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완과 콜레트
- 감독
- 프랑소와 트뤼포
- 제작년도
- 1962
- 출연
- 장-프랑소와 아담, 파트릭 오파이, 프랑수아 다르봉, 장 삐에르 레오, 마리 프란스 피지에, 피에르 셰퍼, 로시 바르트
사샤 기트리가 영화에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샤 기트리는 프랑스영화의 위대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시네필들에게 잘 언급되지 않는 이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시네아스트들의 연옥(煉獄)의 왕자라고 불린 사람. 오손 웰즈, 알랭 레네, 프랑소와 트뤼포가 한결 같이 찬사를 바쳤던 감독. 아마 나는 이 연재를 하면서 몇 번이고 그를 이 자리에 다시 초대할 것이다. 사사 기트리는 영화가 발명도 되기 전인 1885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을 했고, 그래서 태어나서 무대를 바라보면서 자라났다. 5살에 아버지의 극단에서 무대에 데뷔하였고, 그 무대에서 단지 귀여운 소년이 아니라 그가 타고난 연기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모는 사샤 기트리가 좋은 교육을 받기 원했지만 16살에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는 단지 연기만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다음 희곡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사사 기트리는 자기가 쓴 모든 희곡. 모든 시나리오에 배우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주연으로 배역을 맡았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위해 쓴 대본들. 자신이 쓴 희곡으로 첫 무대에 오른 작품은 <페이지>였다. 1902년 4월 15일 마튀랭스 극단의 공연이었다. 멜리에스의 공상과학영화 <달에로의 여행>이 상영된 해이다. 그런 다음 그는 아버지의 극단인 르네상스 극단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사샤 기트리는 천재적인 연기와 대중적으로 성공한 대본, 그리고 몰리에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연출이 파리의 주목을 끌면서 예술가들의 사교계에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기가 끝나가면서 새로운 예술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사샤 기트리> 사샤 기트리에게서 희곡 작가이자 무대 연출가로서의 경력의 절정은 아마도 1910년대였을 것이다. 1912년에 <야간 간병인>과 <멋진 결혼식>, <스코틀랜드 순례자>를 한 번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1914년 <두 개의 식탁>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사샤 기트리는 이미 모두가 존경할만한 예술가의 자리에 올랐다. 이상하게도 연극에 몰두하던 사샤 기트리가 어떤 계기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때 연극계의 사람들은 영화가 자신들의 예술을 위협한다고 생각했으며, 대중 관객들을 뺏어가는 적이라고 공격했으며, 애써 영화는 천박한 구경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샤 기트리가 그때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분명히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하나의 가정. 아마도, 아마도 그때 사샤 기트리는 연극무대를 찍은 ‘필름 다르’ 영화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가 보여주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 집의 그들 - 클로드 모네> 사샤 기트리는 이상한 영화를 찍었다. 이미 초기 영화의 편집이 하나의 규범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정확하게 동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 태도에서) 마치 뤼미에르처럼 영화를 찍었다. 그 영화가 <우리 집의 그들>이다. 두 가지 놀라운 점. 첫 번째, 사샤 가트리는 19세기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자기 카메라 앞에 세웠다. 누구보다도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그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조각을 다듬는다. 인상주의 풍경화의 대가 클로드 모네가 수련 앞에서 자기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는 중이다. 파리의 풍경을 담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때 그 곁에 아직 21살이었던 그의 아들(이자 훗날의 프랑스 영화의 대가) 장 르누아르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쾌하게 웃는다.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쓴 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 출연한 20세기 초 프랑스 연극무대의 전설인 사라 베르나르가 편지를 읽는다. <실베스트 보나르의 죄>, <티아스>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나톨 프랑스도 찍었다. <동물사육제>를 쓴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도 볼 수 있다. 사실주의 연극 무대의 창시자인 앙드레 앙토완느를 만날 것이다. 