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
- 감독
- 이상훈
- 제작년도
- 2008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가르는 기준은 육체다. 아아. 저 한마디 뱉는 순간 벌써부터 무수한 항변과 반론들이 들려온다. 기실 땅바닥만 찍지 않는 이상(헤어조그가 그런 적이 있었다고 재반론하고 싶지만 참는다) 육체를 찍지 않는 영화는 100년 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육체의 범위를 문자 그대로(“corpus”) ‘물체’로 조금만 확장하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모든 피사체가 이미 육체다. 심지어 카메라도 육체이고, 그걸 찍고 보는 작가도 관객도 죄다 육체다. 하지만 고전적 육체와 현대적 육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이미지의 변화를 표현하는 주인행세를 함에는 어떤 차이도 없겠지만 말이다. 고전적 육체는 정신의 담지자로서 먼저 나타난다. 고전적 육체는 정신적 가치보다 더 앞설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드레이어와 베리만의 영화에도 육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얗게 지워져서 지금이라도 얼른 복원되어야 할 정신의 심도보다 먼저이진 않다. 그저 정신이 심도를 복원할 때까지 느릿느릿 움직여주고, 그에 필요한 말씀(<오데트>)을 전달해주면 그만이다. 고전육체는 정신의 수단인 셈이다. 반면 현대적 육체는 (신을 잃어버려서 그런지)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 나타난다. 즉 진짜 육체는 피 흘리고 다칠 수 있는 육체다. 진짜 육체는 죽을 수 있는 힘으로 정의된다. 팔다리만 있다고 육체가 아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수 있어야, 그에 비명 지르고 펄쩍 뛸 수 있어야 진짜 육체다. 프레이밍에 의해 가려져 있던 잔 다르크의 가멸력을 화형대로 옮겨놓은 브레송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 육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다. 정신의 심도? 뜨거워 죽겠는데 무슨 심도 타령일까. 온몸의 신경이 화염에 불타오를 때 심도보단 비명이 먼저다. 요컨대 고전적 육체가 불멸의 정신적 가치(정의ㆍ믿음...)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때, 현대적 육체는 소멸의 물질적 가치를 위한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누구 말을 빌리면, 진짜 육체는 가멸성의 “순수수단”이다. 표표히 사라지는 서부극 인물 죽을 수 있는 육체만이 진짜 육체라고 한다면, 고전 서부극엔 육체가 없다. 아무리 역마차의 속도가 빨라 봤자 그 종착지는 아메리카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셰인과 링코 키드는 죽지 않는다. 그저 표표히 사라질 뿐(물론 죽은 거나 진배없다는 추가해석이 가능하지만). 더욱 결정적인 사례는 종교영화들의 경우다. 종교적 상황들을 다루었던 고전시대극들에서 육체는 바리새인이나 유대인 할 것 없이 모두 휘황찬란한 의상들로 가려져 있다. 드밀과 와일러의 영화에서 육체보다 색깔이 먼저인 이유는 다시 색깔이 정신의 심도를 방해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테크니컬러 총천연색에 모세의 남루한 넝마주이 패션이 극한의 대조를 이룰 때, 우리의 영혼은 더더욱 가열차게 기도 모드에 돌입할 수 있음이다. 즉 고전종교영화에서 의상은 정신의 척도만을 내어주지, 육체의 척도를 내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로마 군인들이 바닷물에 휩쓸려 죽는 것마저도 그나마 파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육체가 죽었단 사실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의 폭정이 죽었단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육체의 출현을 방해하던 고전적 문법은 클로즈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 한 방이면 세계의 모든 것이 거기서 표현되고 있었다. 베리만은 이걸 한껏 즐겼다. 클로즈업은 육체의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영혼의 가속도로 대체한다. <잠입자Stalker> (1972) 반대의 상황들로 가보자. 웨스턴을 지나 네오웨스턴으로 가보면, 거기엔 육체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육체가 있어도 너무 육체만 있다. 정의감이나 신념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금 한 덩이 차지하기 위해서 동물적 본능만 남은 네오웨스턴의 육체들은 가히 ‘사막의 좀비들’이라 할 수 있다. 페킨파의 < 와일드 번치 >에 한 총잡이는 기관총 드립에 사망하여 널부러진 한 시체에서 금니를 캐내려고 한다. 이것은 모세의 정신적 넝마주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동물적 넝마주이다. 심지어 페킨파는 육체의 가멸성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을까 슬로우모션으로 죽는 순간을 찍어댔고, 많은 평론가들에게 상욕을 들었다. 페킨파의 슬로우모션은 클로즈업이 표현하던 영혼의 가속도와 대비되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가속도다. 헐. 현대의 신학영화는 그렇지 않을 거야! 여전히 신학은 정신이다, 육체가 아니라! 라고 울부짖는 그대에게 일독을 권장하는 영화는 타르콥스키의 영화다. 비록 그가 인터뷰에서 열심히 “영성”과 “희생”에 대해서 말하지만, 정작 그의 이미지들을 보라. 거기엔 안개와 유황 가스를 뒤집어쓰고 어쩔 줄 몰라하는 육체, 자신의 존재를 잊을까 봐 초원 위에 마치 비디오데크가 고장 난 것처럼 일시 정지된 상태로 몇 분이고 서 있는 육체, 무엇보다도 공중부양하는 육체가 있다. 