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전성시대
- 감독
- 김호선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염복순, 송재호, 최불암, 이순재, 도금봉, 박주아, 윤영, 김기종, 김승남, 김기범, 백송, 임해림, 임성포, 임생출, 김대현, 문일, 김호범, 조영준, 최성종, 최민규, 신재훈, 박예숙, 조학자, 권일정, 이정애, 김애라, 성명순, 김지영, 김승미, 김영애, 김경란, 김인성, 윤주성, 하숙, 최재호, 손전
2010년대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 서사일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남성 서사에 경도되어 영화를 하리라 마음먹었을지 모르는 나조차 이런 생각을 마땅히 한다. 지금 여성 서사는 우리가 마주한 시대정신이다. 2000년대 이른바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이전의 옛날 옛적 20세기에,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 방화(邦畫)를 주로 지배한 장르는 ‘에로’였다. 90년대만 해도 나는 한국 영화란 아무 맥락 없이 여자 옷이나 벗기려고 애쓰는 덧없는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 한국형 착취 장르의 기원에는 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있었고, 그 대중적 효시가 된 한 작품을 오랫동안 원흉으로 생각했다. 나의 이런 편견과 오해가 깨진 것은 미니홈피가 아직 유행하던 시절의 어느 날 밤 EBS에서였다. 영화란 직접 보기 전에 규정하고 떠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70년대의 밤, 아기 업은 엄마를 조용히 뒤따르는 아이의 뒷모습과 연탄 쌓인 여인숙 골목길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김밥을 파는 행상의 구성진 목소리가 주술같이 들리고, 봉고를 두들기는 재즈 퍼커션 사운드트랙이 깔리면, 어느 여인이 골목에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나 허연 눈과 이빨과 손톱을 번뜩이며 귀신처럼 화면에 달려든다. 그리곤 경찰들이 어둔 골목의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끌고 간다. 윤락행위 단속에 걸려 속옷 차림으로 팔다리를 바동거리는 여인들 중에 우리의 주인공이 있다. 볏짚 거적 뒤에 숨었다가 들켜선 “난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에게 경찰은 외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어?” 새빨간 비닐 재킷을 입고 경찰을 향해 관객을 향해 세상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손을 뻗는 그녀의 얼굴 위로 주인공의 이름을 담은 빨간색 제목이 뜬다. ‘이젠 그만 가야지, 이젠 정말 가야지, 날이 새기 전에, 미련 없이, 돌아보지 말고 가야지’ 하는 노래와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가는 이 영화가 바로 < 영자의 전성시대 >( 김호선 , 1975)다. 영자, 영자, 영자.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이름이 한동안 가슴에 사무친다. 월남 파병을 갔다 온 청년 창수( 송재호 )는 간밤의 일제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 갇힌 영자( 염복순 )와 3년 만에 재회한다. 창수는 친오빠인 척 영자를 철창에서 꺼내주고, 영자는 창수에게 혀를 메롱 내밀며 살짝 깨무는 시그니처 표정을 지어준다. 헤어지기 전에 창수는 철공소 노동자 막내였고, 영자는 사장 집에 갓 상경한 어린 식모였다. 현재 시점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둘의 과거 속, 순진무구했던 영자는 비록 식모살이 처지라도 자존감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소녀였다. 반말로 “넌 뭐니? 이름은 뭐니? 고향이 어디니?” 짹짹 물어대는 창수에게 영자는 “서울사람들은 아무한테나 반말하나요?” 하고 받아친다. 창수가 먼저 자기 이름을 밝히고 “나도 시골 놈이야” 고백하고 나서야 영자는 창수 얼굴에 고추장이나 묻혀주며 약간 마음을 연다. 영자가 좋아진 창수는 매번 자기만 꿍해서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묻지만 영자는 창수가 그냥 귀찮다. 입대를 앞두고 3년만 기다려 달라고 매달리며 낑낑 우는 창수에게 영자는 “나는 서울에 돈 벌려 왔지 연애하러 온 게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이도저도 안되면 억지로라도 안아보겠다고 달려드는 창수지만 적어도 영자가 싫다고 하면 곧바로 멈출 줄은 알았다. 그러나 피고용인 여자애가 NO라고 한들 멈출 줄도 모르고 멈출 필요도 없는 사장 아들이 영자를 겁탈하고, 이 일로 되레 영자만 쫓겨나면서 영자의 팔자는 기구한 쪽으로 향한다. 영자의 꿈은 돈을 버는 것, “기술을 배워서 평생 혼자 사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혹한 시대에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려던 영자의 꿈은 이미 진취적이고 주체적이었다. 문제는 기술을 배우려면 우선 돈이 들고, 아직 세상은 기술을 갖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를 비하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아는 언니조차 “여자가 기술 가져봐야 팔자만 드셀 뿐, 그저 제일 좋은 기술은 그럴듯한 놈팡이 하나 골라잡는 것”이라며 영자의 꿈을 무시한다. 봉제공장 일용직으로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며 매일이 고단한 영자는 언니가 집에 남자를 데려오는 날이면 근처 여인숙에 가서 몇 푼을 내고 주인아주머니네 방구석에서 쪽잠을 자야한다. 온종일 재봉틀을 돌려 번 월급은 외상값을 제하고 나자 동전 몇 푼만 달랑 남는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는 황당하리만큼 적었지만, 이때만 해도 영자는 절망하기보단 깔깔 웃었다. 택시를 모는 여성 기사를 보고 운전을 배우리라 마음먹은 영자는 언니를 따라 홀에 나가지만 곧 그만둔다. 언니 말대로 아무리 “돈이 문제”라지만, 아버지뻘 남자들이 추근거리면서 운전 공부를 한다고 하니 집에 가서 밥이나 지으라고 비웃는 곳에 있기 싫다. 그래서 영자는 버스 안내양이 되지만, 매일 콩나물시루 같이 승객들을 미어터지도록 태운 버스에 위태롭게 매달리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왼팔을 잃고 만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잊히질 않는다. 그녀의 팔은 말 그대로 슝―하고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70년대 일본의 ‘도에이 핑키 바이올런스’ 영화 따위나 찾아보며 낄낄거렸던 나는 이 한국영화의 표현주의 앞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영자의 전성시대>의 이 씬보다 더 잔인무도한 신체 절단 장면을 알지 못한다. 