? 벌벌 떨며 링크를 클릭해 ‘한영한사’ 9화를 읽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내가 이번 화에 쓰려던 모든 것을 그때 이미 써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론적으로 순수한 선행 기억상실’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단락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시간 문제다. 요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원고를 마감하는 것도 시간 문제고, 밀린 책을 쓰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시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뭘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건 약간의 시간만 흘러도 까맣게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정지돈이 말하는 몇몇 고유명사들은 나도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나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역자 유현주 선생을 모시고 출간 기념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내개 전혀 새롭게 들렸다. 혼톨로지? 물론 알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물론 혼톨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을 두어 번은 읽었으니까.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읽었다. 반쯤. 나원영과 강덕구가 번역한 마크 피셔의 글들도 읽었고, 큰 상관은 없지만 베리얼의 첫 두 앨범을 최근 LP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들은 내게 매번 새롭게만 느껴지는 걸까… 3) 긴 복도 그렇다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하자, 지금껏 내가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던 레퍼런스를 가져오자, 나는 생각했고 조너선 크레리의 [24/7 수면의 종말]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책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책은 보이지 않았고, 책장 구석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털이 있는 건 아닌지 투덜거리면서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데, 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과 e-flux가 연계 온라인 상영을 해서 정여름의 < 긴 복도 >를 볼 수 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나는 링크를 따라 e-flux에서 <긴 복도>를 플레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책들이 사라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환상의 빛 김쿠만 해설, 나일선 해설, 한영한사, 그리고 정지돈 작가론까지… 4중의 마감에 시달리다 정지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전화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영화 속 싸대기 액션, 혹은 액션으로서의 싸대기에 대해서. 혹시 그건 제 싸대기를 때리고 싶다는 뜻인가요? 나는 묻지 않았다. 마감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 데 그중 하나는 크고작은 피해망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지돈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싸대기는 할리우드에는 없는 한국의 고유한 액션입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순히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계도 나아가 계몽의 수단인 거죠. 정연씨, 모르시겠어요? 뺨을 맞으면 눈 앞에 빛이 번쩍하는 빛이 바로 계몽의 빛이라는 걸! 라이트 오브 엔라이트먼트(Light of enlightenment)! 과거에 싸대기는 부정적인 액션이었습니다.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김광규의 대사, 그리고 이어지는 무자비한 싸대기를 떠올려보세요! 그때 싸대기는 권력의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폭력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것은 참교육이라는 이름의 사이다가 되어버렸죠. < 베테랑 >이 천만 관객을 넘은 건 황정민이 유아인의 뺨을 때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아트박스 사장으로 나오는 마동석을 기억하세요. 황정민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마동석이 싸대기 액션의 대명사가 되어 헐리우드까지 진출한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싸대기는 김치 싸대기 아닌가요? -뭐요? -김치 싸대기요. -그게 뭐죠? -김치 싸대기라고요 지돈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그러니까 미래는 드라마다. 정서경 작가가 각본을 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티저 예고편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짧은 영상을 통해 내가 파악한 바로는 가난하지만 구김살 없이 살아보려는 세 자매 앞에 어느날 700억이 든 가방이 나타나고 가질 것인가 돌려줄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이건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어울리는 시놉시스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의아하다기보다는 더욱 기대가 됐다. 지난 원고에서 정지돈은 맨날 보는 애들만 보면 뭐하냐, 안 볼 사람도 봐야 진짜 예술이지, 그래서 문학은 끝났고 영화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 라는 임재철 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기나긴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역시 이제는 보는 사람만 보는 매체가 되어 가고 있다. N차 관람러들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공허했을 거라는 박찬욱의 말을 떠올려보라. ‘그’ 박찬욱의 영화도 거듭 관람하는 팬들이 아니었으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영화는 거의 보지 않지만, 올해 본 드라마만 해도 벌써 <스물다섯 스물하나>(마지막 두 편은 안 봄),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 <우린폭망했다wecrashed>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모두 더하면 영화를 최소한 40편은 볼 수 있었을 시간이다! 