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
- 감독
- 신석호
- 제작년도
- 2020
전지적 독자시점 포스터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에 대한 리뷰는 세 파트 1 로 나누어서 쓰였습니다. 1. 스포일러 2 없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2.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3.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있는 평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지 참고하려고 이 글을 클릭했다면 아래 1. 부분만 읽으면 됩니다. 2.와 3.은 각자가 목적에 맞추어 필요한 경우에 참고하면 됩니다. 아래 3. 부분에는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에 더하여 웹소설과 영화 매체 자체에 대한 논의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글 시작합니다. 1. 스포일러 없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1) 나와 가족은 재미있게 봤나? 재밌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평작 이상이다. 영화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제 돈 주러 보고 가도 괜찮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할 것이고, 민생지원금이나 요즘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영화관 할인 쿠폰을 쓰면서 보러 갈만 하냐고 물어보면 완전히 추천하고 싶다. 나는 2번 봤다. 곡성 작은영화관에서 개봉 당일 오후 1시에 한 번, 이후 메가박스에서 한 번. 곡성에서 본 건 현금으로 현장결제해서 봐서 따로 모바일 기록이 없다. 곡성에서는 맨 앞자리에서 70대 아빠, 30대 누나와 같이 봤다. 나를 포함해서 셋 다 재미있게 봤다. 아빠는 영화관에서 자주 꾸벅꾸벅 조신다. 아빠가 안 졸았으면 아빠가 재미있게 봤구나 하고 이해하면 된다. 아빠는 최근 쥬라기공원을 보면서 안 졸고 재미있게 보셨다고 말했는데, 이 영화가 쥬라기공원같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누나는 전지적 독자 시점은 물론이고 살면서 읽은 웹소설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2) 어떤 이야기인가요? [전지적 독자 시점]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현대 판타지 영화다. 예고편에 나와 있는 내용 수준에서 배경을 설명한다. 더럽게 재미없는 웹소설이 있었다. 얼마나 재미없었냐면, 그 웹소설이 3,000회가 넘게 연재됐는데 100회가 넘어가고부터는 그걸 읽은 사람이 1명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일진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소위 "찐따"에, 성인이 되어서도 변변찮은 정규직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김독자는 그 인기 없는 소설이 자신의 삶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고 느껴서 꾸준히 읽었다. 그는 그 소설을 끝까지 완독한 유일한 독자가 됐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소설이 현실이 되어서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다면 김독자는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빙의한 걸까? 아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그대로 있다. 현실이 된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 소설을 끝까지 읽어서 주인공의 운명을 알고 있는 김독자와 김독자의 주변인물들이 현실에서 그 소설의 이야기를 다시 써가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다. 김독자는 소설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게 될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다시 써갈까? 3) 액션, 그리고 성장을 담은 영화. PS. 나나 멋있어요! 영화의 주인공 김독자와 주변 인물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모난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주요한 이야기로 김독자와 주변 인물들의 성장을 다룬다. 저마다 모난 곳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성장시킨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캐릭터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는 게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드라마적인 휴먼스토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액션이다. 전독시는 휴먼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액션으로 풀어낸다. 지금까지 한국 판타지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액션이 펼쳐지는데, 잘 만들었다. 장소가 바뀌면서 이야기의 진행이 바뀌는 구성인데, 대부분의 장소에서 굵직한 액션 씬이 나온다. 액션의 구성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생각한다. 애프터스쿨/오렌지카라멜 출신인 가수이자 배우 '나나'의 액션씬이 특히 돋보였다. 김독자(안효섭)과 유중혁(이민호)의 액션은 당연히(?) 많이 나오고 또 괜찮게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려니 하고 봤는데, 나나의 액션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아시아판 존윅 스핀오프를 찍는다면 그 주인공으로 나나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나나는 롱테이크까지는 아니지만 꽤 길게 테이크를 가져가는 액션씬을 보여주는데,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액션 이외의 대사 씬의 연기도 좋았어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4) CG가 어색한가요? 그렇지 않다. 판타지 속 괴물 같은 게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제작비의 한계가 있으니 마블 수준의 CG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데 방해되지 않을 좋은 수준의 CG를 보여준다. 다만, 특정 인물이 공중을 넘어 이동하는 씬에서 어색한 장면이 3번 있는데, 그것 때문에 CG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그 인물의 얼굴이 훌륭하다 보니 이동 중에 얼굴을 강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구도를 그렇게 잡은 것 같은데, 배경과 조화되지 않는 면이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더 자연스러운 카메라 구도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5) 원작 웹소설이나 웹툰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인가요? 웹소설을 안 보면 영화의 진행을 이해하기 어렵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영화는 원작에 나오는 다양한 설정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불만 어린 항의가 있을 만큼 복잡한 설정들을 다 쳐내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성으로 각색했다. 다만, '힘이나 민첩성, 근력이라는 능력치를 올린다'라는 개념과 시나리오(퀘스트)를 깬다는 것같이 주로 게임에 많이 사용되어온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화 초반에 저게 무슨 이야기인지 어색해할 수는 있다. 영화에서 다양한 장면들로 그런 게임적인 설정들이 어떤 뜻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는 안 된다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설정을 많이 쳐내고 바꾸면서까지 이 영화 한 편이 나름의 기승전결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영화라면 모름지기 당연히 가져야 할 특징이기도 하지만, 긴 분량의 원작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원작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이 영화 하나만 보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가 짜여졌기 때문에, 원작이 있는 작품을 볼 때 흔히 하는 걱정(가령, 원작을 봐야 하는 건가?)은 하지 않아도 좋다. 6) 아쉬운 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작 이상의 영화 아쉬운 점도 있다. 몇몇 장면들에서 아쉬운 연기가 있었다. 연기의 톤이 다른 인물들과 조화되지 않는 배역이 있었다. 분량이 많지 않어서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CG가 어색했던 장면 3개(어떤 배우의 공중 이동 장면)도 분명 아쉬웠고, 중간중간 보이는 인물들의 성격 변화가 영화에서 충분히 개연성 있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다. 분량 때문에 몇몇 컷이 삭제되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측한다. 크게 거슬리지는 않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아니긴 하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걸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래 기대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평작이라는 평가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평작이라고 평가한다면 판타지 영화를 도대체 얼마나 잘 만들어야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평작보다는 잘 만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다닌다. 7) 이 영화를 통해 웹소설/웹툰 문화 엿보기 이 외에 '주인공 혼자만 알고 있는 소설이 현실이 되었고, 주인공이 자신이 아는 지식을 활용해서 성장해간다'라는 설정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비슷한 장르의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유치한, 허무맹랑한 설정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렇기에 이 영화가 그런 익숙하지 않은 설정들에 다가가 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현대 판타지 영화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전지적 독자 시점] 웹소설은 캐릭터들의 성장을 가시화해서 보여주는 수단으로 상태창(주로 게임에서 활용되는)을 사용하고, 환생하거나 회귀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소설에 빙의하는 것 같은 설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금 웹소설/웹툰에서 한창 인기를 끄는 한국의 현대 판타지 장르의 특징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영화 또한 원작에서 보여주는 현대 판타지 장르의 특성을 상당히 많이 가져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웹소설과 웹툰에서 유행하는 설정이나 개념이 뭔지 엿볼 수 있다. 한국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4년 출판시장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22개 출판 기업의 2024년 단행본(웹소설, 만화, 교육 출판물을 제외한 일반적인 책) 매출액은 약 4,653억 원이고, 같은 기관이 조사한 [2024년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주요 플랫폼 사업체의 웹소설 분야 매출액은 1조 3,129억 원이다. 아주 직관적으로 말해서 이제는 책보다 웹소설에 돈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인데(웹툰까지 더하면 차이가 훨씬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웹소설은 정말 보는 사람만 본다. 내 주위에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글로 써진 소설이니까 단행본(일반적인 책)과 비슷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르다. 매체의 특성이 너무 다르다. 권 단위의 분량으로 출판되는 소설은 1회 5천 자 내외의 분량으로 매일 혹은 격일로 연재하는 소설은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주로 어떤 상황에서 읽는지, 작품의 호흡과 전개 방식 등이 많이 다르다. 웹툰과 출판 만화의 연출법이 상당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양 시장은 많이 분화되어 있다. 서로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비난하기까지 한다.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주위에 웹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게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힘들다. 나는 웹소설과 웹툰, 단행본을 모두 좋아하는데, 각자가 다른 매력을 가진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는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즐길 거리를 늘릴(?) 때도 되지 않았냐고 되묻고 싶다. 평소 웹툰이나 웹소설이 뭔지 궁금했는데 기회가 없어서 혹은 오그라들어서 보기 힘들었다면, 거부감이 덜한 영화를 보면서 그쪽 세계를 엿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엿보기를 위한(말이 좀 이상하네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없는 평가) 1) 목차를 이렇게 나눠놓은 이유 이 부분을 읽는 사람들은 아래의 3. 부분도 읽을 확률이 클 것이기 때문에 왜 원작과 상관있는 평가와 없는 평가로 목차를 나누어 놓았는지 설명하고 넘어간다.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라고 한다)의 원작을 읽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원작과 비교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과의 관계에서 내리는 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작은 원작이고 각색된 작품은 각색된 작품이다. 같은 작품이 아니다. 웹소설과 영화라는 다른 매체로 만들어진 별개의 작품이고, 각 작품은 고유한 의미에서 좋거나 나쁠 수 있다.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라고 해서 좋은 영화가 되는 게 아니고,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은 영화라고 해서 좋지 않은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했지만 좋지 않은 영화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았지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영화를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기준을 활용해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리뷰를 작성할 것이고, 그 기준에는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되었는지가 포함되지 않는다. 원작의 반영 여부와는 별개로 영화는 훌륭하거나 비루할 수 있으므로 나는 최대한 이 영화를 있는 그대로 평가할 것이고, 원작과의 관계에서 본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아래 3. 목차를 통해 별도로 이야기한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작을 본 사람이고 원작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원작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이 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영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는 무의식적인 영역까지는 온전하게 통제할 수 없으므로 이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영화에 대한 리뷰를 시작한다. 2) 미술 (1)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러니까 멸망한 혹은 멸망하고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좀비영화나 SF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다. 멸망한 세상의 모습을 얼마나 개성 있고 독창적으로 그리는지에 따라 영화의 미술적 표현에 대해 가산점을 줄 수도, 감점을 줄 수도 있다. 영화 전독시는 멸망한 세상을 묘사하면서 개성 있는 표현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직 완전히 멸망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멸망하고 있는 중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 배경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영화 내에서의 배경(지하철, 동호대교, 금호역, 충무로역)이 멸망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전독시는 현실이 그 상태 그대로 멸망한 게 아니라 일종의 판타지적 세계관이 덧씌워져서 멸망한 세상을 그린다. 그 때문에 거의 유일한 야외 배경이었던 동호대교와 동호대교에서 괴수에게 먹히고 땅으로 올라왔을 때의 장소에서도 폐허나 멸망의 모습을 강조하기보다는 판타지적인 배경을 강조한다. 동호대교에서는 노을빛을 강조하고 대교를 잇는 마법적인 다리를 묘사했고, 땅으로 올라왔을 때 역시 폐허가 된 강변 아파트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바다 쪽으로 카메라를 잡으면서 날아다니면서 빛나는 해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술은 이 영화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배경보다는 판타지적인 배경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판타지적인 묘사는 어떠했는가? (2) 판타지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금호역에서 괴수를 죽이는 미션을 하던 중 이길영의 능력으로 반딧불이를 불러서 지하철을 밝히는 장면은 아름답고 신비롭게 묘사되었는데, 이 지옥 같은 세계관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을 불러일으킨다. 해당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어둠 파수꾼 장면과 화룡종을 레이드할 때 시나리오의 난이도가 올라가서 지하철 외부의 공간이 우주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장면은 전독시의 세계관이 게임적인 설정을 가미한 판타지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땅강아쥐 제사장에 진입한 후 공간이 바뀌어 전후좌우상하가 구분되지 않는 360도의 공간이 펼쳐지는데, 게임에서 던전에 진입한 상황 같은 느낌을 잘 보여준다. 제사장에서의 CG에는 어색함이 전혀 없었고, 이전에 다른 영화들에서 본 미술적 장치도 아니었으며, 전독시의 게임적 세계관을 잘 드러내 주는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화룡종 레이드 장면에서 지하철 외부의 공간이 우주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지하철 플랫폼의 외벽이 해체되면서 공간이 우주로 확장된다. 형형색색의 우주를 배경으로 전투가 펼쳐지고, 이 부분의 CG도 어색함 없이 등장인물들과 잘 어우러진다. 전독시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성좌들이 등장하고, 이 내용은 영화 내에서 설명되지만 아래 화룡종 레이드 장면 이전까지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주인공 일행이 화룡종을 공격하기 위해서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는 부분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눈알이 등장하는데, 이 세상을 관조하고 있는 외부적이며 신적인 존재(성좌)가 있다는 점을 미술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웹소설/웹툰에 자주 활용되는 성좌물 설정을 처음으로 실사영화에서 표현한 것이었는데,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3) 횡스크롤 액션 몇몇 액션들이 횡스크롤 형식으로 보여지는 것도 색달랐다. 고전영화까지는 잘 모르겠고, 내가 본 영화 중에서는 킬빌을 제외하고는 횡스크롤 형식의 액션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없었다. 횡스크롤 액션이란 공간의 3가지 방향을 다 활용해서 액션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Y축과 Z축에서의 위치를 고정한 후 X축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횡스크롤은 주로 게임에서 활용되는 디자인이다.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장치의 성능에 제한이 많았던 시절에는 게임 내 공간의 3가지 방향을 다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2D 구조인 횡스크롤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액션을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이 많았다. 장치의 성능이 많이 올라가서 3차원 공간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횡스크롤만의 고유한 느낌(이야기 혹은 공간이 진행된다는 감각, 속도감, 횡스크롤에서만 가능한 난이도 조절 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게임들이 횡스크롤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전독시에서는 금호역 전투 장면 중 주로 정희원의 액션 장면에서 횡스크롤 방식이 활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하철역의 공간적인 특성상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는 게 아니라 한 쪽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기 때문에 횡스크롤이라는 표현방식이 어울리기도 했고, 전독시의 게임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정희원의 액션 시퀀스는 횡스크롤 방식의 액션에서도 그렇고 횡스크롤이 아닌 3차원을 모두 활용하면서 테이크를 늘어뜨리는(롱테이크 까지는 아니지만 꽤 길었다) 장면 모두에서 훌륭했다. (4) 아쉬운 폐허 묘사 다만, 게임적인 세계관을 드러내야 한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회상이나 상상으로 나오는 폐허 장면들에 대한 표현은 아쉬웠다. 약 3번 정도 온통 배경이 빨간색인, 딱 보면 지옥같이 생긴 공간이 나온다. 유중혁이 혼자 살아남아서 이 이야기의 결말을 봤고, 그 혼자 살아남은 곳은 폐허였다는 점을 드러내 주는 배경이다. 폐허 + 지옥 느낌을 주려고 황폐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한 의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표현이 다소 촌스러웠다. 온통 세상이 빨간색이고 아래에 괴수가 쓰러져있고, 주위가 울퉁불퉁하게 묘사된 배경은 지옥을 표현할 때 아주 흔하게 활용되는 미술이다. 세련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유중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인데(검은 머리에 검은 착장) 배경은 채도가 높은 빨간색이다 보니 유중혁이 배경에 잘 어우러지기보다는 배경에 얹혀진, CG 같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해당 장면은 전독시만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미술을 드러낼 좋은 기회였는데 다소 아쉽게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배경에 활용된 빨간색의 채도만 많이 낮췄어도 배경과 사람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덜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5) 화룡종 묘사 더해서, 미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연출의 문제이기도 한 부분인데, 영화의 마지막 보스인 화룡종에 대한 묘사도 아쉬웠다. 화룡종이 진화(?)한 모습을 구상하면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스에 나오는 스테판 울프를 많이 참조한 것 같았다. 처음에 등장하는 화룡종은 용이나 고질라와 비슷한 모습을 띄고, 이후에 진화된 모습이 그 스테판 울프가 조금 더 우락부락해지고 지옥물에 몇 번 담가진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진화된 모습이 기존의 용/고질라와 같은 묘사에서 인간형에 가까운 묘사로 바뀌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묘사해서 얻어지는 효과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딱히 더 위압적으로 바뀐 것 같지도 않았다. 더해서, 그 화룡종이 최종 빌런이니까 위압적인 모습, 막막한 모습이 더 잘 느껴지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한 연출이 아쉬웠다. 위압적인 모습이 덜 드러나기 때문에 극적으로 화룡종을 물리쳤을 때 얻어지는 희열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화룡종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아쉬워지면서 초반부에 등장하는 약한(?) 괴수인 땅강아쥐의 묘사가 오히려 인상 깊게 됐다. 땅강아쥐는 초반부터 등장하고 그렇게 강하지 않은 괴수로 설정됨에도 불구하고 되게 무섭고 강하게 생겨서 저거 한 100마리만 있어도 화룡종보다 훨씬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강아쥐 뿐만 아니라 땅강아쥐 제사장에 등장하는 어둠 파수꾼에 대한 표현도 좋았다. 사방으로 돌기가 쫘악~ 펼쳐지면서 더럽게 무서운 악마처럼 등장하는데, 나라면 진짜 바로 도망갔을 것 같이 생겼다. 뭔가 비슷한 게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안 나는 괴수 디자인이었다. 다음 영화가 제작된다면 새로운 괴수들이 다양하게 등장할 텐데 어둠 파수꾼의 디자인같이 개성있으면서도 위압적인 디자인이 나와주면 좋겠다. 3) 서사와 연출 (1) 전독시의 특색 전독시는 주인공인 김독자만 읽은 소설이 현실에 펼쳐지면서 김독자가 소설 속 여러 난관들을 겪어가는 이야기다. 여타의 빙의 소재의 작품들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소설이 현실에 펼쳐지며, 주인공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빙의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은 그대로 따로 있으며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해서 소설의 이야기에 끼어든다는 것에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유중혁이 회귀 능력을 가진 회귀자라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1편에서는 해당 설정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지 않아서 회귀의 소재를 다룬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전독시는 주인공이 동료들과 함께 난관을 겪고 이를 극복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특색을 만들어주는 건 영화의 주인공인 김독자가 미리 난관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과, 김독자가 소설을 통해 자신과 함께 할 동료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설정을 활용해서 난관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만의 특색이 생긴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설정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김독자가 미리 이 이야기의 주연이 될 등장인물들에게 접촉해서 동료가 될 계기를 만들고, 김독자가 혼자 혹은 같이 겪는 난관들마다 본인이 미리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한다. 