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듯한 이 가슴을
- 감독
- 이상언
- 제작년도
- 1979
- 출연
- 이동진, 김애경, 하명중, 조경희, 서지숙, 김만, 한국남, 손성진, 이강령, 장훈, 왕정치, 송천미
처음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을 때 영화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왜 이영화가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가 최근만 해도 < 택시운전사 >( 장훈 , 2017)가 나왔고 이전에도 이미 여러 형태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많은 작품이 나온 데다 역사적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된 지가 수십 년이 지났는데 과연 어떤 새로운 시선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라면 극적 장치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도 많지 않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혀 경험하거나 가까이 접할 수 있었던 세대도 아닌 젊은 감독의 작품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게 된 첫 번째 계기이자 믿음은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영화제의 권위에 기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영화제가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선택의 숨결과 강고한 시선을 믿었고 심사위원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와 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지지라는 것에서 나름의 객관성을 부여 받은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극우논객으로 잘 알려진 지만원씨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적극 개입해 활동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88년 광주청문회부터 이미 진실이 상당부분 밝혀졌고 5.18특별법도 제정되었고 쿠데타의 장본인인 전두환이 20여 년 전 사형선고까지 받은 마당에 새삼스레 저런 억지 주장을 하는 근거가 뭔지 참으로 황당한 궁금증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법원이 지만원씨에게 2억 원이 넘는 명예훼손 손해배상금을 피해자들에 지급하라고 판결이 나 이 부분은 완전히 허위사실임이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유튜브 등에 이런 가짜뉴스가 넘치고 있고 이를 믿는 이들이 또 다시 전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러한 허위사실로 유포자가 손해배상금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에서 악의적 역사팔이가 얼마나 해로운가는 역으로 증명되었지만 유수의 대기업을 비롯해 국가정보원까지 이런 매체에 광고가 실리고 있으니 과연 이 영화 < 김군 >( 강상우 , 2018)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 지가 더 궁금해 졌다. 또한 지만원씨가 주장한 바로 그 김군이 북한 특수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취재 초기 이미 강상우 감독도 알았다고 하니 그는 그 이후 김군이라는 제명으로 이 영화를 어떻게 전개했을 지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 영화의 내용은 극히 간단하다. 포스터에 보이는 바로 그 신원미상의 인물인 김군이 누구인지 그는 왜 거기에 있었는지 등을 알아보겠다는 젊은 감독의 패기가 무려 4년이나 이어지면서 이 영화가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만원씨의 광주민주화운동 북한 특수군 개입설이라는 대립항이 나오면서 영화가 좀 더 긴장감을 가지게 된 것도 웃픈 현실이지만 영화는 이를 증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십분 발휘되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왜 시민군이 되어야 했던가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이렇게 절실하게 담아낸다는 것은 어떤 영화적 재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자 범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인터뷰이이자 주인공이자 또 다른 김군이었던 이들은 계엄철폐나 독재타도와 같은 거대 담론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군부의 정치가 한국사회에 끼쳐온 폐해에 대해 사회과학적 인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했던 이들이 자신의 이웃과 시민들이 군부에 무참히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 본연의 의로움과 정의로움으로 떨쳐 일어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김군>은 보여주고 있다. 감독 역시 김군이 누구인가를 꼭 밝혀내겠다기보다는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그 시대를 살아간 김군이라는 보편적 시민에 대해 다가간 듯하다. 이것이 영화적 성취로 이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과 빵과 김밥을 나누어주고 먹던 풍경이나 그 살벌한 상황에서도 그저 같이 다니고 서로를 위하던 모습이 너무 좋았다는 어느 시민군의 말처럼 인간이라면 응당 느껴야할 자연스런 감정과 선한 정서가 그 시대 김군으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역사적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도 <김군>이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적어도 오늘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상반된 주장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도 평화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깊은 고마움을 표시해야한다. 다시 평범함을 빌어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시민군이 당시 공포보다는 행복감을 느꼈고 시위에 참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지만 그 이후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취직도 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김군>은 우리에게 뭉클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울러 거창한 장치나 높은 제작비가 아니라 단순하고 집요하고 깊이있는 작가정신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극히 당연한 그러나 지금의 영화제작환경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진실을 영화 <김군>은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 기생충 >(2019)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한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한국영화 100주년에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그 의도가 한국영화(사)를 알리기 위함이든 아니든, 봉 감독 덕분에 대중은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 하녀 >( 김기영 , 1960)를 보면서 계단의 이미지와 기운을 얻었다”고 밝힘으로써 한국 고전영화에 많은 애정과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이 칼럼을 쓰게 된 것 역시 모두 봉 감독의 발언 덕분이다. 