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감독
- 심유경
- 제작년도
- 2007
* 사진: 필자 제공 연출배경 < 주희에게 >(2025)는 세 명의 연출( 장주희 , 부성필 , 김성환 ) 중 두 명이 출연자로 등장하며, 네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복잡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한 여성(장주희 감독)이 자신이 20대에 ‘혈액암’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시작된다. 사회로 복귀를 하게 된 무렵 만나게 된 동년배의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부성필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카메라의 시선은 그가 기록하는 장애인(선철규)의 번지점프 도전기에서부터, 2014년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전인숙)의 삶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의 지표에 흐르고 있는 ‘고통’과 ‘연결’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기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전하는 목소리는 혈액암과 가정폭력을 겪은 출연자이자, 연출인 여성, 주희(나)의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속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의 삶,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와상장애인의 번지점프 도전기, 제주 4·3 유가족 3세대의 삶이 연결된 복잡한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복잡한 이야기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이것은 30대 여성이 자신의 삶의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기 내가 목격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본다’라는 수동적 태도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변화한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연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찰자에서 화자로 거듭난다는 것은 ‘목격’이라는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로, 적극적으로 기록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나는 영화 속에서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혈액암 환자’라는, 한 공간에 결박된 존재로서 철저하게 수동적이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목격자이며, 이 고정된 시선은 앞으로 진행될 영화 안에서 변화가 예상될 수밖에 없는 ‘화자’의 자리로 안착한다. 이 영화가 담아낸 화자의 출발점은,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독한 무력감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도 그 일이 없는 듯 살아왔다. 사회는 가정폭력을 일상의 예외로서 묵인하고, 사회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지워버린다. 우리는 304명의 승객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보다’라는 수동적인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보기 전과 본 이후의 세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주희’가 장애인자립센터에서 만난 장애여성 ‘은미’는 시설에서 선철규의 탈시설 다큐멘터리 < 지렁이 꿈틀 >(2010)을 보았고, 그 이후로 은미의 세계는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시설 밖으로 확장되었다. 나 역시 다큐멘터리를 통해 거리에서 투쟁하는 어떤 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나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이가 거리에서 흘린 눈물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집안에서 흘리는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격은 적극적으로 ‘나’를 그 프레임 속의 대상과 겹치며, 그 속에 나를 투사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어진다. 나에게 ‘본다’는 행위는 사건을 목격한 일시적 순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내가 목격한 사건이 나의 몸을 경유하여, 이전과 다른 몸을 만들어나간 과정이다. ‘본다’는 능동적 행위의 결과는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것이고, 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결과는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주희(나)’에게 ‘선철규(탈시설 장애인)’와 ‘전인숙(세월호 유가족 활동가)’의 존재는 자신의 문제에 온전히 투신하는 사람들, 즉 보이는 대상으로서 스스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주체가 된 이들이었다. 이야기의 주체로서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희에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나(가정폭력 피해자, 암 환자)’의 이야기는 세 인물(다큐멘터리 감독,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과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맺으며 단단하게 얽혀 들어간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보이는 대상을 거쳐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for us and In-itself) 가시적인 것들의 여정으로써, 우리는 봄을 통해 우리 내부로부터 발현하는 타인의 살을 마치 우리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다. 이 순간, 우리는 우리 ‘내부로부터’ 몰려오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 속에 살게 되고 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데, 이를 통해, 재난의 세계는 우리의 눈앞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 최종철, 『재난의 예술』, 그린비, 2024, 24쪽. 타인의 고통과 내 안의 슬픔이 하나의 ‘살’로 섞여 드는 이 감각은, 프레임 너머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에 머물던 나를 기어이 말하는 주체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이 내 안으로 밀려와 나를 바꾸어놓았다는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과연 온전히 설득시킬수 있을까. 