특히 후자의 설정 때문에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는 고난이 다소 심심해 보일 수도 있는데, 영화는 등장인물이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어서 이를 활용해 과거를 바꾸면 그 순간 미래가 바뀌기 때문에 주인공이 모르는 방식으로 난관을 전개시켜서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는 고난이 쉽지 않은 고난처럼 보이게 만든다. 영화 내에서는 '모든 회귀자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이 모르는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는 대사로 이런 내용들이 표현된다. (2) 시나리오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의 부족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출이 충분히 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서 이 난관이 쉽지 않은 난관이라는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충분히 성공하는지는 모르겠다. 보면서 '그래, 힘들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하면 될 것 같은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차피 주인공이 극복해 낼 걸 알아도 스릴있게 연출할 수 있다. 최근 영화 미션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에서의 미션들이 그랬다. 전독시에서는 마지막에 유중혁이 사망해서 세상이 사라지는(마블 엔드게임에서 타노스의 핑거스냅 장면 혹은 드라마 로키 시즌2에서 시간 선이 붕괴하는 장면의 미술을 참조한 것 같다) 장면은 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괜찮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 이후에 김독자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짧게 그려지면서 좋은 장면을 충분히 잘 활용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3) 사람이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작품들은 '인간'의 속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인간의 이기심이나 탐욕을 많이 다룬다. 좀비나 SF 배경의 생존 영화에서 그런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많이 그려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이 아닌 익숙하지 않으며 극단적인 환경에 인간을 던져놓고 이를 관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인 우리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인간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타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속성 탐구에 몰두하지 않는다. 금호역에 있는 민간인들과 천인호를 비추면서 인간의 탐욕이나 이기심, 잔인함에 대해 다루긴 하지만 전독시는 이를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게 되는 난관의 배경과 맥락으로 제시할 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거나 탐구하려 들지 않는다. 전독시는 인간 군상 일반을 다루기보다는 주인공과 주인공 동료들 개개인에 집중한다. 주인공과 동료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주인공인 김독자와 그 동료들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진 보통의 사람들이다. 영화에서는 그 보통의 사람들이 각종 난관을 겪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서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김독자와 일행인 이현성, 정희원, 이지혜, 이길영, 유상아 중 이길영과 유상아의 상처/트라우마는 영화 내에서 주어지지 않고,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유상아와 이길영의 각성 혹은 성장의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유상아와 이길영은 전독시에서 성장하기보다는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김독자와 이현성, 정희원과 이지혜의 경우 직접적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정희원의 경우 눈앞에서 친구를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악인을 물리치면서 각성한다. 이때 보여주는 액션들이 진국이다. 이현성은 본인이 군 간부이던 시절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훈련병이 수류탄을 놓치는 실수를 했을 때 그 훈련병을 구하지 않고 본인만 살아남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본인은 그 수류탄 소리의 트라우마와 이전 전투에서의 부상 때문에 귀 막으면서 피하고 있는데, 열 살도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어린 이길영이 손으로 자신을 꼭 안아주고, 그 이길영이 코피를 흘려가며 동료들을 구하는 싸움에 참전한다. 이현성은 이길영을 보면서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어린 훈련병을 떠올리고, 이에 이길영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참전해 화룡종을 막으면서 특성 진화(강화)를 하게 된다. 이지혜는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작중에서 이지혜는 계속해서 "어쩔 수 없었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라는 말을 한다. 같은 말을 두 번 연속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지혜는 스스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계속해서 되놰야 하는 마음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 자신의 모습이 악한 모습이여서는 안되었기에 이지혜는 영화 초중반에 다소 이기적이고 소시오패스적인 모습으로 행동한다.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이전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 되지 않으므로 하는 발악으로 보인다. 이후 이지혜는 김독자로부터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혼자 살아남으려다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잖아"라는 말을 듣고, 김독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발 아래에 설치된 그린 존(안전한 공간)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혼자 살아남으려고 친구를 죽였던 것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된다. 이지혜의 각성은 이지혜가 김독자의 그린존에 총알을 발사하면서 이를 터뜨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김독자의 각성은 이지혜의 각성 직전에 이루어진다. 김독자는 직전까지 계속 갈팡질팡한다. 일단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김독자가 읽었던 멸살법에서 유중혁 빼고 다 죽은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결말을 쓰고 싶어 한다. 동료들을 돕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김독자만 알고 있는 그린존 위에 서서 나가고 싶지 않아 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료들이 그린존 밖에서 괴수들과 싸 우는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 반 이타심 반에 그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김독자는 동료들을 살리고 환영 감옥에 빠져서 본인도 살아남으려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와중에 동료들이 밤새 괴수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그 와중에 이현성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어린아이인 이길영도 탈진한 모습을 보게 된다. 김독자는 자신의 동료들이 목숨을 바쳐서 자신을 위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해서 바보같이 죽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에게 말한다. "어젯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뭘 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 이전에도 김독자는 자신이 읽은 소설의 결말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지만, 그 마음이 정확히 뭔지, 소설이 현실로 펼쳐진 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자신이 해야 하는 게 뭔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사진을 위해서 희생하고, 힘을 합쳐서 살아남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 세계에서 원하는 게 뭔지, 해야 하는 게 뭔지 알게 되어서 각성한다. 이후 김독자는 자신이 희생하면서 죽는 전략까지 짜게 되는데, 이는 그린 존 시나리오에서 자신만 아는 그린 존으로 가서 밖으로 나오기 주저하면서 괴로워하던 김독자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김독자가 확실하게 성장하고 각성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김독자와 주변인물들이 성장하거나 각성하고, 그 과정에 주변 동료들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좋았다. 완전 따뜻한 이야기다. 물론 아주 개성 있거나 독창적인 성장 서사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와는 다른 전독시만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인간 일반에 대한 일반론을 다루는 게 아니라, 김독자와 동료들이 겪는 모험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반성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며, 사람을 성장하고 극복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 아니겠나. (4) 액션에서 소외되지 않는 캐릭터들 액션에서 소외되는 캐릭터가 없었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연 캐릭터라면 소비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합당한 역할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전독시는 이야기 진행에서뿐만 아니라 액션에서도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금호역의 화룡종 레이드 장면에서는 유중혁, 김독자, 이지혜, 이현성, 유상아, 이길영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전투에 참여한다. 인물들이 많아서 명확한 역할을 끼워 넣어 주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액션의 구성에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화한 화룡종을 잡는 계획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액션'이 잘 드러났는데,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계획에 따르면 유상아가 실로 화룡종을 묶어두고, 김독자가 화룡종의 가슴을 찔러서 껍질을 깨도록 시도하고, 이지혜도 총으로 이걸 돕고, 껍질을 깨면 김독자가 죽을 텐데 그걸 뒤이어서 정희원이 화룡종의 코어를 깨는 게 계획이었다. 아, 계획을 짤 때는 이현성과 이길영이 전투 불능 상태였던 것으로 간주돼서 참여하지 않지만, 실전에서는 둘 다 열심히 참여해서 동료들을 구해낸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모두가 각자의 개성 있는 능력을 활용해서 전투에 참여하는 액션을 구상하려는 시도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5)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연출에 대한 아쉬움 위에서 길게 이야기했듯이 영화 전독시의 메인 테마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상호 성장 서사다. 이 점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길영과 유성아의 성장 서사가 1편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후에 다룰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의 작품들까지 이길영과 유상아의 이야기가 1편의 다른 주연들 이야기처럼 깊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아쉬웠던 건 이현성과 이지혜의 성장 부분에서의 연출이었다. 먼저 이현성. 이현성 역을 맡은 배우의 작품을 여럿 봤는데, 표정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현성이 특성 진화를 하는 과정에서의 연기 혹은 연출이 조금 아쉬웠다. 이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다. 이지혜의 성장 서사는 매력적이었지만 너무 짧게 등장해서 서둘러 성장의 결론만 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두 배우의 연기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분량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 한 편에서 줄거리는 줄거리대로 다 진행하고 설정도 여러 개를 풀면서 동시에 김독자/이지혜/이현성/정희원 네 명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이현성과 이지혜의 이야기가 다소 적은 분량으로, 압축적으로 묘사된 것 같다. 보다 많은 분량이 주어졌으면 충분한 연출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 이 점이 아쉽다. 이 두 배우의 연기 문제였든 아니면 분량의 제약으로 인한 연출의 문제였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니 지적해 둔다. (6) 그 외 아쉬운 연출 이 외에도 두 부분이 아쉬웠다. 동호대교에서 떨어진 김독자가 해수종에게 먹혀서 위장 안으로 들어가 처음 비형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김독자가 갑자기 능숙해진다. 이 전까지는, 그리고 이후 장면에서도 자주 갈팡질팡하고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위장 안에서는 갑자기 비형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을 알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색한 건 아니지만, 직전의 모습과 잘 연결되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라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혼잣말이라도 넣어줬으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 해수종을 죽이고 탈출하고 곧바로 정희원을 만나서 함께 금호역으로 가게 되는데(정확히 말하면 정희원을 구하면서 간다), 금호역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을 대면하게 된다. 이 소설 속 세상에 잘 적응한 평범한 사람들인 건데, 문제는 언제 이렇게 적응했냐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괴수의 위장 안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있었는지가 제시되지 않는다. 저녁놀이 생길 즈음에 위장으로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니까 밤이 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 몇 시간 안 지났나? 반나절 정도 지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나절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금호역에서 만난 민간인들은 이 세상에 너무 잘 적응해서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 뭔가 어색한 거다. 영화를 같이 본 누나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이런 이상한 판타지 세상이 펼쳐진다면 적어도 며칠은 지난 후에 사람들이 서서히 적응해야 할 것 같은데, 반나절 만에 너무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니 어색하고 이질적이다. 그런데 영화를 잘 보면 사실 반나절이 지난 게 아니라 며칠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호역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생존비를 납부하지 못한 사람은 죽게 된다'라는 설명이 나온 후 철로의 한쪽에서 많은 시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이를 태우면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타는 시체들 앞에서 우는 장면이 나온다. 생존비를 납부하지 못한 사람이 죽게 되는데 저렇게 시체가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며칠은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호역에 있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 잘 적응한 맥락, 그러니까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는 맥락을 주면서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문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는 맥락'을 알아채는 유일한 수단이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고 추론하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단번에 그 장면을 포착해서 이를 추론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그 장면을 포착했다. 김독자가 괴수의 위장에서 탈출하면서 혼잣말하든 아니면 다른 장치를 보여줘서 며칠이 지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한 후에 금호역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했다면, 금호역 사람들이 이 세상에 충실하게(?) 적응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줄어들었을 텐데, 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표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다. 4) 총평 몇몇 연출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좋았던 점이 훨씬 많았던 영화였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형 현대 판타지에 대한 첫 영화화 시도인데, 미술적으로 보나 서사적으로 보나 좋았고, 잘했다.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난관은 각색에 있을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던 연출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을 다듬는 건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전독시의 원작이 워낙 방대하므로 이를 5편으로(5편에 대하여 판권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줄이려면 엄청나게 과감한 각색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는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수 있는 웹소설과는 다르게 2시간짜리 한 편에 기승전결이 모두 담겨야 한다. 1편은 일단 그것에는 성공했다. 2편도 그렇게 기승전결을 담아서 각색한 후에, 위에서 말했던 미술적으로/연출적으로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해서 장면 진행이 자연스럽게 구성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3. 스포일러 있는 리뷰 (원작과 상관있는 평가) 1) 결론부터 이해가 되는 각색이었다.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일부 팬들의 아쉬움이 있는데, 이해한다. 이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2) 저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 웹소설의 팬 맞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도 안 읽은 놈이 혹은 팬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영화를 호평하는 리뷰를 썼다고 오해할까 봐 미리 밝혀둔다. 나는 웹소설 전독시를 3.n회독 했다. 네이버 시리즈로 2회독 했고, 단행본으로 1회독 했으며, 이 외에는 정주행한 게 아니라 중간중간 읽었기 때문에 3.n회독이라고 표현했다. 웹툰도 읽고 있다. 웹소설 외전은 325화까지 읽었다. 구매는 357화까지 해놨는데 조금 더 나오면 몰아볼 예정이다. 물그릇 올려놓고 제발 해피엔딩이기를 기도하면서 이학현 혹은 김독자의 이야기를 읽어가고 있다. 전독시를 1회독 하고 리뷰를 썼고1), 2회독 하고 리뷰를 또 썼다2). 2회독 하고 쓴 리뷰는 22,478자 분량이고, 나름대로 전독시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까지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면 많이 부족해서 외전이 끝난 후에 혹은 그전에라도 다시 리뷰를 쓸 예정이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웹소설이 전독시다. 전독시 이후에도 수많은 웹소설을 읽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소설은 전독시다. 영업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례 전독시를 추천해 왔다. 세부적으로 몇몇 순서가 틀릴 수는 있지만,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별로 구분한다면 눈 감고도 진행 순서를 외운다. 나보다 전독시를 더 여러 번, 더 자세하게 읽은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사람을 전독시 찐팬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전독시 찐팬 맞다. 그러니까 전독시 원작도 안 읽은 사람이, 찐팬도 아닌 사람이 쓰는 글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3) 웹소설과 영화 매체의 차이 (1) 호흡, 전개 속도, 한 편의 완결성 웹소설과 영화는 다르다. 웹소설은 1회에 5,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연재되는 연작소설이다. 1주일에 많으면 7회, 적으면 3회 정도 연재된다. 당장 이번 편이 재미없으면 다음 편을 보지 않게 되기 때문에 매 회마다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그러니 작품의 호흡이 굉장히 빠르다. 웹툰과도 다르다.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작품이고 호흡이 빠르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1주일에 3~7편 정도 볼 수 있는 작품과 1주일에 1편 정도 볼 수 있는 작품의 호흡은 같을 수 없다. 웹소설 1회 분량을 웹툰 1회로 만들면 웹툰은 반드시 어느 시점에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화산귀환 웹툰이 그렇다. 화산귀환 원작 웹소설은 분량 늘리기(?)가 심한 웹소설이다. 지금 1,800화 이상 연재되었는데, 1,800화 기준 일반적인 소설책 약 65권 분량이다. 웹소설 초반부는 전개가 빠른 편이라 각색을 최소화한 채 웹툰에 이식되었어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초반부가 지나자, 웹툰의 전개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웹소설이 웹툰으로 이식될 때는 원작보다 전개가 더 빨라져야 하고, 압축적으로 전개가 일어나야 한다. 각색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나 웹툰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을 보면 원작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압축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생략도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또 다르다. 웹소설이나 웹툰과는 다르게 빠른 기간 안에 연재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이 온전한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작이 되는 웹소설이나 웹툰의 전체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기승전결이 있는 특정한 에피소드만 다루는 방식을 취하거나, 전체 내용을 다루려면 엄청나게 많은 압축/생략이 담긴 각색이 있어야 한다. 특정한 에피소드만 다루더라도 상당한 생략과 압축, 각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2) 개연성의 요구 정도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는 방식(연재, 개봉 등)뿐만 아니라 글, 이미지,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의 차이도 있다. 실사에 가까운 형태의 매체를 접할수록 사람은 전개의 자연스러움 혹은 개연성을 더 크게 요구하게 된다. 실사에 가까울수록 상상의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금 더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매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감각의 종류(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가 적을수록 우리는 스스로 나머지 감각을 채워가면서 매체를 감상하고, 감각의 종류가 많을수록 우리는 이미 주어진(전달된) 감각들이 짜임새 있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스스로 채워서 완성도 있게 감상할 여지가 없으니까 주어진 것 자체가 완성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면 자연스럽게 묘사된 부분과 생략된 부분을 스스로 상상하면서 감상한다. 만화 같은 이미지 기반 매체를 즐길 때도 같은 상상이 이루어지지만, 이미 이미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상의 여지가 줄어든다. 우리가 스스로 상상을 통해 완성도를 채울 여지가 줄어든 만큼, 주어진 이미지에서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실사 기반의 영상 매체로 가면 더더욱 그렇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글로 읽을 때보다는 이미지로 볼 때, 이미지로 볼 때보다는 실사 영상으로 볼 때 생략된 부분이 더 적고 개연성 있게 구성되어 있기를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감상하면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3) 분량 분량의 차이도 있다. 작품의 공개 방식(연재, 개봉 등)의 차이와 맞물려있는 이야기인데, 글이 분량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자유롭다. 적은 분량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게 일반적으로는 더 훌륭하다고 평가받지만, 많은 분량으로 글을 쓰더라도 완성도가 있으면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화산귀환 웹소설 1,000화 이전까지가 그랬다. 다른 일반적인 웹소설에 비해서 분량 늘이기가 심한 웹소설이었지만, 그만큼 세밀한 감정묘사가 이루어졌기에 이를 장점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까 글은 분량이 적어도 괜찮고 많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영화는 분량이 많아도 괜찮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정말 길어야 3시간이다. 크레딧과 광고 시간을 제외하고 2시간 반 이상의 러닝타임을 확보하는 건 제작비와 상영 비용 차원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cg와 편집, 촬영 비용이 늘어나고 영화 개봉을 위해서 상영관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가 늘어날 수 있다. 