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lipse
- 감독
- 이혁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이동규, 김민재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과 비물질을 가리지 않고 여타의 지식과 자료는 거의 모두 정보로 가공되며 정보에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용이해지고 정보 자체가 중요한 경제적 가치가 되는 시대다. 이러한 정보적 전환의 핵심적 기제는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 이미지와 서사 역시 정보로 환원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영화는 정보화된 시각적 질료를 어떻게 영화 이미지로 창조할 수 있을까? 2012년 개봉해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 수 7만을 넘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 두 개의 문 >은 재난사건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급증한 정보 이미지를 영화화 하며 정치적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두 개의 문>은 2009년 용산 재개발 지역에서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정에서 화재로 사망한 참사를 다룬다. <두 개의 문>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다큐멘터리이다. 당시 철거민들이 농성을 위해 망루를 지었던 남일당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채증을 위해 농성 현장을 기록하던 경찰의 카메라, 진보적 성향의 언론과 정당에서 실시간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위해 나온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의 카메라, 도로현황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 전체를 조망하던 하이앵글의 CCTV 카메라가 있었다. <두 개의 문>은 이렇게 스트리밍되고 기록된 시청각 자료들을 활용해 망루가 세워지던 낮부터 화재가 일어난 새벽까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변호사, 활동가, 인터넷 방송 비디오 저널리스트와 같은 전문가들의 인터뷰, 재판에서 제시된 여러 증거와 증언이 교차편집으로 덧붙여진다. 다큐멘터리는 짐짓 법정영화 혹은 탐정 느와르의 서사적 관습을 따라간다. 여섯 명이 죽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어떻게 참사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랬는가? 무리하게 진압작전을 벌이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과 이후 국가폭력에는 눈 감은 채 농성현장에 있던 철거민과 연대자들을 공동정범으로 규정한 검찰 역시 동일한 서사 프레임을 공유한다. 영화는 철거민들을 범죄자로 규정한 검경의 프레임을 회피하기보다는 그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이 질문을 검경에게 되묻는다. 국가는 과연 시민에게,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아야했는가? 이에 질문하고 답하기 위해 영화가 사용한 파운드 푸티지들은 정보 이미지로서 흥미로운 성격을 갖고 있다. 사용된 파운드 푸티지를 만든 주체는 영화의 제작진이 아니다. 영상을 만든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현장에서 동시에 기록을 하며 정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교통 흐름을 관리하기 위한 서울시의 행정용 CCTV 카메라, 모든 시위와 농성을 불법으로 예단하며 시민들의 행동을 채증하는 경찰의 카메라,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정보의 왜곡을 방지하고 농성 철거민들을 국가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도 하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의 카메라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 이 영상을 만든 주체들은 사전 협의도 없고 정치적 관점도 목적도 다르지만 정보의 네트워크에서 각자 위치에서 거의 사각지대 없이 사건현장을 촬영했다. 이제 어떤 사건과 현장도 정보의 제공을 위한 시청각적 기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사이즈와 앵글의 영화 이미지를 제공했다. 이 영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개인 혹은 집단의 주체적 숙고와 협의보다는 네트워크된 제도와 기본적으로 모든 사건이 시청각적으로 정보화 되는 시대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관객 역시 영화 이미지를 정보로 받아들인다. 실시간 영상의 사건 재구성이라는 영화적 형식은 관객들이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서의 현장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고, 다른 하나는 법정이다. 이 영화에 사용된 파운드 푸티지들은 재판에 증거로서 제공된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관객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카메라의 시점을 실시간으로 따라간다는 경험을 제공받기도 하지만, 변호사, 검사, 판사의 위치에서 법정에서 증거로 제시된 증거-이미지를 취합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체험을 한다. 관객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해석과 결론이 이미 내려진 관점을 제공받기 보다는, 날 것의 정보 이미지를 제공받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원한다. 