이른 결론으로 건너뛰자면, 정신성의 회복을 위해 타르콥스키에게 먼저 고양되어야 할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인 것이다(물론 이건 인간의 육체만은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타르콥스키는 클로즈업을 마뜩잖아 했다. 클로즈업이 보고 싶나? 말씀을 쏟아내던 입이 삭제된 뒤통수 클로즈업이나 봐라(< 스토커 >). 현대적 육체는 클로즈업을 경멸한다. 얼굴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예외가 있다. 얼굴들을 겁나게 이어 붙여서 줄줄이 비엔나로 엮어낸 후 맥놀이 하듯 겁나게 흔들면 다시 육체가 나타난다. 이것이 카사베티스의 경우이고 그의 독특성이었다. 천의 얼굴은 하나의 육체와 맞먹는 셈이다(<얼굴들>). 오발탄 (1961) “가자...가자..” 요컨대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가르는 기준은 ‘고통’이다. 고통이 없는 모든 영화를 고전적이라고, 고통이 있는 모든 영화를 현대적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을 터다. 현대 신학영화는 이 기준의 반대급부이기는커녕, 이 기준을 가장 먼저 밀고 나갔던 고통의 첨병들이었다. 유현목 의 영화들이 타르콥스키보다 이른 현대적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거기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근만근의 짐짝”에 짓눌릴 때의 압사의 통각이고, “가자...가자..”의 환청에 고막이 찢어지는 통각이다(< 오발탄 >). 아무리 클로즈업과 의상으로 가려봐도 이 고통의 파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얼굴 안에 충치는 하나쯤 박혀있기 마련이고, 파동은 육체의 신경과 힘줄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이다. < 막차로 온 손님들 >에서 도마질 소리에서 괘종시계 소리로의 이행을 들어보라. 모세가 듣는 신의 목소리는 노래방 마이크에서와 같은 에코라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유현목의 세계는 노래방이 아니다. 십계현판이라는 마이크도 없는데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그 마이크는 내 뇌 속에, 내 신경 속에 이미 있다. 이건 거의 고막의 화형식이다. 너는 죽는다. 육체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에 대한 통각 없이 아무것도 아니다. 신은 압력이 되었다(타르콥스키는 “시압time-pressure”이라 불렀던 그것). 이것이 유현목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다. < 순교자 >에서 신부를 휘어 감는 문제는 신이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그건 신은 없는데, 어떻게 십자가가 있느냔 것이다. 저기에 우뚝 서서 이 폐허를 압박하고 있는 파동의 중심으로서의 십자가가. 이 모든 측면들이 유현목을 한국최초의 육체적 작가로 만든다. 유현목이 영화는 “체험”이라고 강조함을 잊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몸의 경험인 것이다. 고통으로만 존재하는 신념의 상태.
아마 ‘걸작의 재발견’의 의도는 세월 속에 잊힌 빛바랜 보석 같은 작품을 찾아내 글심(文勢)으로 닦아 본래의 광채를 되돌려 주자는 데 있을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꼭지를 읽는 주된 재미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걸작, 즉 관객이나 평론가에게 버림받은 ‘진흙 속 진주’를 건져낸다는 의외성일 것이다. 그런 기대치를 배반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 내가 추천하는 영화는 한국적 리얼리즘의 대명사로 빛나는 살아있는 걸작 < 오발탄 >(1961)이다. 자유당 말기, 영화인들이 쏘아 올린 < 오발탄 > < 오발탄 >의 원작은 1959년에 발표된 월남 작가 이범선의 동명 소설이다. 불혹의 늦깎이 작가였던 그는 이 소설에서 실향민의 절망적인 삶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흔을 묘파하며 남한 사회의 ‘자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머니, 그래도 남한은 이렇게 자유스럽지 않아요?” 가자,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노모를 설득하기 위해 철호는 이렇게 말해보지만 죽지 않기 위해 선택한 자유는 그의 가족을 죽지 못해 사는 빈곤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해방촌이 폭격으로 무너지던 날 노모는 미치고 말았고,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는 제대 후 2년째 무직이며,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의 나일론 양말은 뒤꿈치가 뚫렸다. 철호가 치료비가 없어 치통을 참는 동안 영호는 강도가 되고 아내는 아이를 낳다 죽는다. 압도하는 현실 앞에 무기력한 가장 철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썩은 이를 뽑아내는 것뿐. 어딘가 가야만 하지만 그는 조물주의 오발탄인 양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입에서 선지피를 흘리며 까무룩 의식을 잃어가는 철호의 귓가에는 노모의 “가자!” 소리가 환영처럼 들린다. 1950년대 후반의 한국영화는 멜로드라마의 전성기, 코미디영화의 개화기였다. 입도선매 식으로 지방 흥행사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제작비를 대주던 시절, 이 암울한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는 데 나서는 투자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시대의 모순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대명제에 공명했음일까. 