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 인터렉티브 아트무비 패션쇼
- 감독
- 주장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신주환, 김하윤, 박지훈, 박예주
현재 열리고 있는 성대한 프로그램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의 주인공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몹시 사적으로 대했던 연출자, 자신의 삶을 곧 영화로 만들고자 했던 연출자다. 그런 그의 태도를 기리며, 이 글에서는 평소보다 더 사심을 담아 트뤼포의 영화 세 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혹은 ‘여자를 좋아했던 남자’ 트뤼포의 세 여자를. 공교롭게도 세 여자는 모두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지만, 세 여자의 운명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건 트뤼포의 영화니까. 첫째, 〈 미시시피의 인어 〉 혹은 카트린느 드뇌브.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당대에나 지금이나 트뤼포의 수작으로는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뤼포 영화다. 일단 〈미시시피의 인어〉는 〈 비련의 신부 〉와 마찬가지로 미국 범죄 소설계의 거장이요, 밤과 서스펜스의 시인인 윌리엄 아이리시/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가장 훌륭한 울리치 영화는 아니더라도, 〈미시시피의 인어〉에는 울리치 특유의 논리를 넘어서는 휘몰아치는 낭만이 존재한다. 또 〈미시시피의 인어〉는 트뤼포의 장편 연출작 중 유일하게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촬영한 작품이며, 이 형식을 과시하듯 사용한다. 60년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극장의 큰 스크린에 가득 찬 이미지를 구경하는 호사를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휴가용 영화’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트린느 드뇌브가 어마무시하게 아름답다. 물론 드뇌브는 〈셰르부르의 우산〉에서도, 〈 로슈포르의 숙녀들 〉에서도, 〈 세브린느 〉에서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미시시피의 인어〉는 드뇌브를 향한 숭배 의식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생색을 내거나 자의식적 윙크를 던지는 일도 없이 그저 ‘해는 동쪽에서 뜨고 나는 아름답지요’라고 말하는 듯 아름다움을 무심하게 발산해댄다. 이 드뇌브가 악당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명백하다. 그런데도 넘어갈 것인가. 말하자면 〈미시시피의 인어〉는 장-폴 벨몽도와 관객들을 상대로 카트린느 드뇌브라는 패를 보여준 채 벌이는 게임인데, 벨몽도와 우리는 알면서도 질 수밖에 없다. 둘째, 〈 나처럼 예쁜 여자 〉 혹은 베르나데트 라퐁. 베르나데트 라퐁은 이번에 상영되는 단편 〈개구쟁이들〉에서 개구쟁이들이 환상을 품고 흠모하는 묘령의 아가씨로 출연하는 배우로, 그 작품은 트뤼포의 첫 연출작인 동시에 라퐁의 첫 출연작이기도 했다. 그 후 15년 만에 두 사람이 재회하여 만든 영화가 〈나처럼 예쁜 여자〉다. 제목부터 뻔뻔한 이 영화에서 라퐁은 자신의 행실에 한 점 후회 없는 범죄자로 출연하여 자신을 연구하고자 하는 순진무구한 사회학자 앞에 속어를 쏟아내며 얼을 빼놓는다. 범죄자의 행적을 여러 개의 플래시백으로 재구성한다는 소재와 구조는 필름 누아르에서 온 것이지만, 그보다는 막스 브라더스나 바보 삼총사(Three Stooges) 유의 슬랩스틱 코미디, 루니툰 애니메이션, 그리고 장-뤽 고다르의 60년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인공적이고 과장된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코미디다. 베르나데트 라퐁은 이 안에서 거의 시종일관 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기운차게 고함을 지르고 질주하며 형형색색의 패션을 과시하고 모든 남자들을 때려눕힌다. 아드레날린과 깔깔거림을 원한다면 바로 이 영화다. 셋째, 〈 신나는 일요일 〉 혹은 파니 아르당. 〈신나는 일요일〉은 트뤼포의 유작이지만, 여기에서 억지로 죽음의 기운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런 영화가 필요하다면 〈녹색방〉을 찾아가시길. 이것은 트뤼포가 할리우드식 B무비의 기운을 불어넣고자 일부러 촬영을 재촉하며 경쾌하게 찍은 작품이다. 줄거리만 봐서는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가고 밤과 매춘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범인도 잡고 연애도 하는 하워드 혹스 풍의 로맨틱 미스터리다. (시네마테크KOFA 단골 관객 여러분께서는 얼마 전 상영한 〈 빅 슬립 〉을 기억하시리라.) 여기서는 누구보다도 트뤼포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 파니 아르당을 잊을 수 없다. 영화는 파니 아르당이 활기차게 길을 걷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 걸음걸이가 〈신나는 일요일〉의 주제나 다름없다.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장을 가게에 가둬둔 채 트렌치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며 사건을 수사하는 흑발 비서의 모험담. 이 사랑스러운 소품을 통해 트뤼포는 흡사 자신의 스승인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반기를 드는 듯하다. 누명 쓴 사나이는 누명 쓴 채로 가만히 계시라. 차가운 섹스어필 가득한 금발 미녀도 안녕. 수다스럽고 활기찬 흑발의 비서가 나가신다! 그리고 히치콕식 범죄극으로 시작하여 혹스식 말다툼으로 발전하는 이 영화는 드뇌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는 아르당의 패션쇼와 다리 과시를 거친 다음 문득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장난을 바라보며 막을 내린다. 영원한 영화 소년 트뤼포의 마지막 인사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영화는 없으리라.
