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 감독
- 월터 랭
- 제작년도
- 1954
- 출연
- 마릴린 먼로, 에델 머먼, 도날드 오코너, 댄 데일리, 밋지 게이너
홀로코스트 영화는 윤리적 재현과 관련해 오랫동안 아방가르드의 위치를 점해왔다. 미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던져졌고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이에 자의적, 타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절멸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구체적으로 시청각화 하는 것은 어떠한 효과를 낳는가, 인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서사화할 수 있는가, 목격자가 없거나 말하기 힘든 경우 (예를 들면, 가스실) 증언과 기억은 어떻게 기록될 수 있는가, 과거는 어떻게 현재와 대화를 나누고 기억을 상속할 수 있는가, 트라우마의 고통 속에 놓인 생존자들의 증언은 어떠한 형식으로 가능한가, 관객들의 동일시와 공감은 어떤 강도로 이끌어 내는 것이 적절한가, 피해자·가해자·조력자·제삼의 목격자 들 중 어떤 시점을 선택할 것인가 등. < 밤과 안개 >(알랭 레네, 1955), <카포>(질로 폰테코르보, 1960), < 소피의 선택 >(알란 J. 파큘라, 1982), < 쇼아 >(클로드 란츠만, 1985), < 쉰들러 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1993), <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 1997), < 사울의 아들 >(라즐로 네메스, 2015), < 조조 래빗 >(타이카 와이티티, 2019) 같은 대표적 작품들을 거쳐 오며 각 질문과 관련해 새로운 미학적 선택이 쟁점화 되었고 역사적으로 홀로코스트 영화는 이전 영화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 새로운 영화적이고 윤리적인 미학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홀로코스트 영화들에는 있을 수밖에 없다. 관객들 또한 이전 영화와 관련된 쟁점을 인식하고 그에 근거해 영화를 보게 된다. 따라서 모든 홀로코스트 영화는 내외적으로 이전의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매개하고 참조하는 미디어 고고학적 상태에 놓인다.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조나선 글레이저가 감독한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역시 그러한 강박 속에 놓여있다. 영화는 새로운 위치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시각화 한다. 이제까지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수용소 및 피해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시화하는 선택을 했다면(평화로운 전원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기념관이 된 전후의 수용소를 보여준 <밤과 안개>, 방관자였던 폴란드 주민들의 변명을 듣고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화면에 담는 <쇼아>, 흐릿한 포커스 아웃과 좁은 주관적 시야의 제한적인 시각을 통해 목격의 의지를 영화화 했던 <사울의 아들>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 글레이저 감독은 수용소가 아닌, 수용소 소장의 사택과 가정생활을 탐색한다.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 소장인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앙 프리에델)는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 높은 담장 밖 바로 옆에 위치한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루돌프 회스는 아내인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그리고 다섯 아이들과 함께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있는 다정다감한 가장이다. 루돌프는 큰 아들에게 직접 승마를 가르쳐주고 잠 못 들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막내딸에겐 <헨델과 그레텔> 동화를 읽어준다. 그는 아내에겐 책임감 있고 유머러스한 남편이기도 하다. 헤트비히 역시 집안을 건사하고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열정적이다. 전쟁 기간 동안 계급적 상승을 이뤄낸 회스 부부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어낸 것에 큰 자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수용소가 아닌 사택과 그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만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화장터 굴뚝의 연기와 냄새,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오는 재를 막을 수는 없다. 영화의 제목인 ‘관심/이익 지역’은 나치에 의해 몰수된 수용소 주변 토지를 일컫는다. 이들은 이 지역을 사택으로 사용하는 등 경제적 이익(interest)을 취했다. 이 영화에서 수영장과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한껏 꾸며진 사택은 그 경제적 이득, 시각적 관심이 된다. 어떤 이미지의 관심 혹은 이익은 다른 이미지의 무관심/피해를 대가로 한다. 회스 부부는 바깥과 타자를 절멸시킨다. 가해자 가족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은 수용소에 대한 철저하고 적극적이며 의식적인 무관심 혹은 비가시성과 교환된다. 이것이야말로 이미지의 정치경제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가해자 일인이 아닌 그의 가족생활을 다루는 실내극이라는 점에서 이전에 가해자들을 주인공으로 했던 다른 영화들과도 변별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젠더의 정치학이 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 절멸 계획을 짜고 지휘한 루돌프 회스 만큼이나 그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를 주인공의 자리에 놓고 그녀의 선택과 행동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가족극, 혹은 < 잔느 딜망 >(샹탈 아커만, 1976) 같은 페미니스트 예술영화들이 실내 건축학을 통해 가족의 정치경제학을 영화적으로 전경화 했던 것처럼 집안과 그에 딸린 목가적 풍경,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의 동선이 끊임없이 시각적이고 경제적인 관심/이익의 교환체계에 놓여있음을 각인시킨다. 