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에베레스트
- 감독
- 임채유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박선영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본 글에는 <색깔있는 남자>의 반전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영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척박했던 시기로 회자된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첫 르네상스라 평가됐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와 80년대는 독재 권력의 감시 하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산업적 토대와 시스템이 허약해진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대부터 대중추수적인 에로티시즘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처럼 청춘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간간이 출현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영화의 전면적 시장개방이 일어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영화제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검열제도가 심의제도로 전환되고 저항적인 학생영화운동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세대가 부상하면서 독립영화와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이 틀 수 있는 움직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가 개봉된 1980년대 초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적극적인 3S(Sex, Screen, Sports) 정책, 선정성과 폭력성이 극대화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할리우드 장르 관습, 흥행작의 끝없는 시리즈화, 컬러 비디오라는 새로운 부가시장의 저예산 문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한국영화 산업 전반이 에로영화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색깔있는 남자> 역시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 대부분의 에로영화들처럼 다양한 정사 장면을 넣기 위한 지나치게 복잡한 인물 구도와 설득력 없는 급작스러운 반전, 컬러 비디오 시대에 걸맞은 화려한 색상과 조명, 줌 쇼트와 프리즈 프레임 등의 과도한 사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정성을 목표로 두면서 느슨해진 서사 그리고 부족한 예산과 시스템을 메우기 위한 표현적 과장은 오히려 이 영화를 급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 지점에서 김형석 은 <색깔있는 남자>를 < 디아볼릭 >(앙리 조르주 끄루조, 1955)이나 < 원초적 본능 >(폴 버호벤, 1992)과 같은 놀라운 반전 서사를 가진 1980년대 대중영화의 숨겨진 걸작에, 이문우(「1980년대를 퀴어링하기」)는 범죄화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레즈비언을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퀴어적 독해의 텍스트로 위치시킨다. <색깔있는 남자>는 제목만 보면 김성수 감독의 전작, 장미희 와 이영하 주연의 < 색깔있는 여자 >(1980)의 후속작처럼 보이지만, 두 영화는 장르적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색깔있는 여자>가 신파적 특징이 강한 여성수난사라면, <색깔있는 남자>는 냉철하고 잔인무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팜 파탈과 여성 착취적이고 이기적인 옴 파탈이 대격돌하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당대 몇몇 에로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정적 재현을 위해 비규범적 성적 욕망과 관계를 소재로 가져온다. 유사 근친상간, 사도매저키즘, 양성애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통적 젠더 역할을 뒤집는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임성민 )의 귀국 기자회견으로 시작한다. 세련된 매너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는 돌아오자마자 여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샤르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자들의 사랑과 욕망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샤르망은 공사 모두에서 누나 같은 변수린( 오수미 )의 돌봄과 지원을 당연하게 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집착 어린 사랑은 모른 척한다. 또한 그는 김여사( 홍명진 )의 애인 노릇을 하며 후원을 받아 패션사업을 키워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젊은 여자들과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지 않는다. 저돌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부티크 직원( 오경아 )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 오혜림 )이 그들이다. 모든 여자의 욕망의 대상인 샤르망은 이 모든 관계의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샤르망을 연기한 임성민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스타로 신성일 이나 남궁원 같은 이목구비 뚜렷하고 키 큰 ‘미남배우’의 계보에 있긴 했지만 훨씬 세련되며 때로는 유약하기도 한, 그래서 이성애 여성들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는 미묘한 스타성을 갖고 있었다. 