필자가 씨네 21 기자로 일하던 1998년 9월 중순, 특이한 상영회가 열린다는 전갈이 왔다. 김수형 감독의 전화였다. 그는 1980년대에 < 산딸기 >, <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 > 등의 에로 영화를 연출했던 감독이며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스승의 대표작인 < 갯마을 >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사연은 이랬다. 당시 천리안 동성애자 모임 ‘퀴어넷’이 이태원의 어느 카페에서 김수형의 < 금욕 >(1976)이란 영화를 상영했고 이 자리에서 영화를 본 동성애 잡지 「버디」의 편집인들이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잡지에 실었으며 신촌의 한 카페에서 재상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춘기와 청년기에 그의 영화를 동시상영 극장에서 곧잘 봤던 필자는 호기심이 동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김수형 감독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 영화전문기자인 김영진은 이처럼 역사적인 자리에 꼭 기록자로 참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실제로 < 금욕 >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1973년 < 바람아 구름아 >로 데뷔했던 김수형 은 이 세 번째 장편영화에서 자기 나름의 모험을 시도한다. 제작자가 원한 대로 그는 새롭게 에로티시즘을 가미한 멜로드라마를 찍을 작정이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급진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로 태어날 뻔한 미완의 가치 있는 시도가 거기 담겨 있었다. <금욕>의 여주인공인 패션모델 영희는 세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기억 때문에 패션쇼장에서 발작을 일으킬 만큼 몸과 마음이 다친 상태인데 부유한 이혼녀이자 화가인 노미애의 그림 모델 제안을 받고 노미애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사랑에 빠진다. 남편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있는 노미애는 영희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영희의 재활을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당시 대다수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 여주인공들이 남자들에게 상처받으며 전락하는 과정을 다뤘다면 < 금욕 >은 남자들에게 상처받은 여성들이 서로 보듬어줌으로써 아픔을 치유하고 넘어선다는 주제를 다룬다. 물론 이 플롯은 에로티시즘을 넣기 위한 구실이기도 하다. 영희와 노미애가 서로 마음을 보듬는 과정은 노미애가 영희의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거나 벌꿀로 영희의 몸을 전신마사지하는 초보적 에로티시즘의 형태로 묘사된다. 1970년대의 심의 기준으로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김수형 은 여성 주인공들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나눈다는 설정을 플롯에 암시적으로 끼워 넣었다. 노미애의 집을 온갖 새장들로 가득 찬 공간으로 설정하고 새장의 이미지를 줄곧 화면 전경에 놓고 폐소공포증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가운데 두 여성 주인공이 가학과 피학을 오가는 성적 교감을 나누는 전개는 제작자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물론, < 금욕 >이 끝까지 당시의 금기를 밀어붙인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중반 이후 전개가 다소 상투적인 전개로 흐르는 가운데 영희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 디자이너 준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와의 결혼을 꿈꾼다. 영희는 준이라는 완벽한 남자를 만나 나누는 성관계를 통해 강간의 충격을 벗어나 이성애적 사랑의 길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그런 영희의 선택을 비난하는 노미애의 태도는 감상적인 질투에 가깝다. 당시 잡지 「버디」의 편집진은 노미애가 영희를 붙잡을 때 “내 삶을 전부 너에게 줘버렸기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대사에 이 영화의 비의도적인 레즈비언 적 상상력의 올바른 정치적 태도가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금욕>이 레즈비언 영화의 계열에 들어갈 수 있다면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레즈비언이란 여자와 성교하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가치 중심을 여자에게 둘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금욕>은 이성애주의로 점철된 한국영화의 한켠에서 레즈비언 적 시선을 한 줄 건져 올릴 수는 있는 셈이다.” 80년대 충무로 에로 영화 계보의 한 축을 차지했던 감독 김수형 은 < 금욕 >을 만들 때 29살의 나이였다. 미숙한 대로 이 영화에는 의욕 충만한 영화청년의 기질이 곧잘 드러난다. 새장 속의 새와 남성 지배사회 속의 여성이라는 유추는 뻔한 것이지만 일관되게 새장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화면의 응집력은 꽤 힘이 있다. 불행한 여성이 또 다른 여성을 만나 구원을 얻었고 남자 때문에 그 여성을 버렸다가 다시 불행해진다는 이야기 구조도 남성의 의지에 따라 여성주인공의 운명이 정해지는 멜로드라마의 관성을 깨는 것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영희는 다른 여자의 구애를 받는 준을 목격하고 다시 노미애의 집에 돌아오지만 노미애는 이미 자살한 뒤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필자를 만난 김수형 감독은 <금욕>이 자기 의도대로 촬영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거라고 변명했다. 