기술을 배우려던 젊은 여자에게 세상은 팔을 앗아간 값으로 달랑 30만원 보상금을 내어주며 “너무 비관 말고 용기 있게 살아가라”는 헛소리나 지껄인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언니는 이 돈으로 미장원을 차리자고 바람을 넣지만 영자는 그 돈을 모두 고향의 늙은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보낸다. 자살 시도에 어이없이 실패하고 돌아와서, 없는 팔이 쑤시고 아파 약을 소주에 타 마시는 영자. 그녀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온 최소한의 자존과 존엄을 내려놓는 때는, 고통과 슬픔에 지친 나머지 그가 누구든 사람 품에 따뜻하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여인숙 주인의 은밀한 제안에 결국 응한 영자는 이 가난하고 더러운 골목에서 ‘밀로의 비너스’로 거듭난다. 도시괴담에 나오던 팔 없는 매춘부. 그녀가 바로 영자였다. 전역 후 목욕탕 보일러실 구석에서 숙식하며 세신사로 일하는 창수는 다시 만난 영자를 이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 김씨 아저씨(최불암)는 네 장래나 걱정하라지만, 창수는 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영자의 성병 치료비를 내고 병이 나을 때까지 손님을 안 받고 술도 못 마시도록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그녀를 찾는다. 영자 말대로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이다. 김씨 아저씨의 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창수는 영자와 같이 살 생각이다. 살림 차릴 최소한의 조건인 전세방 구할 돈은 아직 없지만 창수는 손수 의수를 만들어 영자의 빈 팔에 달아준다. 한쪽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숭고하지만, 받는 쪽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의리 때문이라도 이 사랑을 마냥 받기만 할 순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관계도 있지만, 하나 빼기 하나가 0이 되는 관계도 있다”는 김씨 아저씨의 말에 영자는 “마이너스 1”이 아니라 “보태기 1”이 되겠다고 나름대로 발버둥 친다. “두 사람 간신히 같이 끓여먹고 잠 잘 수 있는 방”만이라도 창수 손을 안 빌리고 자기 힘으로 마련하고 싶다. 영자에게 팔 병신 운운하는 녀석에게 주먹을 날린 창수가 구치소에 갇히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기로 한 날. 꼭 오겠다고 한 영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창수도 영자가 왜 안 나타나는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둘이 다시 헤어지기 전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창수가 한밤중 문 열기 전의 목욕탕에 몰래 영자를 불러 씻기고 때를 밀어주는 장면이다. 창수는 “이 때 좀 봐” 하며 영자의 등을 밀고, 창수에게 몸을 내맡긴 영자는 새삼스레 ‘창피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당당하고 창피한 건 없었던 영자는 창수를 만난 이후 이상하게 모든 게 걸핏하면 창피하다. 창수는 영자에게 또 묻는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영자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답하고, 창수는 바라는 대답이 아니라 조금 실망한다. 나는 이 장면을 다시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예의를 발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저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내 옆에서 고단한 숨을 내뱉으며 자는 이 사람이 여자나 남자 따위가 아니라 이 세계를 역시 힘겹게 살아가는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깨닫는 순간이다. 그이와 내가 잠시나마 서로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기적인가. 조선작의 원작 소설에서 영자는 불에 타죽지만, 김승옥이 각색한 시나리오는 영자를 위한 영화 나름의 다른 결말을 마련했다. 비록 그 시절의 한계가 있는 결말이지만 영화적 진실로서 더할 나위가 없고, 나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내가 이 작품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마냥 영화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뿐이지만, 결말만큼은 쓰지 않겠다.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고 하고픈 말들은 너무 많아요’ 마지막 삽입곡의 이 가사처럼, 어떤 이야기는 말이나 글로 전하기엔 한계가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인간을, 여성을 착취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소외시킨 인간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후 이 작품의 대중적 성공을 따라 복제, 재생산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에로 장르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도중에 인간과 여성에 대한 예의를 대놓고 빼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 장르의 영화 속에서도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몇몇 작품들이 오늘날 따로 불리어지기를 바란다. 여성 서사의 기준과 범위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포용될 수 있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자 역할을 한 염복순 배우의 얼굴이 개인적으로 현대 여성의 외모처럼 느껴져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롭다. 그의 얼굴은 (우리가 백치미라고 왜곡하는) 죄가 없는 순백의 표정에서 세상을 향한 환멸까지 변화무쌍하지만, 내내 자신만의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영자의 전성시대>는 한 시대의 중요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영화 속 여성 서사의 역사에 ‘영자’의 이름이 오래 남아 빛나길 바란다. 그리고 2020년대에는 새로운 여성 화자(들)의 진정한 ‘전성시대’가 도래하길. >> 영자의 전성시대 VOD 보러가기 <<