순전히 그의 주장에 힘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기생충>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놓고 있으니, 필자 역시 숟가락을 딱 한 번만 올리겠다. (감독님, 리스펙트!) <하녀> <기생충>의 수상과 함께 한국영화 성장이나 국내 관객 ‘2억명 시대’ 등이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정작 우리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어떻게 맞이할 지는 이야기하고 있지 못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이미 4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을 구체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100주년 옴니버스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 단행본 출판(한국영화 100년 100경(가제)) 및 한국영화의 디지털 복원화 등이 주요 골자다. 단성사에서 1919년 10월 27일 상영된 < 의리적 구토 >( 김도산 )를 한국영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니, 10월이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100주년 관련한 축제의 장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과연 100주년 행사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혹은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새롭게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기우(!)에 사로잡힌다. <아리랑> 최초의 한국영화나 전설의 영화 < 아리랑 >( 나운규 , 1926)을 볼 수 없고, 그 영화들을 상영한 단성사 역시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개인적으로 장훈 감독의 < 택시운전사 >(2017)를 봤을 때 초반부부터 마음이 아팠다. 지난 세기를 같이 한 을지로의 국도극장이 현실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라진 극장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더욱이 한때 영화의 메카로 불리던 충무로는 이미 노쇠해진 지 오래다.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예매를 할 수 없던 시절, 임권택 감독의 < 서편제 >(1993)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단성사에 줄을 서는 놀라운 광경은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떤 영화를 특정 상영관에서 봤다는 식의 기억이나 그 극장에서만의 느낌이나 정서(심지어 <기생충>이 일깨운 냄새까지) 등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획일화된 멀티플렉스의 시대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다소 사적인 체험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100년이라는 굳건한 영화의 역사를 현실의 대기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불안감을 숨길 수 없다. <서편제> 봉 감독이 이른바 ‘계단 시네마’라고 얘기한 대로, 가족이 중심이 된 한국영화 안에는 계단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았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이만희 감독의 < 마의 계단 >(1964)부터 손재곤 감독의 < 이층의 악당 >(2010)과 <기생충>까지. 개인적으로 <이층의 악당>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영화가 신상옥 감독의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의 유머러스한 패러디이자 중요 공간인 계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층의 악당>이나 <기생충>을 본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오래 전에 1960년대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살아간 것이다. 물론 아주 쉽게 말하면, 그 영화들에 대한 기억, 추억, 향수가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지만,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첫 단추는 한국영화사를 이해하고, 한국 고전영화를 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만약 내 안에 한국영화의 옛 숨결이 살아 있다면 다시 일깨워야 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굳이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고 부르며 상대적으로 폄하하던 시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젊은 영화광조차 한국영화의 역사(1950, 60년대 전성기)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 한국영화의 클래식이나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런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대중이 옛 한국영화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6월에는 서울극장에서 ‘한국영화100주년 특별전, 합동영화사와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세계 속의 한국영화, 한국 안의 세계영화’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었다. 성과를 떠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전영화 프로그램들이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한국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선 누구나 한 번쯤 한국영상자료원(여기서 다양한 세대가 고전영화를 함께 경험하는 것은 지극히 소중하다)과 사랑에 빠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영화에 대한 기억, 경험 등을 너무 빨리 잊은(혹은 잃어버린) 지도 모른다. 100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영화산업과 영화인들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국영화가 항상 대중과 함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대중이 함께 그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문화 이식이나 학습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단성사도, 국도극장도 없지만, 영화(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이 무척 시급한 상황이고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관객이 고전영화를 즐기고 더 많은 영화를 요구하는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00년을 맞이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전영화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지금의 세대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그것이 100세를 맞이한 한국영화를 위한 화답이다.
