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
- 감독
- 존 헤이스, 토마스 넬슨
- 제작년도
- 1997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중 (사진: " 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 ", IMDb)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멀티버스란 컨셉트는 애니메이션에 더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요즘 다시 보고 있는 <릭 앤 모티>(2013~) 시리즈와, 며칠 전 마침내 개봉일과 티저 이미지를 공개한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2027)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평행우주론/다중우주론을 끌어들여 흥미진진하게 소화한(혹은 그러리라 기대되는) 두 사례를 비슷한 시기에 마주쳐 함께 음미하던 도중에 문득 그럴듯한 상념들이 떠오른 것인데, 하나 이는 단지 질적인 수준에 대한 인상만은 아니었다. 물론 멀티버스 컨셉트의 유행이 불러온, 스케일만 넓어졌을 뿐 지루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실사’ 영화들의 향연이 내게 상당한 불쾌감을 주고 있기는 하다. 특히 < 데드풀과 울버린 >(숀 레비, 2024)처럼 (디즈니가 사들인 지식재산권을 이용하여)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데나 급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최신작들은 도저히 참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멀티버스를 끌어들인 ‘실사’ 영화들은 이미 (배우의 존재나 문화사적 기호들이 자연스레 추동하는) 추억의 인력에 끔찍한 모양새로 잠식된 것은 아닐까? 그에 비하면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로 막을 내릴)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Spider-Verse Animation Flim Series, 2018~)는 스파이더맨에 대한 추억을 자극하면서도 거기에 마냥 기대지 않고 (스파이더맨 파생 캐릭터들의 상이함을 유머러스하게 전면화하는 등) 창의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재밌는 기획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재밌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2010)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너에게> & <너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나에게>(2022)처럼 평행우주를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경우만이 아니라 여타의 애니메이션들도 멀티버스의 성질에 대해 묘한 친연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예컨대 <릭 앤 모티> 시즌5 2화 “Mortyplicity”에서 무수한 ‘미끼’ 가족들이 쉴 새 없이 죽고 새로 나타나길 반복하다 종국에 다 함께 서로를 찢고 베고 터트려 죽이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야, 이거 좀 <톰과 제리>(1940~) 같네’라고 문득 생각했다. 어떤 에피소드에선 죽은 듯이 묘사되거나(“The Yankee Doodle Mouse”) 정말로 죽는(“Mouse Trouble”) 톰이 다른 에피소드에선 멀쩡히 살아있는 채로 제리와 마찰을 계속 일으키는 식의 픽션적 허용이 여기서 멀티버스적 설정을 경유하여 서사적으로, 또 폭력적으로 소화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Mortyplicity”는 멀티버스 컨셉트를 직접 끌어들이진 않았다고 반론을 제기할 독자도 있겠다. 그러나 저 무수한 ‘미끼’ 가족들이 모두 서로 마주치지 않은 채 한 우주의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는 비약적인 극적 설정에서 멀티버스를 떠올리지 않기란 무리일 터이다) <릭 앤 모티>(2013) 중 / <톰과 제리(Mouse Trouble)>(1944) 중 (사진: 좌 , 우 _IMDb) 당연하게도 이런 픽션적 허용은 <톰과 제리>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팬덤에서 ‘사자에상 시공’이란 용어가 뿌리 깊게 박혀있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나 통신 기기의 변화는 묘사하되 캐릭터의 나이처럼 작품의 정체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는 묘사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우직하게 지속하는 경향을 우리는 여러 초장편 애니메이션에서 번번이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게게게의 키타로>(1968~), < 심슨 가족 >(1989~), <크레용 신짱>(1992~), <명탐정 코난>(1996~), <네모바지 스폰지밥>(1999~)… (이에 더해 본편에 대한 평행우주로 ‘일단’ 취급되곤 하는 극장판까지 셈해보자) 계속해서 ‘갈아 치워지는’ 타겟 시청자층과, (성우의 노화, 그림체의 변화, 해상도 포맷의 변화 등을 제외한다면) 영구적으로 같은 외양의 극적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는 표현성 등 애니메이션 특유의 문제계가 여기에 큰 몫을 한다. 이런 경향은 누적된 에피소드들 사이에 중대한 모순을 야기하면서 절대 해소하지는 않기 때문에 종종 몹시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한때 국내에서 유행했던 ‘짱구 자폐증 괴담’은 이런 기묘함을 음모론으로 확장한 결과였을 게다), 이 느낌은 멀티버스를 직면할 때의 (가정된) 당혹감과 어느 정도 유사할 것이다. 컨셉트로서 멀티버스와 애니메이션 사이의 친연성은 좀 더 있다. 