만약 관객들에게 이 예민한 호흡을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목격한 것을 말하는 ‘화자’로서의 내 존재 자체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목격자가 화자가 됨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라면, 목격자가 화자가 된다는 이 단순한 전개는 결국 ‘주희’의 ‘성장 서사’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본 것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관객에게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미성숙’을 전제한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환자’라는 정체성에 ‘미성숙’의 이미지를 덧씌워야만 성립되는 이 서사 구조 안에서는, 어떤 결핍이 과거의 나를 형성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내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만 했다. 친절한 전달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목격의 대가로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하는 벽에 맞닥뜨린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기묘한 불쾌감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또다시 질문하게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성장은 과연 필수적인 것인가? 고통은 늘 어떠한 성찰을 수반해야만 하는가? 나의 고백이 도리어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인상을 수동적이고 고정된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여성의 성장 서사를 ‘피해의 극복’이나 ‘수동성에서의 탈피’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로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위치에 자리매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것은 내 존재가 그저 고통의 ‘친절한 전달자’로 머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의 바깥에서 그 안의 ‘결핍된 존재’인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에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태도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이 낯선 응시는, 곧 목격하기 전의 나, 그리고 목격한 후의 나, 그리고 그걸 되새기며 말하는 현재의 나라는 여러 층위로 인해 영화 안에서 인물 간의 여러 시간을 교차시킨다. 기록의 시간, 투쟁의 시간, 깨달음과 과거로의 회귀… 영화 안의 이 여러 시간 속에서 나의 위치는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깨닫는, 자책하는, 스스로 질문하는, 통찰하는 여러 시점에 놓인다. 이로 인해 ‘주희’의 내면과 인식의 변화는 영화의 타임라인을 따라 유동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것’의 윤리와 연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수많은 질문과 의심들은, 영화가 상영되고 다양한 관객들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왜 지금 괜찮은지 묻는 이들에게 상영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다 보면 장애인의 번지점프에 대해, 세월호 진상규명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10년에 가까운 긴 기록이 ‘삶’이라는 흐름의 속도와 동일하게 압축되어 있을 뿐, 어떤 의도적인 결말을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답변을 들은 관객들로부터 나는 그들이 안도하기도 하고, 더더욱 연대하겠다고 다짐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중 어떤 관객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정폭력은 트라우마가 심하기 때문에 영영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 질문은 마치 영화 밖, 현재의 나에게 “왜 지금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있는지”에 대해 묻는 날카로운 의문 같았다. 그 의문 앞에서 나는 영화 안에서 피해자로서 관객에게 제대로 된 공감과 연결 지점을 설명해내지 못한 것인지 자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그런 우려와 불안의 지점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관객분이 내비친 날카로움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관객분이 제시한 솔직한 의문 속에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오직 폭력에 대한 응징과 가해자 처벌이라는 명확하고 클리셰적인 결말로만 해소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 서사의 완결이 지닌 본질은, 사회와 국가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제도를 통해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언제나 미완으로 남을 뿐이다. 국가폭력을 비롯한 ‘피해자’라는 정체성과 그 삶의 맥락을 가진 모든 존재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제도적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한,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시선과 인상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 가득 찬 답답함과 같은 브레인 포그 현상처럼 뿌옇고 불명확한 인상만을 남겨둔 채 방치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안개 속을 우연히 뚫고 나왔을 뿐임에도, 나는 그것이 과연 ‘성장’이 될 수 있는지에 여전히 의문을 품는다. 아직도 내가 ‘성장’했다는 표현에 대해, 그리고 이 영화 속 나를 ‘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분명한 변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장한 주희’이자, 30대 여성으로서, 이 불평등한 세계 속에 굴하지 않는 동등한 스피커(화자)가 되어 주어 고맙다는 말로 들리는 착각과 환청 속에서, 나는 ‘여성’ 화자로서의 나의 위치성에 대해 고민하고 분노하고 인정하는 분열적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분열이야말로 ‘존재의 바로 보기’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만들던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시 내릴 수 있었다. 나를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했던 것, 변화와 성장을 증명해야 했던 것으로 비롯된 나의 불편감에 대한 답을 말이다. 