상영관 입장에서는 러닝타임이 길수록 하루에 상영할 수 있는 영화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가 웹소설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2시간 반 이상의 영화는, 잘 안 본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짧은 영상에 익숙해지고 긴 영상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영화를 보려고 할 때 2시간 반 이상의 영화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몇 번이나 느꼈다. 그러니 영화는 2시간 내외의 분량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분량 안에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글로 전달할 때보다 더 짜임새 있고 개연성 있게 보여야 한다는 제약이 생긴다. (4) 소비자층 소비자층도 다르다. 상업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겨냥하고 만들어지지만, 웹소설은 취향 분야가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회/빙/환과 무협, BL과 로맨스, SF 등 장르와 소재가 다변화되어 있고 각 장르/소재마다 인기를 끈 작품들이 있지만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면서 읽는 경우는 많이 없다. 일반적으로 남성 소비자들에게 잘 어필하는 무협 장르는 여성 소비자들이 거의 소비하지 않고, 여성 소비자들에게 잘 어필하는 BL이나 로맨스 장르는 남성 소비자들이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웹소설 안에서도 취향 분야가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웹소설 소비자들과 영화의 소비자들도 같지 않다. 웹소설 소비자들이 상업영화를 소비하는 경우는 꽤 많지만, 상업영화 소비자들이 웹소설을 소비하는 경우는 그만큼 많지 않다. 전독시도 게임 판타지/빙의나 회귀, 환생 소재의 이야기를 용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작품인데 이러한 소재들은 상업영화에서는 거의 쓰인 적이 없다. 그러니 영화의 관객들은 전독시의 소재를 보고 일단 익숙하지 않은 어색함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5) 소재와 장르 웹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 회/빙/환/게임 판타지는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고 전개해도 이해될 수 있는 소재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렇지는 않다. 주변에 문학적인 소양이 뛰어난 친구가 있는데, 회/빙/환 이라는 소재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매우 힘들어한다. 애초에 각 매체를 소비해 왔던 방식, 각 매체의 주류적인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이다. 웹소설에서 회/빙/환은 이유가 제시되지 않아도 받아들여지는 장르적인 소재로 이해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회/빙/환은 이유 없이 제시되면 '개연성 없는 뜬금없는 설정'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본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 아들이 드라마화 되었을 때 마지막 화에 환생의 이유가 후회라는 윤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식으로 환생이라는 소재에 윤리적인 맥락과 이유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반대로 일반적인 드라마 소비층들은 환생이라는 소재에 윤리적인 맥락과 이유가 부과되지 않는 것에 대해 어색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끝까지 환생의 정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고 드라마가 끝났다면, '뭐야, 이거 끝난 거야? 그럼 애초에 왜 환생한 건데?'라는 평가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6) 종합 여기까지가 매체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웹소설, 웹툰, 영화의 매체적 차이는 각 매체의 작품이 다른 매체로 이식될 때 따라야 할 각색의 방향을 결정한다. 전독시는 웹소설 원작이 영화로 이식된 경우다. 분량의 제약, 한 편에 기승전결 있는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조건, 몇 년 후에 밝혀질 떡밥이 최소한으로만 제시되어야 하고 영화 한 편에 이야기가 완성도 있게 다 담겨야 한다는 조건, 서사가 더 개연성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더해진다. 여기에 전독시 원작 자체의 특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훨씬 더 설정이 많은 작품이다. 웹소설을 읽다 보면 분량의 1/3 가까이가 작품의 설정을 설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 설정들도 일반적인 영화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작처럼 계속해서 혼잣말이나 상상을 통해 설정을 읊어대는 방식으로의 영상화는, 적어도 지금 상업영화의 문법에 있어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전략이다. 4) 각색 매체의 차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영화 전독시에서 이루어진 각색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각색된 내용을 전부 다 다룰 수는 없다. 너무 많다. 주요한 내용을 위주로 다루고, 마이너한 각색은 짧게 다루고 넘어간다. (1) 지구에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 ① 원작의 설정이 폐기되었나? 영화 초반부에서 김독자가 읽었던 원작 멸살법을 설명하면서 '신들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런 설명은 영화에서 현실에 갑자기 시나리오가 펼쳐진 현상에 대한 맥락을 제시해 준다. 나는 전독시 영화의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1편 초반부에서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는 신들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라는 설정이, 지금 김독자가 사는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로 그대로 이식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영화 전독시는 치밀하다. 영화를 잘 보면 멸살법에서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가 신들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라고 제시하기는 하지만, 김독자가 사는 세상에서도 같은 이유로 시나리오가 펼쳐졌다고 확언하지 않는다. 영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를 영화 초반부에 제시된 멸살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개연성 있다고 느끼기를 의도하고 있지만, 이 설명이 향후에 반전을 통해 바뀔 가능성을 막아두지 않고 있다. 영화 내에서 유중혁이 김독자에게 '왜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왜 인간이 벌을 받게 되었을까?'라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김독자도 중간중간 이기적인 인간들을 보면서 위 대답을 회상하곤 하지만, 역시 명확한 대답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멸살법의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를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신들로부터 벌을 받았다라고 각색했다'라는 문장은 사실이지만, '김독자가 사는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도 같은 식으로 제시되었으므로 한수영이 김독자를 위해 멸살법을 만들었다는 전독시의 주요한 설정은 폐기되었다'라는 문장은 사실이 아니다. ② 이렇게 각색한 이유가 뭘까? 설정이 폐기되지 않았다면, '멸살법의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신들로부터 벌을 받았다' 는 설정을 더하고 이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각색한 이유는 뭘까? 원작에서 멸살법의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유는 본편과 에필로그의 끝에 가서야 설명된다. 멸살법이라는 소설은 김독자의 동료인 미래에서 온 한수영이 김독자가 계속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해서 작성한 소설이다. 이 내용이 소설에서 엄청난 반전으로 제시된다. 전지적 독자 시점 단행본이 20권 분량이니까, 1편에서 이 세상이 시작된 이유가 20권을 다 읽는 시점에 제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한참 이후에 밝혀질 내용이니 지금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상업영화의 문법에서 용서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설정이면 몰라도 애초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없이 갑자기 생소한 판타지 설정을 제시해 버리면 서사에 이입하지 못할 관객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와는 또 다르다. 드라마는 일단 만들어지면 대부분은 끝날 때까지 제작이 되고, 1편에서 제시되지 않은 내용들이 이후에 풀리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의 문법으로 자리잡혀 있다.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를 보더라도 거의 다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 영화 초반부에 설명되지 않은 내용이 있는 경우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건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문법에 해당하지만, 1편 이야기의 전체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수년이 지나고 개봉하는 5편에 와서야 밝혀지는 게 용납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현실에 갑자기 소설이 펼쳐진 현상이 발생한 이유가 1편이 끝날 때까지 제시되지 않는 건 상업영화에서 받아들여지는 문법이 아니다. 영화판은 웹소설이나 웹툰에서와 다르게 회/빙/환이나 시나리오라는 소재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면 관객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환생의 이유를 제시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수영이 김독자를 위해 멸살법을 썼다는, 아기 김독자의 상상으로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는 전독시의 핵심적인 설정과 반전이 폐기된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러한 각색을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고, 괜찮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2) tls123의 역할, 안나 크로프트, 김독자 어머니, 김독자와 동료들의 트라우마 ① tls123의 역할변화 tls123의 역할변화도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설명된다. 원작에서 현실에 소설이 펼쳐지는 현상은 갑자기 발생하지만, 영화에서는 tls123이 '김독자에게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독자님이 직접 결말을 써보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면서 소설이 펼쳐진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멸살법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타락에 신이 벌을 주는 것을 이유로 제시하면서 그게 이 영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tls123의 답장은 이 영화에서 소설이 현실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맥락을 제시한다. 영화 초반부 멸살법의 설명과 tls123의 답장을 본 관객들은 아, 이런 배경으로 인해 이제 현실에 소설이 펼쳐지겠구나 예상할 수 있고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다만, '배경'이 제시된 것은 맞으나 이것이 '소설이 현실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영화의 명확하고 확정적인 답은 아니다. tls123이, 그러니까 원작에 따르면 미래에서 온 한수영이 저렇게 답장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시나리오가 현실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원작의 설정이 폐기되는 건 아니다.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tls123과 영화 초반부 멸살법에 시나리오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김독자의 나레이션이 모순되지 않는다. 나는 시나리오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원작의 설정과 한수영이 tls123이라는 설정은 각색될 수 있는 성질의 설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차차 원작의 위 설정과 최종장에서의 반전이 전개될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 1편에서는 이 추측을 깨뜨릴 만큼 명확한 이야기가 없었다. ② 안나 크로프트 생략 tls123은 원작에서의 안나 크로프트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 tls123, 그러니까 한수영이 하는 짓은 전독시 외전에서 다른 세계선의 한수영이 이학현의 세계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원작에서는 김독자가 비형을 통해서 자신이 획득한 어룡의 핵과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안나 크로프트와 교환하고 백청강기를 구매해서 완성템 무기를 만든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비형을 통해 어룡의 핵과 신념의 에테르를 tls123과 교환하고, 어둠 파수꾼 레이드를 통해 획득한 보상으로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얻어서 완성템 무기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부러지지 않는 신념에 뭔가가 더해져서(원작에서는 백청강기, 영화에서는 신념의 에테르) 완성템 무기가 만들어진 것은 같다. 왜 이렇게 각색했을까? 나는 1편에서 '안나 크로프트'를 빼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극초반부에 어룡의 핵을 교환할 때 메세지를 통해서 한 번, 그린 존 시나리오에서 스펙터 영석을 먹고 나서 환상 속에서 한 번 안나 크로프트가 등장한 후 별자리 연회 에피소드인 150화 근처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일종의 떡밥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렇게 긴 미래에 확인될 떡밥을 뿌려놓고 설명도 안 한 후 영화를 끝내는 건 상업영화에서 허용되는 문법이 아니다. 상업영화의 관객들이 '나중에 밝혀질 거니까 설명 안 하고 대충 넘어가서 상관없지. 암.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법이 아니다. 따라서 1편에서 설명될 가능성이 없는 안나 크로프트라는 미지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1편에서 등장시켜서는 안 됐고, 안나 크로프트를 등장시키지 않는다면 김독자가 부러진 신념을 베이스로 한 완성템을 얻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그 이유로 이 방향의 각색이 이뤄졌다고 판단한다. ③ 김독자의 트라우마 새롭게 제시, 김독자 어머니 생략 영화는 안나 크로프트를 빼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김독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빼야 했고, 그래서 김독자의 트라우마를 바꿔서 제시해야 했다. 김독자는 원작 초반부에서는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한다. 김독자의 트라우마는 원작의 중반 부분이 되어서야 슬슬 밝혀지기 시작하고, 그 트라우마는 김독자의 엄마와 관련되어 있다. 영화는 김독자와 동료들의 성장을 주된 주제로 하므로 주인공인 김독자에게도 어떤 트라우마를 제시해야 했다. 그런데 원작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가져오게 되면, 1편의 이야기의 흐름과 어울리는 내용으로 김독자에게 그 원작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에 적절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1편에서 설명될 가능성이 없는 김독자의 엄마를 등장시켜서는 안 됐다. 안나 크로프트를 빼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1편이 완결성 있는 영화이기 위해서는 1편에서 제시되는 트라우마는 1편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김독자, 정희원, 이지혜, 이현성의 트라우마는 모두 1편의 이야기 안에서 해결된다. 따라서 김독자의 트라우마에 엄마 이야기를 넣는 순간 1편 영화에 김독자의 엄마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야 하고, 본래는 한참 뒤에 가서야 역할을 시작할 엄마 이야기를 금호역과 충무로역을 둘러싼 극초반부 시나리오에 끼워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영화는 김독자와 엄마의 관계가 아닌 김독자의 다른 트라우마를 새롭게 만들어서 영화에서 제시했고, 있을 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극복의 계기를 만들어줘서 적절하게 각색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에서 이 세상에 시나리오가 펼쳐진 이유에 대한 설정이 폐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듯이 나는 김독자와 엄마의 관계에 대한 설정 또한 아직까지 폐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후속편이 나온다면 얼마든지 후속편에서 제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④ 김독자의 트라우마와 멸살법 결말에 대한 김독자의 반감 김독자의 각색된 트라우마는 멸살법의 결말에 대한 김독자의 반감과도 연결된다. 영화에서는 멸살법의 결말을 유중혁 혼자 살아남는 것으로 각색했다. 김독자는 어린 시절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김독자가 봐왔던 멸살법에서 유중혁 또한 동료를 버리는 비슷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김독자는 멸살법을 보고 유중혁이 본인과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김독자 자신의 행동(민석이를 죽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중혁을 보면서 위로받았다는 취지로 말한다. 그런 김독자에게 멸살법의 결말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말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각색된 멸살법의 결말은 유중혁 혼자 황폐화된 폐허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미술적으로도 지옥이 떠오르게 묘사한다. 그 결말을 보고 아름답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독자는 그 멸살법을 보면서 자신의 결말 또한 지옥이 아닐까 두려워했을 거다. 그래서 영화에서 김독자는 "저는 이 결말이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말한다. 김독자에게 새로운 트라우마가 주어지고 멸살법의 결말이 각색되면서 김독자가 멸살법의 결말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게 설명되고, 그러면서 김독자와 작가인 tls123 간의 대화가 설명된다. 1편 영화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내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고민이 엿보인다. ⑤ 이현성과 정희원의 트라우마 이현성과 정희원의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이현성은 군대 내에서 적응을 잘하지 못한 눈치 없는(?) 장교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과거가 제시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이현성에게 별도의 트라우마를 제시해서 극복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그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이현성의 특성 진화 계기에 대한 각색과 맞물리게 만들어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건 원작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길영을 보면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이현성의 모습은 이현성에게 주어진 트라우마에 대한 말이 되는 극복의 계기로 작동하고, 오히려 이현성이 동료들의 칭찬(?)을 통해서 그룹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맞이하는 특성 진화의 계기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이현성이 원작에서 맞이하는 특성 진화의 계기는 그게 글의 형태로 쓰여 있으니까 적당히 말이 된다고 넘어갈 수 있지, 그게 영상화된다고 했을 때 개연성 있다고, 이해가 된다고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다. ⑥ 정희원과 이지혜의 트라우마 정희원과 이지혜 또한 마찬가지다. 원작에서 이지혜는 이후의 극장 시나리오에 가서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맞이한다. 이지혜가 원작에서보다 빠르게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맞이하도록 각성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1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영화는 무리하는 게 보일 만큼 최대한 다양한 주연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그냥 등장만 시켜 놓고 밍숭맹숭하게 넘어가 버리면 주변 인물들이 소비되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1편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깊게, 잘 다뤄야겠다는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이유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극장 던전의 이야기가 이후 영화에서 등장할지 의문이다. 전독시 전체의 이야기를 5편으로 줄이려면 엄청나게, 아주 엄청나게 많은 각색과 함께 시나리오를 많이 생략해야 하는데 하는데, '극장 던전' 이야기가 생략되지 않고 남아있는 시나리오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후속편에서 극장 던전 이야기를 하기로 확실하게 마음먹은, 계획이 짜인 상황이 아닌 이상 이지혜에게 별도의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를 만들어줘야 했고, 영화는 김독자의 행동에 감화받아서 원작에서보다 일찍 극복의 계기를 맞이하는 것으로 각색했다고 생각한다. 이지혜의 극복에 대한 주요 기여자는 김독자인데, 영화는 이지혜가 특히 김독자에게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김독자는 충무로 시나리오에서 이지혜의 각성을 촉구하며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혼자 살아남으려다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잖아." 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김독자의 말이 특히 이지혜에게 울림이 있는 이유는 김독자 또한 스스로를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독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전 제가 살기 위해 제 친구를 죽인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김독자가 친구인 민석이와 싸워서 민석이를 팬 건 학교에서 일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했던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민석이는 자살했다. 김독자로서는 자신이 민석이를 죽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지혜가 시나리오1에서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서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김독자와 이지혜의 트라우마는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김독자는 이지혜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김독자가 이지혜에게 건네는 "전 제가 살기 위해 제 친구를 죽인 적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이지혜에게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지혜에게 1편에서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계기가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맞물려서 자연스럽게 설명되도록 각색했다. (3) 정희원의 설정 변화 원작에서 정희원은 멸살법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고, 영화에서 정희원은 멸살법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정희원의 설정을 이렇게 각색한 이유는 영화 분량상의 문제가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김독자가 정희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여러 과정을 통해서 김독자가 정희원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된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원작의 주요 인물들을 모두 다루면서 또 그 인물들의 성장의 계기까지 만들어줘야 했기 때문에 정희원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소개하면서 천천히 친해지는 선택을 하기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희원을 뺄 수는 없다. 정희원은 명실상부하게 원작의 주요 인물이고, 에필로그에서까지 계속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한다. 매력 있는 캐릭터고, 원작의 정희원 캐릭터에 대한 팬층도 두텁다. 따라서 정희원을 등장시키면서 정희원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해서 분량을 압축할 방법이 무엇인가 떠올려보면,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정희원 또한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로 각색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희원에 대한 각색이 문제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희원을 영화처럼 각색할 경우, 원작에서 김독자와 정희원 사이의 몇몇 장면들이 사라진다. 그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나도 김독자와 정희원 사이의 티키타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장면들이 전독시의 핵심적인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만약 원작에서 정희원에 대한 설명이 영화에서와 같았다 하더라도 원작은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곁가지로 조금만 더 이야기해 보면, 원작에서는 정희원은 편의점에서 철두파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람이었다는 설정이었고 영화에서는 편의점에서 자신의 친구가 죽은 사람이었다는 설정이었다. 원작에서 정희원의 분노는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했던 일에 대한 분노였고, 영화에서 정희원의 분노는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였다. 