마담 보바리, 그것은 바로 나다, 라고 플로베르는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바로 대중이라고 말해야겠다.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엔 나도 내 취향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내 취향은 정확히 대중적이라는 것을, 다만 남들보다 조금 느릴 뿐. 요즘 내가 즐겨 듣는 노래는 2010년대의 히트곡들이다. 정작 그때는 그게 히트했었는지도 몰랐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 마감 때문에 마음이 소금밭인데 홍대에 갔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영화인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진우 평론가의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특강. 길지 않은 특강이었지만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을 직접 제작하는 사람으로서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좋았다.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의 위상이 너무 애매해서 만들다 보면 차라리 글을 열심히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유튜버가 되거나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같은 부분이… 한국의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의 역사와 현황을 일별하는 와중에 박유정의 <The Futures of Future 1>, 정여름의 <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 같은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작품뿐 아니라 김병규 평론가 같은 분들이 [씨네21] 지면을 통해서 이미지들과 텍스트를 병치시키며 그 자체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대한 스크립트가 될 수 있는 작업을 한 것들을 예로 들며 우리의 ‘한영한사’가 지나가듯 언급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지돈 작가와 금정연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 ‘한국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유일하게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죠. 글쎄요, 영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뭐랄까, 영상화가 되기를 바라지만… 이루어지기는… (크흡) 모르겠습니다…” 오진우 평론가가 최근에 하고 있는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작업도 잠깐 소개했는데, 매일매일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모은 <덧 없는 이미지들>(2022)도 그렇고 아이폰으로 직접 촬영한 영상만으로 만든 <영상자료원 가는 길>(2022)도 그렇고, 다른 영화의 장면들을 직접적인 재료로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 글을 통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엥? 어느 부분이? 라고 되물으신다면… 한국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인용)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출처: 오진우 평론가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inu_montage/222855477268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지돈 씨에게, 우리가 통화한 게 화요일이던가요? 전화를 끊기 전에 제가 그랬죠. 지돈씨 걱정마세요, 10시까지 제가 김쿠만 해설 쓰고 아침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한영한사 원고 써서 보내드릴게요. 그러니까 와, 좋아요, 하더니 이렇게 물었잖아요. 근데 정연씨,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요? 그때도 말했지만 있습니다. 최소한 한 번은, 어쩌면 두 번쯤, 생각을 백 번 했다면 그중에서… 지금은 금요일 아침이고 저는 오늘도 밤을 꼬박 새고 말았네요. 그렇지만 김쿠만 원고에 이어 이렇게 한영한사 원고도 마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저는 무척 대중적인 사람인데 단지 조금 느릴 뿐이라고. 원고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마감을 칼 같이 지키는 사람입니다. 단지 조금 느릴 뿐이죠… 사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지돈씨가 좋아하는, 그리고 저도 좋아하는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을 개봉하는 날이었거든요. 게다가 트위터를 보니(이번 원고에 트위터란 말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정말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아트나인 9관에서 8시에 영화를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모자를 준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무척이나 예쁜 초록색 모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장에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원고를 썼죠.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일선 해설과 정지돈 작가론 두 개만 남았으니까요. 하하. 가끔은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누구도 잘못하진 않았어요. 저도 알아요. 제가 궁금한 건, 그렇다면 왜 저는 매일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가끔은 정말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하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지돈씨 원고의 도입부는 벌써 생각해두었거든요.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에 붙인 나탈리 레제의 서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이에요. 바르트가 죽었을 때 그의 타자기 위에는 스탕달에 대해 진행하던 연구의 원고 한 장이 끼어 있었고, 그 제목은 "인간은 항상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실패한다......"였다. 이만 총총. (*출처: 그린나래 미디어 트위터 https://twitter.com/greennaraemovie )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