스파이더맨을 구심점 삼은 멀티버스 영화들인 ‘실사’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존 왓츠, 2022)과 애니메이션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호아킴 도스 산토스 외 2인, 2023)를 비교해보면 확실해지는데, 전자에 (지금껏 실사 영화화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적어도 외양에 있어선) 이물감 없이 매끄럽게 등장하는 반면 후자에는 (코믹스에만 등장했던 이들을 포함하여) 무수한 스파이더맨과 그들 각자의 우주가 (그웬의 우주에서 배경이 물감 텍스쳐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서로에 대한 이물감을 드러낸 채로 제시 및 교차된다. 멀티버스가 단지 ‘여기가 아닌 우주들’이 아니라 ‘여기와 다른 우주들’을 지시하는 낱말임을 떠올린다면, ‘실제적인 것’을 충족해야 하는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 해 상이한 질감의 캐릭터와 사물이 하나의 장면/작품에서 불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기에 수월한 장(場)인 후자의 애니메이션이, 멀티버스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친연성을 갖는다 해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예컨대 2D 애니메이션과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기괴하게 공존시킨 < 내 주머니 속의 돌들 >(시그네 바우만, 2014)은 명시적으론 멀티버스와 어떤 관계도 없으나, 서로 다른 질감의 존재들을 병립시키고 나아가 충돌시켜 이따금 (그 질감이 지시하는) 우주들의 경계가 뒤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상)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중 세 명의 스파이더맨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중 물감 텍스쳐로 나타난 그웬과 그의 아버지 (사진: 좌 , 우 _IMDb) (하) 2D와 스톱 모션의 연출이 공존하는 <내 주머니 속의 돌들> (사진: " ROCKS IN MY POCKET Official Trailer ", 유튜브 Signe Baumane) 하지만 서둘러 덧붙이건대, 나는 멀티버스가 애니메이션에 더 어울린다고 해서 ‘실사’ 멀티버스 영화가 무용하다고까지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데이빗 린치, 페드로 코스타, 홍상수 , 웨스 앤더슨,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같은 우리 시대의 영화작가들은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의식하진 않았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멀티버스적인 존재론적 혼란을 강렬하게 육화하지 않았던가? 친연성과 탁월함은 통일된 개념이 아니다. 다만 이 자리에선 이런 친연성이 컨셉트로서 멀티버스에 대한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으로 향할 수 있음을 논하고자 하였다. 그 점에서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건 <팝 팀 에픽> 1기(2018)이다. 동일한 시각적 이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성우들이 상이한 연기(여기에는 호흡은 물론 대사 애드리브도 포함되어 있다)를 펼친 후 이를 본방송과 재방송 구도로 함께 뻔뻔하게 제시한, 방법론의 차원에서 은근하고도 흥미진진하게 멀티버스를 소화했던 이 애니메이션은 갑작스레 마지막 화에서 (시간 여행 설정을 통해) 멀티버스를 가시적으로 끌어들인다. 작품의 방법론이 지닌 힘을 여실히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작품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조바심의 발로였을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논한 애니메이션의 친연성/잠재력이 <팝 팀 에픽>에서 과도할 정도로 ‘잘’ 양식화되었다는 사실뿐이다. <팝 팀 에픽>(2018) 중 (사진: " Poputepipikku ", IMDb) 윤아랑(비평가) l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감각을 문제시하는 문화 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 등이 있다.
1976년 쇼브라더스의 합작영화 <여신탐>(최훈·파오시에리, 1976)의 주연으로 데뷔한 신인 배우가 있다. 바로 태권도와 무협 액션이 가능했던 연기자 김정란이다. (그림1) <여신탐>(최훈·파오시에리, 1976) 국내 포스터 그녀는 다양한 액션과 대규모 폭파장면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여신탐>에 결코 운으로 캐스팅되지 않았다. 연기력과 액션 실력에 더해 해외 거주 경험과 여권까지, 이 영화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배우였다. 그녀가 22세에 <여신탐>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자. 그녀의 아버지는 유명 원로 방송작가 김희창 선생으로 <로맨스 빠빠>(신상옥, 1960), <열두냥짜리 인생>(이만희, 1963), <또순이>(박상호, 1963) 등의 영화 각본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린시절부터 연출자와 배우들을 접해왔고 이런 점은 그녀가 영화나 방송계에 편입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부친인 김희창 작가는 워낙 엄격하고 작품당 휴지기를 길게 두는 편이라 실질적인 생활은 어머니가 이끌었다. (그림2) 부친 김희창 작가와 연출가 허규 1960년대 중반 한국해외개발공사가 동남아 등 해외 각국으로 기술 이민을 권장하던 때, 그녀의 어머니는 부르나이 여학교에 교사로 파견된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청소년기를 부르나이에서 보냈고 19세에 귀국한 뒤에는 외국으로 미술 유학을 결심하고 준비한다. 