우리들이 그저 사진으로만 알고 있는 이 위대한 이름들이 어떻게 살아 숨 쉬었는지를 알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기록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때 이미 유명했고, 지금 그들은 예술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영화를 찍은 것 같지는 않다. 두 번째 놀라운 점. 이 영화를 찍으면서 사샤 기트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외 없이 화면 속의 예술가들, 카메라 앞의 예술가들이 말하는 쇼트를 포함시켰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이고 영화는 아직 소리를 ‘찍을 수’ 없었다. 마치 그걸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집의 그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거기서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집의 그들>은 마치 목소리를 들으려면 영화관이 아니라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으로 오라고 알려주려는 것처럼 찍은 영화이다. <우리 집의 그들>이 사샤 기트리의 첫 번째 영화이긴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키영화가 시작된 다음의 일이다. <우리 집의 그들 - 사라 베르나르> 그럼에도 <우리 집의 그들>에 안타까운 심정을 가진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915년에 공개된 22분 버전을 바탕으로 사샤 기트리가 책상 앞에 앉아서 후시녹음을 하듯이 장면별로 해설을 하고 내용을 설명하는 44분 버전을 1952년에 다시 작업하였다. 물론 그 내용이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사샤 기트리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소리, 클로드 모네의 목소리, 로댕의 목소리, 생상스의 목소리, 아나톨 프랑스의 목소리(...)이다. <우리 집의 그들>은 한편으로는 기이한 영화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영화이다.
올해는 내게 충만한 한 해였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만일 연도를 가리지 않고 뽑아도 괜찮다면 가장 좋은 영화는 피터 와킨스의 <레산; 여행>이었다. 이 전설적인 영화를 풍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마침내 리스본 다큐영화제에서 피터 와킨스의 회고전을 하면서 볼 수 있었다. 사사로운 리스트가 요구하는 명단에로 한정한다면 폴 버호벤의 < 엘르 >가 압도적이었다. 이자벨 위페르는 여기서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폴 버호벤은 이 희생자를 괴물처럼 다룬다. 약간 방향을 달리해서 올해의 괴작은 마렌 아데의 < 토니 에드만 >이다. 시종일관 웃기지만 무언가 이 새로운 이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물을 찌그러트리면서 거의 괴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연출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아마 이 영화에 대해서는 긴 글을 쓴 자리가 있을 것이다. 켈리 레이차즈는 기복이 심하지만 이번에는 걸작을 찍었다. 마찬가지로 짐 자무쉬는 자신이 존경한다고 늘 말하던 오즈 야스지로와 허우 샤오시엔으로 이어지는 어떤 선(線)을 따라가는 것만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 패터슨 >은 오로지 리듬뿐인 영화이다. 사건도 달리 없고 그저 하루 일과만이 반복해서 진행된다. 그러면서 포스트 사이키델릭 시네마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놓는다. 몇몇 순간은 거의 홀린 듯한 지경으로 몽환적이다. < 데드 맨 >이후의 걸작임에 틀림없다. 생각지 않았던 올해의 발견은 클레버 멘돈사 필로이다. < 아쿠아리우스 >는 21세기 정치영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올해 왕빙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나는 미얀마 국경 근처의 정글에서 찍었고(< 타앙 >) 다른 하나는 상하이에서 찍었다. (<고전>) 두 편 모두 각자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이 어떻게 부서져 가고 또 거기서 어떻게 견디는지를 바라본다. 그런데 뭐랄까, 여기에는 단지 고통을 찍었다는 것 이상의 이상한 순간과 마주하게 만드는 쇼트가 등장한다. 두 편은 각자 다른 의미에서 굉장하다. <타앙>은 기이하게도 어느 순간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도 인물들을 바라보면서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순간과 마주대하게 되고(이를테면 끝날 것 같지 않은 밤 장면들) <고전>은 똑같은 의미에서 기이하게도 어느 순간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도(이를테면 왕빙 영화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결말) 산문적인 드라마의 네트워크로 인물들을 동여매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왕빙은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길을 보여준다. 완전히 반대의 영화. 두 영화는 반드시 동시에 보아야 한다. 그리고 < 설리 >가 있다. 이 영화는 긴 토론이 필요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상한 방식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몹시 거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허드슨 강에 추락하자 그때부터 진행되는 (구조선과 헬리콥터와 승무원들이 아니라!) 