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캅
- 감독
- 피터 하이암스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장 끌로드 반담, 론 실버, 미아 사라, 킴 콘드라소프, 비나 수드, 콜 브라드센, 제임스 류, 찰스 안드레, 스콧 니콜슨, 어니 잭슨, 톰 에이릭슨, 로라 머독, 달턴 피셔, 도리스 블롬그렌, 이안 트레이시, 칼럼 키스 레니, 톰 글래스
장 클로드 반담은 추억의 이름이다. 그 옛날 <투혼>으로 처음 만나 < 어벤저 >로 스타덤에 올랐다. 뭐 요즘에야 < 옹박 >부터 < 레이드 >에 이르기까지 온갖 리얼 액션들이 난무하는 영화계지만 <투혼>과 <어벤저>가 등장했던 당시 그런 순도 높은 리얼 액션은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아직 시네마테크니 예술영화전용관이니 그런 건 꿈도 못 꾸던 시절 거실에 보통 하나 있는 VHS 비디오데크로 각종 필터링 안 된 영화들을 잡탕으로 구경하던 당시 영화광들은 장 클로드 반담을 비디오로 먼저 만났다는 것에 자부심은 커녕 비디오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B급 히어로’ 정도로만 인식했다. 주로 우리가 ‘반담이형’이라고 부르던 장 클로드 반담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저렴했다. < 지옥의 반담 >이나 < 더블 반담 > 등 그의 이름이 영화 제목에 등장했지만 그것은 워낙에 반담이형이 액션 광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입사에서 억지로 붙인 제목이었다. 그렇게 반담이형은 블록버스터 < 유니버설 솔져 >로 도약하나 했더니 역시 ‘1류’가 되지는 못하고 이후 < 페이스 오프 >를 성공시킨 오우삼의 빈약한 할리우드 데뷔작 < 하드 타겟 >이나 한동안 숀 코네리 주연의 <아웃랜드>니 <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의 공식 속편 < 2010 >같은 영화들로 잘 나갔던 피터 하이암스가 커리어 하이에서 내려온 뒤의 작품 < 타임캅 >과 <서든 데스> 등 ‘괜찮은 감독의 B급 영화’로 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21세기가 오자 반담이형은 급격히 잊혀졌다. 척 노리스로부터 스티븐 시갈 등 생각이 없이 액션만 달리던 ‘추억의 동작 영웅’ 중의 한 명으로 농담에나 등장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해마다 작품을 하며 <세컨드 인 코맨드>니 < 언틸 데스 >니 하는 제목들로 무의미하게 필모그래피만 늘여가고 있던 중, 2008년 드디어 ‘장 클로드 반담’이라는 그의 이름이 공식 제목으로 사용된 영화를 찍게 된다. 영화 제목이 < 장 클로드 반담 JCVD >다. 이 영화 < 장 클로드 반담 >에서 장 클로드 반담은 장 클로드 반담 역을 맡았다. 자전적인 전기 영화냐고? 아니다. 영화 속의 장 클로드 반담은 앞서 설명한 ‘한물 간 왕년의 스타 장 클로드 반담’ 역으로 등장한다. 2008년 그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연기한다. 대체 무슨 영화길래 설정이 이런 것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누가 봐도 뻔한 액션영화에서 롱 테이크로 각종 권격 액션 연기를 하는 반담을 만나게 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던 반담은 컷을 외치는 감독에게 다가간다. 마흔일곱의 나이로 커트를 나누지 않고 통으로 찍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항의하는 반담에게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건방지고 어린 감독은 ‘오우삼을 할리우드에 데려간 배우라고 내 영화를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들면 안 되지’라고 시큰둥하게 말하며 무시할 뿐이다. 와중에 감독은 할리우드를 증오하는 듯 할리우드 간판 사진에 다트 핀을 날리고 있다. 그렇게 옛날의 영광은 물론 직업적으로도 ‘찌그러져’있는 반담은 법정으로 출두한다. 바로 딸에 대한 양육권 재판이다. 상대 변호사는 반담의 과거 영화들을 열거하며 그가 영화 속에서 폭력에 몰두했다고 몰아세운다. 반담이 출연했던 영화의 DVD들을 한 장 한 장 집어 던지면서 “차로 뭉개고, 사람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고, 사타구니를 발로 차고...” 그가 행했던 연기들을 열거하며 딸을 양육할 자격이 없음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클로드 반담은 아직도 나이 먹은 관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냥 길을 걷는 중에 만난 남자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보기만 하지 아무도 그의 현재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영화 < 버드맨 >의 리건 톰슨 같다고나 할까. 