임성민이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장길수, 1994)에서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으로 꼽히는 (그래서 여성운동 활동가 강민주에게 전략적으로 납치당하는) 스타 배우 백승하로 캐스팅된 것은 그의 실제 스타 이미지에 일부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매너 좋고 유약한 남성성에서 오는 그의 스타성은 에로영화의 선정적 노골성을 약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런 면에서 임성민은 에로영화의 타겟 관객을 이성애 여성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 주인공들보다 임성민을 중심에 놓고 “에·놈·쌍쉬엘(Un homme sensuel)”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는 주인공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스펙터클화 하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좌) <색깔있는 남자> 포스터 (우) <색깔있는 남자> 중 배우 임성민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샤르망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옴 파탈이다. 샤르망은 사업 확장을 위해 공장을 구매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여사를 부추기고, 김여사는 기어이 병들고 늙은 (가학적 성욕을 가진) 남편( 변희봉 )을 복상사하게 만든다. 범죄와 그에 따르는 불안과 집착은 연쇄성을 갖게 되고 영화는 점점 에로보다는 스릴러에 집중한다. 자금을 확보한 샤르망이 김여사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변수린은 그렇잖아도 질투 때문에 마땅치 않던 그녀를 차로 여러 번 치어 살해한다. 변수린의 범죄를 알게 된 샤르망은 자신을 향한 집착이 부담스러워지고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과 새 삶을 계획한다. 주은몽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여자다. 결국 그는 변수린을 기찻길에서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주은몽과 형사들은 그를 살인자로 의심하고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 같은 이상한 징후들이 그를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내놓는다. 그 반전을 예상하지 못한 건 영화가 반전을 위한 서사를 거의 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디아볼릭>을 넘어선 파격적 혹은 허술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주변부 인물, 즉 조연이었던 직원과 영화 후반부에 등장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주은몽이 이 모든 계략을 지배하며 완전범죄를 저지른 레즈비언 커플이었음이 매우 급작스럽게 밝혀진다. 주은몽은 변수린에게서 벗어나고픈 샤르망의 욕망을 자극해 공장을 판매한 대금을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했으며, 아마도 사적, 공적 공간 모두에서 프레임 바깥에 상시적으로 존재했을 직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해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변수린과 샤르망의 대화를 녹음해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변수린, 샤르망, 주은몽을 훔쳐보는 제3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종종 암시하지만 서사적으로 그 눈이 직원의 것일 거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프레임 바깥 존재인 그들의 비가시성과 유령성은 완전범죄와 ‘완벽한(예측 불가능한)’ 반전 서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비가시적이고 유령적인 레즈비언 커플이 변수린의 유령을 위장하고 무대화할 때 과장되게 연출된 줌 쇼트, 화려한 번쩍이는 조명, 사각앵글 등은 그들 스스로 유령적 존재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변수린이 김여사를 살해할 때 부띠크 직원을 용의자로 몰기 위해 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과장과 위장은 1980년대 에로틱 스릴러의 문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의 유령적 현현의 비틀어진 알레고리가 된다. 전말이 드러나는 에필로그, 즉 마지막 장면 바로 직전 쇼트에서 샤르망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형사들에게서 도망쳐 기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간다. 기차와 부딪히기 직전 그의 신체는 프리즈 프레임 효과 속에서 동결된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하얗게 날린 스크린은 종결보다는 다른 이미지와 서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하얀 스크린과 샤르망의 신체가 한중간에서 찢겨나가기라도 하듯 바로 이어지는 쇼트에서 창문 양쪽이 열리고 하얀 커튼이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누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여자, 부띠크 직원과 주은몽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샤르망의 신체와 스크린(그리고 이성애 서사)을 찢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1979)에서 에일리언과 접촉했던 남자 승무원의 배를 찢고 아기 에일리언이 나오는 장면이, 직유적으로 (불가능한) 남성출산을 가리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서사적 암시도 없었기에 그 반전은 그야말로 영화 전체를 헤집고 뒤집는 얼룩이 된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라고 그럴듯한 범죄 동기를 던져줌에도 이 반전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에필로그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분석하며 그의 회화가 구상이나 추상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상을 뒤흔들고 해체하는 힘의 운동(강도)에 가깝다고 분석한 것에 가깝다. 