그는 “애초에 영화의 결말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다른 여자를 찾는 노미애를 보여주며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검열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결말을 바꿨다. 제목도 본래는 ‘여자와 여자’였는데 개봉 당시 심의가 나오지 않아 <금욕>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어쨌든 검열과 영세한 산업구조의 이중고에 갇혀 있던 1970년대의 한국영화계를 감안 할 때, <금욕>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미완의 동성애 소재 영화이다.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DB사이트 「애니Db」에 칼럼과 애니메이션 추천 글을 몇 번 써왔는데,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자 했다. (※원고 후반부 리스트 참조)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필자는 1995년부터 여러 잡지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글을 연재해왔는데, 그 중에는 몇 가지 집중적으로 주목해온 테마가 존재한다. ‘한국 작품의 해외 진출’ 등과 같은 테마가 그것인데, 또 하나 애니메이션계에서 여성 스태프의 역할에 대해서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여성 애니메이터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남성 중심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편애니메이션이 아닌 상업 작품에서는 여성 스태프의 역할이 주로 작화나 각본 분야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즉 캐릭터 디자이너라든지 원화와 동화 등 작화 부분, 그리고 스토리를 쓰는 각본 분야에는 여성 스태프도 많지만,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제작을 책임지는 ‘프로듀서’ 등의 파트에는 여성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참고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에는 작품 전체의 감독을 ‘시리즈 감독’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각 화별 연출담당을 ‘연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이라 불리우는 직함이 보통 국내에서 사용되는 ‘감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는데, 이 ‘연출’ 부분에는 여성 연출자도 과거로부터 어느 정도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예를 들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나 『기동전사 건담』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 공각기동대 』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나 『 신세기 에반겔리온 』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 등에 해당하는 ‘감독’은 대개 남성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일본에서 현저한 상황이었는데, ‘00년대’도 끝나 2010년대에 접어든 현재 이 경향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지 않나 생각되어 그 부분을 살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터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전통적으로 여성 스태프가 주로 캐릭터디자이너나 작화 감독, 혹은 원화나 동화 담당 등 작화 분야에 존재해왔다. 『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 』(국내 제목 『천사소녀 새롬이』)와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등의 작품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 『미소녀전사 세일러문』과 『세일러문 R』, 『애천사전설 웨딩피치』의 캐릭터디자이너 타다노 카즈코(只野和子), 소위 ‘용자 시리즈’ 중의 일부(『 전설의 용자 다간 』『용자특급 마이트가인』『용자경찰 제이데카』)와 『 마법기사 레이어스 』의 작화감독(일부는 캐릭터디자인까지)을 맡은 이시다 아츠코(石田敦子) 등이 그런 사례이다. 『시티 헌터』 시리즈와 『아르스란 전기(Arslan戰記)』(『아루스란 전기』라고도 표기)의 캐릭터디자인을 맡았고 『루팡 3세 PartⅢ』, 『기동전사 건담ZZ』 등에서는 몇몇 화의 작화감독을 맡은 카미무라 사치코(神村幸子) 역시 일본에서 여성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인물이다. 타카하시 쿠미코(高橋久美子) 역시 『시티 헌터』 시리즈에서 작화감독을 맡은 후 『도쿄 BABYLON(바빌론)』『 카드캡터 사쿠라 』 등 만화가집단 CLAMP(클램프)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캐릭터디자인·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최근에는 『오란고교 호스트부』『기동전사 건담 UC(유니콘)』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았다. 이노마타 무츠미(いのまたむつみ)는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많이 활동했는데, 초기에 『 전국마신 고쇼군 』『시티 헌터』에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하고 『 윈다리아 』『마경전설 아크로번치』『프라레스 산시로』에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다.또 『우주황자』『바람의 대륙』『퓨처 그랑프리(GPX) 사이버 포뮬러』『브레인 파워드』에 캐릭터원안으로 참가했다. 나카지마 아츠코(中嶋敦子)는 『 란마 1/2 』『 체포하겠어 』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고, 『하멜의 바이올린』『트리니티 블러드』『프린세스 프린세스』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베테랑 애니메이터다. 하야시 아케미(林明美)의 경우에는 거의 주로 원화나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인데, 『너스앤젤(간호천사) 리리카 SOS』『 소녀혁명 우테나 』 등이 대표작이다. 