나는 비로소 내 존재 자체의 당혹스러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치의 반복을 넘어, 당신의 존재가 구원이 될 때 나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비롯해 나의 고통을 목격한 모든 이들의 당혹스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가정폭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몰랐다’라는 반응으로부터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감각을 맞닥뜨려야 했던 그 순간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결핍된 존재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수치심을 동반하며,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지독한 부정의 시선과 언어들 속에서, 드러내기와 수치의 반복 속에서 나와 당신의 존재가 결국 우리 모두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할 수 있는 강력한 힘, 나는 그 힘이 바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다큐-코멘터리: 프레임 밖의 문장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주희(여성인권활동가, 영화감독) l 장애인 대상 미디어 교육과 여성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 장애인, 미디어, 교육 >(2022), <주희에게>(2025)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은 “스크린 케미스트리: 스타로 보는 한국영화사”라는 제목으로 1950~1990년대 한국영화계 스타 커플의 관계성을 분석하는 시네포럼을 개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수행하는 아카이브로서, 영화연구자는 물론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국영화사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영자원은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술적인 분석 중심의 발제나 토론이 아니라 발표자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네포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주요 스타 커플이 등장한 시기를 네 구간으로 구분하고, 각 구간별로 등장한 스타 커플과 당시 한국영화나 대중문화의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시기별로 논의될 만한 스타들을 미리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이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발표자가 스스로 고민한 후 관객에게 제안하도록 열어뒀다. 1950~1990년대 급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영화산업의 지형을 참고하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대중에게 남긴 여운을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추적할 수 있었던 포럼 현장을 요약한다. 1950~1960년대 스크린 속 스타 커플 영화평론가·영화사가 김종원 김종원 평론가는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커플로 등장한 스타들 간 케미스트리를 발견했다. 1950년대 스타 커플의 역사는 < 출격명령 >(홍성기, 1954)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고 실제 부부가 되어 < 춘향전 >(이규환, 1955)에서 향단과 방자를 연기한 전택이 와 노경희 부터 시작한다. 배우 노경희는 < 내가 넘은 삼팔선 >(손전, 1951)을 비롯해 < 피아골 >(이강천, 1955) 등에서 해방 이후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여성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 아리랑 3편 >(나운규, 1936)으로 데뷔한 전택이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사에서 함께 활약했다. 이후 김승호 와 황정순 이 강대진 감독의 < 박서방 >(1960), < 마부 >(1961), 김수용 감독의 < 굴비 >(1963)에서 돋보이며 또 다른 스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로 데뷔한 배우 최은희 는, 커플을 구성하는 인물들 간 관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당시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 케미스트리를 주도하는 여성 인물로 떠올랐다. 김진규 와 신영균 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신상옥 감독의 < 동심초 >(1959), < 상록수 >(1961), < 산 >(1967)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한편, 스타 커플의 일원으로 거론된 적은 드물었지만 멜로드라마 위주의 문예영화 영역 밖의 상업영화 작품들에도 다수 출연하며 입지를 다진 김지미 배우의 행보도 독특했고, 그의 활약은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불나비 >(조해원, 196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에 등장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 김종원 영화사가는 배우 엄앵란 , 윤정희 , 문희 를 꼽았고, 그들과 배우 신성일 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했다. 엄앵란은 < 청춘교실 >(김수용, 1963), < 맨발의 청춘 >(김기덕, 1964) 등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며 ‘청춘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두 배우의 호흡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의 존재를 부각함과 동시에, 이전까지 외화에 치중됐던 국내 관객의 관심이 한국영화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윤정희는 데뷔작 < 청춘극장 >(강대진, 1966)부터 < 안개 >(김수용, 1967),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6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주축을 구성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문희 역시 이만희 감독의 < 흑맥 >(1965)과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연기하면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일 중심의 트로이카 구도로 대표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 커플 구조는, < 결혼교실 >(정인엽, 1970) 속 신성일과 윤정희, 문희, 남정임 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윤정희 X 신성일: 1960~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밀고 당기기’ 영화평론가·영화연구자 금동현 금동현 평론가는 1960~1970년대 대표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신성일과 윤정희가 동반 출연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관계를 ‘밀고 당기기’라는 용어로 재해석했다. 극중 그들의 배역이 점하는 위치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함께 출연한 87편에 달하는 작품들에서 거듭 역전되고,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두드러진 <안개>와 < 야행 >(김수용, 1977)에서 이 점이 선명히 관찰된다. 