그런데 마침 다니던 화실 아래층에 연출가 허규의 극단 새문화스튜디오 연습실이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에 극단에 발을 디뎠고 문하생이 되었으며 수련과정을 거쳐 연극에 출연하게 된다. 1973년 새문화스튜디오와 극단 민예 소속 배우로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에 도시코 역으로, <고려인 떡쇠>에는 찌몽 역으로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한다. <고려인 떡쇠>는 아버지인 김희창 작가의 작품이다. (그림3) 1973년 새문화스튜디오의 연극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의 한 장면 1974년에는 스승인 연출가 허규의 제안으로 KBS 오디션 프로그램 <신인탄생>에 출연해 입상하며 KBS 탤런트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엄격한 부친인 김희창 작가는 그녀의 활동을 반대했고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으며 방송국 내에서도 거리를 두었다.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인 시절을 보내던 중 그녀는 태권도 도장을 다니게 된다. 태권도 도장에서 요가를 알려주는데 요가를 하면 살이 빠진다는 당시의 속설 때문이었다. 하다 보니 송판 두어 장과 기와 일곱 장 정도는 깰 실력이 되었고 국기원에서 초단 단증도 받게 된다. 꽃꽂이와 뜨개질이 아닌 태권도가 특기라 하니 기자들은 당장 과장을 섞어 그녀를 태권도 3, 4단의 실력자로 소개했다. 1974~5년은 태권도 액션 영화가 등장해 흥행했고 발차기가 아름다운 챠리 셀(한용철) 같은 신인 남자배우가 인기를 얻던 시절이다. 태권도가 특기인 그녀에게도 곧 기회가 찾아온다. 그녀는 1976년 태권도 도장 관장님의 다급한 부탁으로 해외에 태권도를 소개하기 위해 제작한 문화영화에 출연한다. 원래 예정되었던 여자선수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대신 나갔던 것인데 ‘KBS 탤런트 김정란, 태권도 문화영화 <동과정>에 출연’이라는 소식이 작게 신문에도 실리게 된다. 얼마 후 영화사인 우성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긴급하게 우성사 사무실에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 홍콩 쇼브라더스로 가 영화를 찍을, 액션이 되는 여배우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우성사 사무실에는 김용덕 대표와 홍콩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던 배우이자 <여신탐>에 함께 출연한 남석훈이 그녀 앞에 있었다. (그림4) <여신탐>(최훈, 파오시에리, 1976)의 남석훈과 김정란. 뒤편으로 불타는 홍콩 쇼브라더스의 오픈세트가 보인다. 우성사에서는 오디션이랄 것도 없이 함께 인삼차를 마시며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였다. 그녀가 외국 유학을 준비 중이라 이미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김용덕과 남석훈은 더욱더 그녀를 반겼다. 당시는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외국에 거주 중인 신원보증인의 초청장과 재무보증 등이 필요해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너 외국 갈 수 있니?” “네”. “당장 갈 수 있니?” “네” “그러면 준비해라” 너무 쉽게 끝난 것 같지만 사실 그녀는 우성사가 찾던 배우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오디션 프로 <신인탄생>에서 검증한 연기력과 태권도 실력은 물론 여권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홀로 홍콩 쇼브라더스로 출발한다. 홍콩 쇼브라더스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오픈세트에는 강과 산, 탑, 폭파시킬 별장과 여러 건물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촬영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해 이뤄졌다. 가히 동양의 할리우드였다. 그리고 그녀는 쇼브라더스 영화의 주연배우 대우를 톡톡히 받았다. 숙소와 자동차, 의상과 분장 그녀에게 제공된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그녀를 스튜디오 분장실로 데려갔다. 그녀가 분장과 의상을 마치면 때로 옆 방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기자들과 간단하게 촬영과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차에 오르면 그녀를 촬영장으로 데려갔다. 촬영장에서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있어 그녀는 감독의 지시대로 연기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연기가 끝나고 그녀가 카메라 뒤로 빠져나오면 현장의 전담 매니저가 김정란 이름이 새겨진 의자를 펴주며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이 보장되었고 촬영은 늘 일정대로 진행되었다. (그림5) <여신탐>(최훈, 파오시에리, 1976)의 한 장면. 한국 형사 고은미(김정란)가 벨트에서 화살을 꺼낸 뒤 석궁을 쏘는 장면이다. (그림6) <여신탐>(최훈, 파오시에리, 1976)의 한 장면. 한국 형사 고은미(김정란)가 오토바이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여신탐>은 일본과 홍콩, 한국의 여형사로 구성된 특별수사반이 스코틀랜드 출신 형사반장과 함께 보석밀매와 납치를 일삼는 범죄조직을 소탕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여형사들에게는 각자의 장기가 있는데 김정란이 연기한 한국형사 고은미는 석궁과 태권도가 특기이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국내장면에서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한 그녀는 한국의 악당들을 태권도로 홀로 소탕하며 몸을 사라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후반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석궁을 쏘며 몸을 날리는 등의 화려한 액션이 등장한다. (그림7) <여신탐>(최훈, 파오시에리, 1976) 홍콩 포스터 <여신탐>은 홍콩개봉 당시 영어 제목이 <Deadly Angels>였는데, 세 명의 미녀들이 악당을 퇴치한다는 설정이 1976년에 방영된 미국 abc 방송국의 드라마 <Charlie's Angels(미녀삼총사)>와 유사하다. 