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맨틱 에러: 더 무비
- 감독
- 김수정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박서함, 박재찬, 송지오, 김노진, 김원기, 최수견, 차재훈, 김건희, 김진성, 정준교, 허이진, 박준환, 이진성, 경수빈, 신민선, 한태희, 기현우, 손범서, 한태경, 우주명, 이혜민, 문해민, 김정민, 석유진, 이정혁, 조성진, 정주원, 송명호, DKZ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났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에게서 시작한 영화를 다시 한 번 시작하게 하였다. 내가 조금만 이야기를 우회하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멜리에스의 부친은 그가 신발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단지 소망이 아니라 에콜 데 보자르 학교를 다니면서 진지하게 수업을 받았다. 그러자 부친은 경제적 지원을 중단했다. 사태는 좀 엉뚱하게 흘러갔다. 멜리에스는 사업을 배우라고 보낸 런던에서 무대 마술사들에게 매혹되었다. 마법 수업을 받았고 자신의 독창적인 레퍼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은 상자 속에 들어간 남자가 목이 잘린 채 계속 수다를 늘어놓는 퍼포먼스였다. 독창적인 마법사, 영화에 뛰어들다 문헌에 따르면 조르주 멜리에스는 독창적인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찾았다. 어떻게 알았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공식 상영하기 전날인 1895년 12월 27일 저녁 리허설을 보러 갔다. 아마 새로운 마법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신기한 발명품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뤼미에르 형제에게 촬영 장비를 1만 프랑(옛 프랑스 화폐 단위)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거절했다. 멜리에스는 포기하지 않고 런던까지 가서 에디슨 컴퍼니의 카메라를 구입한 다음 변형하여 1896년 5월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석 달 뒤 몽퇴이유에 스튜디오를 차린 멜리에스는 마법사 일을 그만두고 영화 제작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뤼미에르 형제처럼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찍었지만 멜리에스를 매혹시킨 것은 (사실상 기술적 에러에 가까운) 특수효과가 만들어내는 마법적 효과였다. 그러면서 멜리에스는 자신의 작업에 야심적인 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를 실내로 끌어들였고 촬영을 위한 무대는 점점 스타일을 갖추기 시작했다. 1902년 5월 멜리에스는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와 H. G. 웰즈의 「달의 첫 방문자」를 느슨하게 각색해 <달세계 여행 Le Voyage Dans la Lune>을 촬영했다. 이 촬영을 위해 시나리오를 썼고, 13개의 거대한 무대 디자인을 했으며, 1만 프랑을 들여 이례적으로 석 달 동안 촬영했다. 이 영화의 주연은 조르주 멜리에스 자신이 연기했다. 촬영이 끝난 영화의 필름 길이는 무려 260m에 이르렀다. (상영 시간을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초당 몇 프레임으로 상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14프레임으로는 16분, 24프레임으로는 9분이 된다.) 무엇보다 <달세계 여행>을 오늘날 다시 보면 이제까지 고정되어 멈춰 있던 카메라가 트래킹 운동을 하는 순간 마침내 영화가 운동을 시작한 순간과 마주한다는 흥분에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쇼크를 준다.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총천연색 영화의 탄생 <달세계 여행>은 흑백 판본과 프레임 단위로 일일이 손으로 색칠을 한 컬러 판본이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달세계 여행> 컬러 판본은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총천연색 영화 중 한 편이다. 그렇게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계보와 결별하고 또 다른 하나의 시작을 선언했다. 나는 이 두 개의 시작을 좀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영화사 안에서 멜리에스의 영화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 사람은 장-뤽 고다르다. 그는 <중국 여인 La Chinoise>(1968)에서 장 피에르 레오의 입을 빌려 말한다. “뤼미에르가 화가라면 멜리에스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 나는 멜리에스를 브레히트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세기말 풍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판타지라면, 멜리에스는 세기말 관객들의 판타지를 찍은 다큐멘터리라는 고다르의 변증법적 역전은 우리에게 두 개의 시작에 대해 어떤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이 연재는 다시 한 번 시작한다. (계속)