『 후르츠 바스켓 』에서는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도 맡았고, 『극장판 소녀혁명 우테나 애덜레센스(Adolescence) 묵시록』에서는 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야마모토 사와코(山本佐和子)는 여성 애니메이터로서 메카닉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사라키』『진키 익스텐드』『슈퍼로봇대전 OG -디 인스펙터-』에서 메카닉 작화감독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밖에는 『지옥소녀』『학생회의 일존』『전설의 용자의 전설』 등에도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 세인트 세이야 』(다른 번역 제목 『성투사 성시』)의 히메노 미치(姬野美智)도 마찬가지로 작화 분야의 유명한 인물이다. 히메노 미치는 『꽃의 아이 룽룽』, 『 베르사이유의 장미 』 등 1979∼1980년 작품에서부터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던 베테랑으로, 최근에는 『 유☆희☆왕 』 시리즈의 캐릭터디자인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너에게 닿기를』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 각화별 작화감독 등을 맡은 시바타 유카(柴田由香), 『12국기』『미도리의 나날』『영국사랑이야기 엠마』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쿠스모토 유코(楠本祐子), 『강철천사 쿠루미』『플라네테스』『브레이브 스토리』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을,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에서 메인 애니메이터와 총작화감독을 맡은 치바 유리코(千羽由利子)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위에 소개한 것 이외에도 작화 분야에서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가 활약했고,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여성 애니메이터의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지한 바와 같다. 하지만 유독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작품의 기획 단계를 진행하는 ‘프로듀서’라는 직함에서만큼은 여성 감독의 이름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소녀만화(국내에서는 주로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원작 작품이나,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조차도 감독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 애니메이션 팬은 남성 대상의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캐릭터 중심의 팬, 성우 팬으로 넘어가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애니메이션의 여성 팬들에게서 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소위 ‘BL(보이즈러브)’ 패러디나 동인지가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어쩌면, 이와 같이 작품 기획 단계에서는 철저하게 남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성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공고한 듯 보이던 남성 중심의 애니메이션 감독직에 여성이 기용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났끼 때문이다. 우선 1990년대에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맡은 여성으로서는 『마루코는 아홉살(꼬마 마루코)』 시리즈의 스다 유미코(須田裕美子), 『YAWARA!(야와라)』『 미라클 걸즈 』『쾌감 프레이즈』의 토키타 히로코(ときたひろこ), 『미소의 세상(키코 스마일)』의 시부이치 세츠코(四分一節子), 그러던 것이, 『에비츄』(1999년), 『부탁해! 마이멜로디』 시리즈(2005년~2009년), 『탐정오페라 밀키홈즈』(2010년)의 모리와키 마코토(森脇眞琴), 『 최종병기 그녀 』(2002년), 『리스토란테 파라디조』(2009년)에서 감독을 맡은 카세 미츠코(加瀨充子), 『신백설공주 전설 프리티아』(2001년), 『뱀파이어 기사』(2008년), 『스킵 비트!』(2008년)의 사야마 키요코(佐山聖子) 등 점점 TV시리즈를 연출하는 여성 감독이 늘어나는 추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점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주류적인 히트작을 내놓는 여성 감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 중에도 『부탁해! 마이멜로디』(모리와키 마코토 감독)는 4년 이상 이어진 장편이고, 그 이전의 『마루코는 아홉살』(스다 유미코 감독), 『미소의 세상』(시부이치 세츠코 감독) 역시 1년 이상의 장편 TV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전부 유아 내지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 있다. 『YAWARA!』『미라클 걸즈』의 토키타 히로코 감독 정도가 예외적으로 아동용이 아닌 장편 TV애니메이션을 연출했다는 예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2010년대의 일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게임의 화제작으로서 관심을 모은 『쓰르라미 울 적에』의 TV시리즈(2006~2007년), 그리고 유명한 『 노다메 칸타빌레 』 시리즈(2008~2010년)는 콘 치아키(今千秋) 감독 작품이다. 콘 치아키 감독은 그 외에도 『순정 로맨티카』 시리즈(2008년), 『괭이갈매기 울 적에』(2009년)도 연출했다. 『AIR(에어)』『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러키☆스타』『CLANNAD(클라나드)』에서 원화를 맡았던 야마다 나오코(山田尙子)가 첫 감독 작품으로 내놓은 『케이온!』은 2009년과 2010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초대형 인기작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11년 개봉 예정인 『 케이온! 