헤트비히는 루돌프에게 수동적으로 딸려 있는 부수적 이해관계자가 아니다. 헤트비히는 수용소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모른 척하고 무관심한 채 유태인들의 죽음을 대가로 자신의 가족의 이익을 선택한다. 루돌프가 집안 거실에 앉아 가스실과 화장터 건축과 운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어낼지, 즉 어떻게 사람들을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이 살해할지에 대한 계획을 사업체로부터 듣고 논의할 때, 그리고 지상에서는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지하에는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줄 때, 가족의 단란함을 포함해 중상층 가족이라는 계급적 유지가 근본적으로 집단학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행위와 결과로부터 그들 자신을 분리하려 한다. 루돌프의 청결에 대한 강박, 매일 밤 모든 방의 전등을 끄고 문단속을 하는 반복 일상, 외화면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화면 안을 가득 차게 보여주는 정원의 꽃의 클로즈업 쇼트들, 침대에 누워 부부가 함께 회상하는 이탈리아 휴가, 유태인 수용수의 모피코트 주머니 속 립스틱까지 꼼꼼하게 챙기면서 유태인들의 유품이 쌓여있는 장소를 ‘캐나다’로 부르는 철저함, 정원의 꽃 이름, 주변 숲의 새 이름을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기억하게 하기 등. 신체, 시각, 언어, 사유의 차원 모두에서 깔끔하게 집단학살을 분리해 내려 한다. 하지만 헤트비히와 카메라의 보지 않으려는 회피, 혹은 적극적 무관심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음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디테일, 안락과 아름다움은 학살에 기반 한다. 화장된 피해자들의 뼛가루로 키워낸 탐스러운 꽃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완벽한 무관심, 외면은 불가능하다. 앎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앎은 신체적이고 환경적이다. 소리, 빛, 냄새, 물의 흐름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대사들은 종종 J 또는 L 컷으로 편집된다. 앞 쇼트의 대사는 뒷 쇼트로 흘러넘치고, 뒷 쇼트의 대사는 앞 쇼트에 선재한다. 복도, 창, 문, 하늘, 강은 거부할 수 없는 신체적 앎이 통제를 벗어나 흘러 다니는 통로이다. 헤트비히는 일을 하느라 자신과 독일 장교 부인들의 앞을 지나가고 창 밖에서 일하고 있는 유태인 하녀와 하인들을 무시한다. 이들은 쇼트와 쇼트, 프레임 안과 밖을 사운드와 함께 넘나든다. 독일 장교 부인들이 유태인의 소지품을 어떻게 나눠가졌는지, 그들이 어떻게 끌려갔는지에 대한 농담을 하는 부인들의 대화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창과 문 너머로 집 안에서 일하는 유태인들의 몸에 흘러 들어간다. 동시에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또한 막지 못한다. 잠시 머물다 간 헤트비히의 엄마, 유태인 하녀들, 그리고 딸까지 모두 그 소리를 듣지만 회스 부부는 적극적으로 듣지 않는다. 관심지역은 적극적 무관심 지역을 통해 만들어 진다. 이 영화는 신체적 앎 그리고 알면서도 행하는 악의 적극성이 어떻게 회스 부부에게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글레이저 감독이 마지막에 루돌프 회스의 구역질 장면을 넣은 것도 이 신체적 앎에 근거한다. 그들은 알면서도 행한 것이다. 당연히 이 앎은 반성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와 적극적 무관심으로 이른다. 사진: "Jon obeu inteoreseuto", IMDb ( 좌 , 우 ) 홀로코스트 이후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집단학살과 관련된 예술에 있어 주요한 윤리적 테제 중 하나로 언급되어 왔다. 가해 집단이 피해자와 동일한 인간 종에 속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일이 일어난 이후 어떻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글레이저는 여기서 이 지침을 한번 뒤집는다. 그렇다면 절멸이 일어나고 있는 중에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혹은 정말로 서정시를 쓰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헤트비히의 정원에는 꽃 하나하나 벌레 먹지 않고 탐스럽게 피어 있다. 영화의 대부분에서는 카메라가 거리를 두고 건조한 관찰의 태도를 취하지만 헤트비히가 키워낸 꽃만은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의 관습적 연출을 보듯 탐스럽게 클로즈업으로 정성들여 포착한다. 그것의 즉각적 아름다움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평화로운’ 집 주변의 목가적 풍경처럼 말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곧 그 클로즈업 바깥에서 꽃의 비료로 쓰이는 것이 소각장에서 태워진 분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프레임 바깥과 내부는 끊임없이 교환되고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루돌프가 다정한 아버지로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바깥에서 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집단학살의 꼼꼼한 계획, 유태인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행하고 있는 루돌프는 끔찍하게도 가정적인 부성을 동시에 수행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의 부성은 가해 행위 위에 기반해 있다. 그러면 시와 노래는 어디서 가능한가? 글레이저는 수용수들을 돕기 위해 사과를 노역장에 몰래 숨겨놓는 폴란드 소녀를 적외선 카메라로 애써 보여주며 증명하려 한다. 