일사불란한 쇼트의 진행과 동선의 우아함은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아름답다. 그러나 트리우마처럼 그 앞에 세월호의 잔영이 떠오른다. 내가 한 사람의 영화평론가이지만 동시에 영화 앞에서 남한의 시민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일깨워질 때 (어떻게 그 둘을 완전하게 분리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경험은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그러므로 <설리>에 대해서 내가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완전히 사사로운 의미에서 이 명단을 샹탈 아커만 없이 끝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마치 유언과 같은 영화를 찍었다. 그저 몹시 심한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가지를 보는 첫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를 이미 굉장하다. 나는 <잔느 딜망>을 처음 본 날의 쇼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가슴 아팠다. 나는 내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 여기에 그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자, 이제 한 편의 영화를 말해야 할 차례이다. 그 자리에 < 루이 14세의 죽음 >을 남겨놓은 것은 알베르 세라 때문이 아니라 장-피에르 레오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뮌헨에서 보았는데 그 자리에 알베르 세라가 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예의 광대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무더운 여름에도 목도리까지 두르고 나타나서 자신의 영화와는 반대로 수다쟁이처럼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을 때는 장-피에르 레오 때문에 극장 안이 꽉 찼어요. 그런데 뭐, 보시면 아시겠지만 화면 전체가 내내 어두워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거예요. 시작하고 나서 10분이 지나서 줄을 지어 나가기 시작했죠, 다행한 건 영화가 짧아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다 나가기 전에 끝났다는 거죠. 두 번째 상영 때는 이 소문이 이미 칸에 모두 퍼져서 절반 조금 넘는 관객이 왔을 뿐이지만 각오를 한 표정들이었죠, 사람들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잠들어서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지자 다들 깜짝 놀라서 깨어났죠, 하여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다가가도 즐거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건 죽어가는 시간을 찍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미 루이 14세는 당뇨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며 시종일관 이 침대가 놓여있는 방에서 진행된다. 살아생전 태양왕이라고 불리던 사람. 어둠 속에 누워있는 태양. 거의 꺼져가고 있는 듯한 태양. 이야기는 루이 14세가 죽기 전 21일의 시간이 전부이다. 알베르 세라의 말처럼 어두컴컴한 촛불 조명 아래에서 마치 실내극처럼 펼쳐지고 거기 장-피에르 레오가 누워있다. 76세에 그의 생명을 다한 루이 14세를 이제 71살이 된 장-피에르 레오가 그 침대에 누워 대신하는 중이다. 고정되어 있는 4대의 카메라가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에 촬영을 하고 있으며 어느 장면을 선택할지 알 수 없는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그저 각자의 동선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알베르 세라는 영리하게 각자의 카메라를 각자의 맥락으로 배치하였다. 그래서 하나의 영화 안에서 4개의 서로 다른 성질의 쇼트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이 네 가지 성질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면 이 글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글이 될 것이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장-피에르 레오를 말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 루이 14세의 죽음 >은 긴 설명을 요구하는 영화이다. 여기서 내 임무는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사사로운, 이라는 단서를 떠올려주기 바란다. 한 해를 결산하면서 이 영화 앞에서 문득 이상하리만치 올해 자주 마주친 장-피에르 레오를 생각하고 싶어졌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이 배우를 볼 때마다 나는 한 연기자의 경력을 본다기보다는 영화에 관한 어떤 연대기를 보는 느낌을 받곤 한다. 프랑소와 트뤼포, 장-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베르날도 베르톨루치,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장 외스타슈, 올리비에 아사이야스, 아키 카우리스마키, 차이밍량, 베르트랑 보넬로, 그리고 이제 알베르 세라. 