들뢰즈가 ‘돌발흔적’이라고 부른 것 말이다. 돌발흔적은 구상에 가까운 그림 위에 우발적이고 맹목적으로 던져진 국지적이고 질료적인 손의 흔적을 지칭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서 퀴어적인 것은 영화 내내 이어진 팜 파탈과 옴 파탈 간의 연쇄 범죄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도, 레즈비언 커플이 가시화되는 에필로그도 아니다. 그보다는 국지적인, 흰 스크린 위의 얼룩과도 같은, 마지막 한 씬으로 영화 전체를 뒤흔들고 반향을 만드는 힘의 강도다. 무엇도 선명하게 의도되지 않고 혼탁하기 그지없다. 외삽도 내삽도 아닌 방식으로 존재하며 우발적으로 스크린을 찢어내며 등장한 돌발흔적. 레즈비언 커플은 그야말로 샤르망의 몸, (혹은) 스크린을 찢고 자진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존의 (이성애) 서사를 완전히 망쳐 놓는다. 영화는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듯 “아... 색깔있는 남자여 안녕”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웃는 주은몽의 얼굴로 다시 한 번 프리즈 프레임하며, 샤르망의 프리즈 프레임을 취소시키고, 그 자신의 얼굴로 끝을 낸다. 에필로그 ‘얼룩,’ ‘돌발흔적’에 그칠 수밖에 없던 레즈비언 커플은 기껏해야 하나의 씬, 비밀스러운 작은 침실에서만 가시화될 수 있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편의 퀴어 장편영화 < 딸에 대하여 >(이미랑, 2023)와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는 사회와 공동체에 의해 지워버려야 하는 얼룩과 불쾌한 냄새로 취급되는 레즈비언 커플의 가족구성권 혹은 자기 자리와 공간의 확보를 다루고 있다. <색깔있는 남자>의 ‘에필로그’는 국지적인 것이 바탕을 바꾼다는 면에서 퀴어적으로 독해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반향을 만들어내는 얼룩의 자리는 강제된 것이고 실제로 그 자리 이외의 것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와 <럭키, 아파트>는 레즈비언 커플들이 더 이상 얼룩과 냄새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돌발흔적은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넘어 상상된 관계들과 공동체들의 이접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말한다. 돌발흔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촉지될 수 있다.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중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국가와 국민,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일까?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아니 역사의 현장에 살고 있는 지금도 늘 되묻는 질문이다. 종종 국가와 국민은 상생이라는 이름하에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켜왔다.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을 손에 쥔 집단이 프레임을 만들고, 그로인해 가장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본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과 부담을 전담시키는 이 잔인한 구조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차마 말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상처와 부끄러움으로 치부되면서 이중으로 고통과 책임을 전가한다. < 서산개척단 >은 박정희 정권 직후 혁명정신을 내세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거리의 부랑아를 강제로 개척단에 동원한 사건을 다룬다. 사회정화와 국토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채 사회적 약자들을 강제 노역시키고 약속한 땅조차 배분하지 않은 국가폭력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피해자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의 상처로 간주하며 긴 시간 침묵하며 살아왔다. <서산개척단>은 은폐된 과거 사건을 고발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서산개척단에 동원된 사람들의 상처를 사회적 상처로 인지하게 한다. 산 자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죽은 자에게는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서산개척단>을 세 층위로 풀어본다면, 고발과 각성 그리고 애도가 아닐까. 1. 고발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 구축한 개발 신화의 허상을 일깨운다. 서산개척단 사건은 마치 부패한 대한민국의 축소판처럼, 국토 개발과 경제발전의 신화 이면에 도사린 착취와 음모, 부정부패를 파헤쳐내고 있다. 사회적 대재난인 6·25로 인해 부모를 잃거나 가정을 잃은 청년들을 부랑아로 몰고, 이들을 개척단에 강제 수용하여 ‘아버지 사랑, 어머니 사랑매’로 일궈낸 땅이 서산개척단이다. 개척단 구성의 이면 때문일까? 영화 속에 감독이 개척단 생존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인터뷰하는 순간, 감정이 복잡해진다. 부모 잃은 이들에게 부모 역을 해준다며 부모 사랑의 매로 폭행을 가하는 국가와 영화 속에서 대상에게 다가가는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호명은 영화가 품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양가성을 일깨워낸다. 이처럼 영화는 은폐된 역사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감각해 통증을 유발하는 힘을 갖는다. 2. 