소녀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보려는 태도는 흐릿한 쿠키더미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나 혹은 우리의 관심/이익 영역이 아닌 바깥을 보려는 태도,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닌 다른 가치를 돌보려는 태도, 타자의 존재는 교환할 수 없거나 나눌 수 없음을 인지하는 태도, 내장지각에 가까운 신체적 앎을 회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태도, 실내와 목가가 얼마나 정치경제적인지를 인식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더 중요하게는 글레이저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소감에서도 밝혔듯이 오늘날 시가 가능하려면 이스라엘 혹은 홀로코스트 바깥을 봐야 한다. 가자지구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또 다른 민족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며 가해자고 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팔레스타인의 이미지가 더 필요하다. 사진: " Jon obeu inteoreseuto ", IMDb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 폭스트롯Foxtrot >(사무엘 마오즈, 2017)을 보자마자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 재빨리 추가했다. 이스라엘 감독 사무엘 마오즈의 두번째 장편영화인 이 작품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으로, 2018년 만날 수 있었던 가장 독창적이고 유려하며 감각적인 작품 중 하나였다. 국내에서 다시 볼 기회가 요원한 것 같아 아쉽지만, <폭스트롯>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한 관객이라면 웹상에 공개된 2분가량의 예고편( 유튜브 바로보기 )을 보길 권한다. 파트너 대신 총을 얼싸안고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군인이나, 무장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한 마리의 낙타가 유유자적 통과하는 장면만 보아도 이 영화가 한 프레임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 다층적인 맥락을 짐작할 수는 있을 듯하다. <폭스트롯>에서 일상과 폭력과 유머는 장면마다 뒤엉켜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종종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난감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슬픔과 무력감으로 전환된다. 이스라엘 사회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유려한 내러티브와 독창적인 비주얼을 통해 구현하던 <폭스트롯>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비극의 연대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작품의 스케일을 확장한다. 예상치 못한 우회로를 경유해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러나 출발지에서 무엇을 상상했든 목적지에서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영화. <폭스트롯>은 그런 연유로 마음이 가는 작품이다. 세 갈래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폭스트롯>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영화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는 많은 부분을 빈칸으로 비워두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그 빈칸을 채워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건의 전말과 인물의 속마음이 공개되는 세 번째 파트에 가서야 관객은 퍼즐을 완성할 수 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텐션을 잃지 않는 연출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폭스트롯>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텔 아비브에 사는 부르주아 부부, 미카엘과 다프나로부터 출발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극이 그들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군대에서 복무 중이던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부부는 크게 상심하지만, 신속하고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장례 절차는 그들에게 아들을 애도할 최소한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부부의 집을 찾아온 군인들은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카엘과 다프나의 아들 요나단이 근무하는 이스라엘 북부의 국경을 배경으로 한다. 인적 없는 국경에서 요나단과 동료들이 하는 일이라곤 이따금 초소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는 것이다. 전시 중의 국경이라기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볼품없는 요나단의 초소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총격 사고로 지옥이 된다. 세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다시 미카엘과 다프나 부부가 등장한다. 서먹해져 버린 그들의 관계는 영화의 초반부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이면서도 서글프다. 사무엘 마오즈는 외상을 입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그건 아마도 전쟁의 후유증을 크게 앓았던 그의 과거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마오즈는 1982년 레바논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이스라엘의 여느 청년들처럼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죽였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청년이었던 그는 전쟁에서 살아온 뒤로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모티브로 한 영화 < 레바논Lebanon >(2009)(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을 만들었다. 