자신을 위해 분노하는 것이 친구를 위해 분노하는 것으로 바뀐 건데, 바뀐 분노의 계기도 충분히 멋있었다. (4) 총을 사용하는 유중혁과 이지혜 유중혁과 이지혜의 무기가 조금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둘 다 칼을 쓰는데, 영화에서는 유중혁의 경우 칼과 총을 다 쓰고 이지혜의 경우 총만 쓴다. 원작에서 유중혁은 시나리오 중후반부에 가면 메인 무기들(천총운검, 흑천마도 등)이 생기는데, 초반부에 보조적으로 총을 사용하는 것으로 각색한다고 해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도 유중혁은 총을 보조적 무기로만 사용하고, 주요한 피해를 주는 장면에서는 항상 칼을 쓴다. 유중혁과 이지혜에게 칼이 아닌 총을 쥐여준 이유는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이 주로 근접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액션의 다채로움을 더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지혜가 총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다채로움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은데, 설정상 총을 쓰는 게 어색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지혜의 배후성은 해상전신인 이순신인데, 이순신은 조총 개발을 주도한 사람일 만큼 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1593년 5월 12일 편을 보면 "새로 만든 정철총통을 비변사로 보냈다(新造正鐵銃筒 送于備邊司)"라는 대목이 있고, 자신의 수군 각 진영과 각 고을에서 조총을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3) 원작의 설정상 이지혜는 이순신의 친구(전우)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께서 자신의 친구의 후손이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은 무기라고 여겼던 총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분노할 거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원작의 이순신 장군을 봐도 그렇게 평가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액션의 다채로움을 위한 각색이었다고 가정하면, 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각색이었다고 생각한다. (5) 김독자의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 스킬 원작에서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은 김독자의 중요한 스킬이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금호역 터널 시나리오에서 뭘 그렇게 아는 게 많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저는 별다른 스킬도 없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금 알 수 있어요'라는 취지로 대답한다. 영화에서만 보면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의 스킬을 못 쓰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김독자가 '제4의 벽'을 못 쓰면서 발생하는 중요한 효과는 자신의 상태창을 못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김독자가 자신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 지하철에서 김남운과 싸울 때 자신의 능력에 코인을 투자할 때는 상태창이 올라와서 보여지는데, 금호역에서 방철수 파와 싸울 때 "근력 1,500코인 추가"라고 말을 했을 때는 상태창이 올라오지 않는다. 또한, 지하철에서 김남운과 싸울 때 김남운의 공격 패턴을 미리 마음속으로 예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이게 원작을 읽어서 아는 건지 아니면 '전지적 독자 시점' 스킬을 써서 알게 된 건지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일단 1편의 전개만 놓고 보면 2편에서 '제4의 벽'과 '전지적 독자 시점'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나중에 발견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설명하는 방식) 영화가 전개되어도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두 스킬이 빠진 것으로 각색된 게 아니기를 바란다. 2회독을 하고 쓴 전독시 리뷰에서도 썼는데, 나는 원작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가 김독자의 독자(讀者)로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게 김독자가 가진 위의 두 스킬이기 때문에 후속편에서 이 스킬이 명확하게 등장하면 좋겠다. + 책갈피 스킬도 등장하기를. (6) 유중혁이 회귀하면 세상이 사라진다. 암흑성 마왕 에피소드에서 유중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회귀해도 이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세계가 리셋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소리다.” 원작의 설정은 분명하다. 유중혁이 회귀해도 이 세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다르다. 유중혁이 회귀하면 그 세상은 사라진다. 이렇게 각색한 이유는 김독자에게 행동의 동기를 부여해주면서 영화의 마지막 빌런인 화룡종과의 전투에 더욱 긴박감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유중혁이 죽더라도 세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김독자가 계속 유중혁을 살리려고 노력할 이유가 사라진다. 김독자가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활용해서 유중혁의 역할을 대신하면 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초반부 김독자는 유중혁이 죽어서 회귀하면 이 세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유중혁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설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에서 다르게 설정한 이유는 화룡종 에피소드에서 실제로 유중혁이 죽어서 세상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때 느껴지는 절망감, 막막함을 통해 화룡종을 물리쳐서 다시 세상을 복원시키는 에피소드가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더해서 초반부터 명확하게 '이중혁이 죽으면 이 세상이 다 망한다'라고 못 박고 진행할 때 김독자에게 더욱 명확한 동기를 부여해줘서 관객들로 하여금 김독자의 행동이 더 잘 와닿게 만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 각색은 상당히 과감한 각색이다. 향후 줄거리를, 특히나 최후반부나 에필로그 혹은 외전에서의 이야기를 원작과 다르게 가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설정 변화다. 1편에서 이렇게 각색한 것 자체는 이유 있는, 이해할 수 있는 각색이지만 후속편들에서 바뀔 이야기의 방향이 재미있지 않다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각색이기도 하다. (7) 기타 각색들 짧게 다루고 넘어간다. 1) 김독자와 유상아의 성격 변화 김독자와 유상아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원작에서 초반부의 김독자와 유상아는 다소 딱딱하고 사람 냄새가 덜 나는(?) 캐릭터였는데, 그대로 영상화시켰을 경우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우려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공통적으로 유상아와 김독자 모두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해졌고, 유상아는 보다 장난기가 많고 김독자는 덜 능숙하게 각색됐다. 금호역 시나리오에서 유중혁 이야기를 하면서 유상아가 정희원을 바라보며 "잘생겼어!"라고 하는 장면은 원작의 유상아라면 하지 않았을 대사가 확실하다. 유상아의 각색된 모습도 충분히 매력 있었다. 김독자의 경우 더 인간미가 느껴지게 각색했다는 장점이 있는데, 김독자의 능숙함은 김독자가 가진 제4의 벽 스킬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후속편에서 관련된 설정을 어떻게 정리할지 주목할 생각이다. 2) 지하철 시나리오의 메뚜기 -> 개미 지하철 시나리오에서 원작의 김독자는 메뚜기를 잡는데 영화의 김독자는 개미를 잡는다. 메뚜기를 개미로 바꾼 건 개미알의 시각효과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김독자가 메뚜기알을 여러 개 터뜨리면서 많은 생명을 죽인 효과를 얻어 코인을 많이 획득하는 기회를 얻는데, 메뚜기알은 메뚜기 배 안에 있기 때문에 김독자가 그걸 터뜨려도 정확히 뭘 했는지가 영상으로 표현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개미알은 밖에 드러나기 때문에 개미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김독자가 뭘 해서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영상을 통해 드러날 수 있었다. 다만, 이 각색은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메뚜기알은 매뚜기 배 알에 있으니까 메뚜기 배를 갈라서 그 알을 나눠서 가져서 모두 살아남는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개미알은 사람 수대로 나누는 게 어렵지 않게 보이기 때문에 김독자는 그 지하철에서 아주 쉽게 모두를 살릴 방법이 있었음에도, 심지어는 모두를 살린 이후에도 수많은 코인을 얻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하지 않은 다소 싸이코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별생각 없이 넘어가면 넘어갈 수 있는 씬이지만, 되돌아서 생각해 보면 김독자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3) 기타 작은 부분들 초반에 7급 해수종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원작에서 사용된 '망치 해마의 점액' 설정을 없애서 사냥 방식을 간소화했고, 이후 안국역에서 화룡종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얻게 될 청빙환을 7급 해수종 사냥에 따른 보상으로 바꿨다. 이후 독이 퍼진 외부에서 마스크 역할을 할 엘라인 원숭이의 허파를 구매하는 것을 7급 해수종 사냥에 따른 보상으로 바꿨다. 엘라인 숲의 정기 아이템을 사용하는 장면도 뺐다. 원작에서는 그린 존 시나리오 이후 안국역으로 가서 선지자들의 밤에 참석하고 사도들의 계략에 당하는 과정에서 화룡종을 만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그린 존 시나리오 이후에 충무로역에서 화룡종이 등장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쿠키영상에서 다른 역에서 뭔가 무시무시한 것들이 온다고 암시하는데, 한수영이 등장하지 않을가 추측한다. 이러한 각색들은 모두 '설명이 필요한 설정을 최소화해서 분량을 줄이고 압축적인 전개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설명된다. 이런 각색이 없었다면 화룡종을 잡는 데까지 이야기의 진도를 뺄 수 없었을 것이다. (8) 원작의 팬들께 전하는 말 : 영화는 원작의 핵심을 훼손시켰는가? 이런 주장이 많으니까 하지 않을 수 없는 논의이기는 한데, 가장 하기 싫은 논의이기도 하다. '핵심'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걸 규정한 권한이 누구에게 있을까? 핵심이 뭔지 논증할 방법이 있기는 할까? 이제 막 영화 1편이 개봉했을 뿐이다. 소설로 따지면 이제 막 안국역 에피소드가 끝났다. 소설 60화 정도에 막 도착했을 뿐이다. 전독시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전독시의 핵심 메세지나 철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있을 텐데, 소설 60화를 읽으면서 벌써 그 결론을 냈었나? 아닐 거다. 완결을 보고 에필로그까지 읽으면서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영화에 대해서도 관용을 가져주면 어떨까? 지금 1편의 진행이 당신이 생각하는 전지적 독자 시점의 핵심적인 요소와 맞물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 지켜봐 주는 건 어떨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영화 1편은 향후의 진행에 대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러니 이번 재해석이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봐 주고, 실망하더라도 이 영화 시리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나온 이후에 실망하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 이 논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전독시 원작의 팬들일 가능성이 크니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김독자나 김독자 컴퍼니의 동료들이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가진 핵심 철학을 자신들만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까? 아니면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오독도 있을 수 있고 엇나간 이해도 있을 수 있고 무리가 있는 해석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읽히고 이야기되고 재해석되기를 바랐을까? 원작에서 김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분명한 전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에필로그에서 가장 오래된 꿈이 된 김독자는 수많은 전독시의 세계선들을 살펴봤을 텐데, 그 세계선들은 시나리오에 대한 각 세계선의 주인공들의 해석이 담겨있다. 그중 많은 세계선들의 시나리오 전개는 가장 오래된 꿈인 김독자가 원하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전개와 달랐을 것이다. 김독자가 그 세계선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전개와 다르다고 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시나리오의 핵심에 어긋난다고 해서 매번 개입하거나 비판하면서, 이 세계선은 진정한 멸살법 세계선이 아니고 전독시 세계선이 아니라고 날서게 비판하면서 그 세계선들을 바라봤을까? 아닐 것 같다. 김독자라면 보는 것만으로 좋았을 것이고, 두근거리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 같다. 같은 마음이어주면 좋겠다. (9) 각색과 원작에 대하여 : 각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재미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할 때는 반드시 논란이 뒤따른다. 각색을 왜 했냐? 혹은 왜 저렇게 했냐는 논란이다. 원작 팬 중 일부는 각색된 작품이 원작의 어떠한 점도 바뀌지 않고 원작을 그대로 드러내기만을 바라기도 한다. 원작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원작에 대한 마음이 깊으면 원작의 모든 면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 그대로의 원작을 좋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원작이 바뀌면 그건 작품의 훼손이자 원작에 대한 모독, 나아가서는 원작 팬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낀다. 전독시는 훌륭하지만 다소 덕스러운 소설이기도 하다. 설정이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의 매회마다 설정을 줄줄 읊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 관점에 따라서는 마이너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클 수도 있고,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작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남다를 수도 있다. 이런 작품을 각색할 때는 일단은 반드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설정이 바뀌는 것, 어떤 이야기가 생략된 것 자체를 원작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색한 작품이 모두 욕을 먹고 망하는 것으로 끝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원작을 각색해서 어떤 내용을 빼거나 바꾸었다는 점에서 기분이 상한 사람들을 설득할 만큼 독자적인 매력을 보여주면 된다. 좀 더 편하게 말해보면, 엄청나게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해도 화를 낼 팬들은 화를 내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원작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작품'으로 이해해 주기도 한다. . 매체는 매체의 고유한 표현 방식, 호흡, 작품의 공개 방식, 소비자층 등이 모두 다르므로 원작이 있는 경우 반드시, 반드시 각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주 드물게는 각색을 최소화하고 그대로 충실하게 이식하기만 해도 훌륭한 작품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아주 작다고 생각한다. 원작이 훌륭한 경우 그 매체의 표현 방식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훌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표현 방식의 매체에 와서도 원작의 표현 방식이 그대로 훌륭한 방식이 될 가능성은 작다. 따라서 각색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고, 각색했다는 것 자체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설정을 빼거나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구체적인 각색의 방향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비판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비판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에 인어공주 영화를 리뷰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작 이상이었다. 이걸 평작 이하라고 평가하면 평작인 영화는 거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어공주 영화를 많이 싫어한다. 인어공주에 대한 비판으로 PC주의(정치적 도덕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영화 리뷰에도 쓴 내용이지만, 나는 그 비판의 내용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이 아주 듬뿍 들어간 영화도 훌륭할 수 있고, 반대로 아주 별로일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이 전혀 없는 영화도 훌륭할 수 있고, 반대로 아주 별로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영화가 훌륭하고 재밌는 건 그 영화가 PC주의를 담고 있냐 담지 않고 있냐와 별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어공주를 비판할 때 PC주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그건 디즈니의 최근 행보와 연관지어서 '디즈니가 PC주의에만 집중하고 작품의 퀄리티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면 의미 있는 맥락이 생기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PC주의 자체는 영화가 못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멋지고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매드맥스를 누가 뭐라고 하는가? 나는 인어공주가 욕먹는 이유는 그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든지 인어공주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인어공주를 싫어한 이유가 주인공이 흑인이어서라는 아주 언PC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흑인이어서 원작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감을 느끼더라도 영화 자체를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서 그 사람들의 반감을 안아줄 수 있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지 않았을까? 일단 싫은 감정이 먼저고 사람들은 그 이후에 그 싫은 감정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PC주의든 뭐든 보이는 것들을 집어내서 이를 비판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2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그 게임을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는데, 중간중간 이상한 비판들도 많이 끼어있었다. 엘리의 잔근육이 비현실적이라느니 어떤 주인공이 스테로이드를 쓴 것 같다느니 하는 비판들이 있었는데, 그게 게임이 못난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의문이었다. 여태껏 다른 게임들을 판단한 기준이 된 적도 없다. 인어공주 때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2를 싫어하게 됐고, 일단 싫어하게 되었으니, 이유를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을 안다. 그중 상당수는 합리적인 비판이지만, 나는 그 영화에서 각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어떤 설정이 사라졌거나 바뀌었다는 점 자체에 분개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위에서 말했듯이 다른 매체에 작품을 이식할 때 각색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전독시같이 설정이 많은 작품은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각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비판을 위에서 말한 인어공주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2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좋아한다. 평작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에도 여럿 추천했다. 다만, 명작이나 수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작과 무관하게 눈에 보이는 아쉬움들이 여럿 있었고, 이 글에서 성의 있게 표현해 놓았다. 미묘하다기보다는 다소 눈에 띄는 아쉬움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고, 흥행하기를 바라고, 후속작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도 명작이나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지만, 재미있어서 미치겠다고 느낄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만약 이 영화가 아주 훌륭했다면, 미칠듯이 재미있었다면, 원작/각색과 별개로 눈에 보이는 아쉬움들이 적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일부 원작 팬들의 강한 비판이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다. 나는 위에서 몇몇 각색에 대해 왜 그렇게 각색되었는지, 그래서 괜찮은 각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적었다. 각색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각색을 비판하는 이유가 정말 각색돼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해서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몇몇 설정이 바뀌고 삭제되면서 느껴지는 서운함을 달래줄 정도로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지, 충분히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더 재미있게 만들었으면 없었을 비판이지 않았을까. 원작의 개성이 강한 작품이라면 원작 팬들의 각색작에 대한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더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야 했다. 전독시의 흥행도 어느 정도는 원작 팬들의 사랑에 기반한 것 아니겠는가. 어느 자리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훌륭한 영화는 취향을 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취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향은 있겠지만, 다른 취향마저 설득할 수 있는 영화가 진짜 훌륭한 영화라는 것이다. 각색작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영화는 원작을 얼마나 각색했는지와 무관하다'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원작을 많이 각색했다면 원작 팬들은 슬퍼하겠지만, 정말 훌륭한 영화라면 그 슬픔마저 보듬어주고 달래주며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좋아하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주변에 추천도 하고 다닌다. 다만, 각색으로 인해서 슬퍼하는 원작 팬들의 슬픔을 보듬어주고 달래주며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영화인지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들다. 4. 김독자의 마음으로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위에서 언급한 아쉬운 점들을 잘 보완해서 완성도 있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전독시 원작의 팬들과 팬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받기를 바란다. 김병우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를 존경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줘서 내가 상상만 하던 세계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에필로그에서 김독자는 희생한다. 누군가는 이 세상을 보고 있어야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서 이 세상을 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을 보는 역할을 하는 김독자는 점점 더 무의식의 영역으로 침잠해 가고 파편화되고 쪼개져서 세상으로 흩어진다. 김독자의 동료들이 김독자를 되찾을 방법은, 흩어진 많은 김독자들이 김독자의 귀환을 바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김독자의 상상은 현실이 되기에 그렇다. 흩어진 김독자들이 [전지적 독자 시점]을 읽고 김독자의 귀환을 상상하면 김독자가 돌아올 수 있다. 나는 흩어져서 김독자의 귀환을 상상하는 김독자의 마음으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보고 있다. 더 많은 김독자들이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본다면, 김독자가 다음 영화로 되돌아올 수 있다. 소설에는 김독자 컴퍼니가 '그렇게 해서 돌아온 김독자가 우리가 아는 김독자가 아니면 어쩌지'라며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확신이 없더라도 김독자 컴퍼니는 김독자 되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해서 돌아온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내가 아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내가 아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단 하나의 [전지적 독자 시점]을 규정할 권한을 가지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보고 듣고 읽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설령 그것이 나의 이해와 다르더라도 누군가가 이해한 [전지적 독자 시점]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김독자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리뷰 - 영화 추천 여부, 각색 등 이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작성자 아라미루 테스트 파일: 개인정보 처리방침 변경(전,후)_260710.pdf 테스트 파일: HWP_테스트.hwp test-lock.hwp 1) 주석 처리 테스트 설명입니다. 2) 두번째 주석 테스트입니다.