지난 12일 SK와이번스가 8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길었던 프로야구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소재는 야구이다. < YMCA 야구단 >(김현석, 2002)에서도 그려졌던 것처럼 20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 세기 넘게 한국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 중 하나가 야구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피난지인 부산에서 전국 리그전이 개최될 정도 1) 로 야구는 역사 현장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뉴스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야구는 스포츠 소식 중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긴 역사를 갖는 만큼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야구 뉴스들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야구 소식’이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까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기별로 정리해 야구 역사의 발자취를 부분적으로나마 조명해보려 한다. 1950년대 영상은 아무래도 미국이 제작‧배급한 뉴스 위주로 보존되어 있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미국 메이저리그 관련 소식이다. 특히 한국전쟁 관련 뉴스에서는 유명 메이저리거들의 한국전 참전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적인 4할 타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전쟁에서 귀환하는 푸티지(< 군 복무 마치고 귀국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 Ted Williams Back From Korea >(1953))라든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출신으로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커트 시몬스(Curt Simmons, 1929~ )가 한국전 참전 소식을 직접 알리는 캠페인 영상(< AMERICA IN TRANSITION >(1950))을 들 수 있다. 커트 시몬스 영상의 경우 장래 유망한 젊은 투수가 시즌 중에 징병 되는 상황을 야구선수로서의 모습과 군인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본인의 내레이션을 삽입해 한국전 참전의 당위성을 높이는 프로파간다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유명 선수들의 참전 소식과 함께 월드시리즈의 경기 결과를 알리는 뉴스들이 ‘해외소식’의 한 꼭지로 전해지기도 했다. <AMERICA IN TRANSITION>의 커트 시몬스 장면: 투구를 하는 커트 시몬스의 모습이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전환되고 한국전쟁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전하며 자연스럽게 미군 참전의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보다 다양한 야구 소식들이 전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비중이 크고 눈여겨볼 것은 해외 야구팀의 내한과 친선시합 뉴스이다. 미국 대학팀이나 청소년 야구팀, 일본의 다양한 야구팀들의 방한은 한국야구의 ‘이벤트’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친선시합들은 한시적인 국제 이벤트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장비 원조와 기술 전수를 받음으로써 한국야구가 성장하는 데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 야구팀의 경우 대학 야구팀부터 실업 야구팀 그리고 내한을 위해 결성된 재일교포 야구팀까지 다양한 리그의 야구단들이 방한해 전국의 야구팀들과 시합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복절 행사’ 같은 국가행사 기념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기획’된 재일교포 야구팀의 방한과 친선시합들은 1960년대 실업 야구리그가 자리를 잡고, 고교야구리그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스포츠 자체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과는 별개로 이처럼 국가가 기획해 한편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한 뒷이야기는 당시의 뉴스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2014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 그라운드의 이방인 >(김명준, 2014)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 1957년 내한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의 모습 (우) 시합이 열린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관중 (<국방뉴스 제73호>) 1957년 경무대를 방문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대한뉴스 제126호>) 1962년 일본 도에이팀 소속으로 내한 시합을 가진 장훈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대한뉴스 제391호>) 1970년대는 명실공히 고교야구의 시대였다. 특히 1972년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등학교를 상대로 9회 말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한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불리며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군산상고 야구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이 경기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대한뉴스에서 다루는 것을 넘어 별도의 문화영화(<승리의 기록>(1976))로 제작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TV 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긴 했지만, 스포츠 중계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TV보다는 여전히 라디오 중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따라서 시차는 있지만, 뉴스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잦은 편이었다. 따라서 당시 고교야구경기 영상을 보면 현재 프로야구의 인기에 버금갈 정도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교야구의 열기는 뉴스와 문화영화의 인기 소재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하이틴영화의 인기와 맞물려 < 영광의 9회말 >( 김기덕 , 1977), <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 >( 정인엽 , 1977) 같은 야구영화 제작에도 영향을 끼쳤다.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는 실제 군산상고 야구부원들의 출연을 두고 경쟁을 벌인 끝에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가 군산상고를 소재로 제작을 했다. 이에 따라 <영광의 9회말>은 경북고 야구부를 영화에 출연시켰다.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는 김기덕 감독의 구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한 군산상고 야구팀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승리의 기록>)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의 한 장면 1) 『동아일보』, 1951년 10월 6일자 2면. 출처 < Ted Williams Back From Korea >(1953), < AMERICA IN TRANSITION >, < 국방뉴스 제73호 >(1957) -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 승리의 기록 >(1976), < 대한뉴스 제126호 >(1957), < 대한뉴스 제391호 >(1962) - KTV e영상역사관 공영민, 「김기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편, 『 2016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60~1970년대 한국영화 2 - 김기덕‧김수동‧김종래 』, 한국영상자료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