당시 쇼브라더스는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킹콩>(1976)의 흥행을 보고 <성성왕>(1977)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쇼브라더스는 국제적인 흥행의 흐름을 발 빠르게 파악하고 제작, 배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한국의 영화사들도 이런 흐름에 공동제작 혹은 투자의 형태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림8) <여신탐>(최훈· 파오시에리, 1976) 홍콩 촬영 중 이한상 감독에게 출연 섭외를 받은 김정란. 1) 그녀는 내심 홍콩에서 촬영을 마친 후 바로 유학을 가려 했지만 촬영 중에도 영화출연 섭외가 쇄도했다. <여신탐> 촬영 중 홍콩의 명감독 이한상으로부터 <백사전>(이한상·최동준, 1978)의 출연제의를 받았지만 노출장면 때문에 거절했는데 그 역할은 대만 배우 임청하에게 돌아갔다. 국내 영화사들의 계속된 출연요청으로 그녀는 <여신탐>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특명>(김선경, 1976), <소림사 흑표>(이혁수, 1977), <정무문(속)>(남석훈·초석, 1977), <금호문>(김선경, 1977), <용왕 삼태자>(최동준, 1977) 등 쉴 새 없이 작품을 이어갔다. (그림9) <소림사 흑표>(이혁수, 1977) 포스터. 검은 옷을 입은 이가 상관영봉이고 흰옷을 입은 이가 김정란이다. 상관영봉의 화려한 손모양이 포스터에도 드러난다. 1977년 출연한 <소림사 흑표>는 당시 무협영화의 히로인이었던 대만 출신 배우 상관영봉과 공동 주연한 작품이다. 상관영봉은 이미 <소림사 18동인>(1976) 등의 영화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무협 배우였고 쿵푸 액션을 하다 보니 이 작품에서는 그녀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쿵푸는 손동작이 화려하고 사전 동작이 많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주목을 받기 쉬운 반면 태권도는 발차기 위주여서 액션을 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화면에서 얼굴이 멀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일단 중국식 의복을 입으면 연기가 달라졌다. 액션을 하려면 목을 한 바퀴 돌려 긴 머리카락을 감아서 정돈한 뒤 옷을 접고 대사를 하고 손동작을 하는 식으로 사전 동작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얼굴이 화면에 더 오래 나갈 수 있었지만 태권도는 한번 자세를 잡으면 바로 발차기를 하고 주먹이 나가는 식이었다. 이런 동작의 차이 때문에 화면에서 돋보이기 힘들어 그녀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림10) <소림사 흑표>(이혁수, 1977)의 한 장면. 검은 옷을 입은 상관영봉과 흰 옷을 입은 김정란 쿵푸가 익숙하지 않았던 그녀는 액션의 합을 그대로 외우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국내촬영은 장비도 열악하고 준비도 오래 걸리다보니 무조건 몰아찍기를 해야 되었기에 한번 찍을 때 최대한 길게 촬영했다. 그러니 액션도 길어져 합은 열 동작 이상이었다. 사전에 액션 연습도 없이 촬영 직전 현장에서 처음으로 열 동작 이상을 알려주면 그대로 외워 촬영했고 한 동작이라도 틀리면 사고와 부상으로 이어졌다. 큰 사고는 <금호문>(김선경, 1977)에서 발생했다. 소품이 부족해 촬영용 칼이 아닌 육중한 무쇠칼을 사용했던 게 화근이었다. 상대 배우가 무쇠칼로 액션을 하다 타이밍을 놓쳐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게 된 것이다. 머리에 둘렀던 진주 장식이 터지고 머리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촬영지가 고창 정읍의 선운사다 보니 열악한 교통상황에서 급히 갈 수 있는 병원조차 없었다. 제작진은 담배를 으깨 피가 나는 머리를 지혈한 뒤 그녀를 리어카에 실어 가축병원으로 옮겼다. 마취도 없이 환부를 꿰매는 것으로 처치를 마친 후 현장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다음날부터 촬영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미 개봉일이 잡혀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장 스태프들은 그나마 진주 머리 장식이 있어 큰 화를 면했다고 위로했지만 그녀는 부은 얼굴로 고통 속에서 촬영을 이어갔다. 촬영을 마쳐갈 즈음 꿈을 꾸고 찾아온 어머니와 함께 겨우 서울로 올라와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안전장치 하나 없던 열악한 촬영 환경에서 사고의 위험은 도처에 있었고 사고 후의 수습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시절이다. 그녀뿐 아니라 무협액션장르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 모두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영화사나 작품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협액션영화 촬영현장의 조건이나 대우는 국내가 홍콩이나 대만보다 훨씬 열악했다. 당시 무협액션영화에 대한 국내 영화계의 천대가 촬영현장의 열악함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림11) <금호문>(김선경, 1977)의 한 장면. 