SBS에서 방영 중인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보면 가끔씩 검수의 달인들이 등장한다. 쏜살같이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불량품을 찾아내는 통조림 검수부터 벽지, 형광등, 소주병까지 검수 되는 제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시청자 입장에서 눈을 붙들어 매는 건 묘기를 넘어서 신공에 가까울 정도인 그들의 환상적인 손기술이다. 지켜보는 사람을 무념무상의 상태로 강력히 몰입시키는 그들의 실력은 처음엔 신기함을, 마지막엔 경의를 표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께서 검수업무를 성실히 수행해주시고 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검수는 필요하다.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당연히 수집이다. 수집은 여러 경로로 이뤄지는데, 그 중 ‘제출’이라는 경로가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영화로 등급심의를 받은 작품은 영화 및 비디오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에 의해, 한국영상자료원에 의무 납본된다. 말은 의무 납본이지만 영화 제작사는 많고 이들이 모두 영비법의 존재에 대해 늘 인식하거나 영화 만들 때 의무 납본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심의작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섭외’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제출의 경로로 들어오는 영화들은 실로 다양하다. 대기업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상업영화들부터 다큐멘터리, 저예산 영화들까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만들어지는 작품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작품들 외에도 평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알기 힘든 작품들을 많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우리나라가 영화 강국임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영화계를 부러워하는 나라들이 많다. 연간 제작 편수도 많고 국산영화가 인기 많은 데다 그 제작 시스템도 잘 되어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이는 비단 영화계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음악과 방송 면에서도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만큼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뽑아내는 나라는 드물다. 이로 인해 월드 스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무분별한 “두유노” 질문 공세의 빌미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나라가 아시아 콘텐츠 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반증이라 생각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작품 제출 시 보상금이 지급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제출로 자료원에 들어오는 영화들은 품질검사의 단계에 들어간다. <생활의 달인>에서 그 많은 달인들이 검수업무에 종사하는 이유도 그 검수의 대상이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돈 받고 팔아야 할 물건들이라 품질에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보상금 지급 대상인 제출작들 또한 이상 유무를 판별하는 공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결국 영화를 검수한다는 말인데, 그 방법은 어떻게 되는가... 물론 ‘보는’ 것이다. 제출로 들어오는 영화를 보면 된다. 보고, 영상과 음향에 문제 유무를 찾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일들 중에 영화를 보고 돈을 버는 일도 있다. 언뜻 재미있어 보이고 세상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내부자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군대도 자신이 나온 부대가 제일 고된 법인 것처럼 이 일도 그러하다. 한국영화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제출량 폭증으로 일감의 절대량 증가와 보상금 지급기한은 늘 압박이 된다.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애로사항도 있고 이로 인해 여가시간엔 극장을 자주 안 가게 되는 아이러니도 발생하나 이는 지속적 안과 방문 및 녹황색 채소의 중요성의 절감으로 퉁치고 있다. 현재는 육안 검수로 일이 진행되지만, 이러한 방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올해를 관통하는 화두 중 하나가 인공지능과 자동화였다. 이로 인한 파고를 실감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한 바둑대결 덕분에 잘 알게 되었다. 국내외의 아카이브와 방송국들 가운데는 검수업무를 자동화한 곳들이 있다. 소프트웨어에 영상을 돌리면 미리 세팅해둔 설정값에 의해 에러라고 판단된 파트를 사용자에게 보고해준다. 이러한 업무 자동화의 일장일단에 대해서 썰을 풀기 시작하면 거한 스크롤 압박이 예상되므로 이 글에서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세상엔 실로 많은 직업들이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일도 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가운데는 경기 불황시대에 좋은 일 하면서 엄살 피운다고 혀를 차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리라 사료된다. 하지만 필자는 절대 엄살을 피운 적이 없다. 그저 이 일을 수행해오면서 들었던 단상들을 모아놓고 미래를 바라보며 약간의 비전 섞인 ‘뻘글’을 추가했을 뿐이다. 본 업무를 수행하면서 한국영화의 다채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이러한 다양함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결과물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늘 보람되는 일이기도 하다. * 사진설명: 한국영상자료원 기관 홍보 동영상 중 여자친구 멤버인 엄지가 디지털 영화 검수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