배우 신성일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 아낌없이 주련다 >(유현목, 1962)로 데뷔한 이후 유수의 작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았고, 특유의 소년미로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현대사회에 완전히 정박하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도회적이고 지적인 여성 인물을 대표했던 배우 윤정희는 1972년 석사 논문 「영화사적 측면에서 본 한국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배우이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면모를 보이며 ‘멜랑콜리’한 정서를 중심으로 스타 이미지를 갱신했다. <안개>와 <야행> 중 신성일, 윤정희 / © ㈜태흥영화 일례로, <안개>에서만 해도, 윤정희는 주변 소품이나 인물들 사이에 갇혀있고 신성일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행>의 몇몇 장면에서 윤정희는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활성화하는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신성일과의 케미스트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구축된 윤정희의 스타 이미지를 참고하면, 금동현 평론가는 그가 ‘보여지는(보이는) 여성’에서 ‘보여주고 보는’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고전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두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당대 형성된 두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더불어, 두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명랑한 얼굴로 콤비를 이룬 작품 <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정인엽, 1970), < 모범운전사 갑순이 >(이형표, 1972) 역시 언급하면서, 둘의 케미스트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재조명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장미희 X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 커플 영화연구자 이윤종 이윤종 영화연구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장미희 와 안성기 를 다루면서, 당대 한국영화 주요작에 출연하며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 이들을 ‘황금 커플’로 지칭했다. 안성기는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 황혼열차 >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해 연기 활동을 지속하다가 < 애수의 언덕 >(김대희, 1969) 이후 10여 년간 휴식기를 보내고 < 병사와 아가씨들 >(김기, 1977)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 바람불어 좋은날 >(이장호, 1980),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등 1980년대 화제작의 주연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시기 장미희와의 동반 출연이 특히 빛났다. 장미희는 < 성춘향전 >(박태원, 1976)으로 데뷔하고 흥행작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당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에도 합류한다. 이후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에서는 안성기와 상대역으로 만나 열연함과 동시에 흥행까지 거두면서 두 배우 모두 영화계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적도의 꽃>와 <깊고 푸른 밤> 중 장미희, 안성기 / © ㈜동아수출공사 그런데 이들이 동반 출연한 1980년대 작품들에서 각자가 욕망의 주체(안성기)와 대상(장미희)으로 설정되면서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파국’의 결말을 통해 발휘된 점이 인상적이다. 안성기는 순수함부터 비열함에 이르기까지 중·하층민 남성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장미희는 세련된 외관을 지닌 채 심리적 결핍을 겪는 부유한 여성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적도의 꽃>에서는 중년 사업가에게 착취당하는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한 미스터 M(안성기)이 그를 구출하려 하지만 결국 화합에 실패한다. < 황진이 >(배창호, 1986)에서 황진이(장미희)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갓바치(안성기)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고,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 영주권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백호빈(안성기)이 계약 결혼을 통해 제인(장미희)을 이용하며, 두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이렇게 산업화와 군부 독재의 한가운데 드리운 감정 소외나 우울감의 그림자를, 불행의 케미스트리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김혜수 X 한석규: 1990년대 소비문화와 트렌드 신화, 도시의 얼굴 영화평론가·성결대학교 교수 정민아 이전까지 언급된 배우들의 활동이 과거 한국사회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전개됐다면, 정민아 평론가는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내 현재까지도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갱신하고 있는 배우로서 배우 김혜수 와 한석규 를 조명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사실 많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닥터봉 >(이광훈, 1995)에서 처음 협업한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 이층의 악당 >(손재곤, 2010)으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작품에서 발생시킨 케미스트리보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역량을 개발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상) 영화 <쉬리>,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중 한석규 / (하) 영화 <첫사랑>, <내가 죽던 날> 중 김혜수 © ㈜필름쿡플러스, tvN 1990년대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며 대중문화 산업의 규모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인물이 주목받았던 때로, 이때 등장한 스타들은 대체로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팬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김혜수와 한석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이 선망한 ‘세련됨’을 구현했고, 데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속에서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해왔다. 