각성 영화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사회적 상처’로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부끄러움과 믿음에서 시작한다. “(인터뷰) 다 안 한다잖아... 창피해서 안 한다잖아.” “박근혜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그래도 혹시 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일이기 때문에 마무리 좀 해주려나 하는 기대를 걸고 인터뷰하는 거야.” 개인의 일로 치부해 숨기고 말하지 못한 시간, 그런 동시에 국가를 여전히 믿고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하는 그 어떤 지점에 피해자들은 놓여있다. 이같은 태도는 영화가 진행되는 속에서도 계속된다. 국가기록원에서 땅 배분 문서를 보고도, 다른 지역 개척단을 만나보고도 “관계자들이 이런 것을 못 봤을 거란 말이지.”라며 국가를 믿는다. 이어 그는 국가를 향해 호소문을 쓴다. 평생 국가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송구함과 미안함을 전제로 국가에게 글을 쓴다. 영화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화하고 침묵하고 국가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믿는 피해자의 위치를 포착하고 이를 풀어내는 통로 역할을 한다. 마침내 영화는 피해자들이 은폐된 경험을 사회적 상처로 인지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모아 발화한다. 58년 만에 국회 앞에서 집회하는 서산 주민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애도 영화는 산 자의 억울함 뿐 아니라 존재감 없이 사라진 죽은 자도 함께 한다. 영화는 하늘에서 서산개척지를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언뜻 보면, 서산개척지의 지형을 보여주는 장면 같지만 영화는 소리를 통해 그게 다가 아님을 감지하게 한다. 서산개척지를 내려다보는 시선의 주체가 마치 서산을 맴도는 혼령 같기 때문이다. 이는 타이틀 장면 이후 바로 이어지는 제사 장면으로 보다 명료해진다. 위태롭게 맴도는 서산 개척지 위 시선들은 이상범의 울음 장면 이후 안정을 찾아간다. 서산에서 죽음을 부인하던 이상범은 차마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이어지는 울음을 통해 몸으로 진실을 말한다. 죽음이 인정된 후, 영화는 존재감 없이 사라진 이들의 존재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산평화공원묘지로 보여준다. 묘지에 담배로 재를 올리고, 마침내 영화는 “이름없이 죽어간 개척단원들에게 바칩니다”로 마무리한다. <서산개척단>은 직접적인 제목처럼, 은폐된 서산개척단 사건을 고발하지만, 이와 동시에 산 자의 억울함을, 죽은 자를 향한 애도를 담아낸 작품이다. 사건의 고발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만을 강조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건을 알리되 통증과 애도를 감각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되묻게 한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서,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할까?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할까? 후자의 국가를 꿈꾸는 게 꿈이 아니길.
2. ‘늑대소년’ 에피소드 2011.9.1 ~ 2011.12.20 프리 프로덕션 2011.12.21 ~ 2012.4.15 프로덕션. 총 67회차 후반 작업 후 2012.10.31.(개봉) 프리 프로덕션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났던 영화.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첫 시작은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었다. 물론 당시 감독님은 < 남매의 집 > < 짐승의 끝 >으로 한창 주목받는 신예였지만 상업영화 스태프들의 눈에는 여전히 신인 감독이라는 색안경이 있었고 주연이었던 송중기 도 지금은 아시아의 프린스지만 당시는 라이징 스타 정도. 박보영 또한 과거 히트를 친 경험이 있는 배우였지만 몇 년 쉰 후의 복귀작이라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더군다나 다른 팀의 영화 만드는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중 “뭐 대충은 알겠고, 그럼 너네 영화 내용은 뭐냐? ” 라고 물었을 때 “첫 사랑 이야기고 꽃미남 소년이 늑대로 변신해. 그리고 늙지 않고 나중에 할머니가 된 소녀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야” 라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늑대로 변신한다고? 누가, 사람이? ...... 그게 되겠냐? 한국에서 판타지는 안돼!” 그들의 예상은 시원하게 틀렸지만 리얼리티의 맹신자! 한국 관객들의 특성을 우리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프리 프로덕션을 하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것들은 역시나 늑대. 송중기 =철수 역이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질까? 였다. 그 첫째가 우선 비주얼 문제. 소년이었을 때 모습과 늑대가 되었을 때 모습. 소년이었을 때야 뭐 중기가 워낙 꽃미남이라 걱정 안 했지만 늑대로 변신한 모습은 중기 본인과 모든 스태프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둘째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늑대소년이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길들여져 가는 과정에 몸짓, 감정의 표현들이었다. 왜냐하면 분명 이 영화는 사랑을 속삭이는 멜로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했다. 20110906 철수 관련 회의록 중 일부 1. 눈 1안 : 사람 눈 → 늑대 눈 2안 : 늑대 눈 → 늑대 눈 (밝기와 동공모양) 2. 이빨 평소 : 사람이빨 같은데 송곳니가 도드라져있다. /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 4단계 정도 3. 