지난 회에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을 쓰고 나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 아메리칸 스나이퍼 >를 보았다. 한동안 두 영화가 뒤섞이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두 편 모두 걸작이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영화는 외적인 공통점이 많다. 특별한 능력을 갖춘 전문가-군인이 주인공이며, 승리한 전투를 그리면서도 서사는 모종의 패배를 다룬 희귀한 주류 전쟁영화라는 점, 보수파 감독이 만든 애국적 영화로 받아들어 졌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더 깊은 수준의 친연성도 있다. 7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공히 영화의 체험이라는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주류영화 중에서 언어화된 서사와 체험된 서사가 이렇게 다른 사례도 드물 것이다. 한 편의 영화는 고유한 감각경험의 집합체다. 그 집합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더 많은 것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두 영화는 그렇게 하도록 고무한다. 그런 영화가 좋은 영화일 것이다. 그 고무에 힘입어 두 영화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1. 영화는 설득하면서 유혹한다. 설득의 도구는 주로 서사다. 캐릭터, 구성, 이야기의 힘이 서사라는 도구를 구성한다. 유혹의 도구는 한정되지 않는다. 배우의 얼굴, 그의 음성과 몸짓, 풍경, 신체의 손상과 물체의 파괴, 특정 피사체, 소리와 음악, 테크놀로지, 혹은 스크린이나 영사의 물리적 과정 자체... 스크린에 등장하거나 그것을 둘러싼 시청각적 요소들이 유혹의 도구가 된다. 때로는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도 종종 유혹의 도구가 된다. 한 편의 영화는 유혹의 복합체, 갖가지 페티시의 집합체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은 초계정과 어뢰다. 두 사내는 2차대전에 참전한 초계어뢰정 함장이며 그들에게 전쟁의 대의는 1차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무공훈장에도 동료들의 수훈에도 무관심하다. 소형 초계정에 탑재된 어뢰라는 작은 물체로 적의 대형 구축함을 파괴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쾌락이다. 그들은 애국적 전사이기 이전에 어뢰의 물신숭배자다. 어뢰라는 주물(呪物)의 물신적 쾌락은 관객에게 전이된다. 전이의 기술은 간단하다. 극중 인물은 어뢰의 운동을 볼 수 없지만 카메라는 본다. 카메라의 특별한 능력 덕에 물거품을 일으키며 구축함을 향해 맹렬하게 유영하는 어뢰의 관능적인 움직임을 객석에 앉은 우리는 고스란히 볼 수 있다.(#1) 어뢰가 발사되는 순간 그 운동을 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은 잊혀진다. 오직 그 주물이 목표물에 정확히 도달해 대상을 산산조각내는 것이 이 운동의 유일하고 정당한 목적이 된다. #1 < 아메리칸 스나이퍼 >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은 총과 총알이다. 주인공 크리스 카일은 이라크 전쟁에 자원 참전한 전설의 저격병이며, 그에게 총과 총알은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초계정과 어뢰에 상응하는 주물이다. 총알은 어뢰와 달리 그 운동을 사실주의적 카메라조차 볼 수 없다. 쾌락의 완성은 총알의 운동을 21세기의 디지털 기술로 조작한 마지막 저격 장면에서 이뤄진다. 스크린에는 총알의 운동이 초저속 화면으로 전시되며(#2), 그 주물은 2km를 날아가 전설의 이라크 저격수 무스타파를 쓰러뜨린다. #2 모든 영화에는 잠재적 주물들이 전시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물의 유혹은 은폐된다. 하지만 두 영화는 페티시즘 자체를 소재화한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페티시즘은 하워드 혹스적 전문가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여기엔 의무와 분노에 사로잡힌 포드의 전형적 영웅이 없다.(이 영화와 <에어 메일>(1932) < 윙스 오브 이글 >(1957) 등은 혹스의 전문가주의를 공유한다.) 이들 전문가에게는 자신의 도구와 그 도구의 능력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데이 워 익스펜더블>의 제일 슬픈 장면은 두 주인공이 상부의 명령으로 자신들의 마지막 초계정을 육군에게 넘겨줄 때이다. 그들은 자기 육체의 일부와도 같은 초계정이 육상 운송수단에 의해 숲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응시한다.(#3) 가공할 능력의 어뢰를 뱉어내며 바다 위를 뱀처럼 유영하던 더없이 민첩한 육체가 이제 트럭에 실린 고철 덩어리의 형상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데이 워 익스펜더블>은 전쟁영화이지만, 자신의 도구를 빼앗긴 전문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3 2. < 아메리칸 스나이퍼 >의 물신성은 복잡하고 모호하다. 여기엔 약간 긴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물신성에는 전문가주의 이전에 주인공의 사적인 역사가 작용한다. 이라크 전장의 첫 시퀀스 다음에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 장면이 이어진다. 크리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린 사슴을 쏘게 한 뒤 “넌 사냥꾼의 소질이 있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무서운 표정으로 “총은 절대 내려놔선 안 된다”고 다그친다. 총에 새겨진 역사는 가족이 모인 식탁에서 아버지에 의해 간접적으로 말해진다.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양과 양치기 개와 늑대. 세상에 악마가 없다고 믿고 싶어하는 족속이 양이다. 폭력으로 약자를 먹이 삼는 족속이 늑대다. 공격의 재능으로 무리를 보호하는 귀한 족속이 양치기 개다... 우리 집에선 양 따위는 키우지 않는다. 늑대는 내 손에 끝장난다. 누가 네 형제에게 싸움을 걸어오면 그 자식 끝장내버려라.” 여기서 서부의 정복과 연관된 미국 자경주의 역사와 서부극 전통을 떠올릴 수 있지만, 굳이 텍스트 밖의 지식에 기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말에는 양에 대한 경멸, 늑대에 대한 증오, 그리고 양치기의 폭력적 능력에 대한 무제한의 믿음이 뒤섞여 있다. 식탁 장면 직전에 가족들이 교회에 앉아 목사의 설교를 듣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목사는 말한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스런 계획을 모릅니다... 하늘에 이르는 날에 우리는 주님의 뜻을 보고 이해할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씀 장면 사이에 놓쳐선 안 될 인서트 숏이 있다. 책상 위 성경의 줌인 숏(#4)이다. 교회 장면에서 성경을 만지작거리던 크리스는 이후 다시는 성경을 펼쳐보지 않는다. 후에 “네가 성경 읽는 걸 본 적이 없는데”라고 전장의 동료는 말한다. #4 인간의 불가피한 무지를 강조하는 목사의 설교, 펼쳐지지 않는 성경, 아버지의 신경증적이고 단순한 양치기론이 크리스의 전문가주의를 구성한다. 그러나 아직 그는 전문가가 아니다. 다음 장면에서 크리스는 청년으로 등장하고 전 장면의 아버지의 말씀이 내레이션처럼 이어진다. “넌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 장면은 기묘하다. 크리스의 건장한 신체와 얼굴을 줌인하는 카메라워크는 영웅 등장의 관습적인 기법이며 아버지의 내레이션은 그의 영웅성을 보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이은 장면들에서 그의 모습은 로데오경기를 쫓아다니는 한심한 반백수일 따름이다. 외도 현장을 들켜 쫓겨나는 그의 여자 친구는 소리친다. “당신이 카우보이인줄 아나본데 천만에. 하찮은 농장지기 주제에!”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공격당했다는 뉴스가 그를 잊었던 전문가 세상으로 이끈다. 그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고 다시 총을 쥔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사내들에게 초계정과 어뢰는 이 영화의 서사 이전에 이미 주어진 주물이지만, < 아메리칸 스나이퍼 >의 크리스에게 총은 서사 초반의 어떤 과정을 통해 되찾아지는 대상이다. 크리스의 총 재획득이라는 선택에 시간적으로 앞선 주요 사건 혹은 상황은 네 가지다. ①“총은 절대 내려놔선 안 된다” “넌 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아버지의 오래된 말씀, ②펼쳐지지 않은 성경, ③여자 친구의 모욕, ④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테러. 하지만 이 사건들과 총 재획득의 인과관계는 모호하다. 총 재획득 직전에 발생한 ④의 테러를 유일하거나 가장 강력한 원인의 자리에 놓으면 총 재획득은 단선적인 애국주의적 선택이 된다. 이 해석은 편리하고 일반적이다.(이 영화가 미국에서 이스트우드 연출작으로는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린 사실, 미국과 한국의 일부 평자들이 이 영화를 이스트우드의 극우적 성향을 드러낸 영화로 간주한 사실, 그리고 크리스의 장례식장에서 각본가 제이슨 홀에게 “허튼 이야기 쓰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던 크리스의 전우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만족했다는 사실은 이 해석의 보편성을 방증한다.) 이 해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스트우드는 그렇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르게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①을 초자아의 무자비한 명령으로, ②를 무지와 비성찰의 은유로 ③을 총=남근 재획득을 욕망하는 계기로 간주해 전혀 다른 계열의 해석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그 해석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말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표정과 공기다. 미 대사관 테러라는 사건 이전까지 크리스의 얼굴에는 불안과 공허가 새겨져 있고, 화면에는 스산한 냉기와 기묘한 침묵이 흐른다. 불안과 공허의 표정, 냉기와 침묵의 공기. 이들은 사건과 무관하게 혹은 사건 이전에 이미 주어져 있으며, 이후 사건의 진행 과정에 수시로 틈입한다. 서사를 안갯속에 가두거나 마치 그 위에서 세워진 모래성처럼 보이게 하는, 그래서 인물들의 어떤 강렬한 결단과 선택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듯한 알 수 없는 불안과 침묵의 공기라는 초텍스트적 환경 혹은 기후가 < 아메리칸 스나이퍼 >를 주재한다. 그러니 크리스의 마지막 전투에서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지우며 세상을 삼킬 듯 불어오는 모래바람(#5)보다 그 주재자의 더 적절한 현신을 상상하기 힘들다. #5 총은 안갯속에 있고 모래바람 속에 있다. 총알은 안개를 뚫고 모래바람을 가르며 목표물을 향해 돌진한다. 총과 총알의 물신성은 그 특별한 운동능력에 기반할 것이다. 그런데 총알의 궁극적 목적지는 과연 적인가, 나인가. 2km를 순식간에 날아 가장 강력한 적의 몸을 꿰뚫었던 그 총알이 어째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위로 결국 크리스의 몸에 도달하는가.(집에 돌아와 ‘평화롭게’ 살던 크리스는 자신이 돕던 정신이상자 상이군인의 총에 살해당한다. 그 살해 장면은 생략되어 있다.) 카메라 조작으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적을 관통한 총알의 운동 장면, 그리고 총알이 크리스의 몸을 뚫었을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 그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안개와 모래바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대답 될 수 없는 이 질문은 총이라는 주물의 이중성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그 안개와 모래바람을 알 수 없는 한, 총은 언제 자리바꿈할지 모르는 공격의 무기/자해의 도구다. 이것이 < 아메리칸 스나이퍼 >에서 총이라는 주물이 지닌 불안정과 모호성의 정체다. 3.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기묘한 점은 국운과 생사가 걸린 전투가 이어지지만 그것이 사건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사건의 사건성을 압류하는 공기가 흐른다. 한 사건의 사건성은 다음 사건을 이끌어내는 물리적 정서적 강도이며, 대개 그 힘에 상응하는 정념적 주체의 감정 반응을 동반한다. <데이 워 익스펜더블>에는 양자 모두 왜소하거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의와 의무의 육중함도, 승리의 환희도, 죽음의 공포도 일상의 한 국면처럼 무심히 흘러가며 인물들은 격정 없이 소멸해간다. 이것이 지난 회에 말한 무언가 자꾸 사라져 간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느낌은 한두 가지 장치의 효과는 아니다. 먼저 인물들의 전문가적 냉소주의라는 태도가 있다. 소형 초계정으로 일본 구축함을 침몰시키고 귀환한 영웅들의 표정은 하루 일과를 무사히 끝낸 직공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들을 맞는 전우들의 태도는 동네 요리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이웃을 맞는 주민의 태도보다 시큰둥하다. 이야기에 포함된 비관주의도 있다. 초반에 이미 사령관은 두 영웅에게 자신들이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 소모 시간을 연장하는 역할만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인물들이 소실점으로 이동하는 구도의 심도 화면들, 어둠의 지속과 힘을 암시하는 표현주의적 조명 등도 함께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엔 사건들 사이에 침묵의 숏이라고 부르고 싶은 공백의 장면들이 있다. 영화는 때로 침묵한다. 유성 영화가 발명한 것은 발성이지만 발견한 것은 침묵이다. 무성영화에서 침묵은 조건이었지만 유성영화에서 침묵은 표현이다. 어떤 침묵의 표현은 모든 소리의 표현을 압도한다. 지난 회에 언급한, 남녀가 묵묵히 앉아있는 숏(#6)처럼, 사건들 사이에 등장해 사건을 잊은 채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장면들. 사건들의 힘은 이 장면들에 이르면 증발해버린다.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맥아더의 언어들, 그리고 영웅들의 용맹한 전투 서사는 남녀의 침묵 장면 앞에서 무력해진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이 체험되어야 할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런 숏과 장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6 < 아메리칸 스나이퍼 >에서도 사건은 사건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 카일은 이라크에 네 번 파병되지만 네 번의 전투는 진전이 아니라 반복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사건은 조금씩 진전되지만 사건의 힘에 상응하는 정념적 주체의 감정 반응이 즉각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반응의 감정 기제가 없는 사람, 내면이 텅 빈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 허트 로커 >에서처럼 전문가-기계가 정념적 주체를 대체한 건 아니다. 여기엔 모종의 반응 활동이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사건과 감정 반응 사이에는 그 메커니즘이 극히 복잡하고 불투명한 신경증적 회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이 회로의 작동에 침묵의 표현이 동원된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다. 딸이 태어난 직후 크리스는 들뜬 표정으로 병원 신생아실 앞에 서 있다. 신생아실 유리 벽 너머로 갓 태어난 딸이 보인다. 그런데 딸이 울고 있다. 간호사들은 아무도 크리스의 딸을 보지 않는다. 크리스는 거의 미칠듯한 얼굴로 자신의 딸을 보아달라고 소리친다.(#7) 하지만 유리 벽 안의 간호사들은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공포영화의 효과음과도 같은 날카로운 현악 사운드가 기습적으로 흘러나오지만, 이 장면은 이후의 어떤 사건과도 연관되지 않는 괴이한 삽화다. #7 손쉬운 해석은 이 장면을, 어린 크리스가 사슴을 쏘아죽인 초반 플래시백의 첫 장면, 그리고 그가 대전차 수류탄을 든 아이를 저격한 첫 파병 장면에 대한 지체된 반응으로 보는 것이다. 사건은 벌어지고 즉각적 반응은 침묵한다(크리스는 저격에 성공하고 나서도 승리의 웃음이 없다). 하지만 사건의 힘은 인물의 내부에 잠입해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모종의 증상(고혈압, 신경증, 불안, 대인기피)으로 출몰한다. 그런데 여기까진 많은 이상심리의 병사들을 그린 많은 반전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크리스는 그럼에도 ‘정상’이었다는 것이며, 퇴역 군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 살인자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며 관객인 우리는 그 살인에 대해서 완전한 무지의 상태에 놓인다. < 아메리칸 스나이퍼 >의 비극은 터무니없는 비극이며, 난센스 유머와도 같은 비극이다. 정리해보자. 크리스는 자신의 정상성을 완강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퇴역 군인이 그를 죽였다. 비정상인이 정상인을 죽인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둘은 모두 퇴역 군인이다. 우리는 크리스의 정상성으로 가정된 상태가 살인자의 비정상성으로 추정된 상태와 멀지 않다고 짐작할 수 있다. 둘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둘은 동지인가 적인가. 영화는 침묵한다. 둘 사이에 모래바람이 불어 식별할 수 없다. 어떤 터무니없는 것이 작동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공동체의 완전한 내파가 있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영웅들은 부하를 사지에 버렸지만 유대감마저 파괴된 건 아니다. 거기엔 공동체의 기억과 기대가 여전히 남아있다. < 아메리칸 스나이퍼 >에는 어떤 종류의 유대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전쟁의 효과인가. 그렇지 않다. 첫 플래시백의 가족들을 떠올려보라. 거기엔 강퍅한 명령 외엔 어떤 유대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버지는 이미 강박증자다. 이라크에서 아이가 죽기 오래전에 이미 사슴이 죽어있다. 신생아실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크리스는 지금 유리 벽 밖에서 소리치고 있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듣지 못한다. 그는 딸을 보살피라고 유리 벽 안의 간호사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간호사들에게 그의 말은 들리지 않으며 아이들의 울음이 예사인 신생아실에서 그 요구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크리스의 말을 듣기 전에 가위눌림의 형식을 뒤집어놓은 그 구도를 봐야 한다. 지금 유리벽 안에 갇혀 있는 건 크리스다. 그는 구조의 비명을 외치고 있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크리스는 자신의 외침이 유리벽 너머의 딸아이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조되어야 할 자는 소리 지르고 싶지만 온몸을 뒤틀어도 소리를 낼 수 없는 그 자신이다. 그는 침묵 당한 자다. 그 침묵 아래 가위눌린 목소리를 누구도 듣지 못하며, 더 불행하게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빤히 보이지만 듣지 못하는 유리 벽, 아와 타의 경계를 지우고 불어오는 모래바람, 그리고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침묵이 서사의 소리를 압도한다. < 아메리칸 스나이퍼 >는 사건을 읽기 전에 질식과 가위눌림을 체험하고 침묵을 들어야 하는 영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2000년 새해,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 >이 던진 잔향은 크고도 묵직했다. 한 40대 남자의 자살을 시작으로 찬찬히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는 비선형적인 서사와 개인의 상흔을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담담하고도 대찬 시선은 지금껏 봐온 영화와 또 달랐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곡점보다 조금 더 흘러간 어느 일상을 통해 남자의 과오와 고통을 짚어내는 기억의 편린들은 잔인하지만 솔직하고, 메말라 버린 감정의 남자가 원래는 순수하고 평범했음을 고백하는 여정은 슬프지만 현실적이다. 이를 위로하는 건 중간 중간 거꾸로 가는 기찻길 풍경에 흐르던 이재진의 음악이다. 그의 찬란하고 애달픈 선율은 등장인물을 위로하고, 아픈 우리네 현실을 위로하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환멸과 기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순수했던 모습을 찾아 보사노바 리듬은 부유하고 꿈을 꾼다.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크레딧에 새겨진 그의 이름은 낯설고 새로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수학한 작곡가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재진은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현장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음악가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한 기념비적인 데뷔작 <박하사탕>을 필두로, 자신의 영화적 동반자가 될 송해성 감독의 < 파이란 >과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SF 대작 < 내츄럴시티 >의 음악을 담당하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주목받았다. 필모그래피 초기에 위치한 그 작품들은 신인 영화음악가가 들려줄 수 없는 내공과 신기를 보였고, 또 놀랄 만치 다양한 스펙트럼과 폭넓은 궤적을 지녔다. 그 뒤 보여준 행보 또한 그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의미했다. 다양한 상업영화들로 범주를 넓혀가면서도 그는 영화음악에 대한 본질과 이유를 잊지 않았고, 섬세하고 탁월한 멜로디와 풍부한 감성을 얹은 오케스트레이션, 치밀한 분석과 계산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이재진의 스코어는 일종의 영화에 대한 음악적인 모범 답안인 셈이다. 송해성 감독을 기점으로 이한 , 황인호 , 정지우 , 홍지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또 허진호 와 김대우 , 변혁 , 육상효 , 변승욱 , 김민석 등 다양한 감독들의 부름에 응했다. 여전히 뜨겁고 정열적으로 활동하며 영화와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먼저 최근 개봉된 < 인간중독 >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클래식컬한 사운드에 기조를 둔 작품이었어요. 바흐의 곡(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 Concerto In D minor BWV974)을 전면에 배치했는데, 이는 김대우 감독님의 의견이라 들었습니다. 네, 그 곡을 피아노와 기타로 연주했죠.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쓸 때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또 영감이 떠오르곤 하셨다는데, 그 중 몇 곡의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그 음악들이 실제 영화에 그대로 반영될 순 없더라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쓴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인간중독>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은 이 음악에서 왔다, 그런 걸 알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바흐의 ‘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는 마르첼로라는 사람의 곡인데요 그걸 바흐가 편곡해서 유명해졌죠. 그 중 글렌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 솔로 버전은 다른 버전에 비해 색깔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는데, 감독님은 그 곡의 정서를 좋아하셨죠. 결국 그 곡을 영화의 어떤 부분에 붙인 상태로 편집실에서 넘어 왔어요. 이걸 무시하고 제가 다른 곡을 만들면 되는데, 그러기엔 너무 좋았어요. 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감독님 이 곡은 (그대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다. 중요한 장면에 쓰자. 그렇다고 두 번 반복해 쓰는 것 보다는 한 번은 피아노, 한 번은 기타로 하는 게 어떨까요, 했던 거죠. 차 안에서의 정사 씬에서는 기타로 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연주하면 글렌 굴드 냄새가 안 나요. 그의 연주 방식은 기본적인 클래식 어법에서는 어긋나는 방식이거든요. 그렇다고 글렌 굴드의 방식을 클래식 연주자에게 그대로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지인을 통해 부탁하게 됐어요. 결국 글렌 굴드의 연주 호흡과 똑같이 제가 메트로놈을 만들었어요. 글렌 굴드처럼 빠르게 느리게를 중간에 다 넣고, 그걸 들으면서 연주를 해서 더 유사한 느낌이 나도록 했죠. 기타도 그렇게 했고요. 그럼 글렌 굴드 버전을 그냥 쓰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글렌 굴드 버전은 노이즈가 너무 많고요, 또 본인이 스캣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를 하거든요. (웃음) 그대로 붙이면 문제가 있었죠. 저작권 라이선스 푸는 문제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인간중독> 버전을 만들자, 그렇게 하는 게 영화와 너무 잘 맞는 거 같았어요. 공교롭게 그 장면 이후로 음악 감상실 장면으로 공교롭게 잘 이어지기도 했고요. 김대우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제가 전에 TV 드라마 할 계획이 있었어요. 규모도 꽤 있는 작품이었고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또 해보고 싶은 매체였는데 시스템 자체가 영화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 화면에 음악이라 비슷할 거 같은데, 그래서 누군가는 영상음악 이렇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결과물이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제도가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힘들었고, 결국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하겠다고 하는 순간 <인간중독> 제안이 왔고, 그래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저를 아티스트로서 존중해주셨고, 저보다 연배도 많으시고 경력도 많으시지만 스태프로서 존중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선 너무 좋았죠. 필모를 보면 멜로 장르가 두드러집니다. 물론 조금씩 다르긴 했는데 <인간중독>에서 고민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필모 중에서 멜로가 끊긴 지점이 있어요.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 <호우시절> 이후이죠. 그 이후에 우리 영화계가 많이 바뀌었어요. 템포를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스릴러 장르가 굉장히 많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를 하게 됐는데, 전 개인적으로 멜로를 좋아해요.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음악적으로 역할이 가장 큰 장르가 멜로인 것 같아요. 멜로라는 게 ‘멜로스’, 음악에서 온 게 아니냐는 말도 있으니까요. 다른 장르라고 해서 음악이 두드러질 수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며칠 전에 <고질라>를 봤어요. 