한석규는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도시 남성의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처럼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불운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이는 최근까지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소시민적’ 영웅의 리얼리티와도 맞닿아있다. 또한 감독에 의해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자발적인 비전에 따라 작품과 장르를 선택하고 신인 감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흥행보증수표 영화인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한편, 김혜수는 활동 초기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나 영화 < 첫사랑 >(이명세, 1993)을 통해 젊고 발랄한 청춘스타의 면모와 특유의 건강미로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즈음에는 < 굿바이 싱글 >(김태곤, 2016)과 <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19), < 밀수 >(류승완, 2023) 등을 통해 독립된 여성 자아가 돋보이는 씨네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 윤서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과 영자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은, ‘비디오 에세이’라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며 포럼 주제에 맞는 작업 결과물 한 편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이무언은 관객이나 연구자로 하여금, 각자가 작품에서 발견한 특별한 지점을 중심으로 연출과 편집을 주도하면서 영화와 한층 더 친밀해지는 기회로 비디오 에세이를 인식했다. 윤서연 연구원 역시 비디오 에세이가 주제가 되는 대상(물)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한 결과이자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논의 [1] 를 인용하며, ‘오디오 비주얼 크리틱’으로서 비디오 에세이의 영역이 지닌 비평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한 작업은 영자원이 올해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수행하던 도중 두 사람이 기획하게 됐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영화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몇 편의 공통 소재를 제목으로 하여, 작품별 본편 영상과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그리고 코멘터리 영상 등을 수록한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해외 공관이나 문화원 등에 비영리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스타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DVD에, 한국사회의 일면과 시대의 감성을 머금고 있는 남성 인물들이 인상적인 한국영화 6편을 수록했다. 그리고 감상자들이 한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받을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기획해 부가 자료로 함께 수록하고자, DVD에서 다루고 있는 남성 배우 6인 중 한 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기획했다. 내부 논의 끝에 최종 선정하게 된 에세이의 주인공은, 순정과 헌신, 소시민의 나약함, 일그러진 욕망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국민 배우이자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기억되는 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였다. 실제 연령대로 비춰볼 때, 안성기는 에세이를 제작한 이무언의 아버지 세대이면서 작품 촬영 당시에는 그(이무언)와 같은 또래였다. 또한 안성기가 극중 인물을 형상화하며 선보인 특유의 ‘얼굴’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의 각기 다른 국면을 관통함에 따라, 1980년대의 시절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고 이무언은 전했다. “이미지들의 느슨하고 싱거운 연결”을 통해 이러한 인상이 에세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윤서연 연구원은 안성기가 각기 다른 영화에서 선보인 대사들 중 인상 깊은 부분들을 모아 1980년대 시대정신과 같은 특정 의미를 강조하여, 작품과 쇼트들의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17년 시네마테크KOFA에서 그에 관한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제작된 영상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을 참고하고, 구술채록 사업 진행 중 그의 구술 내용이 녹음된 파일들을 다시 들어봤으며,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10편을 골라 실제로 삽입할 쇼트를 신중히 선택했다. 쇼트마다 배어있는 정서를 자막과 음악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에 속한 장면을 소품이나 장소 등을 매개로 연결하며 안성기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 중 하나는,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중 덕수궁의 벤치에서 각각 아내( 황신혜 )와 딸에게 자상함을 베풀지만 냉대를 받고 마는 두 장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해 동시에 재생한 대목이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행동이 중첩되는 순간들이 보이는데,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두 개의 영상을 2채널로 나란히 배치하며 가능해진 실험이라고 윤서연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이미지 클릭 후 재생) 관객과의 대화 (질문1)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스타’들에게는,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국내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부터는 이들만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영화의 각 시기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에 대해 