사고에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진주머리 장식이 눈에 띈다. 대만에서는 로웨이가 제작한 <사학비권>(진지화·김진태, 1978)과 <오룡대협>(진지화·김진태, 1978)을 촬영했다. 두 편 모두 성룡과 함께 출연했는데 <사학비권>에서는 성룡에게서 권보를 빼내기 위해 소년처럼 남장을 하고 접근하는 역할이었다. 홍콩이나 대만에서 진행되는 합작영화의 경우 사전에 시나리오를 보기가 힘들었다. 보통 합작영화 제작 시 한국 영화사가 전담했던 한국 로케이션 장면의 대본 정도만 미리 받아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대만의 영화사가 전담한 대만 촬영분량에서는 역할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현장에서 캐릭터를 파악하고 연기해야 했다. <사학비권> 또한 대만 촬영현장에서 당일 그날의 의상을 보고서야 남장소년 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장 통역조차 한국말이 서툰 화교라 대부분 눈치껏 해석하고 연기해야 했다. 가령 “여자인데 남자로 분장했어. 배고파. 빵 먹고 싶어.” 라는 통역된 감독의 말만 듣고 ‘남장을 하고 빵을 훔쳐먹어야 하는 장면’이라 판단하고 연기했다. 그러다 옆에서 한국말을 조금 아는 성룡이 “귀여워” 라고 첨언하면 그녀는 귀여운 표정이나 코를 치는 연기를 더하는 식이었다. 정보 없이 현장에서 눈치껏 연기하다 보니 촬영 중인 화면의 사이즈를 알리도 만무했다. 그 덕에 자신이 찍히지 않는 쇼트에서도 혼자 열심히 연기해 감독이 몇 장면 더 찍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림12) <사학비권>(진지화·김진태, 1978)의 한 장면. 소년처럼 남장한 모습이 잘 어울린다. (그림13) <사학비권>(진지화·김진태, 1978)의 한 장면. 비호성주의 딸 황주로 돌아온 모습이다. <사학비권>과 <오룡대협>의 대만 촬영현장은 의사소통이 어려울 뿐 분위기나 대우는 좋았다. 분야별로 준비가 잘 되어있어 진행이 순조로웠고 식사를 굶거나 밤을 새는 경우도 없어 좋은 컨디션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촬영장에서 그녀 뒤에는 언제나 발받침과 차를 담은 보온병이 졸졸졸 쫓아왔는데 키가 작은 그녀를 위해 전담 스태프는 그녀가 가는 곳마다 발받침을 가지고 따라다녔다. 뿐만아니라 대만 제작팀은 당시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스폰지 속굽이 있는 키높이 부츠를 특별히 제작해줄 정도로 세심하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줬다. (그림14) <오룡대협>(진지화·김진태, 1978) 대만 촬영현장. 방수일, 성룡, 진지화 감독, 김정란. 김정란의 오른쪽에는 촬영장에서 항상 그녀를 따라다니던 발받침과 보온병이 있다. 하지만 액션에 대한 부담은 여전했다. 덤블링을 하고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정도의 액션은 직접 연기해야 되었고 그 수준을 넘는 경우는 대역이 대신했다. 중국에는 무술 인구가 많아 대역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한국에는 무술이 가능한 키 작은 사람이 없어 난감할 때가 많았다. <혈육마방>(김영효·포학례, 1979)의 후반부에서 그녀는 보물이 든 궤를 차지하기 위해 남자배우들과 결투를 벌이다 죽임을 당하는데 결투 내내 맞고 쓰러지는 액션을 해야 했다. 대역이 있다 해도 어지간한 액션은 모두 해야 되었기에 비가 오면 아파서 울 정도로 늘 근육통에 시달렸다. (그림15) <혈육마방>(김영효·포학례, 1979) 촬영현장에서 김정란과 대만의 무술감독.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에 난감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몇 편의 멜로드라마 장르의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김수용, 1977)이 그중 한 편이다. 술집 작부와 정신이상자라는 1인 2역을 맡았는데 조연이긴 했지만 개성 있는 역할이라 선뜻 응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파에 시달린 인물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해냈다. 무엇보다 연기만 하면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고 ‘어우, 나도 막 이런 연기가 되네.’ 라며 신나서 한 역할이었다. (그림16) <화려한 외출>(김수용, 1977)의 한 장면 <신궁>(임권택, 1979)에서는 술집 주인으로, <짝코>(임권택, 1980)에서는 짝코의 애인 역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남겼다. <짝코>는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았으나 능청맞은 연기로 어둡고 진지한 극의 분위기를 재치있게 살렸는데 그녀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림17) <짝코>(임권택, 1980)의 한 장면 연기에 재미를 느낀 그녀는 작은 역이라도 열심히 참여했다. <물보라>(김수용, 1980)에서는 동네 아낙으로 출연했는데 바닷가에서 여자들이 뛰어와 서는 장면에서 그녀는 제일 끝에 서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녀에게까지 오지 않았다. 촬영 전, 다른 배우들에게만 땀처럼 보이도록 얼굴에 물을 뿌려준 상태였다. ‘나도 땀을 흘렸어야 되는데…’ 걱정이 된 그녀는 얼른 바위틈 웅덩이로 뛰어가 고여있는 물을 찍어 얼굴에 뿌렸다. 그걸 본 김수용 감독이 웃으며 “정란이까지 찍어줘”라고 해서 출연장면을 사수할 수 있었다. (그림18) TBC 어린이 드라마 <달려라 차돌이>(1977)의 한 장면 (그림19) TBC 드라마 <대춘향전>(1980)의 한 장면. 왼쪽 끝이 향단 역의 김정란, 오른쪽 끝이 춘향 역의 이경표이다. 그녀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텔레비전 방송 활동도 겸했다. TBC 어린이 드라마 <달려라 차돌이>(1977)에는 정순누나 역으로, TBC 특집 드라마 <대춘향전>(1980)에는 향단역으로 출연했으며 꾸준히 방송 섭외를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집안에서 그녀의 결혼을 서둘렀고 1981년 결혼 후 남편의 반대와 육아로 자연스럽게 은퇴하게 된다. 그녀는 영화계에서 약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굵직한 무협 액션 영화에 출연하며 1970년대 액션 여배우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의 작품활동은 국내 무협액션영화의 특징과 여성 연기자의 조건, 합작영화의 제작 관행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그녀의 지난 활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조명받기를 바란다. 1) 경향신문 1976년 9월 20일 8면.