< 꼬방동네 사람들 >은 1982년 5월 개봉하여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흥행 4위에 오른 1) ,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에서 시작하여 < 우묵배미의 사랑 >( 장선우 , 1990)에 이르는, 노동자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소외계층을 포착한 1980년대 영화의 계보에 놓인다. (2) 그리고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원세 , 1981), < 어둠의 자식들 >(이장호, 1981)과 함께 1980년대 초 도시 빈민을 다룬 ‘사회물’ 또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초는 시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신군부 정권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동안 규제되어 왔던 컬러TV방송을 허가하고, 스포츠와 문화 육성을 표방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편 시기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불황에 빠진 영화산업은 컬러TV방송으로 인해 한층 더 수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분명히 1970년대와는 다른 시대의 기운이 저류하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기의 영화 검열 제도가 온존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는 돌파구를 모색한다. 이때,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중검열 속에서, 용공 또는 외국에 보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가난’이 적극적으로 재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6년부터 발이 묶였다가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 이장호 감독이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그러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창호는 바로 이 두 영화의 조감독이었고, <어둠의 자식들>의 원안자였던 이동철(본명 이철용)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수기 붐에 이어 1980년대 초에는 도시 빈민의 삶이 그 계층 출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서술되는 책이 주목을 받는다. 1980년에 이동철이 구술하고 황석영이 정리하여 출판한 『어둠의 자식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에는 아예 이동철 작(作)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는데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세를 몰아 1982년에는 『오과부』가 출간되었고, 이는 < 과부춤 >(이장호, 1983)의 원작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에 대중이 귀기울이고, 영화가 그것을 재현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짧은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원작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을 각색한 것이다. ‘검은 장갑’은 손에 흉터가 있어서 검은 장갑을 끼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명숙이라는 기구한 여자의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어쩌다 보니 ‘두 서방’을 갖게 된 이 여자의 사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여러 일화 중 이 스토리를 전경화시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후경에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명숙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드라마로 장편화했다. 명숙( 김보연 )은 십대에 김주석( 안성기 )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가 일반적인 회사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주석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구속되고 명숙은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수감되기도 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면서 주석의 전과가 느는 동안 명숙은 지쳐간다. 그리고 주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 후 꼬방동네에 자리 잡은 명숙은 강태섭( 김희라 )이라는 건달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반찬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출감 후에 택시운전사가 된 주석이 우연히 명숙을 발견하여 찾아온다. 그는 명숙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안 된다면 아들만이라도 달라고 조른다. 태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숙을 가운데 둔 두 남자의 갈등이 격화한다. 결국 태섭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주석을 찾아가 명숙을 부탁하는 것으로 갈등은 봉합된다. 혈연과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기대하는 무난한 결말이었을 것이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시종일관 흐르는 민중 신학의 가르침과 맞물리며 도덕성을 확보한다. 태섭에게 살인죄를 부과하여 자수하게 하는 것이나 주석이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여기에는 이미 각색자의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으며 결말이 예비된다. 명숙은 주석과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태섭의 속죄 여부다. 태섭이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체포되어 간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결말로서는 안 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를 속죄케 하고 공소시효가 이틀 남은 시점에서 자수하게 만든다. 