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
- 감독
- 동지견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강조, 팽릉, 예모사, 홍수아, 담리나, 서열, 고태우
벽장 속의 괴물. 익숙한 소재다. 동화처럼 따뜻한 이야기도 가능하고, 아이를 잡아가는 섬뜩한 괴물도 가능하다. 단순하게 귀신의 통로로만 이용할 수도 있다. 김지운 감독의 < 장화, 홍련 >(2003)에 등장하는 옷장 장면은 정말 섬뜩했다. 리메이크작 < 폴터가이스트 >(2015)에서는 아이가 벽장을 통해 원령들이 사는 세계로 끌려간다. 밤에 잠을 자다가 혹은 일이나 공부를 하다가 뒤에 있는 옷장이나 벽장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순간의 공포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이 한순간에 이면을 드러내거나 기괴한 것으로 변할 때의 공포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과 딸 이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상원은 공황장애가 있고, 이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나의 치료를 위해 교외의 저택으로 이사를 갔지만 벽장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전형적인 설정이다. 과거의 상처가 있는 가족이 새로운 집, 공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나 살인마를 만난다. 공포영화가 익숙한 설정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전형적인 설정과 캐릭터, 장면을 가지고도 섬뜩한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호러영화의 매력이니까. 그러나 클리셰를 명확한 이유 없이, 흐름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것은 최악이다. 무서운 장면이었으니까, 관객이 좋아한 설정이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호러영화를 뒤죽박죽 베끼면 재미가 없다. 한국 공포영화의 태반이 그렇다. 공포영화에 관심 없는 제작자와 감독이 만나 공포영화 히트작의 익숙한 장면들을 다 끌어오면서 엉터리를 만들어낸다. 재미도 없고, 공포도 없다. 한두 번 놀라는 장면이 있어도 그뿐이다. < 클로젯 >( 김광빈 , 2020)을 보고 있으면, 다 어디선가 본 장면들이고 설정이다. 그것들이 합이 맞지 않고 삐걱거린다. 클라이맥스도 맥이 빠진다. < 컨저링 > < 인시디어스 > < 애나벨 > 등 제임스 완 연출, 제작 영화들이 계속 떠오른다. 벽장 속 이계는 <폴터가이스트>, 학대 받은 아이들의 복수는 시미즈 다카시의 < 코도모츠카이 >가 연상된다. <클로젯>의 도입부는 벽장 안에 있는 무엇인가 때문에 이나의 성격이 변하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이야기다. 까마귀가 창으로 날아들고, 벽장문이 끼익 거리며 분위기를 잡는다. 그리고 이나를 찾는 상원 앞에 퇴마사 경훈이 나타난다. 프롤로그에 나와 굿을 하다 죽은 무당의 아들이다. 경훈은 동양의 퇴마의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첨단 과학 장비를 활용하여 초자연적 존재를 추적한다. 농담과 너스레가 끊이지 않는 경훈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지금 상황에서 웃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 영화의 톤이 오락가락한다. <클로젯>은 이나가 변하고 사라진 후, 경훈이 나타나 이나를 데려간 존재를 찾아가는 초자연적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다. 상원과 경훈은 명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왜 원한을 갖게 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1998년, 아마도 IMF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의 학대로 명진은 옷장에 갇혀 목숨을 잃는다. 그 원한 때문에 죽은 후에도 ‘클로젯’을 통해 학대받는 아이들을 이계로 데려간다. 그렇다면 상원과 경훈은 명진의 한을 어떻게 달래줄 것인가. 상원은 이나를 구하기 위해 이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나를 학대했음을 알게 되는 정도다. 그것은 좋다. 상원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모든 것은 갑자기 명진의 엄마가 나타나면서 해결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아이들을 이계로 데리고 간 명진은 엄마를 만나 원한을 내려 놓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개인적인 문제 특히 모성애로 진부한 답을 내리고 끝난다. <클로젯>은 한국 공포영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서운 장면 몇 개를 만드는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스릴과 코미디와 신파를 다 섞어 놓은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어리석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장르물은 우선 장르의 본질을 확실하게 파고드는 것이 기본이다. 공포영화를 만들어 놓고도 미스터리와 드라마라고 우기지 말고. < 기담 >(2007)과 < 곤지암 >(2017)의 정범식 , < 검은 사제들 >(2015)과 < 사바하 >(2019)의 장재현 감독은 공포물에 대한 지식과 애정으로 전형적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공포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런 공포영화들을 더 보고 싶다.