그 정보를 검토하는 일은 제작진이 편집을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두 개의 문>은 관객들이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일종의 내비게이터 역할을 한다. 여기서 영화(의 질료) 이미지, 정보 이미지, 증거 이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이렇게 <두 개의 문>은 이미 정보화된 사건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관객들이 정보를 직접 탐색하고 검토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보와 관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이 발생하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이 급증하게 되고, 그리고 얼마든지 줌-인해 정보를 상세히 살필 수 있고, 관객들은 정보를 읽어낼 충분한 능력을 갖췄으며, 그렇게 하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실제로 영화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경찰이 왜 평소와 달리 급하게 협상을 포기하고 망루에서의 농성이 시작된 지 7시간 만에 테러를 진압하는 목적을 가진 특공대를 투입하게 되었는지, 망루가 지어진 남일당 옥상에 출입구가 두 개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위험하게 진압작전을 수행했는지를 밝혀낸다. 시민의 안전과 통제를 방패막이로 삼은 경찰이 스스로는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고, 또 다른 시민인 철거민과 말단 경찰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읽어내지 못할 정보가 없는 것처럼 주어진 자료들을 거침없이 탐색하며 사건을 재구성하던 영화는 마침내 그 사건의 마지막 순간, 불타오르는 망루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 검경은 망루 안에 인화물질이 있었고 그 때문에 불이 나게 된 것이라며 참사를 철거민들의 잘못으로 몰아갔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렵다. 화재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애초에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작전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현장과 법정을 누비던 카메라와 관객은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부르짖는 불타는 망루 앞에서 더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 선다. 카메라의 접근 불가능성은 ‘죽음의 스펙터클’이 될 수밖에 없는 이미지 정보의 한계와 농성 철거민의 현실에서 기인한다. 망루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증언해줄 이들은 <두 개의 문>이 제작되던 당시 사망했거나 입원 중이거나 수감됐기 때문이다. 멈춰 선 카메라와 접근 불가능성은 정보로 환원할 수 없는 이미지가 있음을 예증한다. 이 정보로의 환원 불가능성, 죽음 이미지의 접근 불가능성이야 말로 <두 개의 문>에 이어 출소한 농성 철거민들의 트라우마를 다룬 <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2018)의 제작이 필요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공동정범>은 바로 그 불타오르는 망루를 다시 짓고 허물고 또 다시 지으며 트라우마와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그들을 더 이상 정보로 다루지 않을 때 이미지에 접근 가능해진다. 정보에의 줌인과 탐색이 이미지의 해상도를 반드시 높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노동자여, ‘감각’으로 단결하라 간결한 묘비명, Bruce Lee 1940-1973. 번쩍 번개가 화면을 가로지른다. 죽은 브루스 리=이소룡이 무덤에서 뛰어오른다. 그 위로 프레임을 가득 채우며 뜨는 사각의 타이틀.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Bruce Lee Fights Back from the Grave). 묘비 앞의 브루스 리가 죽음의 천사를 향해 그 특유의 포즈로 주먹을 불끈 들어보이고 있다(왜인지 모르겠지만 죽음의 천사 발치에는 반라의 여성이 놓여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도록 하자). 어쨌건 이쯤에서 우리의 기대치는 구체적 형태를 띠게 된다. 무덤에서 돌아온 브루스 리가 죽음의 천사와 맞서 싸울 것이다! 빠르고 강력한 비트 사운드가 계속되는 가운데 거대한 비행기가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며 날아간다. LA 공항, 선글라스를 낀 젊은 남자가 공항을 나선다. 그는 누구인가? 브루스 K. L. 레아(Bruce K. L. Lea). 그야말로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브루스인가? 비록 브루스 리가 아닌 브루스 레아지만…. 아마도 당신이 이런 영화들에 익숙하다면 수다한 ‘브루스’들에 대해 잠시 숙고해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Bruce Li(何宗道), Bruce Le(呂小龍), Bruce Leung(梁小龍), Bruce Lei(혹은 Dragon Lee, 巨龍), Bruce Lai(張一道), Bruce Thai(張正義) 등. 브루스 K. L. 레아, 당신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저 강렬한(!) 오프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의 본편이라 할만한 것을 채우는 것은 이두용의 < 아메리카 방문객 >이다. 1976년 ‘최초의 태권 미국 올로케 감행작품’으로 합동영화사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그러나 영어 더빙을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탈바꿈되어 있다. 