손톱, 발톱 - 자르는 순간:1안. #18씬. (깨져있거나 울퉁불퉁인데 ---- 다듬어진다) / 2안. #28씬 - 자를 필요가 없다. ............................................................... - 평소 : 노말한데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4. 구부정 #12 처음등장은 네 발 짐승 1단계 1안. 처음부터 인간과 만나면서 두 발로 다닌다. 2안. #27부터 두 발이 된다. 2단계 #28씬 --어느새 사람처럼 허리를 거의 핀 철수. 3단계 - #55 이후는 사람에 가까운데 의기소침해서 구부정한 것. 그 이후는 감정에 따라서 구부정의 모습이나 형태가 변한다. - #40에서 인간적인 것보다는 동물적으로 구부정하게 돌아간 철수 단, 순이와 함께할 때는 인간에 더 가깝다. ............................................................... * 개처럼 누워있는 것은 영화 전체적으로 계속적인 철수의 습관이다. 감정에 따라서 그 표현 수위만 조절 (귀엽게 엎드려있기도 하고 화가 날 땐 으르렁 거리면서 엎드려있다) ...............................................................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는 이런 아이디어 회의를 수도 없이 한다. 보니까 초창기, 가장 기초적 회의라 좀 러프하고 정리가 덜 된 상태지만 이러한 아이디어 회의를 기준으로 야생의 철수가 사람이 되는 모습, 행동의 변화를 시나리오 흐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눠서 그 단계에 맞는 의상과 분장, 배우의 움직임, 자세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또한 동물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배우 이준혁 선배(움직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두 달가량 중기가 트레이닝을 받았다. 러프 콘티가 나와 있는 상태였고 (기본적인 동선) 이것을 기준으로 씬 별로 준혁 선배가 동물의 기본적인 습관, 움직임을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주면 중기는 그 움직임을 베이스로 본인 나름의 재해석한 연기를 했고 우리 연출부는 매번 연습장면을 찍고 감독님과 배우에게 전달했었다. 그리고 각자 그 영상을 보면서 촬영 전에 연출과 액팅을 시뮬레이션했고 조금씩 약점을 개선해 나갔다. 또한 관심사였던 철수가 괴물로 변신했을 때의 모습은 감독님이 직접 디자인을 해서 만들었다. 조성희 감독님의 주특기가 시각 디자인 전공에 CG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워낙 비주얼에 관해서는 본인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라 본인이 그린 괴물을 스태프들에게 보여줬을 때 모두들 굉장히 만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상작업에서 단순한 스케치라도 시각화를 해야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기도 좋은데 괴물의 모습이 탄생하면서 의상, 분장, 특분, CG, 특효, 무술 등의 여러 파트에 준비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영화작업에 있어서 매우 큰 장점이다. 분명 스태프들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1 2012년 2월 9일. 29회차 촬영 스케줄표 (스태프들끼리는 촬영 달력이라고 부르는데 촬영 내용을 간단하게 표시한 요약집 같은 거다) #41D. 지태( 유연석 )가 순이( 박보영 )를 괴롭히고 때리는 것을 지켜보던 철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영화상 처음 괴물로 변신하던 날이었다. 밤 촬영이었고 지태와 그 친구들이 철수와 복잡한 액션을 찍는 첫날이었고 괴물로 변한 철수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 관객들에게 처음 완전체를 보여주는 날이라 우리 영화에 흥망이 달린 촬영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낮부터 촬영장에는 스태프들,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액션 동선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안전장치, 와이어, 와이어 크레인, 액션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사전에 약속된 소품, 특수효과들을 준비하느라 에너지가 넘쳐났다. 나는 감독님들과 찍는 순서, 디테일한 세부 사항을 약속하고서 다시 그 결과를 스태프들과 공유했다. 겨울 촬영이라 해는 금방 넘어갔고 다들 저녁을 먹은 뒤 본격적인 밤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장은 전주 양묘장이라고 전주시에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던 공터였는데 그곳에 순이 집의 외관 껍데기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오픈 세트장에서 며칠 촬영하며 안 사실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장이어서 그랬는지 밤이 되면 땅속에서 어떤 가스와 습기들이 올라와서 지표면을 뿌옇게 채웠었는데 이 습기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추위를 선물했었다. 이날도 고작(?) 영하 10도였지만 실제 우리가 느낀 체감 온도는 그 차가운 습기 때문에 더욱 덜덜덜 + 덜덜 이었다. 저 멀리 크레인이 올라가고 영화용 달이 뜨면서 현장 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어서 2시간 정도의 특수 분장을 마친 중기가... 아니 늑대소년이 현장에 왔다. 그가 왔을 때 스태프들의 표정은 아직 생생하다. 풀 세트를 장착한 늑대소년을 사진으로만 본 사람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맞나...? 맞을 거야... 맞나? 맞을 거야... 아닌가...? 맞을 거야.” 상상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 그것을 다시 영화적으로 만져서 극장에서 보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본인들도 경험상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라는 같은 글을 수십 번 읽으면 각자가 상상한 늑대소년의 모습은 서로서로가 다르고 내심 자신의 판타지를 닮았기를 바란다. 