발표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답변_이윤종 영화연구자)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산업은 몇몇 주류 영화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배우들 역시 각 스튜디오에 소속된 채로 활동했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에서 이러한 영업 활동이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여러 스튜디오가 해체됐고, 여기에 소속됐던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의 스타 시스템 자체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고, 할리우드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당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근접한 운영 양태를 보였는데, 1970년대부터는 이마저도 쇠퇴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감독과 배우, 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1990년대 이후에 비해, 영화를 비롯해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얻지는 못했던 시점인데, 와중에 안성기와 같은 ‘국민 배우’가 탄생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질문2) 20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 라디오스타 >(이준익, 2006)나 < 실미도 >(강우석, 2003) 등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안성기 배우를 기억하게 되는데, 과거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면서,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예상된다. 작업 도중 겪게 되신 고충 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답변_이무언 비디오 에세이스트)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장면을 확인할 때마다 영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캡처해두고, 작품 안에서의 타임코드와 함께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메모했다. 에세이에서 다룰 모든 작품에 대해 이 작업이 완료되면, 캡처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관련 장면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안성기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가지 인상들(‘아버지’, ‘남성’ 등)이 쇼트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지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안성기 개인의 삶이 연상되거나 관객 스스로가 처한 ‘현실’ [2] 과 작품 속의 ‘허구’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장면들도, 어렵지만 제시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안성기의 ‘얼굴’ 외에 다른 요소들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미지, 수면 위에 반사된 이미지, 극중 시계를 비춘 이미지 등이, 매 장면 돋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연결해줬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중 시계와 잔이 등장하는 쇼트 (질문3)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멜랑콜리적 지식인 주체성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는데, 금동현 평론가의 발표에서 <장군의 수염>과 <안개>가 다뤄져서 반가웠다.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담지하고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성 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쭙고 싶다. (답변_금동현 영화평론가) 오늘 분석한 작품들에서는 멜랑콜리를 자아내지 않고 ‘체현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멜랑콜리를 재현하는 몇 가지 요소가 발견될 뿐 멜랑콜리라는 감수성 자체가 이 시기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멜랑콜리의 흔적이 관찰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대목을 꼽자면, ‘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웃음은 모종의 이유로 ‘경직되어버린’ 무언가를 조롱할 때 자주 발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웃어야 하는 데 웃지 못하는 순간(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서의 몇 가지 장면이 예가 될 수 있다)이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4) 오늘 언급된 배우 중, 배우 김혜수가 유독 눈에 띈다. 1990년대 당시 그는 확고한 ‘무비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가 아니었고,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아직 다른 스타들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김혜수 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이 시기 스타로서 김혜수의 부상을 분석하실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여 어떤 접근법을 적용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질문5)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배우 김혜수와 한석규가 선보인 연기 스타일이, 그들이 1990년대에 수행하던 방식과는 달라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의 방향성이 재정립되는 데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욕망이 변화하는 현상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이념이나 정치성, 관객의 욕망 등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변모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답변_정민아 영화평론가) 두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변 드리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김혜수 배우가 영화계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다. 