형의 복수를 위해 라스베이가스에 온 한국인 ‘한욱’(정준)의 이야기(그러니까 저 브루스 K. L. 레아는 정준이다)는 친구이자 스승인 위대한 무도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홍콩인 웡핸의 이야기로 바뀐다. 물론 인종적 구도는, 당연한 말이지만,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아시안 남성은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젊은 백인 여성의 흠모를 받는다. 젊은 백인 여성은 아시안 남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아시안 남성은 백인, 흑인, 멕시칸으로 구성된 악당들을 처치한다. 그럼에도...나는 지금 ‘본편이라 할만한 것’이라고 애써 모호하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가 실은 <아메리카 방문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씬을 추가하고 전혀 새로운 사운드를 입히고 더빙을 한 자들의 노고는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 것일까? 참고로 홍콩의 양츠 프로덕션(Yangzte Production)이 제작사로 명기되어 있는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의 예고편을 참조컨대 이 영화는 1978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브루스 리의 죽음 이후 5년, 그가 무덤에서 돌아온다!” 이소룡은 알다시피 1973년에 죽었다). 또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의 몇몇 언어 버전은 감독 Umberto Lenzi로 명기되어 있기도 한데, 움베르토 렌치가 한때 유럽 B급 영화시장을 석권했던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의 대표적 이름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바꿔치기는 이런 영화들이 전세계의 어떤 시장에 소구하는 것이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아메리카 방문객>-<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와 같은 사례, 편집 버전에 따라 이름이 교체되거나 씬의 추가와 더빙을 거쳐 지역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변환되는 사례는 소위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이라고 이름붙여진 영화들의 세계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 영화들은 도작과 도용, 자르기와 이어붙이기 1) 로 악명 높다. 사실 이소룡의 유작이라고 선전된 < 사망유희 > 조차 그가 살아 생전 찍었던 단 10퍼센트의 필름 푸티지와 그의 대역들(이미 소개했다시피 그중 한명은 당룡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한국 출신의 김태정이다)을 써서 찍은 필름들, 그리고 여타 영화 필름의 짜깁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도작과 도용이라는 관점으로 원본과 아류의 위계를 정한다는 것은 이미 무리가 있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 세계는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고 싶어하는 장사치들의 세계다. 몇 가지의 예들. Joseph Velasco라는 이름이 디렉터로 명기된 <My Name Called Bruce>는 한국영화 <왕도>로 확인되며, 감독은 이혁수이다. Joseph Velasco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이름은 아마도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가장 빈번히 마주치는 이름 중 하나일 터인데, Joseph Velaco 또는 Joseph Cong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작의 ‘작가’는 1년에 평균 3편에서 4편을 만들고, 자신의 영화 거의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틈틈이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또 유행에도 대단히 민감하여 ‘Bruce’가 들어가는 제목의 영화들을 1970년대 내내 찍다가 70년대 후반 소림사(Shaolin) 영화들이 붐을 일으키자 브루스와 소림사를 섞고(<Bruce Shaolin Bronzemen>), 성룡의 <취권 Drunken Master>(1978)이 흥행에서 성공한 이후에는 곧바로 <Drunken of Fire>라는 제목으로 거룡(브루스 레이)의 술 취한 권법을 선보인 바 있다. 홍콩영화 데이타베이스(HKMDB)와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IMDB)에 따르면 Joseph Velasco는 대만 출신의 강홍(江洪)이다. 그렇다면 Joseph Velasco의 영화들은 이 이름의 ‘본명’인 강홍의 작품인가? 이미 눈치챘겠지만, Joseph Velasco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많은 영화들은 도작이거나 도용이거나 짜깁기이다. 마찬가지로 Joseph Velasco의 또 한편의 영화 <Ninjas VS Bruce Le aka Condor Of Bruce Lee>의 첫 화면은 Ocean Shores라는 회사가 카피라이트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한다. 