대부분 장면을 밀폐된 탱크 안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오직 포수(사무엘 마오즈 자신이 포수였다고 한다)의 스코프를 통해 탱크 밖 세계를 조명하며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이라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겠습니까?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관객이 세계를 보는 도구인 스코프는 <레바논>에서 한 치 앞 운명을 알지 못하는 군인들이 느꼈을 노이로제와 공포감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전작에 비해 내러티브와 공간의 폭이 확장된 두 번째 장편영화, <폭스트롯>에서도 역시 사무엘 마오즈는 챕터(편의상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에 따라 달라지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심리 상태에 조응하는 시각적 표현 기법을 명민한 감각으로 취사 선택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챕터가 묘사하는 아버지 미카엘의 세계는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로 단정하고 억압되어 있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며 자학할지언정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목놓아 울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부모 세대를 둔 덕분이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미카엘의 부모 세대는 자녀로 하여금 그들의 아픔이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법을 가르쳤다. 아들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미카엘과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만으로 관객은 세대 간의 불발되는 소통과 그로부터 작동되었을 미카엘의 방어기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카엘과 달리 요나단의 세계는 지나치게 환상적인 필치로 묘사된다. 파스텔톤의 하늘과 황량한 벌판에 울려 퍼지는 낭만적인 재즈 넘버, 물 위에 비치는 군인들의 댄스 장면은 요나단의 세계를 전시 중의 국경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장소처럼 묘사하고 있다. 요나단과 세 명의 젊은 군인들은 지나치게 나이브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총을 껴안고 춤을 추는 그들은 스스로를 온라인 사격 게임 속 스나이퍼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총을 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고, 상처를 받을 일도 없는. 그러나 분명한 경고의 신호조차 감지하지 못한 그들은 환상에 젖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폭스트롯’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원래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특성을 가진 춤의 이름이다. 사무엘 마오즈는 결말에 해당하는 영화의 세,번째 챕터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듯 보였던 아버지와 아들이 실은 같은 춤을 다른 방식으로 추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건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죄의식이다. 마오즈는 극 중 요나단이 만화로 그린 미카엘과 요나단 자신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삽입함으로써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이스라엘인들의 트라우마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운명의 작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으로 운명에 부딪혀보려는 인간의 의지가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폭스트롯>의 세 번째 챕터는 그리스 비극을 닮았다. 그동안 이스라엘 사회가 직면한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폭스트롯>처럼 잔인함을 전시하지 않고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며 다층적인 맥락과 독창적인 시각으로 비극의 연대기를 탐구하는 작품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 마오즈의 <폭스트롯>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폭스트롯>은 지난해 이스라엘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실수로 아랍 청년들을 죽인 뒤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극 중 장면 때문인데, 이스라엘 문화부 장관인 미리 레제브가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군대를 부정하며 젊은 세대를 선동하고 있다"며 영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좌파 진영에서는 이 영화가 전쟁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며 ’점령의 미학’을 선보이는 영화라고 비난했다. 어찌 되었건 이 영화는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이스라엘인들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끓게 만든 것 같다. 과거의 아픔을 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사무엘 마오즈의 <폭스트롯>은 지금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스라엘 영화다. < 쇼아Shoah >(1985)의 감독 클로드 란즈만이 세상을 떠난 2018년, <폭스트롯>을 만난 건 정말이지 의미심장한 우연이었다.