올해 개봉된 2편의 장편 애니메이션, 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과 오성윤 감독의 < 마당을 나온 암탉 >이 우리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짐작케 하는 쾌거를 보여주어 무엇보다 흐뭇한 한 해이다. 우선 200만 관객이 넘은 < 마당을 나온 암탉 >은 황선미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각색을 거쳐 이야기의 재미를 첨가하였고, 전문적인 영화기획을 통하여 나온 작품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에 있어 다른 여타의 노력(배급과 마케팅)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원작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매력적인 각색이 있었기에 관객들이 선택하였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애니메이션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일본을 제외하고)고 하는 청소년 층과 어른 층을 타깃으로 한 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은 순수 애니메이션 창작품으로 탁월한 이야기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물론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외국 블랙버스트 작품으로 인해 극장에서 흥행에 관계없이 내려야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꾸준히 상영이 이어져 왔다. 일단 흥행은 여러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야기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매우 성공적이다. < 소중한 날의 꿈 >은 주인공 성장형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 이랑이 마음 속 불안과 좌절을 두 친구의 만남을 통해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이야기 구조이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어서 자칫 교훈적으로 빠지는 뻔한 이야기거나 지루할 이야기 소재를 학창시절의 디테일들을 살려 재미로 충족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은 1970년대 추억물로 받아들였고, 영화의 분위기 창조와 디테일은 그런 부분에서 성공적으로 미장센 되기도 했다. < 소중한 날의 꿈 >은 두 부부 감독의 10년이 넘는 끈기와 투자로 어렵게 제작하여 개봉한 창작 작품으로 오랜 시간 작업하다보면 생기는 그림체의 변화라던지, 감독의 고집으로 인해 이야기의 보편성을 잃기 쉬운 부분을 극복하고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었다. 무엇보다 흉내 내지 않은 자신만의 감수성과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이 우리 애니메이션계의 올해의 수확으로 보여진다. < 소중한 날의 꿈 >처럼 주인공 성장형 스토리텔링의 경우, 등장인물과 플롯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여기서 주인공은 소심하거나, 평범한, 그러면서 내적 결점들을 가진 인물이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고, 그 체험을 통해 자신의 ‘위크포인트’, 즉 ‘결점’을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브리의 여주인공들이 대표적인데,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경우 주인공은 시큰둥한 생활을 하다 부모와 함께 이상한 유원지를 우연히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신들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의 맡은 일을 어떡하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이해하고 성장하여 세상에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강인하고 꿋꿋한 여주인공들의 특징이다. < 원령공주 >, < 청공의 성 라퓨타 >,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등의 여주인공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상당히 흡입력이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스토리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운 난관들도 존재한다. 이런 스토리에서는 인물의 배경과 욕망을 치밀하게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물과 배경이 추구하는 사상도 나름대로 깊이와 완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캐릭터 집중도가 뛰어난 대신 주인공이 단수로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이 내적으로 성장하면 이야기는 바로 끝나야 하는 것처럼 사건의 패턴이 단순할 수 있다. 그래서 TV시리즈보다는 극장용에서 선호되는 스토리이다. 그렇다면, 다음 회로 연결시키는 요소를 두는 tv용 애니메이션과 완결판을 보여줘야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플롯 구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스토리텔링의 선호하는 패턴은 있어도 다르지는 않다. 다만 TV용 애니메이션도 매회 사건을 해결하는 완결형과 하나의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매회 같은 안타고니스트와 대결하는 두 가지 형태가 있겠다. 이를 위해 지연과 반복의 전략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날아라 슈퍼보드>처럼 여행을 하며 갈등을 해결해가는 이야기에는 안타고니스트, 악당만 바뀔 뿐이지 같은 대결구조가 반복한다. 다음에는 TV시리즈의 지연과 반복이 어떻게 구사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