마치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것처럼 이어지는 이름들. 물론 배우는 어떤 감독의 영화에 나와도 괜찮다. 어쩌면 그것은 배우의 특권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를 하나의 가족처럼 묶어내는 이름으로서의 장-피에르 레오는 명단을 써나가다 말고 무언가 기괴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이때 그 명단을 열거하는 것은 내가 본 영화들의 제목을 주마등처럼 돌려보는 것이기도 하다. <400번의 구타>(1959)와 <루이 14세의 죽음>(2016)의 장-피에르 레오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영화는 세 편의 레오 주연의 작품이다. 올해 봄에 오랜만에 <400번의 구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마 21세기 들어서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것 같다. 생각해보니 디지털 버전으로는 처음 본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기이할 정도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장-피에르 레오의 존재감이었다. 추운 겨울의 파리를 싸돌아다니는 어린 장-피에르 레오를 대상으로 트뤼포는 마치 장 루쉬가 여름에 찍은 것을 겨울에 다시 한번 더 찍었다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잘 몰랐지만 장-피에르 레오는 몇 가지 독특한 제스처를 평생 동안 변치 않고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스처는 마치 내면의 터치처럼 감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표정이 되었다. 그는 그것을 트뤼포의 연기 지도로 해낸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본래의 것이었음을 스스로 평생에 걸친 육체를 통해서 증명해낸 것이다. 나는 영화를 순서대로 보지 못하고 그런 다음 < 루이 14세의 죽음 >을 보았다. 11살 소년을 본 다음 71살이 된 장-피에르 레오를 보게 되었을 때 거기에서 단지 세월이 보인다는 상투적인 표현보다는 차라리 손자를 만난 다음 그 할아버지를 본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둘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기억은 알 수 없는 불길한 유혹이 된다. 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필모그래피. 이때 나는 마지막에 달려있는 그래피, 라는 말을 생각한다. 갑자기 거기 서명하기라도 한 듯한 기록들. 그 행간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가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어떤 유령을 대면하는 것만 같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시간 감각. 나는 분명히 루이 14세의 어떤 제스처에서 앙또완 드와넬에서 이미 본 어떤 동작을 보았다. 알베르 세라는 그것을 통제하지 않았다.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예민한 미술비평가가 이런 디테일을 놓쳤을 리가 없다. 게다가 <루이 14세의 죽음>에는 카메라의 이동이 없다. 완전히 멈춰 선 카메라. 그러므로 화면에서 볼만한 것이라곤 촛불 불빛 아래 죽어가는 연기를 하는 장-피에르 레오가 전부이다. 장-피에르 레오가 1959년에 찍은 첫 번째 영화와 2016년에 찍은 최근의 영화가 겹쳐질 때, 그래서 하나가 나가고 다른 하나가 들어올 때, 마치 그 둘이 각자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타났을 때, 촛불은 어떤 주문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그 대신 세 번째 영화를 말하려고 한다. 그런 다음 한여름에 프랑수아 트뤼포 회고전이 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되면서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대륙>의 토크를 진행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이 영화에 관한 정보가 1시간 48분이었는데 정작 영화를 보니 2시간 11분 판본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프랑스문화원에서 처음 본 이후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트뤼포의 최고걸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리 흥행에서 실패한 이후 트뤼포는 자기 손으로 단축 판을 만들었고 그것이 공식적인 상영 본이 되었다. 그래서 원래의 판본이 언제나 궁금했다. 나는 그걸 올해 비로소 본 것이다. 그것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저 보면서 내가 전에 본 것과 무언가 이상하게 다른 걸, 하면서 중얼거리다가 끝난 다음에 시계를 보고서야 비로소 원래의 판본을 보았다는 사실에 완전히 흥분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때 이 영화에서 장-피에르 레오는 빛나는 청춘이었다. 죽어가는 노인 장-피에르 레오가 마치 단숨에 청년에로 되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내 앞에 다시 나타나서 약간 수줍은 듯한 얼굴로 인사를 할 때 알 수 없는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오로지 나만의 이상한 여행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올해 영화를 따라서 여행을 했다. 