그런데 1986년을 제작년도로 명기하고 있는 이 영화는 <My Name Called Bruce>(1978)와 <Return of Bruce aka Dragon Returns>(1977), <Enter the Game of Death aka Bruce the King of Kung Fu>(1978) 등 최소한 세 편 이상의 영화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한국에 마약수사를 하러 온 홍콩 수사관은 영화의 1/3 지점에서 뜬금없이 인신매매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순간 이동’을 하는데, 일련의 대결씬을 끝내고 ‘홀연히’ 한국으로 돌아온다. <Enter The Game Of Death>의 영어 버전에서 감독은 James Nam으로 명기되어 있다. James Nam은 1960년대 후반부터 쇼브라더스에서 활동했으며, 1970년대 이런 영화들의 감독이자 배우로 나왔던 남석훈(또는 Nam Gung-Fan)에게 자주 쓰이던 예명이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전혀 다른 편집 버전의 한국영화 < 십자수권 >으로 개봉되었다. <십자수권>의 크레딧에 명기된 감독 이름은 최원형이다. 남석훈의 또 다른 영화 < 속정무문 >은 <Bruce And Shaolin Kung Fu>라는 제목의 다른 편집 버전으로 옮겨졌을 때, Joseph Velasco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또 <Bruce and Shaolin Kung Fu 2>와 관련있다. 한국에서는 < 신정무문 >이라는 제목의 한국영화로 개봉했고, 남기남이 감독한 것으로 되어 있는 <Bruce and Shaolin Kung Fu 2>는 버전에 따라 James Nam과 Alberto Golango라는 서로 다른 이름이 감독으로 명기되어 있다. 너무 번다하다고? 그럴지도. 이런 영화들의 세계 안에 들어서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서 무엇이 오리지날이고 무엇이 도작과 도용인지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무망해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지구적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경로에 올라선 순간(이를테면 <아메리카 방문객>의 경우) 이 영화들에는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의 특정 이름들이, 한 편의 영화를 규정짓는 최저치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 닫힌 체계로서의 작품(work)이라는 개념이 차례로 사라진다. 요컨대 이 영화들은 국적뿐만 아니라 제작 주체마저 불분명해진 채 시장을 떠도는데, 어떤 영화는 이미 존재하는 복수의 영화들의 재편집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 각각의 지역의 유통업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더 정확히는 자신의 관객들이) 선호하는 언어로 더빙해서 판매했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들을 한국영화사라는 맥락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여기서는 내셔날 시네마가, 내셔날 시네마를 이루어내는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의 특정 이름들이, 한 편의 영화를 규정짓는 최저치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 닫힌 체계로서의 작품(work)이라는 개념이 차례로 사라진다. 만약 근대예술이 소유권(나아가 지적재산권)과 개인의 확립, 이를 뒷받침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영화-상품들로 저 세 가지 개념들이 사라질 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상품들은 1970년대 이소룡의 사후 아시아 각 지역에서 양산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비디오 시장에서 가장 싼 염가의 상품으로 전지구적으로 공급, 유통되었다. 그 속에서 한국, 홍콩, 대만, 필리핀 기타등등 여타의 장소들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아시안’이라는 기표로 수렴되었으며,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으로 명명되었다. 이 영화들이 국적과 만든 자들, 완결된 체계로서의 작품이라는 개념에 그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들을 보는 자들이 여기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계급적으로, 젠더적으로, 세대적으로 명확하게 분할된 장소들, 도시 변두리의 재개봉관, 소극장,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소구되었다. 이 장소들을 채운 것은 한국, 홍콩, 대만, 필리핀 등지에서 값싸게 만들어진 영화들이었다. 1970년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염가의 상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싼값에 도시 하위계층 젊은 남성들에게 소구되었다.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와 같은 영화들이 더없이 흥미로워지는 순간일 것이다. 저 영화들은 이 지역의 영화가 거의 최초로 ‘글로벌’하게 소비된 사례이다. 할리우드가 생산하는 고급 생산품들의 반대편에 놓인 가장 싼 상품으로서. 싼 값에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잘라지고 이어붙여지는 것을 대가로. 전세계의 하위계층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 플랫한 소비 속에서 이 영화들은 상품의 형태를 얻은 순간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전세계 노동자들의 (무의식적인) ‘감각적’ 단결과 전세계 자본의 순환이 함께 거기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한국 상품은, 다른 아시아의 상품들처럼 저임금 노동의 값싼 상품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을 지녔다. *** 1)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의 팬사이트인 Kung Fu Fandom의 한 팬은 이런 류의 영화들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자르고 이어붙인(cut and paste)’ 영화들을 정말로 사랑해요” http://www.shaolinchamber36.com/kungfufandom/index.php?