감독이 결정한 모습이 있음에도 말이다. 참 재밌는 현상인데 스태프는 작업자이자 동시에 이 영화의 첫 관객이기도 하다. 영화 스태프를 하며 자신의 상상과 현실을 이어보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참 진귀한 풍경이다. 꿈속에서 보던 백마 탄 왕자를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 농담이 아니고 딱 그거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여담인데 마찬가지 이유로 스태프들은 영화 작업을 하는 몇 개월을 시나리오를 통한 반복 학습을 하며 각자만의 상상 속에서 살게 되는데 이 효과가 얼마나 강력하고도 강력한지 나는 알고 있다. 한 예로 이전 멜로영화를 만들다 보면 현장에서 탄생하는 커플들이 유독 많았고 액션 하드코어를 찍다 보면 현장 분위기가 우울하고 드셌다. 공포 영화를 찍다 보면 꼭 세트장에서 귀신 봤다는 스태프들이 등장했고 한때 섹시 코미디 영화를 작업했던 나는.................. 흠. 어쨌든 그 날은 현장 스태프가 100명이 훌쩍 넘었고 모두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대규모 전투를 치르듯이 찍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관객들이 제발 괴물이 된 늑대소년을 처음 보고서 “에이 이게 뭐야! 말이 돼?” 라는 반응만 안 하길 빌며 촬영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새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또 난이도가 있던 촬영이라 그랬는지 예상치 못한 사고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된 늑대소년이라 컬러렌즈를 꼈고 송곳니가 달린 가짜 치아를 끼고 있었는데 찍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액션 중 송곳니가 부러졌고 그 조각이 중기 목에 걸리는 사고도 났었고 눈에 낀 칼라렌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한 컷 한 컷 찍어가며 철수가 나쁜 놈들을 이리 던지고 저리 물리치던 #41D는 3일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괴물이 된 철수가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다가 전주 밤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포효하던, 그 새벽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중기가 용기 있게 잘해낸 씬 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2 2012년 1월 3일. 9회차 촬영 스케줄표 #38B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철수와 순이. 둘 만의 데이트. 순이가 철수를 위해 자신이 만든 노래를 기타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보영이는 현장에 마스코트. 분위기 메이커였다. 싹싹했고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잘 어울렸고 의외로 터프했다. 이날은 보영이가 프리 내내 연습하고 연습했던 기타연주와 노래를 뽐낼 시간이었다. 순이가 된 보영이는 거실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고 철수는 마룻바닥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하는 순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중요한 씬이었고 아름다운 감정씬이었다. 두 대의 카메라가 순이를 향해 있었고 멜로의 뽀샤시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조명 감독 형은 앉아있는 순이의 뒤통수가 정말 타들어 갈 정도로 강력한 HMI 조명들을 몇 개나 설치했다. 연주를 시작하는 순이. 그 날의 첫 샷. 첫 테이크를 찍을 때의 그 순간.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A캠이 트래킹을 하며 순이의 메인 컷을 찍고 있었고 B캠은 약간 옆쪽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순이의 손과 얼굴 위주로 FOLLOW 하며 찍었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거실 바닥에 앉은 체 그녀의 단독 콘서트를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음악 감독님 작곡. 감독님 작사에 ‘나의 왕자님’ 이란 노래가 시작되었고 이 넓은 전주 세트장에 아름다운 기타 연주와 순이의 수줍은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뒤쪽으로 살짝 빠져서 이 촬영장 전체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뭔가 뭉클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스태프들 얼굴을 보니까 구경하는 남자 스태프들은 이미 눈이 달나라, 별나라로 향해 있었고 여자 스태프들은 ‘흥, 칫, 뿡’. 괜한 팔짱을 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났던 것은 노래가 끝나고 몇 초의 적막이 흐른 뒤 감독님의 컷 소리가 났는데도 보통 때 같았으면 컷 소리와 함께 다음 컷 준비로 소리 지르며 바로바로 소란스럽게 움직였을 사람들이 쥐죽은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드 썬! 과 동시에 별나라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최면이 풀리면서 지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가 보다. 그 후로도 몇 초가 지나서야 조심스레 다음 컷을 준비하기 시작한 스태프들. “이보게나, 정신들 차리게.” “아... 네. 네. 배시시”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은 뭔가 밝고 따뜻하며 다정다감한, 원래 항상 착했던 사람들처럼 변신해 있었다. 조감독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순간들은 참으로 신비하고도 놀랍다. 다음 컷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평소보다 더 신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이쿠야. 