아마 내년에는 내 영화를 들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나 자신과의 맹세이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최근 선댄스영화제가 발굴한 재주꾼 중 한 명은 알폰소 고메즈-레존이다. 두 번째 장편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로 2015년 선댄스 드라마 부문의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던 그는 NYU(뉴욕대)와 AFI(미국영화협회)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1990년대 초부터 영화 현장에 뛰어들었다. 세컨드 유니트 디렉터로, 혹은 프로덕션 어시스턴트로, 아니면 연출부의 일원으로 그가 ‘모셨던’ 감독들의 명단은, 혹시 이 사람에게 수집벽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히 쟁쟁하다. 마틴 스코시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노라 에프런, 시드니 루멧, 마이클 만…. 최근엔 벤 애플렉 감독의 < 아르고 >(2012) 세컨드 유닛을 이끌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였다, 시작은 TV 시리즈였고 < 글리 >(2009~15)나 <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2011~ ) 등에 참여했다. 2014년엔 드디어 첫 장편영화 <일몰이 두려운 마을 The Town That Dreaded Sundown>을 내놓는다. 전형적인 슬래셔 호러 장르에 나름의 스타일과 플롯 비틀기를 가미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에서 그는 환골탈태한다. 제시 앤드류스의 첫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장르적 전형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과 비주얼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일몰이 두려운 마을>과 유사한 방식의 시도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깊이와 캐릭터의 매력은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 틴에이저 장르 안에서 이토록 유쾌하고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게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작은 기적이다. 제목이 말하듯 이 영화는 ‘나’인 그렉(토머스 만)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하이스쿨 졸업반이 된 그렉. 그는 8년째 투명인간처럼 학교 생활을 해온, 거의 모든 성향의 집단들과 어울릴 수 있는, 좋게 말하면 친화력 좋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색깔 없는 ‘왕따’나 마찬가지인 십대다. 유일한 친구는 얼(알제이 사일러)이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어울린 둘의 공통점은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그들은 단순한 마니아를 넘어, 영화사를 아로새긴 걸작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리메이크(라기보다는 패러디)한다. 역사 교사 매커시(존 번탈)의 방에서 빈둥대거나 영화 찍는 것 말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죽어가는 소녀’ 레이첼(올리비아 쿡)과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할리우드 틴에이저 무비는 겉으로는 얄팍해 보이지만 의외로 성찰적인 장르다. 십 대들의 불안한 삶은 지향점을 알 수 없는 저항으로 치닫고,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에 빠지고, 세상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때론 힘겨운 운명의 짐을 지기도 한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친구, 연인, 교사, 부모 등의 한정된 캐릭터로 이뤄지지만, 이 제약적인 토대 위에서도 틴에이저 무비는 매우 풍성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도 마찬가지다. 전반부가 제법 발랄한 톤의 루저 코미디를 통해 십 대들의 냉소적 불안감을 담아낸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어른스럽고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와 엔딩에 가면, ‘쿨’하게 시작해 점점 온도를 올렸던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이런 드라마의 힘은 ‘죽어가는 소녀’ 레이첼과 ‘나’ 그렉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하이스쿨 시절을 마감하고 대학으로 가는 관문인 졸업반 시기. 레이첼은 백혈병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렉은 그 어떤 꿈도 없다. 같은 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불운한 우정’이 시작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레이첼의 백혈병이다. 그렉은 “가서 친구가 되어 주라”는 엄마(코니 브리튼)의 말에 못 이겨 레이첼의 집에 갔고, 어색하게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어느덧 졸업반 내내 이어진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렉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고, 레이첼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더욱 절박한 상황에 처한 레이첼이 그렉의 삶을 채찍질하고 이끈다는 점이다. 