영화인들이 한뜻으로 뭉침으로서 이 걸작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해방 전부터 잔뼈가 굵은 거장 김학성 (촬영)과 김성춘 (조명)이 신예 감독에게 찬동해 동인제로 크랭크인했고, 당대 최고 인기 배우였던 최무룡 과 김진규 를 비롯해 전 배우와 스태프가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 오발탄 >이 조명한 전후 한국사회 유현목 감독은 < 오발탄 >을 1년여에 걸쳐 나누어 찍었다. 어려운 자금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름 한 자도 허투루 낭비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이 도리어 철저한 사전 구상과 혼신의 연기를 낳았다. 감독은 재능과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빈약한 세트를 치밀하게 짜인 구도와 동선으로 채웠으며, 배우와 스태프들은 늘 우동 한 그릇으로 식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어 실제로 배가 고팠다. 그러니 늦봄이 배경임에도 종종 화면을 흐리는 배우들의 입김은 옥의 티라기보다는 그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인 셈이다. 촬영 도중 < 오발탄 >은 4·19를 맞이했고 카메라는 더 과감하게 현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영화는 충치를 우직하게 썩히고 있는 소시민 철호보다는 영호와 그의 전우들, 국가를 위해 몸 바쳤지만 갈 곳 없는 청춘들의 울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상이용사에 대한 직업 알선도, 연급 지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젊은 상이용사들의 염세자살 사건이 종종 신문에 실리던 시기였다. 그런 맥락에서 영호의 범죄는 생계형 범죄, 사회적 범죄인 셈이다.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영화에는 영호가 복개 중인 청계천 수로를 따라 도망가는 신이 있다. 뒤쫓아 오는 경찰들을 향해 영호가 쏘아대는 총소리에 아기 울음소리가 겹치면서 목을 맨 여인의 시체가 프레임 안에 잡힌다. 생활고로 인해 자살을 택했을까? 어미의 식어가는 등에 업힌 아기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영화 속 명숙의 대사를 상기시킨다. “오빠, 어떻게 하면 미칠 수 있어요?” 이렇게 < 오발탄 >은 죽거나 미치지 않고서야 견디기 힘든 비정한 시대를 고발했다. 깨어진 유리, 시대적 비극 < 오발탄 >에는 유리가 깨지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한다. 영화는 어느 술집의 유리문이 깨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술에 취한 영호들이 소란을 피우다 깬 것인데 그들은 유리값도 술값도 물지 않고 군가를 부르면서 거리로 나간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영화사의 유리문이 깨진다. 원작에는 없지만 아프레걸 타입의 여배우 미리가 영호의 애인으로 등장해 상이군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출연을 알선한다. 그가 입은 옆구리의 관통상이 이용가치가 만점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보여달라는 조감독의 주문에 영호는 차라리 더 장사가 잘되게 눈도 코도 다리도 없는 놈으로 내용을 고치라며 유리문을 때려 부수고 나간다. 요컨대, 유리를 깬다는 액션은 시대적 울분의 발로인 것이다. 첫 장면은 전쟁으로 몸 상하고 사회의 홀대로 마음 상한 ‘상이용사’의 울분을, 두 번째 장면은 타인의 고통까지도 상품화하는 타락한 영화계에 대한 감독의 울분을 표출한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두 장면은 깨어진 유리처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전조로 기능한다. 영호는 결국 권총강도가 되어 ‘법률선’마저 깨뜨리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대사는 자신의 범죄 역시 목매단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시대적 비극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나를 저 네거리 한복판에 세워놓고 목을 매달아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오발탄 >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오발탄 >이 개봉된 것은 1961년 4월. 그러나 한 달 뒤에 들어선 5·16 군사정부는 어두운 내용과 용공성(미친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서)을 이유로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영화제의 한 심사위원이 이 영화를 본선에 올려놓았기에 미국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군사정권이 상영 금지를 철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발탄>의 진정한 복권은 관객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예술파 감독 유현목 이 상업 감독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철호의 처지에 공감한 샐러리맨들은 영화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늦도록 막걸리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리얼리즘, 그것이 바로 <오발탄>이 암담한 현실을 이기고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발견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