헐리웃 미투 캠페인 지지를 위해 글든글로브 시상식에 블랙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배우들 선한 자보다 약한 자가 되어라 - 니체(『선악을 넘어서』) 차이콥스키 내 노트북의 바탕 화면은 대중적으로 비호감인 남자 배우의 사진이다. 내가 이 배우에 대해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알 리가 있겠는가. 다만 그의 연기와 극 중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가 쓴 글과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을 뿐이다(나는 그가 독특한 사람이라고 짐작한다.). ‘바탕 화면 배우’ 말고 좋아하는 배우 두 명이 있는데, 그 두 사람 역시 마초 발언으로 논란이 많다. 여자 배우? 많은 여성 배우들은 위에 언급한 남자 배우들의 나이까지 ‘버티지’ 못한다. 나는 노트북을 켤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정말,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페미니스트가 000을 좋아해?” 혹은 아예, “네가 컴맹이라 다운로드가 잘못되었나보다, 내가 바꿔줄게”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는 (아직은) 성폭행범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우성 배우를 매우 좋아하지만, 모든 남자 배우가 그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긴, 이 역시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난민 인권을 논하는 배우를 더 싫어할까, ‘문란한’ 배우를 더 싫어할까, 병역을 기피한 배우를 더 싫어할까. 모두 뇌관이다. 내 심정은 복잡하다. 일단,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라는 자문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이 세상에는 내가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다양한 페미니스트가 존재한다. 그들의 입장을 존중하지만, 그들이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환경주의, 페미니즘은 모두 내가 추구하는 수많은 정체성 중의 ‘하나’일 뿐, 나는 특별한 정국(政局)을 제외하면, “ ~ 주의자”라고 자칭하지 않는다. “ ~ 주의자”는 선언한다고 획득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 ~ 주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과 자기 검열을 잘 알고 있다. 어려운 일상의 연속이다. 예술가로서의 재능과 인간의 품성 사이의 간극에 관심이 많은, 나 같은 관객들은 고민한다. “작품은 좋은데, 그 감독 인간성은 00이라며?”, “난 그 배우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패스야. 배우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지”, “네가(나) 어떻게 그런 소설가를 좋아할 수 있니”... 흔한 논쟁거리다. 이것은 ‘타인의 취향’도 ‘정치적 올바름’도 ‘똘레랑스’도 ‘작가와 작품의 분리 논리’로도, 해결할 수 없는 제3의 정치학을 필요로 하는 이슈다. 위에 적은 내용에 비해 덜 논쟁적인 문제도 있다. 단지, 무지와 통념으로 인한 혐오로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다. 어떤 클래식 애호가(?)가 내게 물었다.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면서요?”, “그런데요?”, “저는 그다음부터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이 께름칙해요”, “그러세요? 그럼 듣지 마세요”. 나는 차이콥스키와 바흐 없이 살 수 없다.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서 그의 음악을 못 듣겠다면, 그 사람만 손해다. 아니, 음미할 자질조차 없는 거다(참, 세상에 별의별 사람 다 있다). 오스카 와일드, 트루먼 카포티, 안데르센, 소크라테스! < 주노Juno >(제이슨 라이트맨, 2007)와 < 인셉션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20010)의 엘렌 페이지, 조디 포스터...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가 동성애자라서 ‘꺼려진다면’ 볼 책도 영화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이슈를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뭔데?” 이 말은 사이먼 페그가 나오는 영화의 실제 대사이기도 하다. 그가 뉴욕의 연예 잡지 기자로 성공하기 위해 애쓰다 실패한 이야기인 < 하우 투 루즈 프렌즈How to lose friends & alienate people >(로버트 B. 웨이드, 2008)에 나오는 말이다. 시드니 영(사이먼 페그 扮)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좌충우돌하다가, 뉴욕의 문화계의 거물을 찾아가 한심한 협박을 한다. “(기자인 나한테 뭔가 이득을 주지 않으면) 동성애자 배우, 모델, 감독, 작가들을 모두 아우팅 시킬 거다”. 상대방은 웃으며 말한다. “이 바닥에서는 거의 동성애자 아니면 유대인이야. 