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오세요 201호에
- 감독
- 이희성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하연, 하진, 길동, 해일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감독의 투신자살 시퀀스로 담긴 충격적인 영화가 있다. 심지어 연기한 사람은 해당 영화의 감독( 이장호 ) 본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들이 웃통을 벗어 던지고 국회의사당에서 기괴한 춤을 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바로 1984년 개봉작, 영화 < 바보선언 >의 도입부와 결말이다. 개봉 연도를 보면 금세 눈치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제5공화국 전두환 독재 정권의 악행이 가장 극에 치달을 때 제작되고 개봉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을 검색해 보면, 이 영화는 서슬 퍼런 정부의 검열을 피하여 어떻게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자포자기한 상태(김동원, 2008)’에서 만들어진 괴작이자 걸작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검열을 피하고자 극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행으로 채워놓고, 촬영조차도 기행 그 자체였던 사실 덕분에 역설적으로 1980년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초현대적인 함의와 시사점을 주는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신군부 검열 당국이 풍자와 해학에 조예가 깊었거나, 혹은 영화를 보는 눈(교양)을 더욱 갖췄더라면 이 영화 또한 가위질을 당했을 수 있었겠으나 천만다행으로 그러지 못했던 듯 하다. 덕분에 우리는 1980년대 초반 서울을 중심으로, 비인간적인 현대사회(혹은 정치 환경)에서 소외당한 이들이 거니는 한국의 도시공간을 ‘괴상한 시각’으로 2024년 지금 이 시점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공간이 어떤 시각으로 담겨져 있는지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하월곡동 빈민가 영화의 인트로는 주인공인 동칠( 김명곤 )이 하월곡동 빈민촌 주거지를 걸어 내려오는 시퀀스로부터 시작된다. 수 초 동안 마을 주민들이 마치 축제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는 잠시 비추는데, 이 영화에서 ‘인간적인 도시공동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사실상 마지막 장면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다리가 불편한 동칠이지만, 수많은 자동차가 오고가는 큰길에는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육교를 지나가야만 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들에서는 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영화 속에 담긴 야트막한 서민 주거지의 모습은 머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하월곡동 빈민가.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하월곡동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일지도 모른다. 명동과 을지로입구 아마 동칠은 영화 속에서도 잠시 비춰진 8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일까, 다음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명동과 을지로입구 일대를 비춘다. 깔끔하게 정리된 길가, 산뜻한 중형차(현대 그라나다), 고동빛깔의 미도파 백화점과 갓 개업한 롯데백화점 본점과 누가 봐도 썩 세련되지 못한 모습의 동칠은 내내 부조화를 이룬다. 카메라가 미도파와 롯데백화점을 올려다보는 씬은 영화 < 오발탄 >(유현목, 1961)에서 주인공 철호( 김진규 )가 이 부근을 걷는 씬을 연상케한다. 촬영 각도와 흑백·컬러 여부가 다르긴 하지만, 소외되었거나 불쌍한 시민과 화려한 서울 속 백화점 간의 대비만한 극적인 표현 수단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끊임없는 자동차의 행렬과 미도파 백화점(좌측), 롯데백화점 명동본점(우측)이 추레한 차림의 동칠 뒤편을 장식한다. 당대 최고급 승용차였던 현대 그라나다와, 명동 거리를 정처없이 누비는 동칠의 조우. 이대 앞과 신촌 이윽고 동칠은 청계5가 부근의 어느 빌딩에서 투신한 의문의 영화감독의 옷가지와 장신구 등을 탈취한다. 카메라는 빌딩의 옥상에서 청계고가도로와 그 인근 평화시장을 훑다가, 이화여대 정문 앞 번화가를 타임랩스로 추적한다. 장장 1분 동안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4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감탄을 절로 자아낼 정도로 지극히 현대적이다. 일부러 간판과 옷차림과 자동차만을 옛날 것을 가져다가 요즘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1983년의 이대 앞은 40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건너뛰어 2024년 시청자의 눈동자에 내리꽂힌다. 나아가 이대 앞의 상권은 육교에서 동칠이 한눈에 반한 ‘가짜 여대생’ 혜영( 이보희 )이 도시적인 소비를 마음껏 누리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낸다. 실은 매춘부이지만 그림 같은 대학생의 생활을 동경하는 혜영과, 그 뒤를 쫓는 동칠, 그리고 이 둘을 포착하는 카메라를 통해 우리는 1983년의 대학가 상권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번화하기 그지 없는 이화여대 정문 앞의 풍경. 지금도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 앞 골목을 누비는 여대생들과 차량의 행렬. 4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이 씬을 재현하면 어떨까. 이런 혜영을 어떻게든 납치하고자 하는 동칠은 우연히 마주친 자동차 정비공인 육덕( 이희성 )의 택시에 올라타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포니 택시가 이대 앞과 신촌 기차역 앞을 위험천만하게 종횡무진하며 사실상 카 체이스와 비슷한 활약을 펼치는 점도 볼 만한 부분이다. 16분 언저리에 누가봐도 교통 통제라곤 없이 이대 정문으로 포니 택시가 돌진하는 씬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거 무슨 짓인가?” 싶을 정도로 제법 긴박한 느낌을 준다. 이대 정문으로 돌진하는 육덕의 택시. 