하지만 1990년대 화보와 예능, TV를 포함해 대중매체 전반에서 그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한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 시기 관련 콘텐츠를 향유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김혜수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는 오늘날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영화’와 그밖의 영역(방송 등)이 명확히 구분됐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배우’의 활동 분야가 대폭 확장됐고 분야 간 경계도 거의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분야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모두 ‘배우’로 호명되며, 그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분야 역시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크린을 통해서만 스타로 거듭나기보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파급된 각기 다른 매체에서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김혜수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복합적 차원의 배우상을 1990년대부터 선구자적으로 확립한 이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장 BEHIND CUT * *** [1] 박진희, “ 복혜숙과 석금성을 헷갈려하다 ”, KMDb 영화글, 2023. 7. 27. [2] < 개그맨 >(이명세, 1988) 중 이발사가 이종세(안성기)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 방면에 재능이 많으셨죠?”라고 물어 아역 배우 시절 안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 칠수와 만수 >(박광수, 1988) 중 “우리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 이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등이 있다.
© 파이오니어픽쳐스필름(주) 뻥튀기 제조기가 돌아가는 방에서 한 쌍의 남녀가 섹스한다. “과자 만드는” 자동기계는 계속해서 뻥튀기를 내뿜고, 인물들은 날아오는 뻥튀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심지어 수북이 쌓인 뻥튀기 위에 누워 관계에 몰두한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이 기괴한 장면은 김기영 감독의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전반부에 나온다. ‘죽음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일명 ‘뻥튀기 섹스신’은 작품 내적으로 그리 중요한 장면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중요했다.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니며 영화사의 이런저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를테면 훗날 누벨바그로 통칭된 무리 중에서도 자크 리베트의 비평적 안목이 특히 탁월해서 다 함께 신작을 보고 나면 다들 리베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든가 하는 별거 아닌 일화들.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아니면 클로드 샤브롤이었던가?)을 줍기 좋아했던 시절에, 어디선가 ‘뻥튀기 섹스신’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미친 영화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를 처음 본 건 KMDb VOD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래 이 작품은 4K로 복원되어 블루레이가 출시되었고, 지금은 국내 OTT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로 글을 시작한 건, 이 지면의 제목인 ‘비평, 안녕하십니까’의 기획이 내 오랜 고민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미친 영화를 찾고 싶다는 게 그것이다. 영화글을 쓰다 보니 원고 작성, 관객과의 대화 진행, 심사 참여, 영화제 프로그래머 재직 등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필요에 따라 예전 영화도 종종 찾아보지만, 일의 특성상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장, 단편영화를 보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품 공모를 열고 예심을 진행하는 영화제나 기획 프로그램 등의 선정의 변을 살펴보면 출품작이 매년 최다를 갱신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점점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심사를 진행하는데도 다양한 선정의 변에서 비슷한 뉘앙스가 읽힐 때가 있다. 영화가 점점 더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다. 이야기는 모난 구석이 없고 만듦새도 안정적이다. 혹은 적어도 그런 결과물을 지향한다. 비단 심사 과정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거나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극장 개봉의 문턱을 넘은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균형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극장에 가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력이 내외부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는 물론 쉽게 간과해도 좋을 영역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재능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 틈에서 때로는 작게 읊조리게 된다. “미친 영화가 보고 싶다….” 근래 제작되는 영화들의 경향을 짚으며 비판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이다. 단편영화를 장편영화의 축소판처럼 생각한다든지, 개인의 내면에서 발굴한 이야기를 보편적인 서사에 안전하게 겹쳐두며 미궁에 빠지는 것을 회피한다든지, 상상된 소시민적 이미지에 기대며 다양한 갈등과 여러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든지. 단편영화에서 거대 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에 이르기까지, 실망과 안타까움은 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길게 늘어놓지는 않으려고 한다. “너는 왜 미치지 않았니?”라고 묻는 대신, 미친 영화가 보고 싶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음에 대해 좀 더 말하면 좋을 것 같다. © 파이오니어픽쳐스필름(주) 사실 미친 영화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미쳤다!”라는 감탄사는 소위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서도 쓸 수 있다. 변태적일 정도로 탐미적이거나 철학적 질문을 깊이 탐구했거나 대사를 잘 썼을 때도 이 감탄사를 마구 남발할 수 있다. 어쩌면 본인의 취향을 건드리는 모든 요소에 우리는 미쳤다며 나름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치다”라는 말은 보통의 것과 다른, 상식에서 벗어난, 일상을 뒤집는 무언가를 묘사하는 단어로, 동사이면서 상태를 설명하는데 주로 쓰인다. 