매장당할 사람은 당신이야” 가해자보다 더 나쁜 예술 분야뿐 아니라 정치인, 학자, 페미니스트 등 수많은 위인 중에서 인간성과 그의 업적이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간성은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내를 학대했는지(톨스토이), 남의 업적을 가로챘는지(아인슈타인), 성차별을 일삼았는지(레닌), 자기만 지식인이라고 생각했는지(푸코, 보부아르), 비열한 연애로 상대에게 고통을 주었는지, 권모술수를 부렸는지, 표리부동했는지,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는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위대한 서양인’들은 제국주의자들이다. 성폭력범은 너무 흔해서 이 논의에서 제외한다. 그런데, 맷 데이먼. 누가 그를 싫어할까. 그는 왠지 미국인도 제국주의자도, 심지어 ‘남성’도 아닐 것 같은 이미지다. 미투 이전까지, 맷 데이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2016년, 영화 < 제이슨 본Jason Bourne >(폴 그린그래스)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그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이 맡은 캐릭터 해석과 영화 철학,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다. 18살에 커리어를 시작해 구스 반 산트,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들리 스콧 등 거장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알려졌다시피 글쓰기에도 능하다. ‘바람둥이’, 왕자병’ 스타일도 아니다. 특히, 그는 물 부족 국가의 여성들을 돕기 위한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www.water.org).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작품 자체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니, 그의 영화를 다 봤다. 나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 대해 ‘지구화 시대 국민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2편인 <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폴 그린그래서, 2004)에 대해서는 「목숨 걸고 사과하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상하게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안소니 밍겔라, 1999)마저 순수해 보인다. 알랭 들롱의 ‘리플리’(< 태양은 가득히Purple noon >(르네 클레밍, 1960)에서 주인공)와 다르다. 그의 인간성은 모든 캐릭터를 맷 데이먼으로 환원하여, 선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최근 할리우드의 미투 운동 과정에서 연일 ‘말실수’를 했다. 아니면, ‘본색’일까. 그의 발언을 보자.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과 강간, 아동 성추행은 다르다.”, “영화 제작자까지 인종 다양성을 보장할 필요는 없다.”, “성 정체성은 편견을 줄 수 있으니 드러내지 않는 게 낫다”, “성추행을 안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결국 일련의 발언으로, 여성들만을 주인공으로 한 < 오션스 8Ocean's 8 >(게리 로스, 2018)에 카메오로 출연했으나, 2만 명이 넘는 여성들의 거센 항의로 편집 당했다. ‘평균 시민의 교양 미달’이라는 측면에서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저런 수위의 발언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게 큰 충격은 그가 (쿠엔틴 타란티노, 벤 애플렉 등과 함께) 지난 20년 동안 하비 와인스타인과 친분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즉 와인스타인의 셀 수도 없는 성폭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귀네스 팰트로의 전 남자친구 브래드 피트만이, 와인스타인에게 항의했다고 알려졌다. 더 심각한 문제, 아니 더 혐오스러운 데이먼의 범죄 행위는 그가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보도하려던 전직 뉴욕타임스 기자를 회유했고, 옹호 논리까지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맷 데이먼 자신은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이용해 와인스타인 같은 인물을 변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성폭력 직접 가해보다 ‘더 질 나쁜’ 행위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치 살인보다 살인 교사가 더 나쁘고 비리 재벌보다 재벌의 돈을 받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언론사, 회계사, 변호사가 더 역겨운 것처럼 보이는 심리처럼 말이다. 지주보다 마름이 더 ‘추잡’하다고 할까. 이런 나의 생각 역시, 스타의 이미지에 포섭된 미디어 시대 우중의 모습이고, 진짜 가해자인 와인스타인은 아예 제쳐 둔 잘못된 판단일 것이다. 불신, 문화적 억압이라는 또 다른 피해 배우는 힘든 직업이다. 지금도 활동 중인 노년의 배우가 있는데, 그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를 지지하는 TV 연설원이었다. 그가 노태우 후보를 지지한다면서 한 첫 마디는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요, 왠지 그 양반(노태우)이 좋습디다...”였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그 느낌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다. 