깜짝 놀란 학생들과 달려나온 경비원의 모습이 뚜렷하게 담겼다. 청량리역 앞 광장 40분부터 45분까지 장장 5분 동안, 이번에는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의 시퀀스가 이어진다. 이대 앞 시퀀스가 그랬듯이, 제법 멀리서 망원렌즈로 인파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주인공들을 담아내는 데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든 ‘장사’를 하려고 남자에게 접근하는 혜영,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동칠과 육덕의 씬이 교차되는 와중에,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인파의 모습은 한 편의 역전 광장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 속 모습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지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 롯데백화점과 코앞에 들어선 200미터급 초고층 주상복합, 현대적인 버스 승강장으로 인해 이 시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당시에 갓 등장했던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롯데리아의 광고, 청량리역 맞은편의 미주아파트와 그 상가건물의 모습만이 40년 전과 지금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망원으로 담아낸 청량리역 앞 광장 씬. '장사' 대상을 물색하는 화면 정가운데의 혜영 너머로 지하철 출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의 고급 유행 식품이었던 롯데리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육덕과 동칠의 뒷모습. 태안군 연포해수욕장 동칠과 육덕, 그리고 혜영은 매춘부의 거주지에서 도망쳐 나와 충남 태안군의 연포해수욕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마도 이 셋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사이 좋게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을 것이다. 54분경, 즐겁게 뛰노는 세 사람의 머리 위로 큼지막하게 비춰지는 ‘연포해변무대’라는 여섯 글자는 이 곳을 찾지 않았던 이라 할지라도 단박에 촬영장소를 캐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금도 야외 무대는 리뉴얼을 거쳐서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며, 부근에는 이 영화의 촬영 기념비까지 세워져 있다고 하니, <바보선언>의 ‘성지순례’ 코스로서 안성맞춤아라 할 수 있겠다. 연포해수욕장의 야외무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세 사람.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혜영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후, 동칠과 육덕은 대관령의 목장에서 그들의 방법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장례’ 의식을 치러준다. 그리고 이 둘은 비가 쏟아지는 국회의사당 앞, 여의도 광장에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막판에 이르러서는 웃통까지 벗어 던진다. 이대 앞과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 그랬듯이, 이 장면도 사전에 촬영 허가 없이 기습적으로 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런 장면을 찍겠다고 사전에 촬영 허가를 낸다고 해서, 수리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이 시퀀스는 사전 지식 없이 보더라도, 동칠과 육덕이 작중에서 겪어 온 부조리함과 그에 기인한 울분을 국회의사당으로 대표되는 ‘국가’를 향해서 남김없이 토해내는 의미로 단박에 이해될 수 있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의 제11대 국회에는 야당다운 야당이라곤 일절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두환이 속한 여당 민주정의당과, 국가가 개입한 ‘관제 야당’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만큼 이 시퀀스는 더더욱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군사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제11대 '괴뢰 국회' 앞에서 반라의 광기를 보여주는 동칠과 육덕의 뒷모습. 이상으로 꼭 40년 전에 개봉한 영화, <바보선언>의 주요 공간을 짧게나마 돌아보았다. <바보선언>은 감독 스스로가 평했듯이 제대로 ‘각을 잡고’ 찍은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와 검열이라는 사회적 한계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면서 제작된 덕분에, 당대의 공간적 배경이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꾸밈없이 담겨진 영화가 되었다. 40년 전과 비교하여 물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도시 곳곳이 말끔하게 새단장을 거친 지금이지만, 영자원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 에 올라온 이 영화의 덧글란에 ‘걸작’이라는 상찬이 계속해서 달리는 것은 분명 이 영화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원, “ 사전검열이 만들어낸 명작 <바보선언>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2008. 9. 2. 김성욱, “ [한국영화걸작선]바보선언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홈페이지, 2012. 11. 28.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90학번인 나에게 1980년대는, 분명 살긴 했지만 미지의 시간대였다. 그 10년 동안 나는 학생이었고, 거리보다는 교실에서 세상을 이해했다. 몇몇 사건이 기억나긴 한다. 계엄령으로 집 근처 길에 단 한 사람도 다니지 않는 날이 있었고, 중학교 땐 여의도광장에 나가 외국 순방길에서 돌아오는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도 꽤나 흔들었다. 고등학교 땐 인근엔 대학교가 있어서 데모 구경을 숱하게 했고, 집 앞 골목에서 백골단에게 두들겨 맞는 대학생을 보기도 했다. 고3 땐 전교조에 가입한 국어 선생님과 윤리 선생님이 잘렸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모르고 살았다. 