전 (음악을)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했다고 해서 봤는데, 아쉬웠던 게 뭐냐면… 왜 <고질라>를 했을까. 굳이. 돈을 많이 주면 할 수 있겠지만 (웃음). 돈도 많이 쓴 거 같더라고요. 풀 오케스트라에... 첫 번째 이유. 물론 제 추론이에요. 자신의 한계성에 대해 주변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런 거(장르)밖에 못하는 거 아니야? 이런 시선 때문에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했을 수도 있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전의 필모와 약간 다른 걸 한 이유가,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어, 한스 짐머나 존 파웰처럼 할 수 있어, 이런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두 번째 이유,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 시도해보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나는 의식해서고 하나는 스스로. <색계> 이후로 음악들이 굉장히 비슷비슷해요. 특유의 멜로디와 코드 쓰는 방식이 항상 비슷해요. <색계>는 굉장히 신선하잖아요. <킹스 스피치>까지는 괜찮았나? 그다음부터는 비슷비슷… 하죠. 그래서 스스로 도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고질라>는 실패다. (웃음) 하지만 옹호해주는 입장에서는 이래요. 누가 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건 장르의 특성상 음악의 역할보다는 사운드의 역할이 큰 거죠. 관습에 의한 음악을 만들었다 뿐인 거죠. 장르 영화라는 게 관습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해도 특별할 게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름 데스플라가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시도가 보여요. 그게 중간중간 조용한 장면에서 음악이 삭 나오는데 상당히 언밸런스해요. 한스 짐머처럼 쉽게 쉽게 가면 되는데 본인의 특유의 냄새를 넣은 게 언밸런스해지더라고요. 아무튼. 멜로가 아닌 다른 장르는 그냥 관습으로 인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멜로는 무조건 멜로디로 승부를 봐야 하는 거거든요. 그 하나가 귀에 꽂히거나 역할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뭔가 마음에 있는 걸 표현해야 하고, 그래서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했을 때 쾌감이 훨씬 많죠. <우행시>에서는 이나영씨가, 거기선 유정이죠. 유정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강동원이 죽을 때, 음악 나오면서 사악 갈 때, 마무리될 때, 음악을 붙였을 때 쾌감이 있거든요. 그런 건 멜로에서밖에 못 느껴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했고 좋아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장르가 영화계에서 사실은 많이 안 만들어졌고, <인간중독>은 오랜만에 한 정통멜로였죠. 감독님도 그러셨어요. 음악감독님의 필모에서도 잊혀지 않은 대표적인 OST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힘이 됐죠. 자신 있는 장르였고요. 정사 씬에서 음악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정사 씬이 벌어지는 경 대위의 집에서 음악적 쓰임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적으로 음악이 없다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음악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처럼.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장면으로 넘어갔고요. 그러면서 삭 사그라지는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계산이 있었던 건지요? 원래 콘셉트는 정사 씬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있는 거였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음악으로 쭉 가니까 신음 소리와 같은 사운드를 통한 미묘한 감정, 성적인 무드가 감쇄된다, 라고 하셔서 음악을 뒤로 완전히 밀어봤는데, 그러니 또 생각만큼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다시 앞으로 배치하고 중간을 비우는 방법을 택한 거죠. 신음소리가 나는 부분부터, 아마 팬티를 만지나? 그 부분부터 음악이 사악 없어지고 나중에 탁 잡으면서, “아!” 하면서 음악이 팍 터지죠. 음악 감상실에서 유해진과 송승헌 의 춤곡으로 쓰인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의 선곡도 감독의 의견이었나요? 네. 원래 거기도 쓰고 나중(춤추는 장면)에도 사용하려고 했는데, 제가 보니까 뒤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왈츠에서는 이 곡을 쓰기가 조금 곤란했어요. 앞 이야기에 로맨스를 보여주는 데이트가 없거든요. 절절하게 아름다운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춤이 굉장히 강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가려고 했던 걸 제가 만든 곡으로 하자, 했고, 아니다 맞다, 하다가 결국 제가 만든 왈츠로 하게 됐죠. 1969년이란 시대를 다뤘음에도 그 시대의 곡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랄까. 관사의 폐쇄적인 특수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유가 있는지요. 첫 번째 이유는 쓸 곳이 없었어요. 음악 감상실에서는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설정이었고, 뒤의 춤 추는 장면들은 창작으로 가는 거였고, 나오려면 두 군데, 의상실이나 미용실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려면 7~8개 씬을 다 음악으로 해야 해요. 굉장히 많은 음악이 필요한 거죠. 한 번 할 거면 다 해야 한다는 거죠. 의상실이나 미용실의 첫 날은 음악이 있고, 둘째 날은 없고 그럼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은 거죠. 저작권과 음반 사용료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한 곡당 미니멈 1,500만원 정도 들어야 할 거예요. 그럼 그것만 해도 5곡이면 얼마예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꼭 그 당시의 음악으로 시대를 환기시켜야 할 만큼 시대 환기가 안 되고 있느냐. 아니다. 그럼 굳이 필요 없다,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기존의 음악을 넣어보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잘 안 맞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사를 계속 하거든요. 그냥 춤추고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안 들리다 보니까 과감히 빼자, 가 된 거죠. 처음부터 안 넣을 작정을 했던 거예요. 엔딩에서 배트 미들러의 ‘The Rose’가 나옵니다. 선곡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설마 음악감독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선곡을 하자고 하겠습니까? 딱 누가 봐도 몇천만 원 짜린데? (웃음) 저 같으면 제 음악으로 밀고 갔겠죠. 영화를 보면 한 번밖에 안 나오는 음악이 있거든요? 자살할 때 나오는 음악은 딱 한 번밖에 안 나와요. 그건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곡이고, 왈츠곡도 한 번밖에 안 나오는 곡이고. 그런 곡 편곡해서 쭉 가면 되죠. 그럼 더 좋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계속 촬영하시면서 고민도 많이 하시더니 어느 날 ‘더 로즈’라는 곡 알지 않느냐, 그 곡을 한번 고민해봤음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 ‘더 로즈’ 딱 하는 순간에 가사가 그렇잖아요.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는 그 가사가 딱 가은이의 마음 같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는 온주완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송승헌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가은이가 생각하는 사랑이 있어요. 여러 가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그래서 노래는 잘 어울리는데, 배트 미들러의 버전은 아니고, 테시마 아오이의 ‘더 로즈’가 떠오르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요. 가수 중에 목소리가 악기인 사람이 있어요. 김현식 씨, 김광석 씨도 그런 사람이었죠.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 사람 것이 되는, 테시마 아오이의 목소리가 저에겐 그래요. 그런데 테시마 아오이 버전 ‘더 로즈’의 편곡 중 안 좋은 부분도 있고, 당시 반일감정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죠. 그래서 ‘더 로즈’로 하되 새로 녹음하죠, 해서 가장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떠오르는 가수가 국내에 있어서 접촉을 해보려 했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감독님이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테시마 아오이도 훌륭한데? 해서 야마하 뮤직에 연락해서 테시마 아오이 버전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시군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데뷔작이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웃음) 변승욱 당시 조감독님의 소개로 하게 됐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승욱이 형은 옛날에 음악을 했어요. 대학교 때. 한양대에서 (노래) 동아리를 만드셨어요. 제가 그 동아리에 들어가던 거죠. 그분은 나이 차도 많이 나는 대선배인 거고, 소위 말하면 레전드인 거잖아요. 실력도 상당히 좋으시고, 기타도 잘 치시고요. 그분이 음악을 그만두시고 CF를 찍으셨다가, 유학을 갔다가 촬영, 영화공부를 하시고 거의 다 끝나갈 때, 제가 보스턴(버클리)으로 유학을 간 거예요. 제가 영화음악 공부하는 걸 알게 되셨고, 그러다 승욱이 형의 아는 분을 소개시켜줘서 그 분의 졸업 작품 음악을 제가 했고, 그분도 만족하셨고. 그래서 어 쟤가 영화음악도 잘하네? 그러다 한국에 와서 <박하사탕> 연출부가 된 건데 연락이 저에게 온 거에요. 1999년 1월 1일이에요. 날짜도 잊질 못해요. 이런 작품이 있는데 네가 한번 해볼래?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아서 보고 10곡을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연락이 왔어요. 글쎄 특별히 말씀이 없으신데? 더 보내봐, 그러는 거예요. 전 감독님 이야기도 없고 그래서 막막하다 못하겠다, 그랬는데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하셨다는 거예요. 10곡을 또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아 당시 유학생에게 페덱스는 비쌌어요. 그러다 또 시간이 흐르고 3월이 됐어요. 연락이 없는 거예요. 아 형 이제 안 할래요. (웃음) 학교도 바쁘고 아직 학생이고 기회는 또 있겠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많이 관심 주는 영화다, 해서 좋은 기회다 해봐 라고 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러고 있다가 그때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 먹었는데 거기선 행운의 과자(포츈 쿠키)를 주잖아요. 저 그런데 굉장히 민감해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안 보려고 했다가 봤는데, 거기에 “당신은 지금 당신의 명성을 쌓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 거예요. 운명인가보다 해서 또 10곡을 해서 보냈죠. 연락이 또 없어요. (웃음) 4월인가 5월 즈음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이 너 들어오래. 그래서 짐을 싸고, 5월에 학기가 끝나니까 갔어요. 그때도 계속 음악을 또 만들고 또 만들고 그랬던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은 특별히 없어요. 제 안에 숨어있는 그걸 다 꺼내는 거죠. 미치죠. (웃음) 전 촬영장 가서 잠깐 현장을 보고… 너무 힘든 거예요. 이 사람이 이걸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거. 그다음을 못 나가는 거예요. 악몽을 막 꾸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러다가 최후 편집 끝나고 중간 중간 기차가 거꾸로 가는 장면의 브릿지 음악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OK가 많이 됐어요. 그런데 메인타이틀 하나, 엔딩까지 해서 그 하나가 계속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최종 믹싱 전날 OK가 됐어요. 그런데 그 곡이 데모에 있던, 미국에서 보냈던 곡 중에 있던 거예요. (웃음) 다른 어떤 분이 팁을 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곡을 따라 부르시더라는 제보를 해준 거예요. 그래서 그 곡을 어떻게 해봐라, 힌트를 준 거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그 곡에 보사노바 리듬을 얹어서 작업해 보냈더니 바로 OK가 난 거죠. 그날 밤에 녹음하구요, 다음 날 믹싱하고 내일 아침 갖다 줘야 하는 거예요. 밤 꼴딱 새고 음악 얹히고 붙이고 나와서… 화장실 가서 오바이트를 다 해버렸어요. 분명한 건 제가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영화를 굉장히 깊이 읽는 거라든지, 미장센 놓치지 않는 거라든지, 영화음악 하는 사람 보면 단순히 영상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 음악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요. 근데 놓치는 게 뭐냐면 영화 자체를 읽는 걸 소홀히 해요.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영화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창독 감독님의 영화는 쇼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잖아요. 미장센도 훌륭하고. 상당히 많은 걸 배웠죠. 제가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아요. 근데 꽂히는 음악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이 들어요. 그 음악 하나에도 작가의 수많은 히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에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아느냐가 중요한 건데, 그런 면에서 초기의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등은 지금까지도 밑천이 될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박하사탕>, 기차길 브릿지 <박하사탕>의 메인테마에 보사노바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멜로디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계속 머리에 생각난 게 뭐였냐면 ‘기차’예요. 계속 기차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했거든요. 기차가 간다, 뭔가 움직인다, 과거로 간다... 리드미컬한 게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보사노바를 좋아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그쪽에 접목이 된 거예요. 그 작업 자체는 굉장히 금방 했어요. 멜로디는 있죠, 보사노바는 익숙하니까 그 작업은 하루도 안 걸려서 했어요. 해놓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단 찾고 난 다음의 과정은 너무 쉬우니까, 허탈한 거예요. 이것 때문에…!! (웃음) <박하사탕>은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게 음악이 쓰였습니다.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챕터 사이사이 기차가 나오는 부분에만 30초 정도씩만 브릿지 음악이 주로 사용됐는데, 드라마 부분에서는 음악이 거의 절제되고 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아, 일부러 안주는 거죠. 아마 그건 감독님의 의도가 큰데…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라는 게 아니었을까요? 중요한 건 제일 마지막.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기승전결이 있는데, 여기에 다 집중해주면 밸런스가 망가질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쉽지 않은 어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브릿지에서 감정들이 고조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브릿지도 브릿지마다 느낌이 좀 달라요. 점점 브릿지의 음악들이 아름다워질 거예요. 처음에는 패닉 같은 음악이었다면 나중 브릿지는 멜로적인 감성으로 가요. 왜냐면 점점 순수해지니까. 제7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해 대상이 나원주 씨, 금상이 김연우 씨이기도 한데, 대중음악으로 나갈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 잘못 만난 거예요. 1등이 나원주, 2등이 김연우니까. 아 참나. (웃음) 원래 대중음악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이력이 특이한 거고요. 고등학교부터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서 노래 부르고 기타도 치고, 또 서로 가르쳐주고 그랬거든요. 그 당시 유행했던 게 동물원이에요. 딱 떠오르는 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웃음) 아, 대학교 가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그래서 대학교에 갔다가, 노래 동아리(소리로 크는 나무)에 들어가게 되었죠. 이것도 에피소드인데, 전 그 동아리가 공연을 하는 줄 알고 보러 갔었는데, 알고 보니 오디션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오디션이라는 말도 잘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저도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렇게 들어가게 됐는데, 넌 곡 쓸래 노래할래? 해서 전 곡도 쓰고 노래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했더니 우리는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 둘 중 하나만 택해. 해서 노래를 택했어요. 제가 만든 노래 부르면 되는 거니까. 당시 승욱이 형은 나이도 제일 많은 대선배였는데 어느 날 동아리 방에 와서는 너 곡 쓴다며, 한 번 해봐, 해서 기타 들고 한 거죠. 그런데 나를 굉장히 멋진 말로 칭찬해준 거예요. 그러고는 슥 나가는 거예요. 그러고는 꼭 나가. (웃음) 그러니까 거기 앉아있던 선배들이 우와~ 했던 거죠. 레전드한테 이런 칭찬을 듣다니. 그렇게 동아리에 있으면서 노래 만들고 각종 가요제도 나가게 됐던 거죠. 명지대 백마가요제, 광운대 월계가요제 등... 그러면서 인정받고 기성 작곡가들에게 칭찬받고, 그러니까 우쭐해지는 거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여러 번 나갔어요. 그 가요제가 지금은 좀 다르지만 십몇 회까지는 작곡 작사 연주까지 다 했어야 하는 거였잖아요. 거길 몇 번 나가서 안 되다가 군대 갔다 와서 3번째 나가서 된 거예요. 그 가요제를 통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좀 지쳐있을 때에요. 군대도 다녀왔고. 그러다 유재하 가요제에서 된 다음 한 번 해보자가 되었는데, 한계 같은 게 오더라고요. 난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너무 훌륭한 뮤지션들을 너무 많이 본 거죠. 그래서 난 이들을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운드 엔지니어링 프로듀싱을 하려고 유학을 갔죠. 거기서 피아노 레슨 하는 선생님이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보시고 나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하면 너 다시는 작곡 못한다. 이건 다른 거다. 너 곡 같은 거 안 써도 괜찮겠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하고 싶더라고요. 그 분께 제 곡도 들려드리고 유재하 CD를 선물로 드렸어요. 그랬더니 유재하란 사람이 아직 살아있으면 버클리에 왔을 거 같고, 영화음악을 했을 거 같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너도 영화음악을 해봐라. 그때까지는 솔직히 영화음악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과 이름이 필름 스코어링이잖아요. 뭐 하는 과인지도 몰랐던 거예요. 결국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쪽은 2학년 올라가기 전, 1학년 2학기 때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있어요. 실습을 위한 부스 컨트롤 룸도 한정되어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파트라 해서 인성을 본다는 것도 있어서 인원 제한이 필요한 과였거든요. 인터뷰까지 통과하고 나서 2학년 올라가서 필름 스코어링, 영화음악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그때가 97년이었어요.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는데, 당시 국내엔 영화음악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작곡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메리트가 있지는 않았나요? 반대죠. 없었죠. 제가 들어갔을 때가 막 버클리에서 사람들이 들어올 때였어요. 그때 버클리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었어요. 국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것을 기대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수구적이 입장에서는, 대단한 거 있겠어? 봤더니 뭐 별 거 아니데? 이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영화음악도 별 거 없지, 그랬던 거고. (웃음) 제가 좀 더 특출 나고 잘하고 그랬다면 버클리 나온 후배들에게 더 좋았을 텐데 제가 더 잘하지 못해서 그건 좀 아쉽죠. 하지만 분명한 건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초기 이 세 작품, 특히 <박하사탕>은 제가 겁이 없었어요. 어떤 작품? 누구?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전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전 선례가 없잖아요.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영화음악이 어떤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비교할 대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 뜻대로 하게 됐죠. 그 첫 반응이 신선하다, 라는 것이었어요. 기존 한국영화음악에서는 보지 못했던 냄새인데? 라는 거였어요. 지금 보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혼자 생활하고 한 게 반영된 음악이라 신선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국내의) 다른 음악가, 다른 영화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면 다른 음악이 나왔겠죠. 사실은 그런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머리 식히러 나갔다 올까 그럴 때도 있어요. 지금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잖아요. 두 번째 작품이 <파이란>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선 자주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 작품을 시작으로 송해성 감독님과 파트너 쉽이 이루어졌어요.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5 작품을 함께 해왔는데. 감독과 작곡가 간의 협업이란 어떤 느낌인가요? 커뮤니케이션이죠. 이창동 감독님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기쁘지만 기쁘지 않게, 라고 하신단 말이죠. 하아… 네 (웃음) 그 당시 제가 29, 30살이었거든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당시는 정말 답답했을 거 같아요. (웃음) 그런 게 쌓이면, (파트너와 함께) 나이도 같이 먹어가고 연륜도 같이 쌓여 가면 어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갈 수가 있거든요. 송해성 감독님은 처음에 어 이게 뭐지? 무슨 말씀이시지? 이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다 계속 같이 가니까 감독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어렵지 않다. 그다음은 디테일이잖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 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버리고 그다음에는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화음악을 전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 제 온 정열과 온 피와 땀을 쏟으면 좋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죠 분명히, 하지만 목숨을 바칠 정도로 저 이거 하지 않아요. 이건 그냥 직업이에요. 우리가 살았던 시기 동안에 같이 재미있고 놀았다. 뭔가를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울고 웃겼다. 이런 거면 행복한 게 아닌가?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단순히 감독과 음악감독으로 만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형과 동생으로 만나서 친해지는 거죠. <파이란>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박하사탕>을 보셨겠죠? 보시고… <파이란>의 프로듀서가 안상훈 피디, 지금 상상필름 대표고, 송해성 감독님도 한양대 나오셨고, 뭐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한양대 나왔다면서요?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첫 날 만났을 때 근처의 허름한 호프집 가서 싼 생맥주 3잔에 소주 넣어서 말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했죠. 그러다 연락이 와서 하게 됐어요. 제가 음악 데모를 만들어서 영화사를 줬어요. 그때 제작 보고회라는 게 막 시작되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튜브(<파이란> 제작사) 쪽에서 뭘 보여줘야 하는데, 스틸들을 디졸브해서 보여줬고, 거기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그걸 내가 왜 합니까? 하겠지만 본편도 아닌데 그걸 왜 해요? (웃음) 그때는 해서 줬어요. 송해성 감독님이 옆방에 있다가 그때 그 음악을 들으셨나 봐요. 저 음악이 뭐야? 해서 만든 음악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봐요. 그 음악을 계속 들으시면서 시나리오도 마무리 하시고. 그래서 그렇게 하면 돼, 해주셔서 그렇게 작업했고, 그 음악들을 최민식 씨가 들으면서 감정 잡으시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프리 작업이 먼저 시작된 거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찍기도 하고. 민식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감정 안 잡힐 때 네 음악 들으니까 좋아. 그때는 민식이 형이나 공형진 씨나 에너지가 많을 때였잖아요. 그때 굉장히 가족적이었어요. 거의 같이 있고, 참 좋았죠. <박하사탕>과 달리 정통적인 스코어링을 구사한 첫 번째 극 영화였는데, 맞습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는지요. 정서를 따라가는 거죠. 강재의 마음을 따라가고. 그때는, 벌써 13년 전이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훨씬 더 계산적이겠죠. 그때는 마음 가는 대로 했어요. 느껴지는 대로 했고. 