안 하던 양보도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애기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보영이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고. 행복해진 것이다. 이 뜻은 그 장면이 본인들이 상상해왔던 것만큼 잘 찍혔다는 이야기고 관객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씬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을 ‘영화 현장의 마법’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이 만족감에 취해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 스태프들은 다시 최선을 다해 영화의 장면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이렇게 촬영을 하는 날은 안 봐도 뻔하다. 그 날 촬영 회차에 점수를 매기라면 분명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3 2012년 2월 18일. 35회차 촬영 스케줄표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연이다. 조감독들의 가장 큰 숙제이자 적. 촬영장에 생기는 대다수의 변수들은 정말 정 안되면 스태프들이 으싸으싸 하던지 그것도 안 되면 결국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답이 없다. 촬영 스케줄이라는 것이 100명의 사람들, 그리고 각각의 팀들이 세팅하고 작업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시간, 수십 명의 배우들에 개인 스케줄들, 촬영 장소별 섭외 여건, 세트의 완공 시기, 비싼 소품과 장비의 대여 기간 등등등등.... 하물며 야식 먹는 시간까지. 거짓말 안 하고 수십, 수백 가지의 요소와 가능성을 생각해서 짠 거대한 테트리스 같은 건데 인간의 일들은 설득이란 게 있고 섭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자연은 말이 없다. 그리고 이 변수 때문에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도미노처럼 발생하고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초과되기 일쑤다. 한 예로 여름 장마 기간, 태풍에 크게 잘못 걸린 팀은 보름 가까이 쉬는 팀도 봤었다. 제작자, 피디 형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도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날씨가 오락가락하면 그 날을 애초에 쉬는 날로 하느냐, 아니면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를 타느냐의 판단도 늘 촬영 때마다 있는 가슴 졸이는 일이다. 보통 촬영장에 기본적으로 있는 스태프의 수가 70명가량이고 움직이는 차량이 십여 대가 훌쩍 넘는다. 서울에서 대기를 타고 있는 수십 명의 배우들은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우리 촬영장 가요, 말아요? 찍는 겁니까, 안 찍는 겁니까? 언제 결정이 나나요?” 글을 쓰면서도 스트레스가 확 밀려온다. 어쨌든 우리는 겨울 촬영이었고 우리의 변수는 비. 눈. 한파였다. 그래서 애초에 메인 촬영 장소를 강원도나 북쪽이 아닌 남쪽 지방에서 찾았고 전주를 중심으로 촬영 장소를 선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상청을 통해 전라도 지역에 도시별 5년간 적설량, 강우량을 뽑아서 촬영 스케줄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쭉 데이터를 뽑아보니 우리가 찍는 2012년. 짝수년이 더 추워서 비보다 눈 위주로 많이 왔고(다행히) 그 짝수년들을 보니까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눈이 많이 내렸고 2월부터는 간간히 눈이 오더라. 라는 나름의 통계를 뽑을 수 있었다. 물론 100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반복적인 데이터였다. 그래도 갑자기 내리는 비와 눈은 하늘의 뜻이니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어쨌든 이 자료를 디테일하게 반영해서 전주에 내려간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는 야외 촬영 없이 전주 세트장 안에서 내부 세트만 촬영을 하고 1월 이후에 야외로 나간다, 라는 큰 그림을 그렸고 만약 야외 촬영 중 눈이나 비의 변수가 생길 경우 당장 가까운 거리에 점프해서 촬영할 수 있는 예비 촬영 장소와 찍을 것들도 2안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 또 다른 숙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위 스케줄 표에 나와 있는 눈 배경 장면이었다. 그것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눈이 와 있는 추억의 별장을 노인이 된 순이가 찾아가는 장면과 영화의 에필로그. 혼자 남은 철수가 여전히 순이를 추억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그래서 이 장면들은 고창 청보리밭에서 찍기로 했었는데 그 이유는 콘셉트에도 맞는 목가적 풍경을 가지고 있었고 전라북도 지역에서 눈이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고 메인 거점이었던 전주에서 차량으로 한 시간 반 거리라 전주에서 변수가 생길 시에 언제든 점프를 할 수 있는 장소였었다. 촬영 스케줄 상 이 씬들은 어느 날짜라고 픽스를 짓지 않았고 전주 야외 촬영 중 고창에 충분한 눈이 내리면 언제든 점프한다는 각오로 준비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2012년 1월 31일. 전주 양묘장 오픈 세트장에서 야외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번째 날, 일기예보와 다르게 낮인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마당에서 감자를 우걱우걱 집어 먹는 철수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내렸다. 