』의 극장판 감독으로도 내정되어 있고,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연출자로서 자리잡고 있다. TV판은 아니지만, 2006년에야 애니메이션 업계에 데뷔한 1985년생의 젊은 마츠모토 리에(松本理惠)는 경력의 대부분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시리즈 뿐인데, 2010년 『영화 하트 캐치 프리큐어! 꽃의 도시에서 패션쇼…인가요!?』로 약관 25세에 시리즈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 이후 주목받는 여성 애니메이션이 늘어나고 있는데,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에도 이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은 존재했으나 대형 히트작을 담당한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크게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전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특징으로 여성 캐릭터의 기호성(소위 ‘모에’, ‘츤데레’ 등)이나 데이터베이스성(아즈마 히로키 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등의 서적을 참조할 것)이란 측면이 주로 지적받았던 점은, 어쩌면 남성 중심의 연출이 일반적이었던 2000년대 이전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징과도 연관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케이온!』과 『쓰르라미 울 적에』로 여성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케이온!』으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09년 일본의 잡지 「오리콘 biz」와의 인터뷰에서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기호화되기 쉬운데, 그런 단어(분류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작화 담당자에게 애니메이션의 여자 캐릭터가 자주 하는 포즈를 금지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케이온!』은 기존의 남성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초대형 히트작이 되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기호화’를 쓰지 않고도 인기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한 셈이니 향후 업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하다.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과 사회 변화 출판만화나 문학에서는(일본에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부터가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부터 당연히 존재해왔던 것이 여성 작가인데, 크리에이터 단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르에서는 당연했던 여성의 존재가 집단 제작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단체를 통솔하는 역할인 감독으로서 드물었던 것은 결국 일본 사회에서의 여성이 가지는 위상과 연관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연구서 『만화! 문화 사회학적 읽기』(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년 발행)의 공동저자인 최흡은 2011년 1월 20일에 열린 「망가: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 심포지엄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같은 예술 작품이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는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 사례로 작중의 여성 인물의 위상 변화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30년 이상 시리즈가 이어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시대별 여성 캐릭터를 망라하여 그 특징을 설명했는데, 1979년 발표된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군대 내의 여성 캐릭터가 주로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사였고 로봇의 파일럿이나 전함의 함장을 맡은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임시직 정도의 대우였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던 것이 1985~1987년의 『기동전사 Z건담』『기동전사 건담ZZ』에서는 정식 파일럿이나 메카닉 기술자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2년의 『기동전사 건담 SEED』에 이르러서는 여성 캐릭터가 군대 내에서 함장이나 부함장 등 ‘지도자’ 역할로도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 작품 『기동전사 건담 00(더블오)』에서도 마찬가지로서, 70년대로부터 8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서 여성 캐릭터가 점점 전문직으로, 커리어우먼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애니메이션 작품 내에서의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업계 내에서의 변화에도 시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여성이 단순한 동화나 채색을 담당하던 것에서 캐릭터디자인이나 각본과 같은 전문직으로, 나아가서는 집단을 통솔하는 지휘자로서도 변화해온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내부의 변화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학적인 연구에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