/topic/2543-my-man-godfrey-ho-the-ifd-appreciation-thread/&tab=comments#comment-21806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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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 장한사모편 >(이하 <연산군>)은 제1회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신영균 ), 여우조연상( 한은진 ), 촬영상 등 여덟 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이후 신상옥 의 대표작 중 한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신상옥은 자서전 <난, 영화였다>의 한 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두고 쓴소리를 길게 써두었다. 그게 어느 정도이냐면, 자신이 북한의 감옥에 있을 때 남한의 형에게 몰래 보낸 편지에 ‘<연산군>의 원판을 찾아서 불살라 버리라’고 부탁했다(<난, 영화였다>의 82페이지). 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얽힌 불만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2개월 만에 찍어 1962년 신정(1월 1일)에 상영된 <연산군>이 흥행에 성공하자, 흥행업자들이 구정(설날)에 맞춰 속편인 < 폭군 연산: 복수, 쾌거편 >(이하 <폭군 연산>)을 내놓으라고 극성을 떨었다고 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1개월 만에 <폭군 연산>을 만들어야 했으니 창작자로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산군>과 <폭군 연산>을 급조된 그저 그런 작품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간 큰코다친다. 신필름 설립 후 < 춘향전 >(1961)이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얻은 1961년, 신상옥은 본격적인 궁중 사극을 계획한다. <연산군>은 여러 면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대조를 이룬다. 촬영과 미술 등의 규모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며, 신필름의 위세를 증명하듯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모두 출연해 영화의 곳곳에 배치되었다. 심지어 중전 역할의 최은희조차 <연산군>의 초반과 <폭군 연산>의 후반에 잠시 나오는 게 전부일 정도로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의 극치다. 장담하건대 지금껏 만들어진 어떤 한국영화에서 이보다 더 대단한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종화의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삼았는데, 신상옥의 연작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두 작품이 이후 만들어진 연산군 영화에 끼친 영향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역사 속 사건을 영화화했으므로 선점한 영화의 영향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대사, 연기, 미술 등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음은 이후의 영화들이 곧 방증하는 바다. 신상옥의 <연산군> 2부작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대하드라마 스타일의 전개 방식에 있다. 연산군 영화가 동궁 시절의 융, 즉위 이후의 사건 등을 한 편의 영화에 담으려면 대략 몇 가지의 방안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한다. 몇몇 사건이나 인물에 국한해 접근하거나, 그게 아니면 아주 급박하게 전개시키는 방식.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삼은 이혁수 의 < 연산군 >(1987)은 연산과 장녹수의 관계에 치중했고, 임권택 의 < 연산일기 >(1987)가 연산의 심리적 측면의 묘사에 집중했다면, 근래에 만들어진 < 왕의 남자 >(2005)나 < 간신 >(2015)에서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인물로 비친 감이 없지 않다. 신상옥의 2부작은 전후편을 합쳐 265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드는 만큼 작품의 걸음걸이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인상으로 치면, 연산에 관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연산일기>가 연극적이고 셰익스피어적인 반면, 신상옥의 연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죄와 구원의 여정에 방점을 찍는 장편소설을 닮았다. 임권택이 조선실록에 적힌 바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해 역사적 사실을 따른 것과 비교해 신상옥의 영화는 일부 허점이 품은 게 분명하다. 즉, 역사에 대한 객관적 서술에는 빈틈이 있을지 모르나, 원작 소설에 맞춰 한 인간에 대한 비극적이고 낭만적 기록으로 읽는다고 치면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싶다. 일례로, 영화 초중반에 짐승을 소재로 이야기를 잇는 방식이 눈에 띈다. 