이는 마지막에 길게 삽입되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공목사( 송재호 )의 설교에 맞닿는 것이다. 공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술에 절어 살던 ‘길자’( 김형자 )가 개과천선하여 흰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것 또한 태섭의 행동과 동궤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비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빈민 계층을 연민과 계도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도덕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1960년대 초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초였다. 전자의 경우 근대적 가부장 질서와 손잡으며 공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면, 후자에서는 민주적 저항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 그러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해로운 이상을 품었던 영화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나 도덕성이 이 영화에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활력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명숙이다. 당시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주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꿋꿋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옥바라지가 힘겨워지자 주석을 찾아가 사랑하지만 지쳤다며 떠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명숙이 주석에게 이별을 통보한 날 김영동의 ‘조각배’가 깔리는 가운데 아이를 들쳐 업고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절절하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우선 명숙의 신산한 처지에 기인하나, 그것이 보다 핍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 행동에 배어있는 주체적 배려와 진정성에 있다. 결말부에 이르면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오롯하게 드러나며 영화의 압권을 이룬다. 그녀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석에게 일갈한다. “정말 당신네 남자들 왜 이러는 거예요? 내 아일 가지고 무슨 권리로 당신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태섭에 의해 남편을 잃고 ‘팔자가 꼬여’ 아비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여인에게 명숙은 반찬가게 판 돈을 내어준다. 일견 명숙이 태섭을 대신해 속죄하는 듯하지만 결코 관습적인 속죄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녀의 행동은 소외계층의 연대이자 여성의 연대로까지 의미화될 만한 결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영화가 당시 다른 영화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역할 또한 주목을 요한다. 공옥진 씨의 춤과 노래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공동체의 활력을 추동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마을의 소문을 실어 나르고 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는 ‘짹짹이 아줌마’를 연기하여 영화 서사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모자라 보이고, 주책없으며, 오지랖 넓어서 갈등을 조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했던 소외계층의 표상이다. 가난과 빈민이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빈민운동이 조직화되는 1987년 이후에는 오히려 점차 사라져 간다. 서울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매매 업소들이 폐업되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업적 극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빈민의 모습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도시에서 은닉되며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이 ‘가난’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 행정적 검열이 아닌 자본의 검열이 도시 빈민의 재현을 배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을 포착하고 문제 삼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주로 담당해왔다. < 상계동 올림픽 >( 김동원 , 1988)부터 < 공동정범 >( 김일란 · 이혁상 , 2016)에 이르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1) 「통계로 본 올해의 영화가」, 『동아일보』, 1982.12.15.,12면. 2) 이용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2015, 138-139면. 3) 「‘꼬방동네 사람들’, 전국서점 현지조사 베스트셀러 1위」, 『경향신문』, 1981.9.24.,12면. >> 꼬방동네 사람들 VOD 보러가기 <<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봉준호 | 원작: 김광림 | 각본: 봉준호, 심성보 | 제작: 차승재 | 촬영: 김형구 | 프로덕션 디자이너: 류성희 | 음악: 타로 이와시로 CAST 박두만: 송강호 | 서태윤: 김상경 | 조용구: 김뢰하 | 신 반장: 송재호 | 구 반장: 변희봉 | 권귀옥: 고서희 | 박현규: 박해일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해는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2003년을 꼽고 싶습니다. 1999년 < 쉬리 >( 강제규 ) 이후 이른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한 한국영화는 2003년에 놀라운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 일단 2003년에 나온 한국영화 주요작 리스트를 살펴보겠습니다. < 동갑내기 과외하기 >( 김경형 ) < 싱글즈 >( 권칠인 ) < 바람난 가족 >( 임상수 ) < 선생 김봉두 >( 장규성 )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 실미도 >( 강우석 ) < 오! 