아마 긴 이야기를 할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단순하게 말할 생각이다. 이미 오랜전부터 왕빙은 < 사령혼: 죽은 넋(Dead souls) >(2018)을 찍고 있었지만 그걸 알게 된 것은 작년이었다. < 팡슈잉(Mrs. Fang) >(2017)이 작년 부산영화제에 초대되었지만 왕빙은 오지 않았다. 대신 그 영화의 프로듀서와 만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내게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이 약간 주변을 둘러본 다음 조심스럽게 지금 왕빙이 파리에서 다음 영화를 편집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다음 짧게 질문했다. 왕빙의 유일한 극영화인 < 자볜거 우(The ditch) >(2010)를 보셨지요?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에 <바람과 모래>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왜 이런 제목을 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물론이지요. 그러자 대답했다. 지금 거기서, 자볜거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두 개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 나는 새 영화가 아마도 왕빙의 두 번째 영화 < 허펑밍; 중국 여인의 연대기 (Fengming, a Chinese memoir) >(2007)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어느 눈 내린 겨울날, DV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왕빙은 허펑밍 할머니를 찾아간다. 그리고 요청한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그러면 허펑밍은 그녀가 17살이었던 1949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화면자료도 없고, 어떤 설명도 없으며, 어떤 자막도 없고, 어떤 움직임도 없다, 카메라는 멈추어 섰고, 왕빙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 그저 듣는다. 이 전례 없는 청취(聽取)의 방법론. 그저 한참을 듣다가 지나치게 방 안이 어두워지자 죄송하지만 불을 켜도 될까요, 가 전부이다. 그렇게 3시간 8분 동안 고작 6개의 쇼트만으로 이루어진 영화. 왕빙은 자기가 듣기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면 어떤 실용적인 방법도 거절할 것이며, 경제적인 선택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항상 그렇게 찍었다. 다른 하나. 왕빙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의 집은 집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무 것도 없었다. 침대와 아주 간단한 취사도구, 몇 권의 책. 편집을 위한 컴퓨터 모니터 두 대. 마치 창고처럼 쌓아 올려진 (아마도 이제까지 촬영된 여러 영화의) 테이프들. 아주 간소한 책장. 그게 전부였다. 그때 내 눈길을 끈 것은 한 권의 책과 네 장의 DVD였다. 그 책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쓴 영화론인 『시간 안에서 조각하기(Sculpting in Time)』, 우리말로 『봉인된 시간』이라고 번역된 그 책의 중국어판이었다. 그리고 DVD는 클로드 란츠만의 < 쇼아(Shoah) >(1985)였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유대인들, 그리고 그들을 감시했던 나치 SS대원들, 그들을 바라보았던 사람들, 어떤 화면자료도 없이 그들의 인터뷰만으로 진행되는 증언의 영화. 나는 DVD를 보면서 이미 내가 본 <허펑밍; 중국 여인의 연대기>의 참고가 되었던 영화였구나, 라고 멋대로 짐작했다. 프로듀서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약간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러면 왕빙의 새 영화는 21세기의 <쇼아>가 될까요? 그녀가 대답했다.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사령혼: 죽은 넋>을 영화 안에서만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상영 시간 8시간 27분. 이따금 왕빙은 자볜거우에 가까이 자리한 밍수이의 풍경을 찍지만 거듭 되풀이해서 인터뷰한다. 모두 15명 혹은 16명. 이건 대답을 한 사람. 혹은 거절한 사람. 그 곁에 있었던 사람. 그들을 어떻게 셈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다. 왕빙은 방법론적으로 단순하게 찍었다. 인터뷰하고 그들은 대답한다. 그게 전부이다. 화면자료도 없고, 다른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으며, 그걸 설명하는 목소리(voice_over_narration)도 없고, 왕빙이 가끔 질문을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누군가는 아마 이걸 본 다음 대답하는 육체를 찍었다고 근사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이 영화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왕빙은 이 영화를 하나의 미학으로 찍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대상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할 지 모르겠다. 그런 설명만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더 난처한 것은 왕빙이 그들의 배경에 대해서 영화가 시작하면 그저 단 세줄, “1957년 중국 정부는 반(反)정부적이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반우파(反右派) 운동을 벌였다. 5만 5천명에서 13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었으며,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1957년에서 1958년 사이, 약 3,200명의 극우분자들이 노동을 통한 사상재교육을 받기 위해 간쑤성 고비사막 근처의 자볜거우 농장수용소로 보내졌다”라고 상황을 설명한 게 전부이다. 물론 중국 근대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진행된 대약진의 시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사령혼: 죽은 넋>은 그 지식을, 그 배경의 이해를, 그 상황의 설명을, 그 역사의 전개 과정에 관한 앎을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영화이다. 마치 <쇼아>를 보기 전에 아우슈비츠의 역사를, 그 역사를 둘러싼 역사학자들의 논쟁을, 그 논쟁 속에서 아우슈비츠가 다루어진 방식을, 그 방식 속에서 모든 것의 망각을 목표로 한 저 소각의 무자비한 시도와 그 안에서 실낱같은 생명을 유일한 증거로 들고 간신히, 가까스로, 겨우, 거의 부서져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의 맥락을 근거로 한 이의제기를 이해해야 하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러므로 <사령혼: 죽은 넋>의 첫 장면이 시작하기 전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55년 가을. 마오쩌둥은 중국이 사회주의 블록 안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할 필요를 느꼈다. 