이곳의 촬영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긴급회의를 열어 고창 쪽 상황을 알아보니까 그쪽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 시간이 오후 1시 무렵이었고 고창 쪽에 지금 내린 눈이 쌓인다면 내일 점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다음 날 까지 눈이 유지될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결국 그 날은 모두가 만세를 외치는 휴차(쉬는 회차)가 되었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전주에는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전라북도 전 지역에 걸쳐서 내리는 비였다. 그리고 고창지역은 늦은 밤부터 비가 눈이 돼서 적설량이 5cm가 넘는다는 애매하고도 애매한 예보였다. 다시 긴급회의가 열렸고 제작부장과 내가 고창 쪽에 넘어가서 새벽 2시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다음 날 고창에서 촬영을 할지 말지에 대해 상황보고를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계획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다수였지만 내 입장에서는 2월에서 3월로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눈 내린 들판 장면을 못 찍지나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걱정에 밀어붙이기로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스태프들 또한 전주 숙소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대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 12시부터 고창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설이었다. 쌓이지 않는 폭설. 싸리 눈이었다. 제작부장과 나는 쓸쓸히 전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2월이 가고 있었다. 3월이 되면 우리는 다른 촬영 관계상 전라도를 떠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오히려 눈이 내리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중 날짜가 서서히 박혔다. 2012년 2월 18일. 이미 일주일 전부터 전북 지역 전역에 걸쳐 폭설이 예보돼 있었고 그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일기 예보의 확률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하루 전날 연출부 세컨 동생과 제작실장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창 청보리밭으로 급파됐다. 이날의 일기예보는 늦은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폭설이 예보되어 있었고 그 예보가 몇 일째 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소에서 콩닥 콩닥 마음 졸이며 삼십 분에 한 번꼴로 체크 전화를 걸어서 욕을 먹던 중, 열 시를 넘을 무렵 희망찬 메시지가 날아왔다. “조감독님, 눈 옵니다. 폭설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현장 사진이 날라 왔다. 대략 3cm 정도의 눈이 내린 상태였고 내일 오전까지 내리고 기온도 영하라고 하니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빠르게 키 스태프들과 의논을 했고 다음 날 촬영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낮 촬영이고 이동 거리가 한 시간 반이라 스태프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촬영장을 향했고 촬영장을 향하는 동안 오히려 폭설을 해치며 가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넓고 넓은 평야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때 저 멀리서 선발대로 와있던 연출부 동생이랑 제작실장이 새벽어둠을 뚫고 뚜벅뚜벅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장 넓은 샷을 우선 찍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넓은 벌판 위에서 철수가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눈 내린 배경에 촬영은 순조롭게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찍었던 엔딩 장면을 우리는 추후 3월 14일. 대관령에 가서 재촬영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뭐 그런 것이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영화 마지막에 눈사람 굴리는 철수의 장면은 대관령 촬영 분량이 쓰였고 그 외에 노인이 된 순이 장면은 고창 청보리밭 촬영 분량이 쓰였다. 3 마무리 영화 스태프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촬영 때는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 만땅 이지만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근질근질해지고 그리워지는 게 현장이라고. 그리고 다음 작품은 보다 내 취향과 잘 맞는 시나리오, 감독님과 작업하기를 늘 꿈꾼다. 내 취향에 맞는 일을 할 때, 나랑 잘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의 손때가 뭍은, 내가 찾은, 내가 캐스팅한, 내가 찍은, 내 손으로 만든 나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장면들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 그 희열이란 한 번이라도 맛을 보고 나면 중독이 돼서. 그래서 다시 영화 촬영장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 같다. 감독님들. 배우. 스태프들. 정해진 시간 속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은 비바람을 견디며 영원히 기억될 영화를 만든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가 좋아서 이 일을 할 뿐이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길,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