그렇다면 아주 넓은 의미에서, 이미 일반적인 수준에서 굳어진 영화의 관습을 탈피하는 (비)자발적인 선택에 ‘미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될까? 글쎄, 아직 충분하지도, 재밌지도 않다. ‘미친 영화’를 생각하는 마음은 꽤 모순적이다. 구체적인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이 개인적인 욕망은 나름대로 그 용례를 정교화하고 싶은 충동과 닿아있다.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주요한 길을 제시한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의 저작 『다락방의 미친 여자』(2022)나, 최근 타계한 국내 1세대 여성 사진작가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처럼 사회, 문화적 함의 속에서 ‘광기’를 재정의하고자 하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동시에 광기 역시 우리 시대의 굳어진 수식어나 레토릭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다 세밀한 탐색 없이 광기라는 단어만 쥐고 모험하는 건 이제 무척이나 (안전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일로 느껴진다. 다른 한편, ‘미친 영화’를 찾고 싶은 마음은 내게 지극히 개인사적인 맥락에서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에 대한 감상보다 훨씬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름의 해답은 미친 영화를 찾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다시 찾는 데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감상적이기 때문에 한 가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한때 내게 중요하게 와닿았던 비평적 시선 중 하나는 ‘정치적인 영화’를 정치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의 정치적인 것과 함께 생각하자는 거였다. 나는 이 말을 정치라는 것을 (정치인, 정당, 선거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 정치에 가두지 않고 끊임없이 작동하는 역학이자 태도로 사고하면서, ‘영화’를 전방위적으로 둘러싼 각종 갈등과 조건을 응시하는, 작품의 선택을 봐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존 포드야말로 가장 브레히트적인 감독”이라고 말했다던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일화와 더불어, 내게 이러한 말과 시선들은 ‘분명히 있지만 딱딱한 것은 아닌’ 어떤 기준, 항상 개별 작품들과의 밀접한 교통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 방식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중요했다. 정치적인 것이나 브레히트적인 것, 그리고 ‘미친 것’과 그 효과는 언제나 같은 형식을 통해 성취되지 않는다. 광인의 출현이나 해괴한 장면의 등장만으로 그것이 (내가 찾는) 미친 영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일단은 이 질문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던 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 파이오니어픽쳐스필름(주)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의 괴인처럼 불리는 김기영의 작품 중에서도 파격적인 편에 속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영걸( 김정철 )은 웬 여자가 건네는 오렌지 주스를 먹고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하지만 목숨을 부지한다. 이후 계속해서 죽음과 삶의 충동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그의 앞에,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외치는 책장수가 나타나 해골이 되어서까지 입을 나불거리는 한편, 2000년 전 신라 공명왕 시대에 동굴에 들어가 백골이 된 여성이 환생해 간을 먹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이 여성이 ‘뻥튀기 섹스신’의 주인공이다.) 뼈를 통해 인류학을 연구하는 이 박사( 남궁원 )의 조수가 된 영걸은 이 박사의 딸 경미( 김자옥 )와 기묘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이 박사에게 배달되는 의문의 해골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에도 연루된다. 사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이상하다기보다는 황당한 쪽이다. 신라 시대에 잠들었다가 깨어난 여성은 갑자기 동성동본 사이의 결혼에 대해 걱정하고, 목이 잘린 영걸이 책장수의 전언처럼 눈을 떠 “의지!”를 외치며, 사람은 복면을 뒤집어쓰고는 나비가 된다. 황당무계한 장면들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 중심에 죽음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원고를 쓰기 위해 다시 본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분명 독특했지만 동시에 처연한 영화이기도 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남자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는 일련의 일들을 겪다가 결국에는 죽지 않았으니 “귀찮지만 더 살아줘야겠다”라고 읊조리는 영화라니. 사실 주인공의 죽음이란 한 편의 영화에 드리운 종결의 감각을 형상화하는 가장 직설적인 사건일 것이다. 주인공이 죽으면 대개 영화 역시 끝나야 한다. 혹은 한 편의 영화는 언젠가는 끝나야 한다. 어쩌면 영화란 시작과 동시에 종결을 미루고 지연하다가 결국 끝을 마주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이나 연극처럼 시간을 조건으로 삼는 예술이 대개 그러하겠지만.) 그 지연의 방식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꽉 짜인 서사를 통해서, 인물의 사소한 행동을 통해서, 끊임없는 사건들의 도입을 통해서 영화가 끝나는 시간은 저 뒤로 밀려난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내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별안간 그 모든 것이 영걸의 망상이었던 것처럼 묘사하며 영화를 닫는다. 이 석연치 않은 순환 구조야말로 내게는 모종의 ‘미친 것’이 작동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미치고 싶지만 미칠 수 없고, 미치지 못해서 미쳐버리는 어떤 무기력의 영화 만들기. 혹시 영화의 ‘미친 것’을 찾는다는 건 일종의 상처를 찾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미친 영화’의 특정한 외양이나 형식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앓고 있습니까? 아마도 비평이란 그러한 질문과 함께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평, 안녕하십니까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손시내(영화평론가) l 영화웹진 《 REVERSE 》에 글을 쓰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한다. 팟캐스트 ‘영화카페, 카페 크리틱’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