브라더스 >( 김용화 ) < 올드보이 >( 박찬욱 ) < 장화, 홍련 >( 김지운 ) < 지구를 지켜라! >( 장준환 ) < 클래식 >( 곽재용 ) < 황산벌 >( 이준익 )… 코미디, 로맨스, 호러, 스릴러, 드라마, 사극, 멜로 등 거의 모든 장르가 흥행작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 살인의 추억 >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현장 공개는 2002년 10월에 있었습니다. 해남 땅끝 마을이었는데요, 영화에선 30초 조금 넘게 나오는 단 두 컷을 위해 수십 명의 제작진이 그 먼 곳까지 간 거였죠. 취재진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서 모여서 현장까지 가는 데 5시간 가까이 걸렸던 걸로 기억 납니다. <살인의 추억>은 촬영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는데요, 그 중 ‘끝판왕’이 바로 땅끝 마을 촬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 취재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서울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넘었던걸로 기억납니다. 먼 길을 가긴 했지만, 공개된 장면은 간단합니다. 서태윤(김상경)은 갈대밭에 사체가 있을 거로 예측합니다.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그래서 대규모 수색을 벌이지만,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는 길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실뜨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서태윤과 박두만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간단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슈퍼크레인을 사용한 이 장면의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컷을 끊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 안에 그 모든 상황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감독들에게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현장에서 봉준호 감독은 마치 친절한 선생님 같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범죄영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마도 데뷔작인 < 플란다스의 개 >(2000)부터 시작됐을 텐데요, <살인의 추억>에 대해선 “1980년대를 재현하되 기억에 의존한 묘사가 되기를, 그래서 현재와의 거리감은 더 증폭되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의 든든한 베테랑,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기사입니다. 두 분의 파트너십은 김성수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는데요. 단편 < 비명도시 >(1993)부터 시작해 < 비트 >(1997) < 태양은 없다 >(2000) < 무사 >(2001) < 영어완전정복 >(2003)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 괴물 >도 두 장인의 콜라보였고요. < 아름다운 시절 >( 이광모 , 1998) < 박하사탕 >( 이창동 , 2000) < 봄날은 간다 >( 허진호 , 2001) < 역도산 >( 송해성 , 2004) 등도 김형구-이강산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강산 조명기사는 2006년 52세의 젊은 나이에, <괴물>을 유작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인의 추억> 현장엔 외국인 스태프가 있었습니다. 조명부의 무라치 히데키 씨는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허진호)를 보고 한국영화에 매료되었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살인의 추억> 현장까지 이르렀습니다. 실뜨기는 원래 시나리오엔 없었던 부분인데, 촬영 당일 아침 봉준호 감독이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틈나는 대로 실뜨기를 연습했는데요, 여기엔 김상경도 가세해 선배 김뢰하에게 실뜨기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날 김형구 촬영감독은 거의 온종일 크레인 위에 있어야 했습니다. 유려한 카메라로 갈대밭을 훑어 내려가는 컨셉트 때문이었죠. 한편 키 큰 갈대밭 때문에 슬레이트 치는 게 쉽지 않았는데요, 갈대밭 높이 때문에 전경으로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175cm가 넘는 사람들로만 동원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엔 당시의 물건들이 꼼꼼하게 등장합니다. 경찰차는 대우 맵시 차종입니다. 그리고 전경 버스 내부의 모습입니다. 새삼 놀라운 건, <살인의 추억>은 김상경의 ‘겨우’ 두 번째 영화라는 점이죠. 첫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 생활의 발견 >(2002)이었는데요, <살인의 추억>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홍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김상경에게 봉준호 감독 한번 만나 보라며 “<살인의 추억>이 네 두 번째 영화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영화에선 송강호가 선배 형사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김뢰하가 선배입니다. 한편 이날 촬영 때 김뢰하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요, 실뜨기 장면을 잘 보시면 조용구 형사가 사탕을 먹고 있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계속 당을 섭취해야 했던 김뢰하의 몸 상태 때문에 만들어낸 영화적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늦가을은 꽤 일찍 해가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아직 촬영 분량이 남았는데, 서서히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갈대밭 쪽에서 뭔가 찾았다는 고함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립니다. 실뜨기를 하던 두 사람은 일어서서 그쪽을 바라봅니다. 또 한 명의 희생자, 독고현순의 발견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