아쉽고 불쌍해 보이면 그렇게 만들고, 장백지가 “세탁 세탁” 하면 그대로 화면 보면서 만들었어요. 편하게. 그래서… 감정 흐름에 주안점을 뒀고요. 들어보시면 테마라는 게 없어요. 테마를 만들어서 반복하는 방식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맞는 음악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반면 <인간중독>은 테마가 있죠. 멜로디가 반복되는 게 있고. 계산적이지 않았던 거 같아요. <파이란>, 비디오 화면 속의 파이란 막문위가 부른 노래 ‘애정’의 선곡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장백지가 마지막 장면(비디오 속)에서 그 노래를 부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항해’라는 트랙하고 대구를 이루는 거 같거든요. 어떻게 선곡을 하시게 되었나요? 맞습니다. 잘 아시는데요? 그 선곡은 촬영 전부터 되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극 중에 파이란이 불러야 하니까. 지금은 얼마든지 외국 음반을 들을 수 있잖아요. 유튜브도 있고 아이튠즈도 있고 아마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때는 한국에 락레코드라고 있었어요. 그게 대만 거였을 거예요. 국내에 유일한 통로가 되는 락레코드에 연락을 했어요. 당신네 음악 쓸 만한 게 있나? 그럼 (샘플러를) 주잖아요. (웃음) 지금은 안주죠. 락레코드에서 많이 가지고 온 거예요. 그걸 다 들었죠. 그러면서 막문위의 그 곡이 딱 걸린 거예요. 너무 좋았어요. 가사가 일단.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있다가 어떻게 했냐면. 리딩하는 날, 배우 다 오잖아요? 인사 하고… 나중에 민식이 형이 그러는 거예요. 음악감독님 계신데 여기서 파이란이 무슨 노래 부르냐? 그러 길래 아 예, 가지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걸 틀고, 가사를 프린트 해 왔어요. 그랬더니 다들 딱이네, 해서 진행한 거예요. 그러다가 문제 생겼죠. 막문위는 광둥어로 부른 거예요. 장백지는 북경어로 불러야 하거든요? 그걸 촬영 전날 안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막 통역하는 분이 바꿔서 쓴 거예요. 마지막에 최민식 씨를 죽이러 지대한 씨가 들어갈 때 그때부터 스코어처럼 나오잖아요. 그러다 카메라가 안으로 들어가면 (그 스코어가) 이 노래의 반주가 돼요. 정확하게 반주로 맞아 떨어지다가, 그리고 노래가 딱 끝나면 공형진 씨가 “오! 남편이 좋아하겠는데”(비디오 속 대사) 그러면 반주(스코어)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런 식이거든요. 계산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어요. 놀랐어요. 그걸 음악을 아시거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거 어떻게 저렇게 갔지? 하시는데, 모르는 분들은 그냥 봐요. 다른 음악감독 초대해서 보여줬더니 저걸 어떻게 맞췄냐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우연찮게 잘 맞은 거죠. 소가 뒷걸음치다가 그런 거처럼 (웃음). 그때 음악 확인하려고 감독님이 노량진 제 작업실로 전화하신 거예요, 감독님, 음악 확인하러 오셔야죠, 어 그래, 내가 말야 음악 맘에 들면 고기 사줄게, 그러시더니 공형진 씨랑 같이 왔어요. 마지막에 눈물 글썽글썽하면서 야, 고기 먹으러 가자! 진짜 맛있게 고기 먹었어요. 삼각지에 진짜 고기 맛있는 데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래요. 감독님 음악 마음에 드시면 고기 사주세요, 그래서 지난번 <고령화 가족>때도 고기 먹었어요. (일동 웃음) <파이란>은 아사다 지로의 『러브레터』란 소설이 원작이었어요. 이후에 작업한 < 모던보이 >나 < 주홍 글씨 >, < 완득이 >, < 우아한 거짓말 >, < 고령화 가족 >까지 원작이 있는데,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원작이 많은 도움이 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요. 참고로 전 원작을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 <우아한 거짓말>은 읽었다. 근데 읽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어떻게 만들지? 그러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그리곤 다시 보지 않았어요. 거의 안 봐요. 선입견 때문에요. 의도적으로 안 보는 거죠. 시나리오가 다라고 생각해요. 전 선입견을 받지 않기 위해 영화도 거의 최종 편집본만 봐요. 최초 편집본이 3시간이 넘어가고 그러잖아요. 그 버전을 편집하면서 드러내지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장면이 남거든요. 어떤 스태프들은 그 삭제된 장면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 남기는 거죠. 없는 데 느끼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죠.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할 수가 있어요. 전 최종 편집본만 거의 보니까, 그들에게 남아있는 (드러내진 장면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죠. 그들이 느끼는 걸 전 모르는 거고. 제가 관객 입장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원작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원작을 읽으면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영화에 없는데 느끼게 되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창동 감독님과 <오아시스>를 작업했습니다. 아쉽게도 음악은 문소리 씨가 부른 ‘내가 만일’, 춤곡, 탱고 풍의 메인타이틀인 엔딩곡 세 개만 사용됐어요. 원래 작업을 다 하셨는데, 다른 곡들은 반려된 건가요? 어떠신 거 같아요? 설마… 필요한 데 안 쓰셨을까요? 이창동 감독님은 그런 걸 포기하실 분이 아닌데요. 제가 <파이란>을 하고 났을 때, 감독님이 사람들에게 <파이란>을 보고 와라, 그랬다고 해요. 그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음악 때문인 거 같다는 거예요. 그러다 연락이 왔어요. <파이란> 음악보다는 적고, <박하사탕>보다는 많을 거 같다, 가 <오아시스>의 음악 콘셉트였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전 시나리오를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음악 생각이 나고 비주얼이 떠오르면서 진도가 잘 안 나가요. 근데 <오아시스> 시나리오는 읽고 있는데 음악이 안 들리는 거예요. 촘촘하게 붙어 있는 게 음악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음악이 없어도 될 거 같은 거예요. 이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난 안 들리는데? 그래서 만났는데, 그날은 제가 출연을 하는 날이었는데… 아, 나오셨어요? 전 영화에 지금까지 많이 나왔어요. <박하사탕>에서는 의사, <파이란>에서도 의사, <오아시스>에는 닭갈비 먹고 있다가 경구 형이랑 말다툼 하는 일반 시민. 그러는데 감독님이 부르는 거예요. 시나리오 봤냐고. 네. 그런데 말야 내 생각에는 음악이 많이 안 들어갈 것 같애, 그러시는 거예요. 사실 저도 그 말씀 드리려고 했다. 음악이 안 들리더라. 그래도 만들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음악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쓸 계획이 없었어요. 제가 10곡의 데모를 만들어서 들려드렸어요. 이번엔 음악이 다 좋다… 다 좋은데, 그 중에 난 요게 어때, 라고 집어주신 게 지금의 엔딩 타이틀이었어요. 그렇게 진행된 거고 ‘내가 만일’은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문소리 씨가 같이 생활하면서 (연기에 도움을 얻은) 장애인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문소리 씨, 한공주가 부르는 곡으로 그 곡이 어떨까 했는데, 그 곡이 (그 장면에서는) 안 어울리잖아요. 안치환 곡 중에서 더 생각하다가 ‘내가 만일’을 떠올린 거고요. 그때는 저작권자하고 비용적인 조율이 가능했거든요. 마침 저작권자가 우연찮게 아는 분이기도 했어요. <오아시스>, 청계천 고가도로에서 인도 음악과 함께 나오는 환상 장면 청계천 고가도로에서도 인도음악이 나오잖아요. ‘페스티발 송 오브 아썸’이라는. 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쌈차 페스티벌 음악이에요. 인도 음악이 시나리오에 있어요. 그러면 저도 또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모던보이> 때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음악들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선곡을 하더라도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는 인도(음악)공부를 한 거예요. 그러다 음원을 찾아봤는데, 그때 마침 제가 1년 동안 BBS 라디오에서 영화음악실 패널을 했었어요. 친하니까 작가에게 부탁해서 라이브러리에서 빌린 거예요. 다 들으면서 5곡을 골랐어요. 그 중 한 곡이 그 곡이에요. 사실 이창동 감독님이 <밀양>에서는 크리스티안 바쏘의 곡을 사용했고, 이후 <시>에선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음악감독의 입장에서 이런 음악의 최소한의 사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전혀 상관없어요. 이미 영화에 음악을 넣지 말자는 도그마 선언도 있었고요. 음악이 사족일 수 있다, 이런 의견은 있을 수 있죠. 저도 제가 감독이라면 때에 따라 음악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음악이 있어서 더 좋을 수 있는데 안 쓰였다면 아쉬울 순 있죠. 음, 전 의도적으로 음악을 배제하는 도그마 선언 같은 건 좀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도그마를 선언했던 감독도 뒤이어 음악이 풍부한 <어둠 속의 댄서>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웃음) 피아니스트 이루마 씨가 <오아시스> 이미지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혀 관계없는 프로젝트였는지요? 그때 문제가 있었어요. 마케팅 쪽에서 진행했던 건데, 의견은 제가 냈었어요. 이미지 앨범을 내보자.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3자와 이루어지고 있었고, 홍보가 나갔고, 기사에서는 이루마가 영화음악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오보가 나갔고, 전 정정을 해달라고 했고, 그런 오해들이 있었죠. 좀 안타깝죠. 그다음으로 작업한 건 국내에서 보기 드문 SF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였습니다. 당시 국내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오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갈망이나 도전 의식이 있었는지요. 아니요. 순서상으로는 그때가 (<오아시스>보다 앞이었어요. 아직) 미국에 있었을 때에요. 이야기는 먼저 되고 있었나요? 네, 제가 데모를 먼저 만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음악 좀 부탁드릴게요, 해서 연락이 왔고, 미국에서(<박하사탕>을 마치고 버클리에 복학한 시기) 음악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바로 콜이 왔어요. 민병천 감독님이 메인 테마를 듣고서요. 그래서 진행됐던 거고,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죠. 더 잘됐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체코에서 체코 필하모닉 멤버들과 레코딩을 했어요. 네 처음으로. 체코에서 이 작품과 <역도산>을 했죠. 체코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내츄럴시티>와는 잘 안 맞는 곳이에요. 그쪽 동유럽의 냄새가 SF와는 잘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다음에 이런 장르를 한다면 체코는 안 갈 거 같아요. 오히려 <인간중독> 같은 영화가 체코를 가면 좋았겠죠. 굉장히 할리우드 스코어 느낌이 들었어요. <내츄럴시티>를 들어보면 대규모 스트링에, 격정적인 피아노, 혼과 같은 웅장한 금관악기가 어우러지며 한국에선 보기 드문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특히 낮은 피아노의 활용은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네 맞습니다. 이 작품도 레퍼런스가 한국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했었어요. 신선한 것들. 민병천 감독님하고 가까워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가 있었는데, 제작과정이 길어지면서 엄청 오랫동안 작업한 거예요. 지쳤죠. CG가 늦게 나오기도 하고, 회사가 바뀌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된 영화였어요. <내츄럴시티>에 처음으로 영화 주제가가 쓰입니다. ‘무요가’라고요. ‘낯선 사람들’ 출신의 차은주 씨가 불렀는데 주제가를 의도적으로 작곡하신 건가요? 그럼요. 제가 만들겠습니다! 해서요. (웃음) 만들고 싶었고. 제가 노래를 만드는 것이 못 다 이룬 꿈이잖아요. 그걸 영화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츄럴시티>에서 만들고, <화성에서 온 사나이>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도 다 제가 노래를 만들었죠. 감독님도 듣고 좋아하셨고, 이제 가수를 붙이자 해서 차은주와 함께 한 거죠. 그때부터 제가 꿈에 그리던 세션맨들, 존경하던 뮤지션들, 앨범 자켓으로만 보던 분들을 제가 클라이언트가 되어 부른 거죠. 조동익 씨, 함춘호 씨, 박용준 씨, 신석철 씨, 이 분들과 함께 한 거죠. 좋았죠. (웃음) 세 편을 다 같이 그분들과 함께 했어요. 드림팀과 함께... 그쵸. 근데 동익이 형은 (세션을) 잘 안 하세요. 그런데 제가 유재하 출신이고 해서 흔쾌히 해주셨죠. 그 뒤 작업한 두 작품, < 화성으로 간 사나이 >와 < 그녀를 모르면 간첩 >은 약간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앞에 작업하셨던 것들에 비해서요. 아 그래요? 하하. 다 좋아요. 다 상업영화잖아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더 그런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전 음악적으로는 좋았고요, 테마와 송도 모두 잘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고요. 어떻게 보면 <파이란>이나 <오아시스>보다 더 극단으로 간 영화였어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는 간첩>은 정말 제 필모에서는 튀는 영화죠. 감독이 제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예요. 어떤 영화사 개업식에서 우연히 만난 거예요. 어 너 여기 왜 있냐? (웃음) 그렇게 만났고, 그 친구가 자기가 준비하는 게 있으니까 도와줘, 해서 하게 됐어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굉장히 과장된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말 그대로 간첩이란 설정이 이용돼서 여러 장르가 혼용돼 구사되고 있는데요, 첩보, 멜로, 코미디.. 작업은 어떠셨는지요. 좀 더 영화도 잘 나왔으면, 음악도 더 잘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죠. 작업 과정이야 친구니까 소통의 문제는 없었지만, 처음 결과물 자체가 좋질 않았어요. 다들 풀이 죽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본인도 그걸 아니까, 풀이 죽어있고. 끝까지 그 상태로 갔어요. 아쉽죠. (감독도) 재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재기해주길 바라요. (웃음) 이 작품은 송 트랙의 비중이 큽니다. 재즈가수 신예원, 김도연, 2BE, 김범수(김영국),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주제가를 부른 조성빈, 한동준 씨 등 여러 가수들이 참여했는데요, 프로듀서로 역할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맞습니다. 이런 인터뷰 처음인데요,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듀싱 개념으로 갔어요. 스코어 보다는 송으로 가자. 그래서 주변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이런 역할을 해봐, 이런 식으로 작업했죠. 여러 분들과 함께 작업 했죠. 김범수(김영국) 씨가 (앞에서 말한) ‘내가 만일’을 작사 작곡하신 저작권자분이에요.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다음이 변혁 감독님의 <주홍 글씨>입니다. 이 영화도 삽입곡이 많은 경우였어요. 아주 버라이어티 하죠. 삽입곡이 넘치는 영화죠. 배경 자체가 클래식 오케스트라고, 첼리스트(이은주)와 재즈가수(엄지원)가 나오고요. 심지어 한석규 씨도 첫 장면에서 클래식을 듣잖아요. 네,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그 곡이죠. 네 맞습니다. 선곡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변혁 감독님이 클래식 마니아예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감독님이 직접 지휘를 하시더라고요. 오 아셨네요? 왜 하셨는지… (웃음) 그런데 그냥 하신 건 아니고요, 변혁 감독님의 친형님이실 거예요. 실제 오케스트라 지휘자세요. 그 곡 큐를 드리고 지휘하는 걸 찍어서 똑같이 한 걸로 알아요. 그럼 감독님이 그 많은 곡을 다 선곡하신 건가요? 감독님도 하고 저도 하고 그랬죠. 그리고 엄지원 씨 첼로 치는 것도 거의 똑같아요. 하나도 못 켜시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트레이닝 해서 촬영했죠. 이은주 씨가 바에서 노래하는 장면 있죠. 그 뒤의 밴드가 저와 많이 작업하던 밴드(재즈밴드 ‘더 버드’)에요. 그분들이 실제 연주하신 거예요. 레코딩까지. 처음엔 좋다고 하시더니 나중엔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故 이은주 씨가 부른 ‘Only When I sleep’가 화제였습니다. 마지막 곡이 됐죠. 아주 열심히 불러줬어요. 이은주 씨가. 그 곡을 세 번 불렀어요. 한 번 부르고 다 끝냈는데, 다음번에 좀 아쉽다, 해서 친구 바다 씨를 데리고 와서 같이 해보고 싶다, 그래서 또 하고, 그래도 아쉽다 해서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3번을 했죠. 피아노도 잘 치시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쾌활했던 분인데... 많은 삽입곡들 사이에서 스코어는 어떻게 배치가 궁금합니다. 주로 성현아 씨와 관계된 사진관 사건에 스코어들이 몰려있는 듯 합니다. 다른 두 여자 캐릭터들은 재즈 가수와 첼리스트이기 때문에 스코어의 영향에서 벗어난 건지요? 음.. 글쎄요. 제 기억으론, 관심 자체를 이 사건과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거든요. 이쪽의 미스터리한 것을 액자의 느낌으로… 영화 속의 영화 느낌으로, 좀 더 영화적이라고 할까요? 나머지 두 인물들은 리얼리티 적이라면 그쪽은 약간의 판타지 느낌이 나잖아요. 혼자 이야기하고, 약간 연극 같고. 그걸 좀 더 강조하려고 조금 오바했다면 오바한 음악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전반적으로 음악이 풍부한 영화잖아요. 송해성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은 < 역도산 >이었습니다. 제작비 100억대의, 일본과 합작한 큰 영화였는데. 음악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는지요? 역도산에 대한 테마보다는 아야에 대한 노래가 더 부각된 것도 같습니다. 누가 봐도 아야가 불쌍하잖아요. 역도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은 건데 거기서 무슨 페이소스를 느껴야 하나. (웃음) 그런 게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전 정서가 아야에게 많이 가더라고요. 그리고 보신 버전은 아마 국내 버전일 텐데 일본 버전은 중간에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역도산이 귀국해서 성공했어요. 그다음에 자전거 끌고 집까지 가요. 거기서 아야가 같이 들어가자고 했는데, 안 들어가요. 역도산이. 왜 안 들어가냐, 했더니 나 지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거 같아. 어떤 의민지 아시겠죠. 내가 지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지금 집에 들어가면 책임질 가족이 생기고… 그러면 성공을 못 할 거 같다. 미안해. 그리고 가는 모습을 아야가 쭉 봐요. 그때 음악이 쭉 가죠. 그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전 아야에 정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 여배우 나카타미 미키가 허밍도 직접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엔딩 노래를 만들었어요. 만들 때부터 처음부터 허밍을 생각했었어요. 다 만들어놓고 제가 허밍해서 감독님께 들려드리고, 한 번 해봐 했던 거죠. 나카타미 미키와 하고 싶다고 하니까 데모를 일본에 보냈어요. 그게 OK가 나온 거예요. 제가 아침 첫 비행기 타고 가서 녹음실 정하고 녹음 다 하고 그날 밤 비행기 타고 왔어요. 다시는 그런 짓 안 해요. (웃음) 거기선 더 있으라고 했는데, 후반 작업이 남아 있잖아요. 제 입장에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고 그다음 다음날 체코로 간 거예요. 프로레슬링을 처음 접하러 갈 때 흐르던 게르하르트 빙클러의 ‘에스파뇰라’는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몽타주를 보면 희극적인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네, 제가 선곡을 했죠. 처음부터 웅장한 음악이 들어가기에는 좀 그래서... 다음이 정지우 감독님의 < 사랑니 >입니다. 작지만 섬세한 사랑에 대한 영화였어요. 감독님이 요구한 방향성이 있었는지요? 작업할 때, 우리 영화음악은 이랬으면 좋겠어 이런 분도 계시지만 그런 이야기 할 것도 없이 그냥 막 진행되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사랑니>가 그랬던 거 같아요. 정지우 감독님하고는 <오아시스> 끝나고 만났었어요. 차이가 한 3년 정도 나는데. <파이란> PD였던 안상훈 (상상필름) 대표와 정지우 감독님이 대학교 선후배 관계거든요. 제가 < 해피엔드 >를 너무 좋게 봐서 상훈이 형한테 정지우 감독 작품 해보고 싶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래? 그럼 해.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금 진행 중인 작품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다음번에 해봅시다. 그때 거기서 처음 진행했던 게 < 두사람이다 >였어요. 음악도 많이 준비했는데 엎어지고. 다른 시나리오가 나오고,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러면서 (정지우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사이에 시나리오가 몇 개 더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영화인데, 리얼리티 속에 판타지가 있어요. 키스 씬 중간에 몸이 뜨든지 하는 장면도 있고요. <사랑니>는 먼저 곡을 많이 만들었어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드리고, 정지우 감독님은 편집할 때 관여하시거든요. 그래서 편집할 때 음악을 붙이면서 작업하는 거였어요. 또 하나는 현재 영화에선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진 않지만 원래는 전화벨 소리가 큰 역할을 하는 영화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표현이 잘 안돼요. 전화벨을 위해서 곡을 많이 만들었죠. 전화벨 테마가 많아요. 이 작품에선 단출하지만 북촌이란 공간과 계절을 잘 드러내는 악기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 내용에 맞춰 악기 선택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또 주로 어떤 악기로 작곡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악기도 음악의 한 부분인 거죠. 최종적으로 완성될 음악을 어떤 악기로 연주할 것인가의 결정은 작곡의 한 부분이고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음악을 만들기 전에 악기 구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것은 비단 한 큐의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죠. 송해성 감독님과 세 번째로 만난 < 우행시 >를 하셨는데요, <파이란>처럼 아슬아슬하게 신파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절제미랄까 중용을 지키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송해성 감독님 영화를 보면 멜로인데도 구구절절 풀지 않고 지점들을 잘 포착하시는 거 같거든요. 글쎄요. 일단, 송 감독님 영화를 보면 막 오바하고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절제하고 담백한 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하는 거였고. 그래도 엔딩의 음악은 신파적으로 가잖아요? 그것도 사실 감독님의 원래 의도는 아니고 제 의도에요. 감독님은 훨씬 더 담백한 걸 원하셨어요. 그래도 여기선 울려야죠, 했고 주변의 수많은 설득, 그래도 감독님의 의지를 안 굽히셨어요. 감독님은 사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원하셨어요. 전 안된다고 했고. 결국 음악 컨펌할 때, 사람들 불러놓고 비교를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한참 뒤에야 네게 낫다! (웃음) 그래서 가게 됐죠. <우행시> 같은 경우는 음악적으로 참 만족스러운 영화였어요. 영화음악적으로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그런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엮는 듯한 음악. 이 영화가 제일 어려웠던 게 매주 목요일 1시에 만나야 해요. 그러면 그 사이에 뭘 채워야 하잖아요.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런데 그걸 채우자니 감정이 끊기고, 그냥 붙이자니 뜬금없이 그다음 날이 마치 바로 일주일 후 같지가 않고. 그런 게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음악이 시간의 경과와 감정의 이음을 해주는 시퀀스들이 많아요. 그게 참 좋았고. 그리고 유정이에게는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엄마의 ‘월광 소나타’ 피아노가 계속 나오거든요. 그것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았었던 거 같아요. 최창환 감독님의 < 울어도 좋습니까? >는 아직도 개봉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합니다. 그 영화는 어떻게 아세요? 감독님이 제 선배 분이시라서요. 아직도 개봉 못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못할 거 같아요. 영화는 참 좋아요. 영화가 개봉하려고 준비할 때 즈음에 영화사가 넘어갔어요. 그럼 누가 사서 할(개봉)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사를 사 간 쪽이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곳인가 그럴 거예요. 그래서 영화도 매물인가로 취급되더라고요. 그래서 불가능하대요. 안타깝죠. 영화는… 이런 감독님도 우리나라에 활동을 쭉 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섬세하고 따뜻한 정서가 좋았어요. 아쉬워요. 음악도 참 좋았는데. 다 만들어놓고. OST까지 다 나왔거든요. 출시를 못 한 거예요. 변준석 감독님의 < 에일리언 밴드 > 역시 일반적인 개봉을 하지 못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는데요. 밴드를 다룬 음악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업하신 계기나 방향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 잘 만든 음악 영화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진행됐죠. 하면서 느꼈던 것은 현재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는 잘 만든 음악영화를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라는 거였어요. 작업하면서 그것들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최선을 다해 준 스태프들과 음악팀에게 감사한데 개봉이 안 된 것이 아쉬워요. 정지우 감독님과 두 번째로 작업한 <모던보이>도 규모가 큰 영화였어요. <역도산>처럼 일제 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인데, 그 시기에 맞춘 재즈, 빅밴드 (그리고 왈츠)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음악) 공부를 했죠. 당시의 상류층 음악이 뭘까? 했더니 의외로 재즈인 거예요. 그 당시에는 이미 재즈가 상류층에선 즐겨듣던 음악이고 심지어 놀란 건 이미 그 당시에 미국에서 지난해 유행한 게 우리나라에 1년도 안 되어 유행하고. 