동궁 시절의 융이 사냥터로 떠나는 길에 거지 행색의 외조모가 길을 막는데 그는 눈치채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에 송아지 한 마리가 다시 길에 끼어들자 신하 중 한 명이 죽여버린다. 이를 본 융은 송아지를 잃은 어미 소의 마음을 읽어 그를 죽이고 만다. 자신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던 그의 내면을 슬쩍 드러내는 장면이다. 신하를 죽였으나 은연중에 모정을 그리는 애처로운 인물로 묘사된 그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비뚤어진다.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영화는 또 하나의 동물을 등장시킨다. 성종이 중전을 위해 키우는 사슴이 있었는데, 융은 성종 앞에서 일부러 사슴에 발길질해 반감을 표출한다. 묘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위에 오른 뒤 한층 성품이 포악해진 연산은 폐비 윤씨에 관한 전모를 듣고 앞서 등장했던 사슴에 창을 던져 죽어버린다. 영화는 죽은 사슴의 얼굴을 드물게 클로즈업한다. 연산과 성종의 관계가 틀어지다 마침내 선을 긋는 과정을 몇 차례에서 걸친 은유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자칫 영화의 속도가 느릴 거라고 여겨지겠으나, 그것보다는 섬세한 방식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다른 연산군 영화들이 사건을 전하느라 급급해 인물을 불쑥 등장시키는 경우도 잦은데, <연산군>은 다르다. 외조모인 신씨와 폐비 윤씨가 혜택을 입은 대표적 인물이다. 신씨가 거지 행색으로 도성을 돌아다니다 연산과 다시 만나는 과정에 여러 에피소드를 삽입해 감정의 리듬을 확보하고, 영화 초반 융의 꿈에 나타났던 윤씨는 후반에 통째로 시간을 부여받아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으로 화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전달되는 감정이 두터운 진정성을 얻음은 자명하다. <폭군 연산>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 딴판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성을 구한 것도 그래서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로 인한 연산군의 슬픔을 다루면서 그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것과 반대로, <폭군 연산>은 나쁜 왕으로서 연산군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연산군>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던 <폭군 연산>은 결말에 이르러 전혀 색다른 하나의 플롯을 꾸민다. 사악한 행동을 일삼던 연산은 문득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영화 초반에 잠시 나왔다 사라졌던 중전의 방을 찾는다. 여기서 중전의 역할은 흡사 <죄와 벌>의 구원의 인물, 나타샤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에게 내린 벌을 받아들이고 멀리 떠나가는 연산의 모습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무사>(2001)의 마지막 이미지와 유사한 정서를 전달한다. 일생에 걸쳐 애욕에 시달렸던 인물이 마침내 자유와 평온을 찾은 모습은 앞선 서사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 촬영 시기가 한국의 산천이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인 1961년인지라 야외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여럿 돋보인다. 특히 전편인 <연산군>은 세트에서 촬영된 부분이 거의 없고, 실내 장면도 대부분 실제 궁궐 등의 현장에서 직접 찍었음을 알 수 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연산이 말을 타고 여기저기 떠도는 장면을 보면, 배경으로 드러나는 옛 한국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낄 지경이다. <연산군>은 들과 산이 펼쳐졌던 공간으로서 옛 한국을 기억하게 한다. 한 예로, 연산이 장녹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의 흥취는 다른 연산군 영화들이 꿈도 못 꿀 부분이다. 근래 영화들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클로즈업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촬영은 미디엄 쇼트 이상으로 인물에게 다가가는 법이 거의 없다. 또한 와이드앵글로 넓게 퍼진 이미지를 종종 구사해 시원한 인상을 안겨준다. 전후편을 통틀어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영화의 내적인 스케일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데, 어쩌면 이 부분에서 <연산군>의 단점이 두드러지게 엿보인다 하겠다. 단순하게 말해 연산군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연산군 역의 신영균을 포함해 대다수가 기능적인 연기의 선을 넘지 않는다. 영화의 속도는 분명 빠르지 않은데, 인물들은 여기서 등장해 대사를 내뱉고 저기로 사라지는 데 그친다(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연산의 숙부 역할로 나온 허장강일 것이다). 신상옥의 전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보았던 넉넉하고 유유자적한 연기는 여기에 없다. 그 결과, 이야기 전체가 주는 힘이 대단하면서도 매 장면에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실패했다. 신상옥이 싫어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일까? 모르겠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 연산군(장한사모편) 고화질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