레이첼은 그렉 대신 대학 입학처에 편지를 보내고 그를 격려한다. 하지만 그렉은 오히려 레이첼의 호의와 헌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그렉은 조금씩 껍질을 깨나가며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이러한 성장 영화의 측면이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의 진지한 얼굴이라면, ‘나’ 그렉과 ‘친구’ 얼이 만들어낸 수많은 영화들의 목록은 시네필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다. 이 영화엔 수많은 영화들이 언급된다. 그렉과 얼은 역사 선생 방에서 컴퓨터로 베르너 헤어조크의 < 피츠카랄도 >(1982)에 대한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 버든 오브 드림스 >(1982)를 본다. 그렉의 아버지(닉 오퍼맨)도 헤어조크의 팬으로 < 아귀레 신의 분노 >(1982)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렉의 방엔 프랑소와 트뤼포의 < 400번의 구타 >(1959) 포스터가 붙어 있으며, 그는 실의에 빠졌을 때 이 영화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렉이 얼과 함께 만드는 영화들의 제목들 역시 가관이다. 잉마르 베리만의 <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에서 모티브를 얻은 <일곱 마리 물개 The Seven Seals>에선 기사와 죽음의 사자가 황당한 체스를 둔다(‘seal’엔 봉인과 물개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마이클 파웰의 ‘엿보기’에 대한 범죄 영화 < 저주의 카메라 Peeping Tom >(1960)는 <똥싸는 톰 Pooping Tom>으로 바뀌었는데, 주인공은 뚫어뻥의 공격을 받는다. 이외에도 스탠리 큐브릭의 <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가 <양말장치 오렌지 A Sockwork Orange>가 되고, 데이비드 린치의 < 블루 벨벳 Blue Velvet >(1986)이 <원숭이 맥주 Brew Vervet>가 되고, 루키노 비스콘티의 <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 >(1971)이 <테니스장에서의 죽음 Death in Tennis>이 된다. 과거 8mm 시대 영화광을 연상시키는 그렉과 얼의 이러한 ‘영화 장난’들은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에 독특한 결을 부여한다. 전작인 <일몰이 두려운 마을>에서도 ‘영화 속 영화’의 컨셉트로 연쇄살인극을 구성했던 고메즈-레존 감독은 두 번째 영화에선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영화 유희적 본성을 드러내며, 그 기발함과 유머는 자칫하면 느슨해질 수 있는 루저 스타일 틴에이저 무비를 활기 찬 소동극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영화 만들기’라는 행위는 결코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 순간을 위한 토대가 된다. 그렉과 얼은 태어나 처음으로, 기존에 있는 영화를 비트는 것이 아닌 순수한 창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바로 레이첼을 위한 영화다. 그러나 ‘진짜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야심은 곧 난항을 겪고, 결국 얼이 그만 둔 상태에서 그렉 혼자 영화를 완성한다. 병원에 있는 레이첼과 그렉이 그 영화를 함께 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데… 여기서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장면이 환기시키는 감정의 진폭은 상상 이상이다.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는 현재 할리우드 틴에이저 장르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이며 자유로운 작품이다. 관객과 대화하듯 진행되는 내레이션, 별나면서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 묵직한 드라마와 코미디를 자연스레 결합하는 솜씨 등 이 영화는 많은 영화적 미덕을 지녔다. 그러면서 영화는 어느새 ‘삶과 죽음’에 대해, 아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묻는다. 피상적으로 “우리에겐 꿈과 희망이 있잖아?”라며 대충 얼버무리며 끝나는 청춘 영화와 비교하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훨씬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사족 하나. 이 영화의 위트 넘치는 카메라 워크가 궁금해 크레디트를 유심히 살펴봤다면, 우린 의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Cinematography by Chung-hoon Chung’. 맞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바로 한국의 정정훈이다. 박찬욱 감독과 < 올드보이 >(2003)부터 호흡을 맞추었고, < 스토커 >(2013)로 함께 할리우드에 진출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미국에서 솜씨를 인정받았고,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인 < 블러바드 >(2014)에서 우울하고 정적인 촬영을 선보이더니 세 번째 할리우드 영화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에선 마치 날개를 단 듯 역동적이며 재미있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가 만들어낸 비주얼들 역시, 이 영화를 꼭 ‘봐야’하는 이유 중 하나다.