내가 < 바보 선언 >(1984)이라는 영화를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제목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비디오 대여점 한구석에 두꺼운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그 영화를 선뜻 집어 들 용기는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왜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영화, 앞부분에 대사 안 나오는데 그거 테이프가 잘못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원래 그런 거니까 괜히 다시 가져오지 마세요.” 대여점 주인 아줌마의 충고가 생각날 뿐이다. 별 기대 없이 만난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은 나에게 이미 완료된 1980년대를 비로소 알려준 영화다. 나에게 그 영화는 파격적인 다큐멘터리이자 충격 영상이었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깬다’. 펜과 크레파스로 거칠게 그린 그림, 어린이(이장호 감독의 아들인 이누리)의 내레이션, 국악과 전자음이 뒤섞인 사운드, 그리고 이장호 감독이 직접 출연한 첫 장면. 그는 옥상 위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이때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신음 소리처럼 감독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활…동…사…진…멸…종…위…기….” 이 영화는 감독이 자살하는 심정으로 만든 영화였고, 단 5분 만으로도 나는 뒤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얼얼함을 느꼈다. < 바보 선언 >에서 어떤 스토리를 추출해내려는 것만큼 ‘바보’ 짓도 없을 것이다. 김명곤 이 맡은 동칠이(영화 내내 ‘똥칠이’로 발음되는)와 혜영이( 이보희 ) 그리고 육덕이( 이희성 )가 남한 사회를 횡단하는 <바보 선언>은 기승전결을 무시하는 ‘공간의 영화’다. 옥상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이화여대 앞을 거쳐 창녀촌을 지나 청량리 역 앞으로 달려가고, 탁 트인 바닷가에서 어두컴컴한 고급 요정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혜영의 죽음을 맞이한다. 동칠이와 육덕이는 푸른 들판에서 혜영이의 진혼제를 지내고, 여의도광장에서 몸부림치듯 춤을 춘다. < 바보 선언 >을 다시 보면서,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이 영화가 일종의 SF(라는 표현이 조금 그렇다면), 적어도 ‘미래적 관점의 영화’라는 것. “옛날 한 옛날 20세기가 끝날 무렵 우리나라에 동칠이라는 바보 같은 어른이 살았습니다”라는 어린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바보 동칠이와 육덕이 같은 훌륭한 조상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행복합니다”라는 다소 역설적인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21세기, 어쩌면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1980년대 풍경이다. 흥미로운 건 2010년에 만나는 1984년 영화 < 바보 선언 >이, 사반세기가 넘는 시차를 두고 강렬하게 진동하며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진정한 클래식이다. 여전히 옥상은 죽음의 공간이고, 자본주의는 그 천민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동칠이와 육덕이는 비오는 날 창녀촌의 어느 담벼락 밑에 추레하게 쪼그려 앉아 있는데, 그 정서가 낯설지 않은 건 우리가 지금도 가난한 자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의도광장에서 그들의 시선에 포커스 아웃 상태로 잡히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마치 지금의 정치 상황을 예언이라도 한 듯해서 씁쓸하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스포츠에만 열광하고 영화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대, 아니 이젠 스포츠 경기처럼 영화의 스코어에만 관심을 가지는 ‘활동사진 멸종위기’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 바보 선언 >이 심금을 울리는 또 하나의 요소는 ‘소리’다. 당시 한국 사회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뒤흔들던 전자오락의 사운드는 국악이나 각종 효과음과 몽타주를 이루며 카오스의 세계를 만든다. ‘새타령’과 팝은 뒤엉킨다. 식민지 가요 ‘감격 시대’의 반어법, “달캉달캉~”으로 시작하는 구전가요의 은유법, 정처 없는 그들의 뒷모습에 깔리는 국악가요 ‘어디로 갈거나’의 직유법은 거의 대사가 없는 이 영화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공간인 여의도광장에서 장엄한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가 흐를 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소년의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고, 관객의 감정도 한 음씩 고조된다. < 어둠의 자식들 >(1981)의 속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사전 심의에서 제목과 시나리오의 전면 수정 지시를 받았고, 제작 편수를 채워야 수입 쿼터를 받을 수 있기에 한 달 안에 만들어야 했던 영화. 그래서 제목도 엉터리로, 시나리오도 엉터리로 써서 일단 심의를 통과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영화 문법을 정반대로 뒤집어 만든 영화. 배우들을 청량리역 광장에 풀어놓고 카메라는 숨겨놓은 채 촬영했던 영화. 망가진 시대에 일부러 망치려는 듯 만든 < 바보 선언 >은 형식과 내용 모두 저항하는, 한국영화사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러닝타임이다. 언젠가 이장호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전두환 독재 정권과 내가 함께 만든 영화”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10여 년이 흐른 후에 만든 < 천재 선언 >(1995)에 대해 “< 바보 선언 >에 절실한 저항의 에너지가 있었다면, <천재 선언>은 강력한 동기가 없이 <바보 선언>을 추억하는 영화였다”며 반성했다. 절실한 심정으로 선언했던 영화 <바보 선언>. 아마도 이토록 절규하는 영화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