그 당시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상상을 초월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즈를 기반으로 음악을 해도 문제가 없겠다. 재즈를 더 화려하게 하자. 그 당시에는 재즈가 상당히 화려한 음악이었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또 하나는 카페에도 클래식이 나올 법한데, 그냥 클래식이 아닌 그걸 재즈로 편곡해서 하고 그렇게 했죠. 조난실이 부르는 노래(개여울)도 제가 선곡을 했는데요, 재즈로 편곡해서 영화에 쓰고. 그렇게 재즈를 기반으로 했어요. ‘개여울’이라는 곡 자체는 30년대 곡은 아니죠? ‘색채의 블루스’도 그렇고요. 네 맞습니다. 선곡을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일본 노래여야 한다. 안 그래서는 가짜다. 음악이 그 당시보다도 더 화려해야 한다. 또 살롱 느낌이 나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곡들 중 하나가 ‘색채의 블루스’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개여울’은 독립운동가 조난실이 불러야 하잖아요. 어떤 노래 부를까, 하다가 실제 있는 부를 법한 노래를 찾아본 거예요. 그걸 편곡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당시의 동요나 가요들 (작곡가들이) 거의 대부분이 다 친일 명단에 있어요. 그럼 도대체 무슨 노래를 해야 해. 하다가 김소월은 일찍 죽어서 친일 논란에 해당이 없으니까, 김소월 시를 가지고 노래를 찾아보자, 해서 ‘엄마야 누나야’ 부터 시작해서 뒤지다 보니 ‘개여울’이 있는 거예요. 1960년대에 작곡된 노래지만 뿌리는 여기에 두고 있지 않은가, 해서 선곡해서 재즈로 편곡한 거죠. 영화에는 일본어로 번안해서 트로트로 부른 버전도 있죠.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 한 < 호우시절 >은 의외의 작품인데요, 그동안 조성우 음악감독과 오랜 파트너 쉽을 이뤄왔었는데, 감독님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조성우 음악감독님께서 그 당시 작업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락이 왔어요. 전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이 작품부터 조금 음악적인 색이 바뀐 것 같아요. 기존의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의 스타일에서 기타가 많이 사용되어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아, 기타가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악기 선택은 일부러 써야지 이런 건 아니라 잘 어울릴 걸 찾는 거죠. 그 앨범은 다 기타 위주죠. 어쿠스틱 녹음이고. 앨범도 공을 많이 들였어요. 예전에 작업을 함께 하던 CJ 엠넷에 계셨던, 일 잘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퇴사를 하시고 독자 레이블을 만드셨어요. 그 회사에서 거의 초창기에 만든 앨범이 바로 이 <호우시절> 앨범이고요. 공을 많이 들였어요. 거기가 바로 지금은 유명한 인디 레이블인 미러볼이에요. 일 잘하셨던 그 분이 이창희 대표님이시고요. 그게 인연이 됐는지 지금도 종종 영화음악 앨범을 내기도 하더라고요. 이때 전까지는 대부분 스플래쉬 뮤직에서 냈어요. 그것도 어떤 연이 있었는데요, <박하사탕> OST를 못 냈어요. 아무도 안내준 거예요. 아니 노래가 없잖아, 이러면서. (웃음) 그때 어렵게 냈어요. 난장이라고, 거기 대표님과 연결돼서 어렵게 내긴 했어요. 그다음엔 너무 힘들어서 제가 고민하고 있는데 <오아시스>인가를 낼 때 그 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박하사탕>의 어떤 곡을 한 앨범의 컴필레이션으로 넣고 싶다, 한 거죠. 그래서 OK 하고 <오아시스>도 내고 싶다, 했는데, 그 분도 퇴사(하고 스플래시 뮤직을 설립)하셨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당신이 좋아서 연락한 거니까 계속 작업하고 싶다, 고 해서 그 분과, 스플래시 뮤직이 문 닫을 때까지 계속 거기서 냈어요. 의리가 있으시네요. (웃음) 사람하고 일하는 거니까요. 서로 믿고 맡기면 제가 편한 거죠. 배창호 감독님의 2009년 작< 여행 >은 단편 세 개로 이뤄진 옴니버스 작품이었는데, 단편 3개를 작업하듯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배창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창호 감독님의 < 기쁜 우리 젊은 날 >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만남은 너무 좋았구요. 기존 감독님들과 음악을 대하고 다루시는 방식이 많이 다르시더라고요. 많이 배웠죠. 단편 3개가 모두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에 각각에 맞춰진 작업을 했어요. 단편 작업들은 장편 상업영화와 많이 다른가요? 상업이란 표현을 빼면... 달라요. 그러니까 영화의 물리적인 길이라는 건 이야기의 함축과 표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음악도 그 호흡을 따라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음악 접근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상업과 비상업이 장편과 단편의 구분점은 아니구요. 그다음 김민석 감독님의 < 초능력자 >는 <내츄럴시티> 이후 모처럼만에 맡은 SF 계열 장르물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좀 다르죠. 막 달리는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김민석 감독과 그랬어요. 달리자. 신나게 갑시다! 일렉트로닉이 사용됐어요. 네, 제 음악적인 콘셉트는 100% 일렉트로닉. 엔딩 음악은 잘 안 쓰는 음악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해봤죠. 신났어요. 감독님도 굉장히 신뢰해주고 했죠. CD는 안 그렇지만 음원으로 풀린 걸 보면 초인과 규남 버전으로 각각 앨범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이창희 대표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러니까 20곡을 냈다고 하면 시기를 둬서, 투 탑 영화였으니까, 10곡은 초인(강동원) 버전으로 오픈하고, 며칠 후에 규남(고수) 버전으로 10곡을 시기의 차이를 둬서 오픈하는 거죠. 마케팅을 한 거죠. 원래 두 캐릭터에서 맞춰 스코어를 구분한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캐릭터에 맞춰 스코어를 작곡한 건 아니에요. 미러볼에서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송해성 감독님과 네 번째로 작업한 <무적자>는 < 영웅본색 >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아 < 무적자 >... 그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죠. 그래서인지 송해성 감독님과 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음원이 없어요. (시중에 발표된 <무적자> 앨범은 삽입곡들을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낼 수가 없어요. OST는 만들었는데, 복잡한 판권 문제가 있어요. 투자가 일본이잖아요. 그쪽하고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지 말자 이렇게 된 거죠. 고가휘가 작곡한 ‘당연정 當年情’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오리지널 테마곡이 워낙 유명한데, 오히려 2탄의 주제곡인 ‘분향미래일자 奔向未來日子’가 사용되었는데요. 예 맞아요. 아… 말씀드렸지만 <무적자>는 제 영화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뭔가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이상하게 어떤 힘에 의해서 막 흘러가는 거예요. 아쉬움이 많아요. 제 의견을 표현을 잘 못했고. 감독님도 좀 혼란스러웠던 거 같고. 그래서 그런 음악들도 감독님께서 쓰자고 하시면, 이 음악은 <영웅본색>의 후속작 음악이고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영화사에서도 저작권 사겠다 그러니까 저야 방법이 없죠. 여러 가지로 이상한 힘에 의해 흘러가서 저도 뭐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영화였죠. 이한 감독님의 < 완득이 >는 <호우시절>처럼 기타가 메인이 되는 스코어입니다. 청춘영화답게 경쾌 발랄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요, 이는 특별한 서사구조나 악인이 없는 에피소드 구조의 영화에 음악으로 방점을 찍어주는 듯합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완득이>는 이한 감독님과 연이 있었어요.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모던보이>를 하느라 여력이 없었죠. 감독님은 그래도 이 사람하고 해봐야지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하고 정서가 유사한 게 있어서,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포인트가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음악 넣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착하게, 엄마의 마음처럼 그렇게 했어요. 대신에 뛰거나, 권투 하거나 그럴 땐 음악이 몽타주처럼 들어가잖아요. 그땐 사실 노래를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시 노래를 만들어서 하려고 보니까 우리말이잖아요. 그게 좀 안 어울릴 거 같아서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영어로 노래를 만들었죠. 그래서 거기서 나온 노래들이 다 작곡된 노래들이에요, 선곡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영어노래 나오면 선곡인 줄 알잖아요. 그게 아니고 일부러 팝송을 만든 거예요. 제가 뮤지션들을 데리고 그 곡을 만들고 녹음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제가 제작해서 유튜브에도 올리고 그런 걸 제가 다 했죠. 굉장히 노래가 신나고 좋았던 거 같아요. 네, 그런데 미국 애들이 들으면 발음이 안 좋아서 잘 못 들어요. (웃음) 물어보니까 이게 무슨 영어 같긴 한데 잘 안 들린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웃음) 황인호 감독님과도 작업을 하셨는데요, < 오싹한 연애 >와 < 몬스터 > 두 작품 모두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습니다. 모두 하나 이상의 장르가 섞인 퓨전 영화였는데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와 호러의 조합이었고, <몬스터>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조합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오싹한 연애>는 괜찮죠. 로맨스와 코미디가 붙는 건 원래 (로맨틱 코미디) 있던 거고. 거기에 호러가 있는데, 호러는 로맨스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존재하는 거라, 기본적으로 로코든 멜로든 결과가 비극이냐 희극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편견이나 장애물을 넘어가는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여기선 호러가 그 역할(장애물)을 한 거죠. 그래서 믹스 같지만 어떻게 보면 믹스가 아닌 장르였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호러로맨스코미디라지만 사실은 그냥 로맨틱 코미디에요. 그런데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런 영화치고는... (웃음) 그죠. 무섭게 찍었어요. 근데 <몬스터>는… 섞인 짬짜면이에요. 짬뽕 국물에 짜장 넣으면 못 먹잖아요. 두 가지 장르가 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황인호 감독님 입장에서는 <오싹한 연애>가 됐으니까 또 해보자 이렇게 된 거였죠.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싫다,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비평가들 입장에서는 과했다, 섞임이 너무 과했다는 거였고요. 전 아무 정보 없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죄송한데요, 이게 뭐예요?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런 분위기. (웃음) 근데 감독님은 그걸 의아해하고.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어요. 근데 아쉬웠던 게 많았죠. 가령 둘 다 몬스터여서, 몬스터 대 몬스터여야 하는데, 하나는 몬스터이기엔 캐릭터가 작아 보이고. (마침 카페 벽에 붙어있던 마동석 배우의 사인을 가리키며) 마동석 씨나 <황해>의 김윤석 씨가 하거나, 그래서 여자는 더 가냘픈 사람이 하거나. 그래서 딱 둘이 섰을 때 상대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될 거 같거든요. 시작할 때 ‘개잡년이다’ 송이 나오는데요. 네 맞습니다. 감독님이 가사 쓰신 거예요. 제가 안 썼습니다. (웃음) 그걸 딱 써놓으신 거예요. 다 욕으로 구성된,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욕인 거죠. 그게 콘셉트에요. 그래도 그걸 맞춰보셨을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불러서 데모를 줬죠. 감독님, 가사가 이렇게 가야 해요? 감독님은 왜요? 좋다고… 심지어 감독님께서는 이걸로 마케팅도 가자고 하셨어요. 버전도 많아요. 한 4갠가 있어요. 사람들이 일명 텔레토비라고 부르는 할머니 태양 씬도 나오고요. 나중에 급하게 집어넣은 거예요. 가면 갈수록 혼돈이 생겼던 거죠. 음악 역시 그런 관용도에 있어서 고심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마찬가지죠. <오싹한 연애>에 이어 바로 진짜 호러영화, 변승욱 감독님의 <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와 <무서운 이야기>까지 하셨어요. 원래 승욱이 형 데뷔작인 <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을 했어야 되는데, 같이 못 해서 많이 아쉬웠고, 그래서 제가 막 뭐라 그랬어요. 다음 작품은 꼭 나랑 같이 해야 돼, 해서 <고양이>를 하게 됐는데, 잘 안 됐죠. (웃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죠. 제가 거기에 대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건데, 승욱이 형 입장에선 그만 고마워하고 그만 부담 가져도 된다, 충분히 알고 있고, 결국 그 기회를 잡은 건 너였기 때문에 내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어도 너는 했을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호러를 연달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계속 들어왔어요. (웃음) 뭐 딴 게 있나요? 호러가 시기적으로 맞물려서 들어온 거죠. 음, 재미있게 작업하면 되게 재밌어요. 내가 어떻게 하고 안 하고에 따라 관객이 놀라고 안 놀라고, 수위 조절이 확실하거든요. 근데 작업할 때가 힘들어요. 대부분 호러영화는 개봉이 7~8월이잖아요. 그럼 작업이 3~4월부터 시작돼요. 그때 막 봄비 내리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작업하고 있으면 번개 치고 그러면 뒤돌아보고 그런다니까요. 안 좋아요. 심적으로는. (웃음) 호러는 음향하고 구분이 모호하기도 한데요? 그래서 혼동이 많이 되죠. 그걸 충분히 조율해야 하는데 조율이 안 될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요. 서로 안 할 수가 있는 거죠. 귀신이 나오는데 이건 음향이지, 이쪽에서는 이건 음악이지 그래서 안 해. 그런데 (무음 속에) 갑자기 귀신이 콩! 하고 나오는 거예요. 이건 누구 책임인가 하는 거죠. 그걸 미리 조율하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시스템이 아직 그러질 못해요. 체계적이지 못한 거죠. 전문 조감독, 전문 제작실장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게 없잖아요. 가졌던 노하우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답답할 때가 있죠. <해와 달>, 버스 안의 아이들 < 무서운 이야기 >에서 4개의 에피소드 중 정범식 감독님의 <해와 달>, 홍지영 감독님의 <콩쥐팥쥐> 음악을 담당하셨는데요. <해와 달>에서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부분을 정범식 감독님이 작곡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범식 감독님이 피아노도 잘 치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제가 보기엔 음악 잘하시는 분이에요. 저한텐 자꾸 모르신다고 하시는데... 어느 날 갑자기 꿍짝꿍짝 만들어 오신 거예요. 이건 팀 버튼적으로 편곡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곡이에요. 누가 봐도 그렇게 나온 곡 같잖아요. (웃음) <콩쥐팥쥐>에서는 결혼행진곡이 나오고요. 맞아요 맞아요. 결혼행진곡을 변주해서 갔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결혼전야>를 같이 하게 된 거고요. 그러고 보면 < 결혼전야 >와 같은 코미디 영화도 많이 하셨습니다. < 어린 왕자 >나 < 청담보살 >, <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 < 미나 문방구 >도 모두 코미디인데, 다만 이들은 비평이나 흥행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작품 선택에 대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죠.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확인하고 지향하는 바에 대한 공감이 생기면 결정하게 돼요. 영화의 흥행과 비평만을 위해 결정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받으시면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편집이 된 영상을 보고 나서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작업방식에 대해 궁금합니다. 대부분은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악의 톤과 악상이 바로 떠올라요. 그래서 (<오아시스> 이야기 때 말씀드렸듯이) 시나리오를 읽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는 편이에요. 그리고 어떤 경우는 화면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음악 작업이 이루어지는데요. 매번 작업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정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다시 코미디 영화로 넘어가서요. 이들 스코어에선 조금 과장되어 음악이 부각된다던지, 미키마우싱 효과들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코미디 음악 작업은 어떠셨나요? 코미디 영화도 그마다 다른 음악적 접근이 있어요. 절제를 통한 반전의 웃음이라던가, 전통적 방식의 코미디도 있구요. 그 상황에 맞춰서 작업하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라서 특별한 작업은 아니에요. 이진혁 감독님의 장편 다큐멘터리 < 링 >의 음악도 담당하셨는데 극영화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고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안이 왔을 때 흥미롭게 작업했어요. 크게는 차이가 없더라고요. 결국 영화를 보는 관람자들에게 정보 혹은 정서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봐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꾸준히 해 볼 생각입니다. <고령화 가족>, 가족들 송해성 감독님과의 5번째 호흡을 맞춘 최근작이 < 고령화 가족 >입니다. <고령화 가족> 네, 참 좋은 영화인데. 역시 기타 선율이 두드러져요. 쿵짝거리는 집시풍의 스코어인데 어떤 콘셉트였는지 궁금합니다. 키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더라고요. 이 사람들에게는 어울리는 게 그거밖에 없겠더라고요. 막장까지 간 가족이잖아요. 피아노나 클래시컬한 걸로는 안 되겠고 약간 집시풍으로 했죠. 그래서 엔딩 타이틀에는 ‘초우(원작에서도 패티 김이 부른 이 곡이 잠깐 등장한다)’를 올리고 싶었어요. 누가 좋을까 하다가, 원래 ‘초우’는 엄마가 거기서 혼자 부르고 마는 거였어요. 그러다 감독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악어떼)’ 들어봤냐고. 한 번 들어보라고. 그래서 웃긴데요? 했더니 그걸 우리 엔딩으로 쓰면 어떨까 하시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닌 거 같은 데요 하다가 아 그럼 감독님 아예 ‘초우’를 이 팀에게 부르라 하면 어떨까요. 해서 또 미러볼 소속이니까, 리더인 조까를로스를 만났더니 좋다 해서 하게 된 거예요. 역시 최근작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이한 감독님과 작업한 두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기타 위주의 <완득이> 때와는 달리 피아노와 스트링이 전면에 부각된 게 <우행시>나 <화성에 간 사나이>의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떠한 점에 주안점을 두셨나요? <우아한 거짓말>은 음악의 톤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들을 한 결과 현재의 음악이 나왔죠. 하지만 몇 음악은 초기부터 확정되었어요. 가령, 만지와 엄마가 천지에게 달려가는 만지의 꿈 장면과 엔딩 타이틀이 그건데요. 이들을 기초로 설계하고 나머지를 짜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가 가진 본연의 색채와 의도를 최대한 맞추도록 했고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의 본래 의도라고 생각했죠. 영화 내용이 조심스러웠습니다. 2009년부터는 1년에 2~3편씩 꾸준히 하시게 되는데, 그때부터 시스템이 구축이 되신 건가요? 네. <모던보이> 이후부터 서서히 팀을 꾸려서, 사실 고 시기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폭삭 주저앉을 때였어요. 굉장히 어려웠을 때예요. 그 이후에 음악 개런티도 많이 내려갔어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분위기였던 거예요. 일단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까요. 또 하나는, 조금 조금씩 하는 것 보다는 작품 수를 늘려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천천히 팀을 만들어가면서 작품수를 늘렸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크레딧 보시면 페임이라고 되어있거든요. 약자로는 Film And Music Entertainment인데 영화에서는 제 이름을 계속 쓰는데, 작곡팀으로는 페임으로 있고, 인디영화나 게임, CF, 다큐, 예술영화는 페임으로 갈 거 같아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작업을 계속 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 것을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다 보니까 창작 자체에 힘을 너무 많이 뺐던 거 같아요. 알고 보니 영화음악이란 건 창작 자체 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활용하려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 컷 한 큐에 맞춰진 음악을 계속 만들다 보면, 힘들게 만들다 보면 나중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제력을 잃어버려요. 그러면 감독이 빼자, 길이를 맞춰달라든지 음악 자체에 변형을 가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해요. 이 음악이 아니다라고 하면 거기서 못 헤어 나와요. 한두 발 물러나야지, 빼볼까요? 잘라볼까요? 할 수도 있고, 그래야지 다양한 음악 작업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제가 창작도 계속 하지만, 전 멜로디만 주고 팀원이 편곡을 하거나. 전 그럼 일이 하나 줄잖아요. 그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여유가 생기는 거죠. 영화라는 게 10명만 보는 게 아니라, 천만까지도 볼 수 있는 거다 보니 객관화를 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창작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꾸 내 음악인데, 내 음악을 왜 이해 못하지? 하는 혼란이 생겨요. 그런 것들을 컨트롤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국내 영화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장르요? 한 번도 안했던 거가 퓨전재즈. 퓨전재즈 영화음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거랑 뮤지컬? 이런 것들. 하고 싶은데… 둘 다 음악이 강조 되는 영화죠. 당연히 음악감독으로는 음악이 빛나는 영화가 좋죠.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이런 영화 말고는 더 이상 (퓨전재즈가 잘 어울릴 수 있는) 도시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는 안 나오는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직접 그런 스타일을 요구해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영화의 음악을요? 안 맞는다고 하겠죠. (웃음) 우스갯소리로, 예전 송해성 감독님과 작업할 때도 감독님, 여기선 이런 음악이 어떠세요? 하면 그건 네 영화 만들 때 해.(웃음) 그러는 거죠. 사운드트랙 발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09년 <호우시절>까진 꾸준히 발매도 하셨는데, 최근 음원 시장으로 바뀐 후엔 <완득이>, <오싹한 연애>, <고령화 가족>, <비밀애> 정도만 시장에 소개됐습니다. <결혼전야>는 발매가 되었지요.(웃음) 사운드트랙의 발매 여부를 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겠죠. 물론 아쉽지만... 그것이 현재 한국 영화산업에서 사운드트랙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작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음… 가장 중요한 거? 영화를 위한 것? 절대로 음악이 먼저 나서지 않기. 음악은 확실히 주종관계에서 종이다. 그게 확실하거든요. 뮤직비디오랑은 정반대죠. 음악이 훨씬 돋보이고 영상이 서포트해야 하는데, 영화는 안 그렇거든요. 영상과 내러티브가 맞아야 하고 서포트를 음악이 해줘야 하거든요. 가끔 음악이 욕심을 내서 올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냥 자기 음악 하면 되거든요. 그건 전 좋은 어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에 비하면 한계나 제약이 많을 텐데요. 이 질문은 아마 제가 영화음악을 그만 둘 때까지 하게 될 고민이네요.(웃음) 이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한 학기 동안의 수업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확신이 없고, 혼란스러워하는 감독님들도 많은 편인가요? 글쎄요. 아마 제가 감독이 되고 음악을 직접 만든다고 해도 그런 확신을 갖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을 혼란이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는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문제는 끝까지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하느냐 아니면 그런 혼란과 조심 후 그것이 확신이 되어 마무리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확신을 주는 것이 음악감독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 불안을 해소시켜 주느냐죠.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 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다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작품 때문에 좋아한다기 보다는 마인드가 좋아서 좋아하는 경우? 예를 들면 히치콕 영화의 버나드 허먼. 제리 골드스미스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작품할 때마다 고민을 하거든요. 이 영화음악만을 위해서, 이 영화에 맞는 콘셉트를 잡아서 하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배경이 있잖아요. 왜 이렇게 했는지. 그런데 그걸 이야기 못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냥 화면에 맞춰 한 거거든요. 저는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야기꺼리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분명하지 않은데 아마도 멜로가 되지 않을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