배우의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노태우와 광주 학살 그리고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와 군부에 대한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 이후 그 배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배우나 작가가 모든 면에서 결점이 없을 수 없다. 마피아부터 파시스트까지, 그리고 그들을 스폰서로 둔 사례까지... 문제는 간단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했던 배우의 영화를 더 이상 볼 ‘비위’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성폭력은 특별한 범죄다. 난 맷 데이먼을 잃었다. 이제 그가 출연한 작품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과 비슷하다. 몇 년 전 세계적인 석학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우연히 나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안내 업무를 맡은 친구로부터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나는 그녀의 책을 읽지 않는다. <인 더 컷>의 마크 러팔로와 맥 라이언 ‘개념 매력남’인 줄 알았던 맷 데이먼에게 놀라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마크 러팔로도 의심이 간다. 게다가 그는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사실이 아니면 어떡하지? ‘더 나쁜 X’이면어떡하지?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나는, < 인 더 컷In the cut> (제인 캠피온, 2003)의 러팔로 같은 남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환상과 < 유 캔 카운트 온 미You can count on me >(케네스 로너건, 2000)에서 러팔로의 빵구 난 러닝셔츠를 생각하면서 웃곤 한다. 나는 점점 <인 더 컷>의 맥 라이언처럼 편집증 환자가 되어갈 판이다. 차라리 스파이크 리처럼 대놓고 마초인 남자가 나을까.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영화의 캐릭터)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미투 이후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어졌다. 예술가의 인성과 작품 수준의 관계는 끝없는 논쟁거리지만, 나는 이에 대한 나름의 입장이 있다. 좋은 인간과 좋은 예술가는 모순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예술은 사회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선(善)의 기준은 대단히 넓고, 다면적이고, 맥락적이며, 인간은 일관되고 합리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선악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나쁜 사람의 작품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의 작품에는 반드시 나쁜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다. 혹은 위대한 작품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그러므로 생각보다 이 문제는 논쟁거리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어린이를 학대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얘기는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런 사람의 작품은 논쟁을 넘어 논쟁의 가치조차 없다. 혹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보라. 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조금이라도 올바르지 않은 태도를 가진 배우, 감독, 스태프 하고는 일하지 않는다(해고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스필버그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하는 가해자는 없다. 그런데 왜 사회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만 논쟁이 분분할까. 이 자체가 젠더 폭력에 대해 관대하다는 얘기다. 성폭력은 그 어떤 잘못보다 엄격히 다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를 주지 않는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반발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남성 사회는 스스로, 혹은 (피해) 여성 집단에 두 번째 기회를 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부정하고 은폐하고, 가해자는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두 번째 기회가 웬 말인가. 맷 데이먼. 다시는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아서 속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평범한 씨네필의 영화 사랑을 망친 그에게 분노한다. 내가 신뢰하는 어느 영화평론가는 이런 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2004) 월드 프리미어 참석한 그는 서구 기자들에게 ‘치여’ 제대로 입장도 못하고 곤란한 처지에 있었는데, 관람권을 미리 확보가 ‘기득권 평론가’가 영화가 상영되자마자 코를 골며 잤다는 것이다. 극장 밖에는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고레에다의 영화를 보면서 코를 골고 잔단 말인가, 그것도 다른 이들의 관람 기회를 박탈해가면서) 솔직히 살의를 느꼈다.”. 내가 맷 데이먼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