돈도 명예도 없는 장 클로드 반담은 은행 업무를 하는 우체국에 들르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총성이 울린다. 지나던 경찰이 우체국 안을 보자 장 클로드 반담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발견한다. 경찰은 반사적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장 클로드 반담이 우체국을 털고 있다!” 중계차들이 날아와 이 흥미로운 사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경찰은 인질을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 클로드 반담과 협상을 벌인다. 와중에 이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들은 무슨 이유인지 장 클로드 반담을 응원한다. 분명히 ‘한물 간 스타가 돈이 없어 은행을 터는’ 모습에 동정심 섞인 재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반담은 은행 안에서 인질들과 함께 뭔가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면서 예상을 뒤엎는 스토리가 진행된다. 영화 < JCVD >는 탐라 데이비스 감독의 1990년대 은행 인질 영화 < 베스트 맨 >이나 알 파치노의 < 뜨거운 오후 >를 연상시키는 대치극으로 정체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딸이 ‘아빠가 TV에 나오면 친구가 놀린다’며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거나 시시한 영화에나 출연해야 하는 반담의 현실, 알아보는 사람을 피곤해하면 바로 잘난 척을 한다며 공격받는 피로한 상황 등을 병치하며 흘러간다.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서 제일 흔해빠진 ‘한정 공간 영화로 저예산을 극복하고 스토리텔링 기술을 어필하려는 데뷔 감독’의 전형적인 영화처럼 보이던 작품은 예상외로 깊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퇴물 스타가 소동에 빠지는’ 영화는 앞서 말했던 <버드맨>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 버드맨 >보다 7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 JCVD >는 퇴물 스타가 징징대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장르영화적인 재미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의 스타가 부르짖는 인생의 소회를 그린다. 도대체 이 희한하게 재미난 작품을 만든 감독은 2015년 현재 어디에 있을까. 2005년 <버질 Virgil>로 장편 데뷔한 감독 마브룩 엘 메크리는 고몽 영화사에서 만든 이 작품 < JCVD >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할리우드로 실려 간 엘 메크리 감독은 어느 한국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야심 차게 각본을 완성하고 제출한 엘 메크리 감독은 스튜디오로부터 의외의 반응을 맞이한다. ‘대본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신이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급의 거장이 연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여기서 교훈은 ‘할리우드에서 데뷔하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잘 쓰면 곤란하다’일까. 그렇게 해당 프로젝트의 감독직으로부터 억울하게도 하차하게 된 엘 메크리 감독은 우연하게도 ‘역시 이미 한물간’ 왕년의 대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액션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바로 헨리 카빌, 시고니 위버 등이 함께 출연한 < 콜드 라잇 오브 데이 >였다. 흥행에서 대실패를 하고 평가 역시 비참했다. 여기서 우리는 할리우드 밖에서 주목받아 할리우드로 입성해 첫 작품에서 망해버린 여러 감독의 이름이 떠오른다.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했으며 바로 오늘의 이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했던 오우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2012년 이후 단 한 작품도 연출하지 못하고 있는 엘 메크리 감독은 지금쯤 어떤 각본을 쓰고 있을까. 오우삼 이 결국 < 페이스 오프 >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와신상담의 날이 올 것일까. < JCVD >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PS. 참고로 예의 엘 메크리 감독이 감독직에서 하차했던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