그건 단지 (이제는 러시아가 된) 소비에트와의 사회주의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마오쩌둥은 국공내전이 끝난 상태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혁명 동지들이 이제부터는 정치적인 정적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지도력을 한편으로는 인민들에게 증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치적인 경쟁자들을 굴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공산당 내 서열을 정해졌지만, 그는 그들이 종종 도전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농촌의 집산화 운동을 시작하면서 한편으로 철강 증산을 요구하였다. ‘사회주의의 물결을 높이 끌어올리자(社會主義高潮)’는 구호 아래 (훗날 불리게 된) 소약진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당내에서 저우언라이를 중심으로 1956년 봄 이 운동은 기근을 초래했으며 지나치게 목표를 높이 잡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전개되었다. 마오쩌둥은 이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1957년 2월 마오쩌둥은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마치 자아비판을 하듯이 “인민 내부의 모순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하여” 이제 인민들로부터의 비판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은 덩샤오핑이었다. 하지만 그도 이 숙청이 이렇게 대규모로 전개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당을 비판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말하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言者無罪)‘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침묵하였지만, 곧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마오쩌둥은 기다렸다. 1957년 6월, 인민일보에 우파보수주의자들이 혁명을 위협한다는 사설이 실렸다. 마오쩌둥은 우파분자들의 색출작업을 자신의 계획을 눈치 챈 덩샤오핑에게 맡겼다. 한편으로 마오쩌둥은 그 과정에서 당내 경쟁자들 사이의 분열을 가져왔다. 그들에게 당내 2인자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유도했으며, 공산당 내 유물변증법의 최고 이론가였던 류소치는 저우언라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은 당내 투쟁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인민들에게 대약진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1957년 겨울, 중국 전역에서 마을마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마오쩌둥의 교시에 따라 우피분자 색출에 나섰으며, 그들은 밤마다 자아비판을 요구했고, 낮에는 경제개혁 운동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유물론의 기초를 잠시 잊었다. 그들은 토대를 미처 마련하지 않았고, 개혁 운동은 전 국토의 파괴를 가져왔다. 농지의 파괴와 공장의 폐수와 공해, 그리고 제방이 무너지고 쥐 떼와 메뚜기 떼가 휩쓸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기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경제개혁 운동이 강행되었다. 마오쩌둥은 대답했다. “인민 절반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나머지 절반은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도둑이 들끓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대답은 간단했다. 더 강력하게 개혁 운동을 진행하고, 반대하는 우파분자들을 가차 없이 숙청하라. 여기저기 강제노동수용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의 하나가 간쑤성 고비사막에 자리 잡은 자볜거우 강제노동 수용소이다. 상황에 대한 간단한 통계자료를 제시하겠다. 1957년 12월에 자볜거우 강제노동 수용소에 첫 재소자 2,300명이 도착했다. 1960년 9월, 일부 재소자를 다른 노동수용소에 옮길 때 이미 이 중 1,000명 이상이 죽었다. 간쑤성 전체에서 12월 한 달 동안에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약 4천 명이 수용소에서 죽었다. 6월에 8만 2천 명이었던 재소자는 반년 사이에 7만 2천 명으로 줄었다. 이 시기를 연구한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1958년에서 1962년까지 대약진 기간 동안 중국 전역에서 약 4,500만 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시기에 자행된 파괴의 규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체의 파괴 규모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게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비로소 첫 장면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왕빙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이 노인들은 거기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면 왜 그 사람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해졌는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중국 공산당 11기 6중 전회에서 문화혁명의 과오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대약진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공산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것은 이 시기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이 시기를 찍은 영화는 온통 찬양뿐이며, 선전 프로파간다이며, 살아남은 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중이다. 심지어 촬영 중에 누군가는 병석에 누워있으며, 누군가는 아직도 말을 꺼내 들기를 두려워한다. 대답하는 그들이 누구이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역사로부터 버려진 삶.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삶. 그들이 모두 죽으면 역사는 함께 땅속에 묻힐 것이다. 왕빙은 살아남은 자들의 말, 그 말의 실존을 영화에 남겨놓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임무라고 받아들인다. <사령혼: 죽은 넋>은 거기서 시작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미처 찍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몫이 아니다. <사령혼: 죽은 넋>은 미처 찍지 못했던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서 악착같이 찍고 또 찍은 영화이다. 나는 여기서 영화가 해야 할 일을 본다. 말 그대로 영화의 윤리.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마 긴 이야기를 할 자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